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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수호 2019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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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견해가 좌쪽이고 제주 4.3을 정치적 사건으로 해석하려는 사람이 있는데===
 
정치적 견해가 좌쪽이고 제주 4.3을 정치적 사건으로 해석하려는 사람이 있는데 4.3진상조사보고서가 무조건적으로 믿을 수 있는가는 의심스럽습니다. 때문에 사학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쓴 것이니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신뢰성이 떨어지냐는 따져봐야할 문제인듯싶습니다. 4.3도민진실보고서의 논문 인용을 조사 할 여유가 없습니다. 저는 둘 중 어느 하나가 더 진실에 가깝다고 주장하는게 아니라 어떤 하나의 내용을 지우고 본인의 주장을 할 거면 거기에 따른 반박을 하시라는 겁니다. 아니면 내용을 지우지 말고 같이 써주세요. 이건 제 생각인데...우남위키는 이미 기존의 위키들, 사학계, 대학들이 좌편향 되어있다고 보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그 좌편향의 최전선에 있는 문제들인 5.18, 대톨령에 대한 평가, 그리고 현재 진행중인 4.3 사건 등입니다.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노무현 정부 때 신용하 교수 등이 참여하여 만든 제주 4.3진상보고서의 논문 인용 등을 하나의 공정한 지표로 삼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정치적 견해가 좌쪽이고 제주 4.3을 정치적 사건으로 해석하려는 사람이 있는데 4.3진상조사보고서가 무조건적으로 믿을 수 있는가는 의심스럽습니다. 때문에 사학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쓴 것이니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신뢰성이 떨어지냐는 따져봐야할 문제인듯싶습니다. 4.3도민진실보고서의 논문 인용을 조사 할 여유가 없습니다. 저는 둘 중 어느 하나가 더 진실에 가깝다고 주장하는게 아니라 어떤 하나의 내용을 지우고 본인의 주장을 할 거면 거기에 따른 반박을 하시라는 겁니다. 아니면 내용을 지우지 말고 같이 써주세요. 이건 제 생각인데...우남위키는 이미 기존의 위키들, 사학계, 대학들이 좌편향 되어있다고 보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그 좌편향의 최전선에 있는 문제들인 5.18, 대톨령에 대한 평가, 그리고 현재 진행중인 4.3 사건 등입니다.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노무현 정부 때 신용하 교수 등이 참여하여 만든 제주 4.3진상보고서의 논문 인용 등을 하나의 공정한 지표로 삼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2019년 11월 11일 (월) 10:30 기준 최신판

제주 4.3 사건은 공산주의자의 폭동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제주 4.3 사건은 공산주의자의 폭동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양민이 많이 희생당했다고해서 양민 희생이 4.3의 본질이 되는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유례없이 많은 민간인이 죽었는데 그럼 제 2차세계대전을 수많은 민간인이 죽은 일이라고 정의해야하나요? 4.3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는 좋습니다만 지금 변경하신 부분에 대해서 기사, 논문 등의 각주를 달아주시면 좋겠습니다.


2019년 4월 24일 오후 3시 54분 어빈이

학살이죠. 본질은 학살입니다. 본질을 호도하지 마세요.

전쟁은 전쟁을 의미하죠. 선전포고, 전투 행위, 영토문제 등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정부 입장에서 남로당은 적군입니까, 자국 영토에서의 반란군입니까? 물론 이런 주장으로 이어지면 한국전쟁도 반란군과의 전쟁이었다는 헌법상 의미로 이어집니다만은 정부 입장에서 남로당은 반란군입니다. 그런데 반란과 학살이 동시에 일어나면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이집트 왕의 입장에서 모세는 반란군입니다. 노예를 이끌고 도망친. 만약 람세스가 재앙을 무시하고 모세와 유대인들을 다 죽였으면 학살입니까 반란입니까? 학살이죠. 본질은 학살입니다. 본질을 호도하지 마세요.

조명기, 장세용. (2013). 제주 4.3사건과 국가의 로컬기억 포섭 과정. 역사와 세계, 43(), 205-235.

