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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일성 최현 안길.jpg|300픽셀|섬네일|오른쪽|[[88여단|소련군 88여단]] 시절의 김일성과 동료들. 왼쪽부터 김일성(金日成), 계청(季靑, 중국인), 최현(崔賢), 안길(安吉). 북한은 이 사진을 연속 조작하는데, 처음에는 중국인 계청만 삭제했다가 다음에는 김일성을 가운데로 이동시키고 오른 쪽으로 기울어진 자세도 바로세웠다.]]
{{역사인물
[[파일:1941 남야영의 김일성.jpg|300픽셀|섬네일|오른쪽|1941년 소련 연해주 [[김정일 생가|라즈돌노예]] 마을 남야영의 빨치산 대원들. 오른쪽 맨 앞의 비스듬히 누운 사람이 [[김일성]]이고, 앞줄 여자 4명중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김정숙 (김일성처)|김정숙(金正淑, 1917~1949)]], 세번째가 [[황순희|황순희(黃順姬, 1919 ~ 2020)]], 네번째가 최현(崔賢)의 처 김철호(金哲鎬)이다.]]
|이름  =  최득권 (崔得權)
최현(崔賢, 1907~1982)은 해방 전 만주 [[동북항일연군]]과 소련군 [[88여단]] 출신으로, [[김일성]]의 동료였으며, 해방 후 북한 김일성 정권의 핵심 권력실세였다. [[김정일]]을 후계자로 옹립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여 북한 김씨 세습 왕조 확립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그 덕택으로 아들 [https://ko.wikipedia.org/wiki/%EC%B5%9C%EB%A3%A1%ED%95%B4 최룡해(崔龍海, 1950~ )]가 [[김정일]], [[김정은]] 정권에서도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 북한 핵 협상 대표로 자주 나선 외무성 부상 최선희는 전 내각총리 최영림의 입양한 딸로 알려져 있으나<ref>[https://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3&nNewsNumb=002550100004 김정은의 숨은 딜레마는 세습 엘리트 200여명] [주간조선 2550호] 2019.03.25</ref> 출생상으로는 최현의 숨겨진 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있다.<ref>[https://www.lkp.news/news/article.html?no=5566 <nowiki>[특종]</nowiki>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 최선희는 최현의 숨겨진 딸] 리버티 코리아 포스트 2019.01.11</ref>
|영어명 = '''최현'''(崔賢)
|그림  =  <!--  [[파일:ooo.jpg]] 형태  -->
|그림설명 =
|본명  = 최득권(崔得權)
|국적  = {{국기나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성별  =
|출생  =1907년 7월 15일
|출생지 =[[청나라]] 지린성
 
|사망  = 1982년 4월 10일 (74세)
|사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묘지  =
|본관  =
|주소지 =
|직업  =
|소속  = 
|병역  = [[동북항일연군]]<br> [[소련군]]<br>[[조선인민군]]
|정당  =
|생존기간 =
 
|경력  = 민족보위성 부상<br> 체신상<br>인민무력부장<br> 부총리
|학력  =
|종교  =
|신체  =
|가족  =
|부모  = 아버지 최화심
|형제  =
|배우자 = 김철호
|자녀  = 아들 [[최룡해]]
|친인척 =
 
|상훈  =
|주요작품=
|별명  =
|서명  =
|웹사이트 =
|외부링크 =
}}
[[파일:김일성 최현 안길.jpg|350픽셀|섬네일|오른쪽|[[88여단|소련군 88여단]] 시절의 김일성과 동료들. 왼쪽부터 김일성(金日成), 계청(季靑, 중국인), 최현(崔賢), 안길(安吉). 북한은 이 사진을 연속 조작하는데, 처음에는 중국인 계청만 삭제했다가 다음에는 김일성을 가운데로 이동시키고 오른 쪽으로 기울어진 자세도 바로세웠다.]]
 
