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렬(吳宗烈, 1938.11.28 ~ 2019.12.07)은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을 지냈다.

Obituary

오종렬, 7일 81세 나이로 사망...한국현대사에서 3代에 걸친 골수 좌익운동가 집안
전교조 탄생에 주도적 역할...모든 대규모 좌파집회에는 그가 있었다
부친 오정근은 여운형, 박헌영 등과 함께 좌익투쟁...쌍둥이 아들, 국보법 위반으로 수배생활 하기도


약력

광주 (1938) 출생
전남대 교육학 졸업 (1970)
광주사범고 (1965)

주요 경력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의장 (~2007)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2008)
韓美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2006~)
反부시국민행동 상임대표 (2005)
전용철범대위 공동대표 (2005)
평택범대위 공동대표 (2005)
탄핵무효범국민행동 공동대표 (2004)
여중생범대위 공동대표 (2002)
'군자산의 약속' (2001)[1]을 주도한 전국연합의 상임고문[2]
매향리미군국제폭격장폐쇄범국민대책위 (2001)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1999~)
광주시의회 의원 (1991~1995)
전남여고 교사 (1989 )
전교조 광주지부장 (1989)
전국교사협의회전교조의 전신 대의원대회 의장 (1988)
전남대 사대부속고 교사 (1984~ )
광주 동명여중 교사 (1982~1984 )
금산초교 교사 (1965~)


가계

오종렬의 부친 오정근(吳正根)은 일제시대 일본 유학파로 여운형의 건국동맹(建國同盟)[3][4]에서 활동했던 진골좌익(眞骨左翼) 인사이다. 오정근은 해방이후 여운형-박헌영 등이 조직한 건국준비위원회와 나주인민위원회 농민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美군정이 들어서면서 나주인민위원회는 군정 당국에 의해 해체됐고, 오정근은 광주형무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종렬의 아들 오창규는 전남대 총학생회장, 한총련 산하 남총련 의장, 한총련 중앙상임위원을 지냈다.

그러던 중 그는 1993년 5월 한총련 출범식에서 이적(利敵) 단체인 범청학련 남측본부의 일원으로 북한의 조선학생위원회와 전화로 '청년학생회담'을 추진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利敵단체 가입, 회합통신죄라는 국보법 위반 사유로 수배를 받아 7년 동안 도망자 생활을 했다.

오창규는 출소 후 '박승희 열사(분신자살) 정신계승사업회'에서 활동하다 2006년 민노당 후보로 광주 北구청장에 출마했었다. 오창규에게는 쌍둥이 親兄(오정규)이 있는데, 그의 형 역시 1993년 오창규가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나설 때, 공과대학 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2008년 5월21일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자주-민주-통일이라는 한 축을 중심으로 해 민노당 당원으로 진보정당이 기층 대중 저변으로 확대되도록 하고 한국진보연대의 전선을 강화한다는 두 개의 바퀴를 돌려나가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기도 했다.

관련 링크

함께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