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 dark.png
콘스탄티누스 1세
1280px-Rome-Capitole-StatueConstantin.jpg
지위
재위
306년 7월 25일–312년 10월 29일
312년 10월 29일–324년 9월 19일
324년 9월 19일–337년 5월 22일
이름
존호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플라비우스 발레리아누스 콘스탄티누스 아우구스투스
Imperator Caesar Flavius Valerius Constantinus Augustus
신상정보
본명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아우렐리우스
Flavius Valerius Aurelius
출생일
272년 2월 27일
출생지
사망일
337년 5월 22일
사망지
배우자
자녀
종교
로마 다신교 → 기독교

영어: Constantine I
라틴어:Gaius Flavius Valerius Constantinus[1]

개요

콘스탄티누스 1세는 로마제국의 황제로 기독교를 공인했다. 여러 황제들에 의해 분할되어있던 제국을 통일하였고 원로원으로부터 막시무스(Maximus)[2]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다.


콘스탄티누스의 기증

  • 콘스탄티누스의 기증
  • 230827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을 통해 천주교가 교황권과 세상의 지배력을 위해 비열한 짓을 했는 지, 중세역사가 뒤틀어 졌는 지 확인해 보고자 한다.
― <위키백과>

Image01(콘스탄티누스의 기중).png

실베스터 1세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서 칙령을 받는 장면을 묘사한 프레스코화.

13세기경 프레스코 콘스탄티누스의 기증(라틴어 : Constitutum Donatio Constantini  또는  Constitutum domini Constantini imperatoris)은  750년에서  850년  사이에 조작된  동로마 황제의  4세기처럼 위조한 칙령 문서다. 이 문서는  중세  서유럽의 유명한 위조 문서이다. 8세기  경에 작성된 이 조작된  칙령문서는  13세기부터 시작하여 중세기간 동안 세속의  황제에 대한  기독교의  교황의 우위권을 주장하는 근거로 교황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인문주의자들이 역사문법적 해석 방법으로 4세기 문서가 아닌 위조 문서라고 증명했다. 

르네상스  시대 인문학자인  로렌초 발라는 이 문서가 문헌학적(philological)으로 역사적 배경을 가진 특수한 용어들을 역사 문법적인 방법으로 분석한 결과 4세기 칙령이 아니라 8세기 경에 조작된 것임을 밝혀냈다.


기원과 내용

이 문서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기면서  로마  도시와  서방 제국을  교황 실베스테르 1세와 그의 후계자들에게 넘기고 자신은  동방 제국의 황제권을 보유한다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을 문둥병 치료를 구하고 회심하고 세례를 받아(a cure for his leprosy, was converted and baptized) 기독교인 된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교황은 황제보다 더 우위에 있으며 신성한 권력의 대표자로 교황이 세속의 황제를 결정하고 심지어 교체할 수도 있다고 해석된다. 이 문서가 세상에 처음 나온 것은 8세기 중엽으로 교황 스테파노 2세와  프랑크 왕국의 궁재  피핀  단신왕의 협상과정에서 나왔다. 당시  교황 스테파노 2세는 피핀을 만나  메로빙거 왕조를 대신해 피핀의  카롤링거 왕조를 새로운 왕조로 세웠고 그 대가로 피핀은  롬바르드족이 점령한 이탈리아 영토를 되찾아 교황에게 주었다. 그 영토는 이후 약 11세기 동안 지속된  교황령의 기초가 되었다.

로마교회의 우위

이 문헌은 4세기에 로마 황제가 로마교회 대주교에게 영토의 권한과 우위가 있다고 인정하며 내용이었다. 서방교회  지역 중세 동안 내내 이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이라는 문서의 존재는 거의 의심없이 세속의 양쪽 (서방 황제  및  동방 황제) 로마 황제에 대한 교황의 우위권에 대한 근거 문서로 사용되었고 역대 교황들은 물론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등 성직자들이 자신들과 교회의 이익을 위해 황제권과 충돌할 때마다 이 문서를 내세웠다. 심지어 로마 교황의 적들까지도 이 문서의 진위를 의심하지 않았다. 황제의 권리를 지지하던  단테도 14세기 문헌인 그의 《신곡》에서 이 문서를 언급하며 교황의 악행을 개탄하였다.