[[파일:1941 남야영의 김일성.jpg|350픽셀|섬네일|오른쪽|1941년 소련 연해주 [[김정일 생가|라즈돌노예]] 마을 남야영의 빨치산 대원들. 오른쪽 맨 앞의 비스듬히 누운 사람이 [[김일성]]이고, 앞줄 여자 4명은 오른쪽에서부터 첫번째가 이영숙(李英淑, 第七军战士)<ref name="lee">[https://www.yna.co.kr/view/AKR20210508026300504?section=news&site=popup_newsflash 푸틴, 2차대전 전승절 맞아 북한 '항일 빨치산'에 축전] 연합뉴스 2021-05-08<br>[https://www.news1.kr/articles/?4300063 푸틴, 北항일빨치산 원로 이영숙에 '2차대전 승전' 축전] 뉴스1 2021-05-08</ref><ref name="lee1">[https://newsis.com/view/?id=NISX20211116_0001652379 김정은·푸틴이 예우한 마지막 北빨치산 1세대 사망]  뉴시스 2021-11-16 </ref>, 두번째가 [[김정숙 (김일성처)|김정숙(金正淑, 1917~1949)]], 세번째가 [[황순희|황순희(黃順姬, 1919 ~ 2020)]], 네번째가 최현(崔賢)의 처 김철호(金哲鎬)이다.]]
 
'''최현'''(崔賢, 1907~1982)은 해방 전 만주 [[동북항일연군]]과 소련군 [[88여단]] 출신으로, [[김일성]]의 동료였으며, 해방 후 북한 김일성 정권의 핵심 권력실세였다. [[김정일]]을 후계자로 옹립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여 북한 김씨 세습 왕조 확립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그 덕택으로 아들 [https://ko.wikipedia.org/wiki/%EC%B5%9C%EB%A3%A1%ED%95%B4 최룡해(崔龍海, 1950~ )]가 [[김정일]], [[김정은]] 정권에서도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 북한 핵 협상 대표로 자주 나선 외무성 부상 최선희는 전 내각총리 최영림의 입양한 딸로 알려져 있으나<ref>[https://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3&nNewsNumb=002550100004 김정은의 숨은 딜레마는 세습 엘리트 200여명] [주간조선 2550호] 2019.03.25</ref> 출생상으로는 최현의 숨겨진 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있다.<ref>[https://www.lkp.news/news/article.html?no=5566 <nowiki>[특종]</nowiki>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 최선희는 최현의 숨겨진 딸] 리버티 코리아 포스트 2019.01.11</ref>
 
 


==생애==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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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은 평양에 와서도 화가 나면 아무나 쉽게 죽이는 무자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ref>[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70800209207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07-08&officeId=00020&pageNo=7&printNo=21172&publishType=00020 秘話(비화) 金日成(김일성)과 北韓(북한) 前(전) 北韓軍(북한군) 師團(사단)정치위원呂政(여정) 手記(수기)] 1990.07.08 동아일보 7면</ref><ref>[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70300329203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07-03&officeId=00032&pageNo=3&printNo=10695&publishType=00020 6.25 北(북)에서 본 證言(증언) <16> 제4부 開戰準備(개전준비) 진행 (1949년)] 1980.07.03 경향신문 3면</ref> 김일성의 최측근이었기 때문에 이런 행동도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최현은 평양에 와서도 화가 나면 아무나 쉽게 죽이는 무자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ref>[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70800209207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07-08&officeId=00020&pageNo=7&printNo=21172&publishType=00020 秘話(비화) 金日成(김일성)과 北韓(북한) 前(전) 北韓軍(북한군) 師團(사단)정치위원呂政(여정) 手記(수기)] 1990.07.08 동아일보 7면</ref><ref>[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70300329203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07-03&officeId=00032&pageNo=3&printNo=10695&publishType=00020 6.25 北(북)에서 본 證言(증언) <16> 제4부 開戰準備(개전준비) 진행 (1949년)] 1980.07.03 경향신문 3면</ref> 김일성의 최측근이었기 때문에 이런 행동도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6.25 때 미군이 얻은 최현의 신상 정보===
아래는 6.25 때 미군이 인민군 포로를 신문하여 얻은 최현의 신상 정보이다.<ref>[http://archive.history.go.kr/id/AUS009_29_02C0078 RG 319, Assistant Chief of Staff, G-2 (Intelligence), Intelligence Document File Publication 1947-62, Entry # 1004H (UD), ID 950054 : ATIS-FEC Interrogation Report, Box No. 334, 950054 KG 1121, etc.] (NARA문서, 국사편찬위 전자사료관) pp.137~138 최현</ref>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 무식하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파일:미군의 최현 신상정보.pdf|섬네일|400px|가운데|6.25 때 미군이 인민군 포로를 신문하여 얻은 최현의 신상 정보]]
===최현의 잔인한 성격===
* [[6.25]] 때 포로가 된 인민군 소좌 출신 주영복(朱榮福)의 증언<ref>[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70300329203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07-03&officeId=00032&pageNo=3&printNo=10695&publishType=00020 6.25 北(북)에서 본 證言(증언) <16> 제4부 開戰準備(개전준비) 진행 (1949년)] 1980.07.03 경향신문 3면</ref>
{{인용문|어떤 대위로부터 滿浦(만포) 제철 공장에서 일어난 「崔賢(최현) 소장의 살인 사건」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어느날 밤 제재소에 불이나서 재목이 전소했다는 것이다. 당시 江界(강계) 경비대장이었던 崔賢(최현)은 이 공장 지배인 金福命(김복명) 기사를 불러 책임을 추궁했다. 그러나 金(김) 지배인은 실화(失火)라고 주장, 자기의 무죄를 증명하려고 했다. 본래 인정이라곤 없는 崔賢(최현)은 「책임을 지라」 고 강요했다. 그래도 金(김) 지배인은 죄가 없다면서 불응했다.<br>
"뭐 책임을 못지겠다구. 이놈 쏴 죽일테야"하고 눈을 부릅떴다. 金福命(김복명) 기사는 그래도 결백을 주장하며 "죽인대도 내게는 책임이 없소. 죽이려면 죽이시오" 그러자 崔賢(최현)은 권총을 빼들고 뭐야이놈 "하면서 1발로 거꾸러뜨렸다.<br>
"그래서 그사건은 어떻게 되었나요"라고 대위에게 물었더니 사건은 말이지 南韓(남한) 스파이에 의한 放火(방화) 사건으로서 간단히 해결되었습니다. 무서운 이야기이지요"<br>
나는 이런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하는 이 군관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하고 약간 의심도 했다.}}
===낫 놓고 ㄱ 자도 모르는 무식꾼===
[[박갑동]]은 최현이 낫 놓고 ㄱ 자도 모르는 무식꾼이라 하였다.
* [https://www.joongang.co.kr/article/1372730#home 평양에서의「서열」의 의미 : 박갑동<북한문제전문가>] 중앙일보 1974.03.28
{{인용문|최현은 낫 놓고「ㄱ」자도 모르는 무식꾼이지만 졸병들과 같이 밥도 먹고 농도 하는 성격이 천의무봉한 자이다.}}