1948년 8월 15일 남한 정부 단독 수립 이전에는 미군정이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남한정부가 대량학살계획을 진행했다. 207쪽
4.3사건은 국가와 폭력의 관계에서 제도화된 폭력의 담지자인 국가가 폭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폭력이 국가 형성을 완성시키는 기제로 작동했다는 데서 그   독특한 위상을 가진다. 208쪽


김민환, 동아시아의 평화기념공원 형성과정 비교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2).

제주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2003).

4.3사건에서 전체 사망자 가운데 78.1%가 토벌대가 살육한 희생자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371쪽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세번째 것은 여러가지의 이유를 들어 노무현 좌파 정부때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한 이유를 대실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울대 박사학위논문이나 여러 학회지에서 인용되는 진상조사 보고서입니다.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특히 한국의 명문대에서의 현대사 연구에서 쓰이는 공식적인 보고서입니다. 참고해서 많은 수정에 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19년 10월 20일까지 토론에 임하시지 않으시면 이러한 주장을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 근거를 들어 일부부터 수정하겠습니다.


2019년 10월 17일 오후 10시 17분 자유민주수호

일단 지금 수정해 주시는 내용에 대해서 각주 부탁드립니다.

일단 지금 수정해 주시는 내용에 대해서 각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반란에 대응하는 것은 진압인데 왜 반란과 학살을 비교 대응해서 말씀하시나요? 제주 4.3은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이 맞죠. 그 진압과정에서 진압하려는 정부와 반란중인 공산세력 둘 다한테 양민이 많이 죽은것은 안타깝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난 부가적인 일이지 사건이 본질이 아닙니다. 그럼 정부군이 반란을 진압하려는게 아니라 애초에 양민을 학살하러 제주에 간거다 그렇게 주장하시는건가요? 모세 예를 또 잘못들어주고 계시는거같은데, 람세스가 재앙을 무시하고 모세와 그를 따르는 유대인을 죽이면 그게 반란 진압이지 왜 학살인가요? 람세스 입장에선 반란이고 진압이며, 모세 입장에서는 저항-항거이고 학살이죠. 람세스 입장에서 반란이라고 말하면서 그 결과에 대해서는 모세에 입장에서 학살이라고 혼동하는 이유가 뭡니까? 제주 4.3도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반란이고 진압 과정에서 양민의 죽음이 있었던 것이고, 공산세력 입장에서는 혁명이고 저항 과정에서 양민의 죽음이 있었던 것이죠. 어느 입장에서 봐도 양민의 죽음은 과정에서 일어난 부가적인 일입니다. 그걸 본질인것처럼 말하는게 제가 보기엔 호도하는거 같은데요?

지금 문서를 수정하시면서 선생님의 주장을 적어주시는건 좋은데 아직 각주가 제대로 안달려있습니다. 그리고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와 제주 4.3 진실 도민보고서 제작완료 기자회견 개최 등 제주 4.3의 정의에서 이미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출처가 있는데, 그 둘 중 무엇이 맞는것인지 검증 없이 일방적으로 원래 있던 내용을 삭제하는것은 지양해주시길 바랍니다. 지우실 생각이시라면 <제주 4.3 진실도민보고서>, <남로당 제주도당 지령서 분석>, <전 제주경찰서장 김영중의 제주 4.3 자료집> 등 삭제하신 기초 자료들에 대해 반박을 달아주세요.

국경이 죽인 남로당보다 일반인이 더 많습니다.

먼저 토론 쓰신분 계정이름 적어주시길 바랍니다. 국경이 죽인 남로당보다 일반인이 더 많습니다. 게다가 예비검속의 경우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이었습니다. 그럼 예비검속만 4.3에서 빼서 서술할까요? 예비검속이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입니까? 러시아가 전쟁 중에 일으킨 카틴 숲 학살사건이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전쟁과 별도로 인식되듯이 4.3에서 군경에 의한 학살은 별도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주4.3 진실도민보고서는 시민연대에서 만든 것이고 진상조사보고서는 정부와 국회가 만든 것입니다. 어떤 것이 더 공신력 있겠습니까? 당연이 정부와 국회가 만든 것입니다. 심지어 진실도민보고서는 인용조차 되지 않습니다. 반면에 진상조사보고서는 계속적으로 인용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도민보고서를 지지하십니까? 진실도민보고서를 보면 작성한 사람이 나종삼 (위촉위원), 이승학 (이사), 오을탁 (이사)입니다. 이승학씨는 전 중등학교 교감이시고, 오을탁씨는 유족회 사무국장이신데 전혀 사학을 전공했다고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진상조사보고서는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김정기 전 서원대학교 총장이자 4.3 연구소장, 신용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자 역사학자가 포함된 조사단에서 작성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도민보고서가 진상보고서보다 사실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진실도민보고서 자체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왜 진실도민보고서만 적혀야 합니까?


