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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남사회주의공화국 ==
== 월남사회주의공화국 ==
월남을 통일한 월남공산당은 남월동포들과 소수민족들을 학살하고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군사적 개입을 실시하여 패권을 휘둘러 동남아의 자유진영에 위협을 가했다. 냉전이 끝난 후 중국에서 등소평이 흑묘백묘론을 내세우자 월남도 이를 모방하여 도이 머이를 실시하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진다.
월남을 통일한 월남공산당은 남월동포들과 소수민족들을 학살하고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군사적 개입을 실시하여 패권을 휘둘러 동남아의 자유진영에 위협을 가했다. 냉전이 끝난 후 중국에서 등소평이 흑묘백묘론을 내세우자 월남도 이를 모방하여 도이 머이를 실시하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진다.
== 참고문헌 ==
* [https://vi.wikisource.org/wiki/Vi%E1%BB%87t_Nam_s%E1%BB%AD_l%C6%B0%E1%BB%A3c] wiki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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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3일 (토) 16:58 기준 최신판

홍방씨

중국신화의 염제 신농씨의 후손 낙룡군은 아들 50명을 데리고 월남반도의 북부로 갔는데 이들 중 장자가 웅왕에 즉위하여 문랑국을 건국하였다. 사회는 계급제 연맹국가이고 민족은 남중국에서 이주한 백월족들로 구성되었다.

촉조

촉나라의 왕자 촉반은 문랑국을 멸망시키고 구락국을 건국하여 안양왕으로 즉위한다. 대외적으로는 진나라와 전쟁하였고 초한전쟁에서 활약한 진나라의 장수 조타에 의해 멸망한다.

조조

조타는 구락국을 멸망시키고 남월국을 건국하여 무왕으로 즉위한다. 이때부터 월남이 한자문화권에 편입되어 중국식 관습을 받아들인다. 당시 초한전쟁에서 중원을 통일한 한나라와 경쟁하였고 광동성과 홍콩까지 영토로 삼으며 칭제까지 했지만 애왕 조흥과 승상 여가의 내분 및 무황제의 침공으로 멸망한다.

제1차 북속

한나라는 남월국을 멸망시키고 9군을 설치하여 교지주라는 이름의 속령으로 삼고 조정에서 자사를 보내어 통괄토록 하였다. 허나 자사들은 폭정을 휘둘러 남월인들을 분노케 했고 징측과 징이 두 자매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봉기로 제1차 북속은 막을 내린다.

징조

징측은 한나라군에 승리한 후 여왕으로 즉위하여 영남국을 건국했다. 그리고 한나라의 지배에 의해 단절된 옛 남월국의 문화를 복원하려 노력하였으나 한나라의 광무황제가 복파장군 마원(오호대장군 마초의 조부)을 총지휘관으로 삼은 대군을 보내어 영남국을 멸망시킨다.

제2차 북속

한나라 조정은 멸망한 영남국에 다시 교지주를 설치하고 관리체계를 재정비하여 중앙집권을 공고히 하였다. 이후 중원에 위촉오가 건국되고 그중 오나라가 교지태수 사섭의 후신들을 숙청하면서 교지주를 손에 넣는다. 이에 조씨정을 비롯한 봉기가 일어났고 월남반도의 남부에 구련이라는 자가 점성국의 전신인 임읍국을 건국하는 등 수많은 민란이 일어난 끝에 이비와 조숙에 의해 제2차 북속은 막을 내린다.

전이조

이비는 만춘국을 건국하고 황제로 즉위하여 천득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지만 양나라에서 진패선을 총지휘관으로 삼은 대군이 침공하여 만춘국도 멸망한다. 이비의 휘하에 있던 조광복은 양나라군을 무찌르고 만춘국을 재건하여 왕위에 올랐지만 이씨황족들과 정통성 문제로 대립한 끝에 홍강삼각주에서 패하여 자살한다. 이씨황족들의 수장인 이불자는 왕위를 되찾고 국호를 야능국이라 하였지만 수나라의 침공으로 멸망한다.

제3차 북속

야능국의 멸망으로 월남은 수당의 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수당 내에서 내란으로 인해 중앙조정의 행정력이 닿지 않아 현지인들의 민란과 도서부동남아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 당말에 조정에서 현지인들과 타협점을 본 끝에 전례없는 자치권이 주어졌다.

자주시기

자치권을 얻은 월남은 잦은 민란으로 혼란을 겪다가 곡씨일파가 절도사에 봉해지면서 안정을 되찾는다. 당의 멸망과 오호십육국시대의 개막 후 곡씨일파가 축출되고 남한군의 침공으로 월남은 혼란에 휩싸이다가 오권이 남한군을 백등강에서 물리치면서 최초로 독립왕조가 들어선다.

오조

오권은 왕위에 오른 후 전제군주정을 실시했다. 그의 사후 왕실 내 왕자들의 권력다툼으로 오조는 쇠락을 길을 걷고 각지에서 사군이라 불리는 실력자들이 난을 일으키면서 멸망한다.

정조

정부령은 사군들의 난을 평정하고 대구월을 건국한 뒤 선황제로 즉위하여 태평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채택하고 잔혹한 법치제도를 실시했다. 하지만 그의 암살을 계기로 황실 내에서 권력다툼이 시작되어 이를 노린 송나라의 침입을 받았다. 이에 장군 여환이 황위를 대행하는 방식으로 역성혁명이 일어나고 정조는 막을 내린다.

전여조

대행황제로 즉위한 여환은 전여조를 열고 송나라의 침입을 저지하고 이웃나라인 점성국을 평정하였다. 여환이 죽은 후 황실 내에서 권력다툼이 일어난 끝에 여용정이 황위에 올라 극악무도한 폭정을 저질렀다. 여용정이 치질로 죽자 민심은 황실의 호위무사인 이공온을 선택했고 이공온은 무혈혁명으로 황위에 오른다.

