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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0년 영국에서 남해거품사건이라는 주식 거품사건이 있었다. 남해회사라고 식민지 개척을 위해 설립된 회사가 있었는데, 좋은 영업실적을 기록하지 않고 있음에도 갑자기 자금이 몰려 주식이 오르고 너도나도 샀던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거품이 꺼지면서 주식 가격이 곤두박질 쳤는데 하도 액수가 컸고 유럽에서도 주식시장이 개설된지 그리 오래 되지는 않던 때라 사회적으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인생 말년에 뉴턴도 이 남해회사 주식에 투자했다가 재산을 탕진해버리고 만다. 이때 뉴턴이 했던 말이 유명한데,  
1720년 영국에서 남해거품사건이라는 주식 거품사건이 있었다. 남해회사라고 식민지 개척을 위해 설립된 회사가 있었는데, 좋은 영업실적을 기록하지 않고 있음에도 갑자기 자금이 몰려 주식이 오르고 너도나도 샀던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거품이 꺼지면서 주식 가격이 곤두박질 쳤는데 하도 액수가 컸고 유럽에서도 주식시장이 개설된지 그리 오래 되지는 않던 때라 사회적으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인생 말년에 뉴턴도 이 남해회사 주식에 투자했다가 재산을 탕진해버리고 만다. 이때 뉴턴이 했던 말이 유명한데,  
{{인용문|I can calculate the movement of stars, but not the madness of men.<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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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의 움직임은 계산할수 있지만, 인간들의 광기는 계산을 할 수가 없다.}}
나는 별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들의 광기는 계산을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렇게 이야기했다.



2020년 8월 6일 (목) 03:01 판

영어: Isaac Newton (그레고리력 1643년 1월 4일~1727년 3월 31일, 율리우스력 1642년 12월 25일~1727년 3월 20일)

개요

뉴턴은 영국물리학자, 수학자이다. 학계와 대중 양측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가운데 1명으로 꼽힌다.

일생

출생

1642년 크리스마스에 체중미달로[1] 태어났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생 병약했다고 전해진다. 성격은 비관적이고 독선적이었으며 비사교적이라 주의에 친구도 거의 없었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학문을 시작한 계기

스무 살에 궁금해서 점성술 책을 구입했는데, 그 책에 나오는 삼각법을 이해하지 못해, 삼각법 책을 샀는데, 또 그 삼각법 책에 나오는 기하학을 이해하질 못해서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 책을 한권 사서 읽기 시작[2]하고서는 기초적인 수학은 모두 이해하는 수준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적분학의 정립과 만유인력의 발견

스물세 살(1665)에는 갑자기 흑사병이 돌아 뉴턴이 다니던 케임브리지 대학교가 폐쇄되었고 뉴턴은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향에서 1년동안 있으면서 미적분학과 만유인력 등의 물리법칙을 발견했다. 5년 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수학교수가 되었다.

조폐국 국장

1699년부터는 조폐국장에 취임해서 25년 동안 그 직을 수행했는데, 아마도 이 시기에는 현재처럼 체계적인 인사체계가 있지 않기에 조폐국장에 임명된 것이 아닌가 싶다.

왕립학회 학회장

1703년부터 1727까지는 영국 왕립학회 학회장으로도 재임했다. 이때 뉴턴이 왕립협회의 학회장으로서 영국 학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했기에 영국 학자들은 라이프니츠를 뉴턴의 미적분학 발명 업적을 빼앗은 지적 재산권 강탈자로 규정하고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을 영국에 도입하지 않았다. 현재는 뉴턴의 미적분학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이 누가 베끼거나 한 것이 아니라 각자 만들어냈다고 결론이 내려진다. 같은 내용을 다루고는 있지만 표현방법에서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때문에 영국의 학계가 한동안 유럽에 뒤쳐졌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

주식으로 재산탕진

1720년 영국에서 남해거품사건이라는 주식 거품사건이 있었다. 남해회사라고 식민지 개척을 위해 설립된 회사가 있었는데, 좋은 영업실적을 기록하지 않고 있음에도 갑자기 자금이 몰려 주식이 오르고 너도나도 샀던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거품이 꺼지면서 주식 가격이 곤두박질 쳤는데 하도 액수가 컸고 유럽에서도 주식시장이 개설된지 그리 오래 되지는 않던 때라 사회적으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인생 말년에 뉴턴도 이 남해회사 주식에 투자했다가 재산을 탕진해버리고 만다. 이때 뉴턴이 했던 말이 유명한데,

I can calculate the movement of stars, but not the madness of men.
나는 별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들의 광기는 계산을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망

1727년 사망하였고, 그 유해는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되었다.

각주

  1. 칼 세이건, 코스모스, 홍승수 역, 2006년, 사이언스 북스, p153
  2. 칼 세이건, 코스모스, 홍승수 역, 2006년, 사이언스 북스, p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