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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투는 [[제2차 세계 대전]]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약 200만 명이 죽거나 다쳐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낳은 참혹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이 전투는 [[제2차 세계 대전]]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약 200만 명이 죽거나 다쳐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낳은 참혹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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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부역 소련군 3만 명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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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6월 22일 독일 제3제국이 소련의 유럽 영토를 점령하고자 시작한 [[바르바로사 작전]]이 [[모스크바 공방전]]의 실패와 함께 끝나자, 방어 대비가 되지 않은 약점에 공격을 집중하는 독일군의 전통적인 정책에 따라 히틀러는 소련 중서부 정면인 모스크바나 이미 포위를 진행중인 소련 북서부 [[레닌그라드]] 대신 소련 남서부의 [[바쿠]], [[마이코프]], [[그로즈니]] 등의 소련 최대 유전들이 밀집된 [[카프카스 유전지대]]를 점령함으로서 [[중동]]에서 소련으로 올라오는 미국산 [[렌드리스]] 보급로까지 차단하기 위한 작전을 계획하고 결정하였으며 이는 [[청색 작전]]으로 명명된다.
독일 국방군 남부집단군의 청색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남북으로 길게 뻗은 볼가 강을 낀 스탈린그라드가 당시 남아 있었던 유일한 소련 남서부 운수의 중심지이자 핵심 도시였으므로 독일 제6군에 스탈린그라드의 점령 명령 역시 하달된다.
이쯤되니 이를 눈치챈 스탈린이 스탈린그라드 결사 사수를 명령하며 독소전쟁 개전 당시 내렸던 후퇴 금지령에 더해 스탈린그라드 인민 피난 금지령과 소련 최초의 [[형벌부대]] 창설 명령까지 내리며 후퇴하는 자들은 모조리 쏴죽였다. 독일 국방군은 막대한 양의 폭격이 끝나자마자 스탈린그라드 시가지 점령을 위해 진입하나 민간인과 소련군 모두를 상대해야 했고 도망갈 곳이 없는 소련인들은 좀비처럼 달려들며 진격이 예상보다 지연되기 시작했다.
소련군은 미국산 렌드리스로 전투식량을 공급받으며 안정적인 지구전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동원 가능한 모든 병력을 스탈린그라드로 보내기 시작했다. 곧 전투는 거대한 규모의 소모전으로 돌입했고 독일 국방군 측도 사상자 수가 누적되며 투자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물러서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으므로 독일 제6군은 모든 가용 가능한 모든 병력을 스탈린그라드로 투입하기 시작했으며 독일 제6군에 엄청난 양의 병력 증강이 이루어지기 시작되며 양측의 사상자 수는 눈덩이가 설산을 굴러 떨어지듯이 불어났다.
독일 국방군은 무장도, 전술도 이러한 대규모 시가전에 최적화되지 않았으며 시가전 경험도 소련군보다 유의미하게 많다고 할 수는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공격측임에도 수적으로도 불리한 스탈린그라드 시가전의 악조건 속에서도 불구하고 겨우 독일 1 : 소련 2의 사상자 비율로 스탈린그라드 시가지 90%를 점령하였다. 이는 과연 전성기이자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독일 국방군의 그 엄청난 전투력을 보여준 것이지만 외부 위키들에서는 이 악조건 속에서 이룬 놀라운 교환비를 언급하지 않는다.
[[작성중]]


==참고 자료==
==참고 자료==

2023년 8월 6일 (일) 15:37 판

영어: Battle of Stalingrad

러시아어: Сталинградская битва

독일어: Schlacht von Stalingrad

개요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1942년 8월 21일부터 1943년 2월 2일까지 스탈린그라드 시내와 근방에서 유럽 추축군소련군 간에 벌어진 전투를 말한다.

이 전투는 제2차 세계 대전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약 200만 명이 죽거나 다쳐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낳은 참혹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날짜
1942년 8월 21일 ~ 1943년 2월 2일
장소
소련 스탈린그라드(현 볼고그라드)
교전국 소비에트 연방 나치 독일

루마니아 왕국

헝가리 왕국

이탈리아 왕국

크로아티아 독립국

지휘관 니키타 흐루쇼프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게오르기 주코프

하지 아슬라노프

바실리 추이코프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안드레이 예료멘코

세묜 티모셴코

로디온 말리놉스키

파벨 바토프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헤르만 호트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

