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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 사상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만동묘와 대보단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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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덕규(權悳奎, 1890~1950)<ref>[http://nlcollection.nl.go.kr/front/detail/detail.do?rec_key=CO0000003902&category_id=CA0000000056&chkApp= 한글보급에 앞장선 한글학자이자 민족의식을 일깨운 역사학자, 권덕규(權悳奎)] 국립중앙도서관 > 역사 > 한국의위대한인물</ref><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6870 권덕규(權悳奎, 1890~195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는 1920년 「가명인 두상에 일봉(假明人 頭上에 一棒)」이라는 동아일보에 기고한 논설을 통해<ref>한별(桓民),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080020920100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08&officeId=00020&pageNo=1&printNo=36&publishType=00020 「假明人 頭上(가명인 두상)에 一棒(일봉) (一)」] 동아일보 1920-05-08 1면<br>한별(桓民),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090020920100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09&officeId=00020&pageNo=1&printNo=37&publishType=00020 「假明人 頭上(가명인 두상)에 一棒(일봉) (二)」] 동아일보 1920-05-09 1면<br>[한별(桓民)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6870 권덕규(權悳奎, 1890~1950)]이며,‘가짜 명나라 사람 머리에 몽둥이 한 대’라는 의미]</ref><ref>권덕규의 이 논설과, 이보다 앞서 [http://dongne.donga.com/2009/07/14/d-story-16-%EC%82%AC%ED%9A%8C%EC%A3%BC%EC%9D%98-%EC%8B%A0%EB%B4%89%EC%9E%90-%EA%B9%80%EB%AA%85%EC%8B%9D-%EB%B0%95%EC%9D%BC%EB%B3%91-%EC%84%A0%EC%83%9D/ 송산 김명식(松山 金明植 · 1890~1943)] 기자가 쓴 ‘조선부로(朝鮮父老)에게 고함’(1920년 5월 4일자부터 9일자까지 6회 연속 게재)에서 낡은 인습을 타파하자는 주장을 편 것에 대한 유림의 거센 항의로 동아일보 초대사장 박영효(朴泳孝)가 창간 2개월만에 사퇴하게 된다 : [http://dongne.donga.com/2016/05/23/11-초대-사장-박영효朴泳孝/ 초대 사장 박영효(朴泳孝)] 동네 - 동아미디어그룹 공식 블로그</ref><ref>동아일보는 권덕규 논설에 대해 사과문을 내지 않는 대신에 반론을 실었다.<br>漢陽過客,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130020920100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13&officeId=00020&pageNo=1&printNo=41&publishType=00020 讀東亞日報(독동아일보)] 동아일보 1920-05-13 1면<br>漢陽過客,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140020920100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14&officeId=00020&pageNo=1&printNo=42&publishType=00020 讀東亞日報(독동아일보) (續)] 동아일보 1920-05-14 1면<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170020920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17&officeId=00020&pageNo=1&printNo=45&publishType=00020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一(일))] 동아일보 1920-05-17 1면<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180020920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18&officeId=00020&pageNo=1&printNo=46&publishType=00020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二(이))] 동아일보 1920-05-18 1면<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190020920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19&officeId=00020&pageNo=1&printNo=47&publishType=00020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三(삼))] 동아일보 1920-05-19 1면<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200020920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20&officeId=00020&pageNo=1&printNo=48&publishType=00020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四(사))] 동아일보 1920-05-20 1면</ref>, 명나라 황제의 제사를 지내고 그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의 연호를 고집하던 당시의 유학자들을 가리켜
 