아! 콘스탄티누스여, 진정으로 큰 악은 그대의 개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가장 부유한  사제가 그대에게서 받은 그 선물에게서 나왔도다! 
― 단테,《신곡〈지옥편}》xix. 115~117쪽

교황 하드리아노 4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에게 보낸 편지에서 주장한 바대로 황제의  제관  소유자는 교황이며 단지 황제에게 사용토록 위임한 것에 불과할 뿐이며, 교황은 이미 콘스탄티누스 대제로부터 서방세계 전체를 기증받았고 따라서 제국은 교황이 황제에게 수여한 봉토라는 이론을 세우고자 하였던 것이다.


위조 문서의 폭로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고전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면서 차츰 이 문서의 진위에 대한 의문이 늘어났다. 1440년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  로렌초 발라는 이 문서에 표기된 조잡한  라틴어가 4세기경 즉,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절의 로마 황제들이 사용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 내었다. 발라는 〈증서〉(Declamatio, 1440)에서 그는 익명의 저자가 쓴 '증서'에 나타난 칙령 수준과 거리가 먼 조잡한 라틴어 문체와 후대 표현 방식을 밝혀내고, 또한 인용된 문헌이 4세기 이후의 문헌으로 작성 시기와 불일치한다는 점도 확인하였다. 이에 대하여  교황청은 발라의 논증을 부정하고 발라의 책을 16세기 중반까지  금서목록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미 이 문서의 권위는 의심받게 되었고 결국 교회도 위조된 문서라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교황의 노여움을 산 로렌초 발라는 종교재판소의 심문을 받았으나 곧 복권되었다. 1448년 친인문주의 성향의 니콜라오 5세는 그를 수사학 교수이자 교황청 비서로 임명했다.

평가

중세 시대의 교회는 교황령 형성에 큰 공헌을 한 이 기증 행위를 공식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황제들이 대관식  전에 이 문서를 인준하게 했다. 또한 이 문건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자는 이단으로 간주했다. 사료 위조는 오늘날에는 매우 불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중세의 자료 위조는 경우에 따라서 다른 평가를 받았다. 이는 혼돈스러운 세계를 신이 원하는 올바른 질서 속으로 이끌고 가려는 의도를 보여준다고 보았던 것이다.

프리츠 케른과 같은 현대의 역사가는 중세 몇몇 위조자들의 사고를 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문서가 진본이든 혹은 위본이든, 그것은 신이 정해 놓은 질서라고 생각되는 그림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중세역사 전문가인 호르스트 푸어만은 중세가 근대와 달리 법과 진실을 이해했다고 점을 환기시켰다. 중세 사람들에게는 어떤 사안에 대한 사실이나 정당함을 결정하는 것은 형식적 기준이 아니라 신이었다. 인간의 이성보다 신이 더 위대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콘스탄티누스 기증장'이 표명한 교회의 지배권은 신의 의지에서 나온 것이었기에 이성에 의해 절대 문제가될 수 없었다. 따라서 중세에는 위조범이 재판을 받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다니엘의 천주교 예언

다니엘의 천주교 예언 [3]

1. 성경봉독

(단7:20~25) 5개로 구성된 금신상을 통해 세계 역사를 보여 주시는 하나님

  • 바빌론(BC605~BC539)
  • 메대페르시아(BC539~BC331) -
  • 헬라(BC331~BC168)
  • 로마(BC168~AD476)
  • 유럽 열국시대(AD476~현재)•뜬돌(예수)시대


2. 로마(넷째짐승)와 카톨릭관계
  • 로마가 망한 뒤 10개의 민족국가(불.독.이의 신성로마제국 등)로 나뉘고
  • 로마가 국교화한 카톨릭(교황권)과 동로마제국의 동방정교가 흥왕함
  • 로마 카톨릭의 성립: AD313년 콘스탄티누스대제가 밀라노칙령으로 종교의 자유 허용

(단7:24): 그 열 뿔은 그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단7:25):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때를 지내리라”

3. 카톨릭의 잘못

※ 기독교의 적장자였으나 성경에 때와 법을 고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기록됨

  • 우상숭배: 마리아를 성모로 숭배(성부, 성자, 성모, 성신)하고 성모, 예수, 사도 등을 조각
  • 성도들을 핍박: 종교재판소를 만들어 5000만명에 달하는 성도들이 마녀사냥 등 처형됨.
  •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인을 표방, 교황대관미사 3중관에 새김, 면죄부판매, 십자군전패 등

※ 세 왕관으로 장식된 관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그대가 군주와 왕들의 아버지, 세상의 영도자이며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임을 아십시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영예와 영광이 영원히 계시나이다.