에리히 폰 만슈타인

페트레 두미트레스쿠

콘스탄틴 콘스탄티네스쿠

구스타브 제니

이탈리 가리볼디

결과
소련의 결정적 역전승
영향
동부전선 전세의 전환점, 나치 독일의 소련 정복 계획 사실상 포기
병력
총 병력 215만 명 이상

-  스탈린그라드 전선군

-  남서 전선군

-  돈 전선군

독일군 56만여 명 + 지원군 73만여 명

-  독일 제6군

-  독일 제4기갑군

-  루마니아 제3군

-  루마니아 제4군

-  헝가리 제2군

-  이탈리아 제8군

피해규모
군인 손실 1,129,619명

-  전사, 실종, 포로 478,741명

-  부상 650,878명

민간인 사망자 최소 4만 명

군인 손실 80만여 명(포로 91,000명 포함)

-  독일군 40만 명

-  루마니아 왕국군 109,000명

-  헝가리 왕국군 143,000명

-  이탈리아 왕국군 114,000명

- 독일 부역 소련군 3만 명 이상

진행

1941년 6월 22일 독일 제3제국이 소련의 유럽 영토를 점령하고자 시작한 바르바로사 작전모스크바 공방전의 실패와 함께 끝나자, 방어 대비가 되지 않은 약점에 공격을 집중하는 독일군의 전통적인 정책에 따라 히틀러는 소련 중서부 정면인 모스크바나 이미 포위를 진행중인 소련 북서부 레닌그라드 대신 소련 남서부의 바쿠, 마이코프, 그로즈니 등의 소련 최대 유전들이 밀집된 카프카스 유전지대를 점령함으로서 중동에서 소련으로 올라오는 미국산 렌드리스 보급로까지 차단하기 위한 작전을 계획하고 결정하였으며 이는 청색 작전으로 명명된다.

독일 국방군 남부집단군의 청색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남북으로 길게 뻗은 볼가 강을 낀 스탈린그라드가 당시 남아 있었던 유일한 소련 남서부 운수의 중심지이자 핵심 도시였으므로 독일 제6군에 스탈린그라드의 점령 명령 역시 하달된다.

이쯤되니 이를 눈치챈 스탈린이 스탈린그라드 결사 사수를 명령하며 독소전쟁 개전 당시 내렸던 후퇴 금지령에 더해 스탈린그라드 인민 피난 금지령과 소련 최초의 형벌부대 창설 명령까지 내리며 후퇴하는 자들은 모조리 쏴죽였다. 독일 국방군은 막대한 양의 폭격이 끝나자마자 스탈린그라드 시가지 점령을 위해 진입하나 민간인과 소련군 모두를 상대해야 했고 도망갈 곳이 없는 소련인들은 좀비처럼 달려들며 진격이 예상보다 지연되기 시작했다.

소련군은 미국산 렌드리스로 전투식량을 공급받으며 안정적인 지구전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동원 가능한 모든 병력을 스탈린그라드로 보내기 시작했다. 곧 전투는 거대한 규모의 소모전으로 돌입했고 독일 국방군 측도 사상자 수가 누적되며 투자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물러서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으므로 독일 제6군은 모든 가용 가능한 모든 병력을 스탈린그라드로 투입하기 시작했으며 독일 제6군에 엄청난 양의 병력 증강이 이루어지기 시작되며 양측의 사상자 수는 눈덩이가 설산을 굴러 떨어지듯이 불어났다.

독일 국방군은 무장도, 전술도 이러한 대규모 시가전에 최적화되지 않았으며 시가전 경험도 소련군보다 유의미하게 많다고 할 수는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공격측임에도 수적으로도 불리한 스탈린그라드 시가전의 악조건 속에서도 불구하고 겨우 독일 1 : 소련 2의 사상자 비율로 스탈린그라드 시가지 90%를 점령하였다. 이는 과연 전성기이자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독일 국방군의 그 엄청난 전투력을 보여준 것이지만 외부 위키들에서는 이 악조건 속에서 이룬 놀라운 교환비를 언급하지 않는다.

작성중

참고 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Stalingrad#CITEREFFrieser_et_al.2017

Frieser, Karl-Heinz; Schmider, Klaus; Schönherr, Klaus; Schreiber, Gerhard; Ungváry, Kristián; Wegner, Bernd (2017). "German Conduct of the War after Stalingrad". Das Deutsche Reich in der Defensive: Die Ostfront 1943/44 Der Krieg im Osten und an den Nebenfronten [The Eastern Front 1943-1944: The War in the East and on the Neighbouring Fronts]. Das Deutsche Reich und der Zweite Weltkrieg (Germany and the Second World War) (in German). Vol. VIII.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ISBN 978-0-19-822886-8.

Frieser et al. 2017, p.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