2019년 10월 17일 오후 10시 17분 자유민주수호


정부측에서 더 많은 양민을 죽였다는 것과 4.3 사건의 본질이 반란이라는 것과 무슨 상관인가요?

정부측에서 더 많은 양민을 죽였다는 것과 4.3 사건의 본질이 반란이라는 것과 무슨 상관인가요? 공산 반란군보다 군경이 많이 죽였으면 이 사건의 본질이 학살이 되는건가요? 말씀해주신것 처럼 2차 세계대전 유럽전선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별도로 인식됩니다. 그럼 예비검속 때의 학살 사건을 따로 표제어를 만드시면 됩니다. 그리고 상위 분류로 제주 4.3을 언급해주세요. 그리고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는 제가 따로 표제어를 만들어놓겠습니다. 거기서 그 보고서에 제기된 문제점에 대해서 먼저 해소가 되야할것 같습니다. 4.3 진상조사보고서를 쓴 다른 분들이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신용하라는 이름 부터가 4.3 진상조사보고서의 편향성을 느껴지게 만드는 것은 제 기우인가요?


어빈이

신용하 교수의 정치적 견해가 좌쪽이라고 해서 진실도민보고서의 신뢰성이 제고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용하 교수의 정치적 견해가 좌쪽이라고 해서 진실도민보고서의 신뢰성이 제고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학 전문가 없이 작성한 진실도민보고서 아닙니까? 사학 전문가들이 진상보고서를 썼다는 것을 증명했으니 그쪽에서 진실도민보고서를 증명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4.3사건이 4.3반란이나 4.3학살로 불리지 않는 것은 두가지 성격을 공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진상보고서에서도 함께 기술되어 있습니다. 예비검속도 4.3사건 당시의 학살의 연속이고 이승만 대통령이 명령했다는 것이 분명한데 예비검속을 굳이 표제어를 따로 만들어야 합니까? 단지 공산반란과 학살을 한 문서 내에서 분리하여 서술하면 되는 것아니겠습니까? 한국전쟁 당시 일어난 북한군의 남한주민 학살은 한국전쟁 문서에서 분리되어야 합니까? 둘이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는 점에서 문서는 분리하지 말되 한 문서 내에서 분리하여 서술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쪽에서 4.3도민진실보고서 작성자가 신뢰할 수 있는지 사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들인지 또 4.3도민진실보고서가 얼마나 인용되었는지(신문은 충분히 편향성이 있을 수 있으니 학문적 배움을 위한 논문 인용으로 계산하셔야 합니다) 먼저 말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고 나서야 둘의 내용과 실제 사료를 비교하면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자유민주수호 2019년 10월 24일

정치적 견해가 좌쪽이고 제주 4.3을 정치적 사건으로 해석하려는 사람이 있는데

정치적 견해가 좌쪽이고 제주 4.3을 정치적 사건으로 해석하려는 사람이 있는데 4.3진상조사보고서가 무조건적으로 믿을 수 있는가는 의심스럽습니다. 때문에 사학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쓴 것이니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신뢰성이 떨어지냐는 따져봐야할 문제인듯싶습니다. 4.3도민진실보고서의 논문 인용을 조사 할 여유가 없습니다. 저는 둘 중 어느 하나가 더 진실에 가깝다고 주장하는게 아니라 어떤 하나의 내용을 지우고 본인의 주장을 할 거면 거기에 따른 반박을 하시라는 겁니다. 아니면 내용을 지우지 말고 같이 써주세요. 이건 제 생각인데...우남위키는 이미 기존의 위키들, 사학계, 대학들이 좌편향 되어있다고 보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그 좌편향의 최전선에 있는 문제들인 5.18, 대톨령에 대한 평가, 그리고 현재 진행중인 4.3 사건 등입니다.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노무현 정부 때 신용하 교수 등이 참여하여 만든 제주 4.3진상보고서의 논문 인용 등을 하나의 공정한 지표로 삼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2차대전 예를 들어서 학살과 전쟁을 별개로 봐야한다고 하셔서 그럼 표제어를 나누시라니까 또 한개로 한다그러고, 편하신대로 하세요. 지금 써주신 것은 두 가지 성격이 공존하니까 둘 다 기술한다고 그러시는데, 이미 전에 내용을 지우고 본인의 주장을 쓰셨으면서 이렇게 말하면 되나요? 예비검속도 편하신대로 하세요. 별개로 해야 한다길래 그것도 그렇게 하시라고 말한것 뿐입니다.