권덕규(權悳奎, 1890~1950)<ref>[http://nlcollection.nl.go.kr/front/detail/detail.do?rec_key=CO0000003902&category_id=CA0000000056&chkApp= 한글보급에 앞장선 한글학자이자 민족의식을 일깨운 역사학자, 권덕규(權悳奎)] 국립중앙도서관 > 역사 > 한국의위대한인물</ref><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6870 권덕규(權悳奎, 1890~195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는 1920년 「가명인 두상에 일봉(假明人 頭上에 一棒)」이라는 동아일보에 기고한 논설을 통해<ref>한별(桓民),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080020920100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08&officeId=00020&pageNo=1&printNo=36&publishType=00020 「假明人 頭上(가명인 두상)에 一棒(일봉) (一)」] 동아일보 1920-05-08 1면<br>한별(桓民),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090020920100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09&officeId=00020&pageNo=1&printNo=37&publishType=00020 「假明人 頭上(가명인 두상)에 一棒(일봉) (二)」] 동아일보 1920-05-09 1면<br>[한별(桓民)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6870 권덕규(權悳奎, 1890~1950)]이며,‘가짜 명나라 사람 머리에 몽둥이 한 대’라는 의미]</ref><ref>권덕규의 이 논설과, 이보다 앞서 [http://dongne.donga.com/2009/07/14/d-story-16-%EC%82%AC%ED%9A%8C%EC%A3%BC%EC%9D%98-%EC%8B%A0%EB%B4%89%EC%9E%90-%EA%B9%80%EB%AA%85%EC%8B%9D-%EB%B0%95%EC%9D%BC%EB%B3%91-%EC%84%A0%EC%83%9D/ 송산 김명식(松山 金明植 · 1890~1943)] 기자가 쓴 ‘조선부로(朝鮮父老)에게 고함’(1920년 5월 4일자부터 9일자까지 6회 연속 게재)에서 낡은 인습을 타파하자는 주장을 편 것에 대한 유림의 거센 항의로 동아일보 초대사장 박영효(朴泳孝)가 창간 2개월만에 사퇴하게 된다 : [http://dongne.donga.com/2016/05/23/11-초대-사장-박영효朴泳孝/ 초대 사장 박영효(朴泳孝)] 동네 - 동아미디어그룹 공식 블로그</ref><ref>동아일보는 권덕규 논설에 대해 사과문을 내지 않는 대신에 반론을 실었다.<br>漢陽過客,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130020920100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13&officeId=00020&pageNo=1&printNo=41&publishType=00020 讀東亞日報(독동아일보)] 동아일보 1920-05-13 1면<br>漢陽過客,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140020920100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14&officeId=00020&pageNo=1&printNo=42&publishType=00020 讀東亞日報(독동아일보) (續)] 동아일보 1920-05-14 1면<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170020920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17&officeId=00020&pageNo=1&printNo=45&publishType=00020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一(일))] 동아일보 1920-05-17 1면<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180020920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18&officeId=00020&pageNo=1&printNo=46&publishType=00020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二(이))] 동아일보 1920-05-18 1면<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190020920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19&officeId=00020&pageNo=1&printNo=47&publishType=00020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三(삼))] 동아일보 1920-05-19 1면<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200020920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20&officeId=00020&pageNo=1&printNo=48&publishType=00020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四(사))] 동아일보 1920-05-20 1면</ref>, 명나라 황제의 제사를 지내고 그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의 연호를 고집하던 당시의 유학자들을 가리켜
<blockquote>"심장도 창자도 없는 지나사상의 노예"</blockquote>
+
<blockquote>"심장도 창자도 없는 지나사상의 노예"</blockquote>라 표현하며
라 표현하며
 
 
<blockquote>"충효의 가르침을 제 땅과 제 민족을 위해 쓰지 아니하고 자기와 아무 관계없는 다른 놈에게 들이 바치니, 그 더러운 소갈머리야 참으로 개도 아니 먹겠다"</blockquote>
 
<blockquote>"충효의 가르침을 제 땅과 제 민족을 위해 쓰지 아니하고 자기와 아무 관계없는 다른 놈에게 들이 바치니, 그 더러운 소갈머리야 참으로 개도 아니 먹겠다"</blockquote>
 
고 일갈하였다.
 
고 일갈하였다.

2019년 7월 15일 (월) 15:23 판

토왜

잃어버린 개화의 꿈, 다가오는 미래의 아침은 아직 오지 않았으나 과거의 황혼에 둘러 싸여 과거의 늪에서 목이 베어 죽어간 이들의 기록.