== 항일연군 4사 1단장 최현(崔賢)과 동일인인가?==
== 항일연군 4사 1단장 최현(崔賢)과 동일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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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군 제1사 제1단 군수처장 (第二軍 第一師 第一團 軍需處長)<br>  
제2군 제1사 제1단 군수처장 (第二軍 第一師 第一團 軍需處長)<br>  
최현(崔賢) (印)}}
최현(崔賢) (印)}}
반면에 북한의 최현은 초등학교 2학년 중퇴의 학력으로<ref>기광서,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0003043&language=ko_KR 《1940년대 전반 소련군 88독립보병여단 내 김일성 그룹의 동향》], 『역사와 현실 28』 (한국역사연구회, 1998.06) p.282 / 김국후, 『평양의 소련군정』 (한울아카데미, 2008년 06월 21일) p.61</ref> 사실상 무학자에 가까우며, 글쓰기와 문장 독해에 애로가 많았다고 하므로<ref>[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70800209207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07-08&officeId=00020&pageNo=7&printNo=21172&publishType=00020 『秘話 金日成(비화 김일성)과 北韓(북한)』 《前(전) 北韓軍(북한군) 師團(사단) 정치위원 呂政(여정) 手記(수기) <12>》 反黨宗派(반당종파) 죄명씌워 수백명 처형] 1990.07.08 동아일보 7면</ref><ref>[http://www.ifreenk.com/knowtruth/80582 진실을알자 -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절대적 충신이었던 최현] Free NK Aug 30, 2014</ref> 위의 협박장을 보낸 최현과는 다른 사람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군수처장이란 직책도 부대에 필요한 군수품의 출납을 대장에 기록하고 관리해야 하므로 문맹에 가까운 사람이 맡기 어렵다.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제1사 제1단은 후에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2군 제4사 제1단으로 되며, 군수처장 최현이 제1단장이 된다.)
반면에 북한의 최현은 초등학교 2학년 중퇴의 학력으로<ref>기광서,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0003043&language=ko_KR 《1940년대 전반 소련군 88독립보병여단 내 김일성 그룹의 동향》], 『역사와 현실 28』 (한국역사연구회, 1998.06) p.282 / [[김국후]], 『평양의 소련군정』 (한울아카데미, 2008년 06월 21일) p.61</ref> 사실상 무학자에 가까우며, 글쓰기와 문장 독해에 애로가 많았다고 하므로<ref>[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70800209207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07-08&officeId=00020&pageNo=7&printNo=21172&publishType=00020 『秘話 金日成(비화 김일성)과 北韓(북한)』 《前(전) 北韓軍(북한군) 師團(사단) 정치위원 呂政(여정) 手記(수기) <12>》 反黨宗派(반당종파) 죄명씌워 수백명 처형] 1990.07.08 동아일보 7면</ref><ref>[http://www.ifreenk.com/knowtruth/80582 진실을알자 -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절대적 충신이었던 최현] Free NK Aug 30, 2014</ref> 위의 협박장을 보낸 최현과는 다른 사람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군수처장이란 직책도 부대에 필요한 군수품의 출납을 대장에 기록하고 관리해야 하므로 문맹에 가까운 사람이 맡기 어렵다.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제1사 제1단은 후에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2군 제4사 제1단으로 되며, 군수처장 최현이 제1단장이 된다.)