※ 니케아 종교회의(AD325) 등: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예수의 신성인정, 삼위일체 하나님, 사도신경 등 주요교리를 확정하게 된 회의


4. 종교개혁(1517년)을 통한 개신교 탄생
  • 성경에서도 인정하는 성도들의 교회
  • 교황권에 붙인 바 된 성도들
    • 1260일(년, 한때 두때 반때): AD538년(유스티니아누스칙령)
    • 1978년 베르티에장군의 아비뇽유수사건. 유스티니안황제가 로마교회의 감독을 모든 교회들의 머리, 교리확정자, 이단처벌자로 인정한다는 칙령
    •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교황권에서 벗어나는 개신교
    • 총68.5억명: 천주교 10.4억명, 개신교 7.8억명, 기타기독교 4.0억명, 이슬람교 15.7억명
  • 열심히 믿는 천주교인도 구원되겠으나, 성경은 개신교인을 성도로 보고 있다고 본다.

의미 해석

세계사를 살펴볼 때 중세 교황권은 막대하였다. 그러나, 십자군전쟁을 살펴보거나 유럽 군왕들의 권력을 빼앗아 교권을 높이는 게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만 몰두한 천주교는 종교재판소, 교황제도 등 종교를 위장한 못된 짓을 한 게 역사에 크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하나님은 이 이상한 나라에 대하여 다니엘서 7장에 아래와 같이 기록하였겠는가?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에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첫번째 뿔 셋이 그 앞에서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같은 눈들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더라(단7:8)"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단7:25)" [4]

실제 천주교는 교황권에 집착하여 권력을 손에 넘겨 받았으며 세속과 싸우는 데 전념하여 왔던 것을 우리는 세계사를 통하여 알 수 있다.

1260년간 교황권의 세계였다는 것은 AD538년(유스티니아누스칙령) ~ 1978년 베르티에장군의 아비뇽유수사건 까지의 기간. 유스티니안황제가 로마교회의 감독을 모든 교회들의 머리, 교리확정자, 이단처벌자로 인정한다는 칙령.

이로써 우리는 교황권이 하나님이 내버려둔 교회권력으로 한때 두때 반때를 지배한 권력이라는 것을 안다.

특히나, 콘스탄티누스 1세(AD272년~337년, 재위306~337년)가 누구인가? 콘스탄티누스1세에 의해 로마가 밀라노 칙령을 내려 기독교국가가 되게 하였으며 AD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를 거쳐 기독교의 체계를 바로 잡아준 성인취급을 받고 있는 황제이다. 기독교에서 니케아 공의회만큼 중요한 사건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의 신성인정, 삼위일체 하나님, 사도신경 등 주요교리를 확정해 준 회의이며 이를 개최케 하여 교리를 잡아준 것이 콘스탄티누스1세이니 그가 성인대접을 받아도 별 이상한 게 없는 것이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서는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1세가 교황 실베스테르1세에게 서로마 통치를 위임한다고 기증서를 만들어줬다는 라틴어 서류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8세기 즈음에 불가타 라틴어로 작성되었다는 것이 15세기 로렌토 발라에 의해 위서였음이 밝혀지게 된다. 그러나. 이미 중세 유럽의 역사는 흘러간 것이다. 이런 짓을 교황청은 행한 것이고 그에 의해 교황이 황제보다 우위에 있다는 근거를 수백년 이상 내세웠던 것이다.


각주

  1. 古가이우스 플라위우스 왈레리우스 콘스탄티누스
    敎가이우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치누스
  2. "위대하다"라는 의미
  3. 엄용식의 글 22.09.08
  4. 한때 두때 반때 = 42달 = 1260일(성경에서 1일은 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