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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6일 (목) 00:26 판

카터.jpg
지미 카터
Jimmy Carter
직책 미국 제39대 대통령
(1977.1 ~ 1981.1)
←전임후임→
정당 민주당



지미 카터(James [Jimmy] Earl Carter, 1924년 10월 1일 ~ )[1]미국의 39대 대통령이다.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을 승계한 현직 대통령인 공화당의 제럴드 포드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란 혁명과 미대사관 인질 사태

1979년 이란에서 발생한 이슬람혁명으로 입헌군주제의 팔라비 왕조가 무너지고 이슬람 종교 지도자 아야툴라 호메이니가 최고 권력을 장악하는 신정체제가 들어선다. 이후 혁명세력에 의해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 직원들이 장기간 인질로 잡히는 사태가 발생한다. 카터는 임기말에 인질 석방을 위해 무진 애를 쓰며 인질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까지 펼쳤으나 실패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198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 패하여 재선에 실패한다.

카터는 재임 기간 내내 동맹국 또는 우호국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며 집요하게 압박했는데, 이것이 이란이나 한국 등의 정권 교체 계기가 되었을 수는 있으나, 후속 체제의 인권문제는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지금의 이란 회교 신정체제도 카터 당시 들어섰으나 인권문제는 팔라비 왕조 시절에 비할바가 못될 정도로 훨씬 더 열악하고, 중동지역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한국에서도 1980년 5.18 광주사태 등이 일어나고 혼란을 겪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남북한과의 악연

카터는 재임 기간중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했으며, 박정희 정부의 인권문제를 집요하게 거론하여 한국과의 관계가 매우 불편했다. 1979년 6월 방한했는데,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의 만남의 분위기는 상당히 냉랭하였다. 몇 달 뒤인 10월 26일 박대통령이 피살 당했는데, 미국이 개입했다는 미확인 주장이 계속 있어왔다.

퇴임 후인 1994년 북한 핵 문제가 불거지자 이를 중재한다면서 6월에 북한을 방문했고, 김일성으로부터 김영삼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 개최 승락을 얻어내고 일정까지 잡혔으나 7월 8일 김일성이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사망하여 정상회담은 무산되었다. 당시 김일성은 아들 김정일에게 권력을 대부분 물려주고 은퇴상태였으나, 김정일의 문제점이 계속 보고되어 화가나서 정상회담을 계기로 권력을 도로 빼앗아올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회담 준비 때문에 과로와 스트레스가 겹쳐 갑자기 사망한 것이라 한다.

카터는 김정일 집권 기간에도 방북한 적이 있으나, 김정일은 그가 만났던 남북한 정상이 모두 갑자기 유명을 달리한 것을 매우 불길하게 여겼다고 하며, 이 때문인지 만나주지도 않았다.

1994년 6월 15일부터 18일까지 나흘간 북한을 개인 자격으로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 부부와 김일성 부부.[2] 김일성은 당시 카터에게 미국 방문을 희망한다고 말했다.[3] 김일성은 며칠 후인 7월 8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하고, 그의 후처 김성애는 이후 김정일 집권기 내내 연금당해 있다 2014년 사망했다고 한다.

박정희와의 갈등

[이주천 교수의 심층 추적] 親北 대통령 지미 카터 해부(上)
북한 취재 다녀온 샐리그 해리슨 기자 주한미군 철수 논문 발표, 이것이 카터의 정책으로 표출돼
“북한은 국민총생산(GNP)의 20%를 국방비로 쓰지만 한국은 5%를 쓴다.”(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우리가 GNP의 20%를 국방비에 쓴다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박정희 전 대통령)

퇴임 후 3차례 방북

[이주천 교수의 심층추적] 親北 대통령 지미 카터 해부(下)
카터의 방북은 서투른 협상 능력으로 북한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보냄으로써 북한이 핵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의 귀중한 시간을 벌게 해 줘. 결과적으로 그는 이적행위를 한 셈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