[[보천보사건]] 당시 동아일보 보도에 최현이 50세가 넘었다고 한 것도<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김일성은_소련_전법_사용_1937-06-08_동아일보.jpg 장백밀림(長白密林)을 근거로 국경선(國境線)에 출몰] 동아일보 1937-06-08 조간 2면</ref>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보천보사건]] 당시 동아일보 보도에 최현이 50세가 넘었다고 한 것도<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김일성은_소련_전법_사용_1937-06-08_동아일보.jpg 장백밀림(長白密林)을 근거로 국경선(國境線)에 출몰] 동아일보 1937-06-08 조간 2면</ref>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 만주국군월보의 최현(崔賢) 사살 기록 ===
=== 만주국군월보의 최현(崔賢) 사살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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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의 전사 기록들==
==최현의 전사 기록들==


* 撫松縣(무송현)에 반거 共匪(공비)두목 崔賢 사망설 만주국군의 일파 궤멸 : 조선일보 1938.02.23 석간2 2 면
<gallery mode="packed" heights="300px">
 
파일:김일성 최현 사살 1938-02-23 매일신보.jpg|<p align="left">김일성에 이어 최현(崔賢)도 사살되었다는 매일신보(每日申報) 1938年 2月 23日 (22日 夕刊) 2면 6단 기사</p>
 
파일:1938-02-23-조선일보-석간2-2면-최현 사살기사.jpg|<p align="left">1938년 2월 23일자 조선일보(朝鮮日報) 석간(夕刊)2의 2면 최현 사살기사.</p>
<gallery widths="300px" heights="300px">
파일:최현(崔賢)의 전사 1938-02-23 경성일보.jpg|<p align="left">최현의 전사를 보도한 경성일보(京城日報) 1938年 2月 23日 (22日 夕刊) 2面 기사</p>
파일:김일성 최현 사살 1938-02-23 매일신보.jpg|김일성에 이어 최현도 사살되었다는 매일신보(每日申報) 1938年 2月 23日 (22日 夕刊) 2면 6단 기사
파일:최현(崔賢)의 전사 1938-02-23 경성일보.jpg|최현(崔賢)의 전사를 보도한 경성일보(京城日報) 1938年 2月 23日 (22日 夕刊) 2面 기사
</gallery>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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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참고 자료==
* [https://www.youtube.com/watch?v=7wUrsZ6Fl9Y 북한 최룡해 형 최룡택은 누구인가?] 자유북한 TV 2019. 6. 8.
*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1906100025&page=1 北 2인자 최룡해 : 빨치산 혈통 최룡해는 어떻게 2인자가 됐나] 월간조선 2019년 2월호
*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1906100025&page=1 北 2인자 최룡해 : 빨치산 혈통 최룡해는 어떻게 2인자가 됐나] 월간조선 2019년 2월호
:⊙ 북한 ‘청년동맹 황색사건’ 관련자 전부 처형
:⊙ 북한 ‘청년동맹 황색사건’ 관련자 전부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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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동북항일연군]]
[[분류:동북항일연군]]
[[분류:88여단]]
[[분류:88여단]]
[[분류:인민군]]
[[분류:6.25 전쟁 참전자]]
[[분류:간삼봉 전투]]
[[분류:최현]]
{{분류|1907년 출생 |1982년 사망}}

