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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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 빨갱이[1]

이강호 연사_서울대학교 조국 교수 사퇴 촉구 규탄집회 (펜앤현장;190831)


한때는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었던 좌익 운동권 출신이다. 10여 년의 운동권 활동을 소련 동구의 몰락을 지켜보며 마감했다. 전향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전향은 결코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타고난 언어를 넘어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데 는 많은 시간이 걸리듯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청와대에서 근무한 바도 있다. 하지만 이후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아왔다. 내면에서는 격렬한 성찰이 진행되었지만 외적으로는 조용한 삶을 지켜왔다. 그러다 노무현 정권 시절 본격화되어가는 좌익적 폭주에 우려를 느껴 글을 쓰고 청년 학생들과 시민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미래한국」 편집위원을 지냈으며, 지금은 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강의와 집필을 하고 있다. [2]


저서

박정희가 옳았다 - 5·16과 10월유신의 정치경제학[3]

한때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었던 좌익 운동권 출신의 저자는 소련의 몰락을 지켜보며 전향했다. 그러나 전향은 결코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필요했고 박정희에 대한 이해는 그 오랜 과정에서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성찰이었다. 그 반성적 이해에 대한 보고서를 담은 책이다.
P. 10 박정희를 아무리 폄하해도 <박정희가 옳았다>. 5·16과 10월유신이라는 결단은 한국의 자유민주체제의 본질과 근간을 수호하고 강화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는 결코 자유민주주의의 반대편에 있지 않다. 오히려 형식만의 민주를 절대화하는 것이야말로 결국에는 자유를 훼손하고 민주 자체도 형해화시키게 된다. P. 202 어떻게든 ‘군軍’을 격하시키려 해도, 그리고 5·16과 10월유신의 지칭을 뭐라 하든 간에 박정희의 ‘정치’는 결국 한국 현대사에서 최소의 희생으로 최고의 성과를 낳아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친일로 매도해도 한일협정이 위대한 성과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박정희 덕분에 대한민국은 세계사적으로도 공산 전체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이룩한 하나의 모범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이강호 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의 추천도서 -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 . 노명식 저[4][5][6][7][8][9]


언론 활동

⊙ ‘民主’는 이념과 가치를 담는 그릇에 불과… ‘민주’가 ‘이념’이 되면 유혈과 공포정치로 일탈

⊙ 자유의 반대편에 선 좌익의 민주주의는 압제체제 포장하는 기만적 장식물에 불과 ⊙ 민주라는 집은 반드시 자유를 주인으로 해야… 자유가 떠나버린 집에 찾아드는 것은 사기꾼과 도적들

⊙ 자유와 이별 당한 민주는 자신도 파괴하면서 반민주가 돼버리고 만다



강의, 강좌활동

===좌익의 역사 | 제1강 한국인의 ‘혁명, 진보’ 콤플렉스 1 - 이강호 위원 (前 서울대총학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