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고황제주원장.jpg
주원장
朱元璋
약력
직책 대명 제1대 황제
(1328년 10월 21일 ~ 1398년 6월 24일)
후임→
생몰기간 1328년 10월 21일 ~ 1398년 6월 24일

주원장(朱元璋, 1328년 10월 21일 ~ 1398년 6월 24일)은 명조의 초대 군주이자 창건자로 묘호는 태조(太祖), 시호는 개천행도조기입극대성지신인문의무준덕성공고황제(開天行道肇紀立極大聖至神仁文義武俊德成功高皇帝)이다. 원조의 쇠락으로 인해 군웅할거로 혼란해진 중원을 통일하고 황위에 올랐으며, 치세기간에는 황권의 강화를 위해 개국공신들을 잔인하게 숙청했다.

생애

1328년 10월 21일 호주(濠州) 종리현(種离縣)의 빈민층 집안에서 주중팔(朱重八)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못생긴 외모를 지녀 사람들로부터 난세의 영웅이 될 것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부모와 형제들이 죽어 고아가 되자 황각사(皇覺寺)라는 곳에서 승려로 출가했다.

홍건적의 난

1351년에 원조정의 가장 큰 적인 홍건적의 우두머리 중 하나인 곽자흥(郭子興)의 휘하로 들어가 혁혁한 전공을 세운 끝에 그의 사위가 됐다. 이후 곽자흥이 죽으면서 자연스럽게 차기 우두머리가 되고 각지의 호걸들을 모아 군웅들을 제압하고 원조정을 몰아내고 명조를 창건한다.

치세기간

1368년 1월 23일 대도(북경)에서 황위에 오른 주원장은 연호를 홍무(洪武)로 정하고 개혁정책과 정복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호유용(胡惟庸)을 비롯하여 자신의 동지였던 개국공신들의 권세 때문에 차질이 생기자 아내인 효자고황후 마씨가 죽은 뒤 개국공신들을 잔혹하게 숙청하였다.

명태조릉

중국 난징시 현무구 자금산(南京市 玄武區 紫金山)에 있는 명태조와 마황후(馬皇后)를 합장한 효릉(孝陵)은 중국 황릉의 전범으로 명, 청 역대 황제의 능들이 이를 본딴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래 동영상 첫 머리에 명태조릉이 나온다.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習仲勛, 习仲勋, 1913~2002)의 묘역은 4만 에이커(acre)[1]로 홍콩섬 3분의 1규모이며, 중국 최대 황릉 중 하나인 명태조의 릉보다 4배나 크다고 한다.

각주

  1. 에이커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