2022년 11월 18일 (금) 17:34 기준 최신판

최득권 (崔得權)
최현(崔賢)
기본 정보
본명
최득권(崔得權)
국적
출생
1907년 7월 15일
출생지
청나라 지린성
사망
1982년 4월 10일 (74세)
사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병역
경력
민족보위성 부상
체신상
인민무력부장
부총리
부모
아버지 최화심
배우자
김철호
자녀
아들 최룡해
소련군 88여단 시절의 김일성과 동료들. 왼쪽부터 김일성(金日成), 계청(季靑, 중국인), 최현(崔賢), 안길(安吉). 북한은 이 사진을 연속 조작하는데, 처음에는 중국인 계청만 삭제했다가 다음에는 김일성을 가운데로 이동시키고 오른 쪽으로 기울어진 자세도 바로세웠다.
1941년 소련 연해주 라즈돌노예 마을 남야영의 빨치산 대원들. 오른쪽 맨 앞의 비스듬히 누운 사람이 김일성이고, 앞줄 여자 4명은 오른쪽에서부터 첫번째가 이영숙(李英淑, 第七军战士)[1][2], 두번째가 김정숙(金正淑, 1917~1949), 세번째가 황순희(黃順姬, 1919 ~ 2020), 네번째가 최현(崔賢)의 처 김철호(金哲鎬)이다.

최현(崔賢, 1907~1982)은 해방 전 만주 동북항일연군과 소련군 88여단 출신으로, 김일성의 동료였으며, 해방 후 북한 김일성 정권의 핵심 권력실세였다. 김정일을 후계자로 옹립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여 북한 김씨 세습 왕조 확립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그 덕택으로 아들 최룡해(崔龍海, 1950~ )김정일, 김정은 정권에서도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 북한 핵 협상 대표로 자주 나선 외무성 부상 최선희는 전 내각총리 최영림의 입양한 딸로 알려져 있으나[3] 출생상으로는 최현의 숨겨진 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있다.[4]


생애

[인민무력부장傳(5)] 최현, 숨겨진 김정일 킹메이커(하) - 중앙일보 2016. 12. 8

최현(崔賢)의 처 김철호(金哲鎬)도 빨치산 여자대원 출신이다. 최룡해는 최현이 외도로 낳은 아들로 김철호의 아들은 아니다.

최현은 평양에 와서도 화가 나면 아무나 쉽게 죽이는 무자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5][6] 김일성의 최측근이었기 때문에 이런 행동도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6.25 때 미군이 얻은 최현의 신상 정보

아래는 6.25 때 미군이 인민군 포로를 신문하여 얻은 최현의 신상 정보이다.[7]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 무식하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6.25 때 미군이 인민군 포로를 신문하여 얻은 최현의 신상 정보

최현의 잔인한 성격

  • 6.25 때 포로가 된 인민군 소좌 출신 주영복(朱榮福)의 증언[8]
어떤 대위로부터 滿浦(만포) 제철 공장에서 일어난 「崔賢(최현) 소장의 살인 사건」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어느날 밤 제재소에 불이나서 재목이 전소했다는 것이다. 당시 江界(강계) 경비대장이었던 崔賢(최현)은 이 공장 지배인 金福命(김복명) 기사를 불러 책임을 추궁했다. 그러나 金(김) 지배인은 실화(失火)라고 주장, 자기의 무죄를 증명하려고 했다. 본래 인정이라곤 없는 崔賢(최현)은 「책임을 지라」 고 강요했다. 그래도 金(김) 지배인은 죄가 없다면서 불응했다.

"뭐 책임을 못지겠다구. 이놈 쏴 죽일테야"하고 눈을 부릅떴다. 金福命(김복명) 기사는 그래도 결백을 주장하며 "죽인대도 내게는 책임이 없소. 죽이려면 죽이시오" 그러자 崔賢(최현)은 권총을 빼들고 뭐야이놈 "하면서 1발로 거꾸러뜨렸다.

"그래서 그사건은 어떻게 되었나요"라고 대위에게 물었더니 사건은 말이지 南韓(남한) 스파이에 의한 放火(방화) 사건으로서 간단히 해결되었습니다. 무서운 이야기이지요"

나는 이런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하는 이 군관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하고 약간 의심도 했다.

낫 놓고 ㄱ 자도 모르는 무식꾼

박갑동은 최현이 낫 놓고 ㄱ 자도 모르는 무식꾼이라 하였다.

최현은 낫 놓고「ㄱ」자도 모르는 무식꾼이지만 졸병들과 같이 밥도 먹고 농도 하는 성격이 천의무봉한 자이다.

항일연군 4사 1단장 최현(崔賢)과 동일인인가?