도민보고서의 내용에서 날조에 가까운 내용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까

도민보고서의 내용에서 날조에 가까운 내용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까. 진실도민보고서는 논문통합검색사이트인 RISS에도 등재되지 않은 인정받지 못한 보고서입니다. 반면에 진상보고서는 RISS에 등재되어 있으며 2018년에 86번 인용된 보고서입니다. 결국 당신은 출처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도민보고서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RISS에 등재되지 못한 보고서가 RISS에 등재되어 있으면서 1년에 86번 인용된 보고서와 비슷한 비중으로 서술되어야 된다고 생각하싶니까? RISS에 등재되지도 못한 보고서인데 문서에서 대대적으로 인용되어야 합니까? 일주일 내에 답하지 않으시면 도민보고서가 신뢰성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으로 간주 대대적인 수정에 나서겠습니다.


2019년 10월 24일 자유민주수호

본말이 전도되었군요

4.3사건을 학살이라는 지칭은 본말이 전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로 장춘 사건은 중국에서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군의 전쟁와중에 만주에서 벌어진 학살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이를 '장춘 사건', '장춘 학살'이라는 한 사건으로 지칭해서 이야기하지 '국공내전' 자체를 '중국 공산당의 중국 인민 학살 사건'이라 칭하질 않습니다. 당시 국민당군 약 10만명, 장춘시민 50만명이 중국 공산당군의 포위작전으로 아사했습니다. 중국 공산당군이 모택동에게 포위를 풀어 장춘시민들을 살리자고 건의했음에도 모택동은 무시하고 모두 죽이도록 포위를 풀지 않게 하였습니다. 아직까지 4.3사건이라 칭하고 있지만 분명히 2대 사령관 이덕구가 선전포고까지 하였던 전쟁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제주 4.3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학살이라면 히틀러에서 보듯이 동기가 있고 계획이 있고 실행이 있는 과정이 있습니다. 만약 학살이라면 김달삼과 이덕구가 이승만과 내통 또는 지시하에 반란을 일으키고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제주도민을 학살했다는 결론으로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김달삼과 이덕구가 그런가요? 그렇다면 김달삼과 이덕구야말로 제주도민의 철천지 원수가 아닌가요? 또 당시에 주로 희생자가 이덕구의 선전포고 이후 몇개월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제주4.3사건에서 군경 사망자가 약1,700여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그리고 제주도민중 피해자가 약 1만3천여명으로 정부 공식집계되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태평양 전쟁때 미군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하여 수십만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학살의 논리에 따르면 일본 천황이 미국과 협잡하여 미국의 원폭으로 일본인들을 학살하기 위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것으로 귀결됩니다. 이게 말이 되는가요? 또 제기된 '학살이다'라는 논리에 따르면 '태평양 전쟁'을 '일본인 원폭 학살사건'으로 할런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제주4.3사건'이 '제주4.3전쟁'으로 객관적 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만, 학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참고자료로 넣은

남로당 제주도당 지령서 분석(김영중 편저).PDF, 레베데프 비망록.pdf, 쉬띄꼬프 일기.pdf, 제주 4.3사건 문과답(김영중 편저).pdf, 제주도 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pdf, 제주4·3사건도민보고서

위의 인용문안에 넣어 있는 문서들은 '전 제주경찰서장 김영중의 제주4.3 자료집'의 링크문서들을 표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제주4.3사건도민보고서'를 집어넣어, 자료를 찾아 들어가는 이들로 하여금 없는 문서가 있다고 혼란을 야기하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2019.11.09 물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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