이조

태조 이공온은 혼란한 제국의 단결을 이룬 뒤 승하하였고 그의 아들인 태종 이불마는 형제를 죽이고 황위에 올라 제국의 내치를 다지고 점성국과 송나라를 쳤다. 태종의 뒤를 이어 성종은 국호를 대월국으로 바꾼 뒤 태평성세를 이룩하였고 인종은 월남사 최초의 과거제를 실시하고 내시출신 장군 이상걸을 시켜 송나라의 침입을 막게 하였다. 허나 크메르제국과 점성국의 침략, 고종의 폭정으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권신 진수도가 이씨황족들을 숙청하면서 이조는 막을 내린다.

진조

태사 진수도는 자신의 조카 태종을 황제로 옹립시키고 진조를 열었다. 당시 원나라의 황제 세조 홀필렬은 대군을 보내어 침공을 강행했지만 태자 진수도와 국공 진흥도의 필사적인 수비로 좌절되었다. 이후 점성국과의 점월전쟁에서 승리하였지만 기나긴 전쟁으로 쇠락하였고 점월전쟁의 지휘관인 호계리의 내란으로 진조도 막을 내린다.

호조

호계리는 대우국을 건국하여 단숨에 황위를 아들 호한창에게 양위한다. 이에 명나라의 성조 주체는 대군을 보내 대우국을 멸망시키고 잔존 중인 진씨황족의 수장 진외를 괴뢰군주로 옹립한다.

후진조

후진조의 초대 황제 진외는 명나라에 복종하지 않았고 이에 명나라군은 진회의 목을 벤 후 진씨황족들을 숙청하고 월남을 완전한 속령으로 삼는다.

제4차 북속

명나라는 조정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속령으로 삼은 월남을 수탈하였다. 지방토호인 여리와 그의 오른팔 완채는 호걸들을 모아 명나라군에 저항한 끝에 제4차 북속을 끝냈다.

후여조

태조 여리는 황위에 오른 후 승상 완채의 보좌를 받아 건국사업을 마치고 승하하였다. 그의 아들 태종이 차기 황제에 오르고 갓 건국된 제국의 내치를 다졌지만 야인으로 있던 완채의 집을 방문하던 도중 의문사하여 완채와 그의 일족들이 모함으로 참형에 처해저 정란이 일어나고 성종의 치세에 국조형률이 편찬되어 안정화와 태평성세를 이룩한다. 이후 차기 황제들이 정사에 태만하면서 민란이 빈발하여 무천후 막등용이 실권을 잡고 황위를 찬탈한다.

남북조

그리하여 월남반도의 북조는 막씨가, 남조는 여씨가 칭제를 하여 내전을 전개했다. 당시 남조의 실력자들인 정씨정권과 완씨정권은 주군을 보필하여 막씨의 북조를 멸망시켰지만 이들도 실권을 놓고 서로 다투어 정완분쟁을 전개한다.

정완분쟁

정씨정권과 완씨정권은 하노이에 있는 황실을 섬기는 시늉을 하고 자신들의 영지에서 왕을 칭하여 내전을 전개했다. 완씨정권이 쇠락하자 그들의 영내에 완악, 완려, 완혜 삼형제가 이끄는 대규모 농민봉기가 일어나면서 완씨정권은 붕괴되고 정씨정권마저 붕괴되었다. 농민봉기의 지도자들 중 완혜는 현종의 부마가 되었지만 민황제는 이들에 위협을 느끼고 청나라군의 개입을 허용하였다.

서산조

완혜는 부춘에서 광중황제로 즉위하고 청나라군을 무찌르며 서산조를 열었다. 이후 남월국의 옛 영토를 수복할 계획을 세우다가 뇌졸중으로 단명하고 그의 아들인 완광찬과 그의 형 완악이 공동황제가 되었으나 내란으로 완씨정권의 마지막 생존자인 완복영에 의해 무너지고 서산조도 막을 내린다.

완조

완복영은 월남을 통일한 후 가륭황제로 즉위하여 완조를 열었다. 그의 사후 명명황제가 황위를 계승하고 점성국을 멸망시킨 후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쳐서 영토를 확장했다. 당시 프랑스에 가톨릭 선교사들이 유입됐지만 조정의 탄압을 받아 프랑스군이 월남을 침공하였고 월남은 황실만 유지된 채 캄보디아와 라오스와 함께 인도지나연방이라는 식민지가 되었다. 황제들은 프랑스의 괴뢰노릇을 하여 국민들의 민심을 잃었고 호지명과 오정염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인도지나전쟁을 전개한 끝에 완조도 막을 내린다.

월남전쟁

독립 후 월남은 미군과 중국군의 개입으로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북월은 호지명의 공산주의세력이 건국한 월남민주공화국이 들어섰고 남월은 오정염의 애국보수세력이 건국한 월남공화국이 들어섰다. 오정염과 완문소의 재임기간에는 월남공화국 측이 우세했지만 간첩문제와 정치적 분쟁 등으로 쇠락해지고 이를 노린 월남민주공화국이 월남공화국을 멸망시키며 월남전쟁은 종전된다.

월남사회주의공화국

월남을 통일한 월남공산당은 남월동포들과 소수민족들을 학살하고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군사적 개입을 실시하여 패권을 휘둘러 동남아의 자유진영에 위협을 가했다. 냉전이 끝난 후 중국에서 등소평이 흑묘백묘론을 내세우자 월남도 이를 모방하여 도이 머이를 실시하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진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