북한의 최현은 보천보사건 전후로 6사장 김일성(1901? ~ 1937)과 함께 활동하던 동북항일연군 4사(師) 1단장(團長) 최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는 주장이 일찌기 이명영(李命英, 1928-2000)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북한의 김일성 뿐만 아니라 최현도 전사한 선배 지휘관과 같은 이름을 써서 남의 전공을 훔친 가짜라는 주장으로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근래 4사(師) 1단장(團長) 최현을 사살한 당사자인 만주군이 이에 대해 기록한 당시 문건이 발굴되어[9] 이것이 사실임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가 되고 있다.

1938년 2월 23일자 매일신보 등은 공비 최현(共匪 崔賢)도 전사했다고 보도했다.[10] 이것이 사실이라면 최룡해(崔龍海, 1950~ )의 부친 최현(崔賢, 1907~1982)도 6사장 김일성과 같이 활동하던 최현과는 다른 사람이어야 한다. 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없고, 이명영(李命英, 1928-2000)의 『김일성 열전(金日成列傳)』 (新文化社, 1974)에서만 전사한 최현은 북한의 최현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하였다.[11]

『만주 공산비의 연구(滿洲共産匪の硏究)』에는 동북항일연군 제2군 제1사 제1단 군수처장 최현이 소황구(小荒溝)의 각 가장(家長) 앞으로 보낸 협박장이 나오므로[12][13][14] 이 최현은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으로 보인다.

소황구 (강연부터 최십가장 집까지) 각 가장 앞 : 小荒溝 (自江沿 至崔十家長家) 各家長 앞

너희 가장(家長)들은 내일 모레 이틀간에 옥수수, 콩, 팥등 계(計) 3석 5두(三石五斗)와 소금 10 (一○)근을 한 알도 덜하지 말고 완전 징수하여 소유천(小楡川)으로 송부하라. 이틀간에 도착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징벌 당할 것이다.
제2군 제1사 제1단 군수처장 (第二軍 第一師 第一團 軍需處長)

최현(崔賢) (印)

반면에 북한의 최현은 초등학교 2학년 중퇴의 학력으로[15] 사실상 무학자에 가까우며, 글쓰기와 문장 독해에 애로가 많았다고 하므로[16][17] 위의 협박장을 보낸 최현과는 다른 사람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군수처장이란 직책도 부대에 필요한 군수품의 출납을 대장에 기록하고 관리해야 하므로 문맹에 가까운 사람이 맡기 어렵다.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제1사 제1단은 후에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2군 제4사 제1단으로 되며, 군수처장 최현이 제1단장이 된다.)

보천보사건 당시 동아일보 보도에 최현이 50세가 넘었다고 한 것도[18]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만주국군월보의 최현(崔賢) 사살 기록

만주국군월보(満洲国軍月報)는 만주국 각 군관구(軍管區)와 각 지역 헌병대(憲兵隊)에서 매월 작성해 올린 월보(月報)을 취합한 극비문건이다. 일본의 아시아 역사자료센터에 1937년 10월 ~ 1938년 2월과 1938년 6, 7월의 월보 전문이 올라 있다. 매 월보는 1,000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인데, 그중 4사 1단장 최현과 관련된 부분은 제1군관구 월보(第一軍管區 月報)와 제1헌병대 월보(第一憲兵隊 月報)에 나온다.

1938년 2월 만주국군월보(満洲国軍月報)[9]에 의하면 동북항일연군 4사(師) 1단장(團長) 최현은 2월 4일 몽강현(濛江縣) 협피구(夾皮溝)-갑립자(甲砬子)[19] 근처에서 만주군 보병 제7단 제1영장(營長) 손중화(孫中和)가 지휘하는 제3, 5, 6련(連) 부대에 의해 사살되었다.

[p.22 (0525)] 부표(附表) 제5 제1군관구 토벌효과표
       2월 4일 / 보병제7단(步兵第七團) 제1영장 지휘(第一營長指揮) 제3, 5, 6련부대(第三, 五, 六連部隊) / 몽강 갑립자(濛江 甲砬子) / 최단(崔團)과 김비잔당(金匪殘黨) 150餘 /  

두 종대(縱隊)로 나누어 협피구-갑립자(夾皮溝-甲砬子)의 선(線)을 향해 소탕하였다. 오전 10시경 갑립자 서방에서 조우(遭遇)하여 격전 3시간에 공비들은 동북방을 향해 도주하였다. (分兩縱隊 向夾皮溝-甲砬子之線掃蕩 於午前十時頃 在甲砬子西方遭遇 激戰三時間 匪向東北方 逃去) /

적의 피해는 사망자 최현 포함 14명, 부상자 다수, 반합과 포대에 든 쌀 약간 [死一四(崔賢含) 傷多數 飯盒及包米査子若干]

몽강현은 오늘날 동북항일연군 1로군 총사령이었던 양정우(楊靖宇, 1905~1940.02.23)의 이름을 따서 정우현(靖宇縣)으로 개칭되었다.

