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
  • 토론
  • 읽기
  • 원본 보기
  • 역사 보기
"정두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3번째 줄: 3번째 줄:
 
2019년 7월 16일 집근처 야산의 공원에서 자살하였다.
 
2019년 7월 16일 집근처 야산의 공원에서 자살하였다.
  
 +
==평가==
 
보수정당이라면서 사상과 이념으로 뭉치고 나아가지 못하고 조선시대의 붕당정치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 정두언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사상에 기반하여 인물을 키워내지 못하다 보니 이렇게 인물들이 방황을 하고 넘어가는 주요인이다. 보수인 국민들이 보수정당이라는 자한당에 표를 안주는 진짜 원인을 정두언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정두언 개인은 분명 뛰어난 인물이나 붕당정치의 모습을 보인 한나라당에서 이리쓰이고 저리쓰이고 버려졌다. 지금에와서 개인 정두언은 분명 그순간 그순간 최선을 다해 정치를 하였으나 결국 붕당정치의 계파정치의 칼로만 쓰이고 버려졌고 본인이 결국 보수당에 상처를 남겼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갈등이 그의 우울증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보수당의 완전변태가 시급한 당면과제임을 정두언의 자살을 통해서 보수정당 정치인들은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황교안]]과 [[나경원]] 또한 과거를 답습하고 있으므로 대한민국 보수당에 삼고빔.
 
보수정당이라면서 사상과 이념으로 뭉치고 나아가지 못하고 조선시대의 붕당정치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 정두언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사상에 기반하여 인물을 키워내지 못하다 보니 이렇게 인물들이 방황을 하고 넘어가는 주요인이다. 보수인 국민들이 보수정당이라는 자한당에 표를 안주는 진짜 원인을 정두언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정두언 개인은 분명 뛰어난 인물이나 붕당정치의 모습을 보인 한나라당에서 이리쓰이고 저리쓰이고 버려졌다. 지금에와서 개인 정두언은 분명 그순간 그순간 최선을 다해 정치를 하였으나 결국 붕당정치의 계파정치의 칼로만 쓰이고 버려졌고 본인이 결국 보수당에 상처를 남겼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갈등이 그의 우울증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보수당의 완전변태가 시급한 당면과제임을 정두언의 자살을 통해서 보수정당 정치인들은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황교안]]과 [[나경원]] 또한 과거를 답습하고 있으므로 대한민국 보수당에 삼고빔.
  

2019년 7월 18일 (목) 11:35 판

정두언(鄭斗彦, 1957년 3월 6일 ~ 2019년 7월 16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었다. 한 때는 대표적인 친이명박계 인사로 꼽혔으며, 이명박 정부의 개국공신인 사람이었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이상득 전 의원의 2선 후퇴를 강력하게 요구하다가 결국 이명박 전 대통령 측과 사이가 틀어지게 됐다. 그 때부터는 친이명박계도, 친박근혜계도 아닌 당내 비주류 인사로 분류되어 지냈다. 1957년 3월 6일 서울에서 4남 1녀 중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군수를 지냈지만 병으로 가산을 탕진하여, 집안이 몰락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만주로 건너가 갖은 고생을 다 하다가 고향인 광주로 돌아왔고, 결혼 후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정성태 전 국회부의장의 운전기사로 일했고, 어머니는 모래내시장에 좌판을 펴서 5남매를 교육시켰다.[1] 2019년 7월 16일 집근처 야산의 공원에서 자살하였다.

평가

보수정당이라면서 사상과 이념으로 뭉치고 나아가지 못하고 조선시대의 붕당정치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 정두언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사상에 기반하여 인물을 키워내지 못하다 보니 이렇게 인물들이 방황을 하고 넘어가는 주요인이다. 보수인 국민들이 보수정당이라는 자한당에 표를 안주는 진짜 원인을 정두언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정두언 개인은 분명 뛰어난 인물이나 붕당정치의 모습을 보인 한나라당에서 이리쓰이고 저리쓰이고 버려졌다. 지금에와서 개인 정두언은 분명 그순간 그순간 최선을 다해 정치를 하였으나 결국 붕당정치의 계파정치의 칼로만 쓰이고 버려졌고 본인이 결국 보수당에 상처를 남겼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갈등이 그의 우울증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보수당의 완전변태가 시급한 당면과제임을 정두언의 자살을 통해서 보수정당 정치인들은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황교안나경원 또한 과거를 답습하고 있으므로 대한민국 보수당에 삼고빔.

정율성(정뤼청) 찬양

정두언은 정율성에 대해 열린 마음을 보냈다. 이런 인간이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역임하였었다. 보수라 불리우는 정당의 싱크탱크 소장의 맨얼굴이었다.


  • '노래하는 의원' 정두언, '중국의 안익태'를 만나다[2][3]
'정 의원도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는 정율성과 먼 친척뻘이기도 하다. 수년전 열린 정율성 국제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를 찾았던 자리에서 종친들로부터 그같은 이야기를 들은 것.
정 의원은 그러나 "단지 집안 어른이어서가 아니라 중국에서 국가처럼 불리는 노래를 만든 선생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것은 한국에서도 마땅히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중 문화 교류 발전 차원에서도 국내에서 선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정뤼청을 연구한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노기욱 박사는 과거 《월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정율성의 이력을 보면 광주가 열광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인데, 왜 지금 광주 사람들이 정율성을 가지고 저러는지 학자로서 지적하고 싶다”고 말했다.
평생 중국과 북한을 위해 살았고, ‘한반도 공산화’를 꿈꿨던 정뤼청은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공산당에 바쳤다. 혈연적으로는 한국인이지만, 정신적으로 정뤼청은 철저한 중국 공산당원이다. 그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어떤 공헌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군과 중공군이 우리나라를 적화하려는 데 동참했고, 이를 독려했다. 이런 자를 우리가 기려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중국과의 선린을 위해 내세울 만한 자도 아니다.

각주

  1. https://namu.wiki/w/%EC%A0%95%EB%91%90%EC%96%B8
  2. http://news.mt.co.kr/mtview.php?no=2010050411230603474 中 '인민해방군가' 작곡한 한국인 故정율성 기념사업 지원
  3. 2010050411230603474_1.jpg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사진 왼쪽)이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국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한국인 작곡가 정율성의 딸 소제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4. https://www.google.com/maps/place/%EA%B4%91%EC%A3%BC%EA%B4%91%EC%97%AD%EC%8B%9C+%EB%82%A8%EA%B5%AC+%EC%A0%95%EC%9C%A8%EC%84%B1%EB%A1%9C/@35.1368857,126.9152272,17z/data=!3m1!4b1!4m5!3m4!1s0x35718b7c094053eb:0xae599e3f718c5374!8m2!3d35.1371683!4d126.9175554 정율성로, 광주시 남구
최근 바뀜
자유 게시판
+
-
기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