월별로 만주국군월보(満洲国軍月報)에 나오는 김일성과 최현 관련 주요 내용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작성연월 치안 상황 비적(匪賊) 조사표 비적 분포 요도(要圖)
1937.10 임강(臨江) 동부 김일성계비(金日成系匪) 200명
10월 27일 1로군 3사장 왕인재(王仁齋, 1906~1937) 전사.
김일성비 200명, 조잔비(曹殘匪) - 100명 김일성비 200, 조잔비(曹殘匪), 왕봉각(王鳳閣, 1897-1937) 잔당(殘黨)
1937.11 11월 13일 1로군 6사장 김일성(金日成)을 사살(擊斃). 김일성 잔당 100, 왕봉각 잔당 30 백두산 서쪽 김일성비 잔당 100, 집안(輯安) 서쪽 왕봉각 잔당
1937.12 보병 제6, 7단이 무송(撫松) 서남지구에서 토벌중.
지난달 북부 동변도에서 공산비단(共産匪團)의 거괴(巨魁) 김일성을 죽임(斃).
김일성 잔당(殘黨), 최현(崔賢) 부하 100명 김일성 잔비(殘匪), 최현 부하
1938.01 김일성은 사망(斃). 최위단(崔僞團), 조비잔당(曹匪殘黨), 김일성비 잔당 최단장(崔團長), 김잔비(金殘匪) 100, 조잔비(曹殘匪) 김잔비, 최단장, 조잔비
1938.02 2월 4일 1로군 4사 1단장 최현(崔賢) 사살 김(金)과 최비(崔匪) 잔당 150, 조잔당 백두산 서편 김잔당 150, 그 서편에 조잔당 등 200
1938.06 6월 29일 1로군 1사장 정빈(程斌, 1911~1951) 투항
통화성(通化省) : 김일성 잔당 김위사령비(金僞司令匪), 조위사령비(曹僞司令匪) 준동
최잔당(崔殘黨) 50명, 김일성 조국안(曹國安, 1900~1937) 잔당 200명 김일성 조국안 잔당. 동쪽 임참모장
1938.07 통화성 금천현(金川縣) 동남부 용강(龍崗)지대 김일성 잔당, 조비단 최현 잔당 60, 전주임, 임우성, 조위사령(曹僞司令) 김위사령(金僞司令) 조위사령 김위사령, 왕봉각 잔당, 최현 잔당

위에서 잔비(殘匪) 또는 잔당(殘黨)은 두목이 전사하고 남은 부하들의 집단을 가리킨다. 가짜 사령(僞司令), 가짜 단장(僞團長)등은 생존해 있는 두목을 비하해서 칭하는 말이다. 조잔비(曹殘匪)는 전사한 1로군 2사장 조국안(曹國安, 1900~1937)의 부하들이며, 6사장 김일성이 전사한 후부터 그의 부하들도 김일성 잔당이나 김잔비(金殘匪)로 칭하고 있다. 최단장(崔團長)은 최현(崔賢)이며, 1938년 2월 4일 그가 전사하자 남은 부하들을 최잔당(崔殘黨)이라 칭하고 있다.

최현의 전사 기록들

다시 나타난 최현의 기록들

동북항일연군 1로군 4사 1단장 최현에 대한 신문보도는 1936년 가을부터 1938년 2월 전사할 때까지 상당히 자주 나온다. 그러나 그의 전사 보도 이후 1년 이상 최현의 활동에 대한 신문보도가 일체 없다가 1939년에 가서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사람이 북한 최현일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崔賢一派 匪團(최현일파 비단) 輸送隊 襲擊(수송대 습격) 部隊長等 死傷 卄二名(부대장등 사상 22명) 1939.11.21 동아일보 2면
崔賢一派(최현일파)를 包圍(포위) 1939.12.22 동아일보 2면

매일신보

國境警察官 慰問班隨行記(2) 大正八年後로 增加된 凶暴한 匪賊의 出沒 - 鮮蘇國境守護의 責務도 重大 매일신보 [每日申報] 1940년 02월 01일 3면 1단

참고 자료

⊙ 북한 ‘청년동맹 황색사건’ 관련자 전부 처형
⊙ 김정은 정권 인사권 최룡해가 가지고 있다
⊙ 김정일 동생을 죽음으로 내몬 최룡해 형 최룡택

각주

  1. 푸틴, 2차대전 전승절 맞아 북한 '항일 빨치산'에 축전 연합뉴스 2021-05-08
    푸틴, 北항일빨치산 원로 이영숙에 '2차대전 승전' 축전 뉴스1 2021-05-08
  2. 김정은·푸틴이 예우한 마지막 北빨치산 1세대 사망 뉴시스 2021-11-16
  3. 김정은의 숨은 딜레마는 세습 엘리트 200여명 [주간조선 2550호] 2019.03.25
  4. [특종]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 최선희는 최현의 숨겨진 딸 리버티 코리아 포스트 2019.01.11
  5. 秘話(비화) 金日成(김일성)과 北韓(북한) 前(전) 北韓軍(북한군) 師團(사단)정치위원呂政(여정) 手記(수기) 1990.07.08 동아일보 7면
  6. 6.25 北(북)에서 본 證言(증언) <16> 제4부 開戰準備(개전준비) 진행 (1949년) 1980.07.03 경향신문 3면
  7. RG 319, Assistant Chief of Staff, G-2 (Intelligence), Intelligence Document File Publication 1947-62, Entry # 1004H (UD), ID 950054 : ATIS-FEC Interrogation Report, Box No. 334, 950054 KG 1121, etc. (NARA문서, 국사편찬위 전자사료관) pp.137~138 최현
  8. 6.25 北(북)에서 본 證言(증언) <16> 제4부 開戰準備(개전준비) 진행 (1949년) 1980.07.03 경향신문 3면
  9. 9.0 9.1 標題:満洲国軍月報送付の件 「JACAR(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Ref.C01003345600、昭和13年「満受大日記 (密)」(防衛省防衛研究所)」
  10. 共匪 崔賢一黨 潰滅, 對岸治安 明朗化 매일신보(每日申報) 1938/02/23, 2면
    撫松縣(무송현)에 반거 共匪(공비)두목 崔賢 사망설 만주국군의 일파 궤멸 조선일보 1938.02.23 석간 2 면
    匪首崔賢의 末路 경성일보(京城日報) 1938年 2月 23日 (22日 夕刊) 2面
  11. 최현(崔賢)도 전사했다는 보도가 다수 있고, 북한의 최현(1907~1982)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명영(李命英, 1928-2000), 진위 김일성 열전 (39) 6사장 김일성의 죽음(하) 중앙일보 1974.07.10 종합 3면
    이명영(李命英, 1928-2000), 『김일성 열전(金日成 列傳)』(新文化社, 1974) p.292
  12. 이명영(李命英, 1928-2000)]의 『김일성 열전(金日成列傳)』 (新文化社, 1974) p.215
  13. 서대숙(徐大肅) 지음; 현대사연구회 옮김, 『한국공산주의 운동사 연구』 (대구: 화다출판사, 1985) p.255 : Dae-Sook Suh, The Korean Communist Movement 1918-1948. (Princeton Univ. Press, 1967)의 번역.
  14. 『만주 공산비의 연구(滿洲共産匪の硏究)』 (滿洲國軍事顧問部 編, 1937) p.213
  15. 기광서, 《1940년대 전반 소련군 88독립보병여단 내 김일성 그룹의 동향》, 『역사와 현실 28』 (한국역사연구회, 1998.06) p.282 / 김국후, 『평양의 소련군정』 (한울아카데미, 2008년 06월 21일) p.61
  16. 『秘話 金日成(비화 김일성)과 北韓(북한)』 《前(전) 北韓軍(북한군) 師團(사단) 정치위원 呂政(여정) 手記(수기) <12>》 反黨宗派(반당종파) 죄명씌워 수백명 처형 1990.07.08 동아일보 7면
  17. 진실을알자 -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절대적 충신이었던 최현 Free NK Aug 30, 2014
  18. 장백밀림(長白密林)을 근거로 국경선(國境線)에 출몰 동아일보 1937-06-08 조간 2면
  19. 협피구(夾皮溝)-갑립자(甲砬子) : 대갑립자(大甲砬子), 소갑립자(小甲砬子)가 나오고, 지도 축척을 좀더 축소하면 오른 쪽 인근에 협피구(夹皮沟), 소협피구(小夹皮沟)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