토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역사의 사건들

중화, 소중화, 난신적자, 심장, 창자, 공자춘추, 당여, 왜관찰사, 오랑캐, 금수, 어육, 개화, 개화당, 수구, 위정척사, 수구파, 위정척사파, 화서 이항로, 의암 유인석, 소의신편, 갑신정변, 김옥균, 갑오개혁, 김홍집, 박영효, 이승만,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강화도 조약, 과거제 폐지, 단발령, 은본위제, 전제군주제, 입헌군주국, 한일합방, 동도서이, 공자, 송자(송시열), 을미의병, 13도창의군, 원새개(위안스카이), 5.4운동, 의화단, 동학, 청일전쟁, 러일전쟁, 아관파천, 민비, 을미사변, 1차세계대전, 러시아 혁명 등..

무덤에서 불러온 동족상잔의 캠패인, 낙인찍기, 주살의 대상 토왜

전우용이 정의한 토왜 ( 페이스북글)


"土倭天地" :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1910-06-22일자 2면 기사[1]

▲獰風猛雨此天地에 許多人種化出니 土倭種類遍滿야 蠧國病民통歎일셰
▲國家事 何如턴지 一時浮榮圖得졔 此約彼條藉功며 別般運動密勿니이것도 土倭
▲韓面日腸相雜니 倀鬼輩의 行色이라 何等聲明煽唱인고 暗裏凶計舞弄니이것도 土倭
▲兵力하에 依庇야 各地方에 出沒며 奪財겁奸恣行니 指使者의 惡行이라이것도 土倭
▲分憂責을 自負고 鼻息下에 聽令졔 無辜良民鞭撲야 千인坑塹陷落니이것도 土倭
▲幾分月銀摘食졔 睚眦怨을 欲報야 搆虛날誣秘探中에 流毒生靈慘虐니이것도 土倭
▲殊方語學稍解면 一爪牙를 甘作고 債錢으로 作奸야 奪人家産無餘니이것도 土倭
  • 최종적인 전우용의 정의 : 전씨는“대한매일신보는 토왜를 한마디로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왜놈인 도깨비 같은 자’라고 정의했다”라고 적으며 글을 마무리했다.[2]
  • 전우용씨의 정의를 쉽게 풀이하면 검은머리 외국인(머리색은 검정색으로 한국인이나 국적과 이익은 국가이익과 상관없이 개인의 이익과 외국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자), 바나나( 겉모습은 노란데, 속 생각은 백인주의자) 한국인등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여 전형적인 인종차별주의 성향을 보인다. 최근에 문재인은 북한 김정은의 대변자라는 기사[3][4]를 쓴 블룸버그 통신의 한국 여기자[5]에게 검은머리 외국인으로 부르며 트위터에 많은 인신공격이 발생하였다.

연관된 정치철학의 개념들

  • 나치의 법황제였던 카를 슈미트(정치적인 것의 개념) ' 정치적인 행동이나 동기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특정한 정치적 구별이란 적과 동지의 구별이다.'의 개념. 즉, 정치란 적과 아군을 구별함이다. 그리고 주권자는 법의 예외를 (비상사태)선언을 할 수 있으며 법의 예외에 해당하는 자는 인간으로서 생명과 재산의 보호를 받지 아니한다.
  •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 주권을 가진 권력의 본질은 공동체안의 인간을 죽일 수 있는 생사여탈권을 가지는 것이다, 주권의 대상물은 벌거벗은 생명이며, 추방된 자는 살아도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며 짐승도 아닌 존재로 규정함이다.'

그 추방자는 누가 규정하는가? 주권자가 규정한다. 이것이 정치의 근본 구조라 본다. 즉 정치는 주권자가 누군가를 신의 보호도 법의 보호도 없이 죽일 수 있다는 것이다. 주권자는 추방령을 내리고 수용소에 추방자를 몰아 넣을 수 있다.

  • 프랑스 대혁명의 길로틴으로 대표되는 자코뱅당이 그 근대국가에서의 호모사케르의 기원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인권선언은 대혁명 프랑스인 주권자가 누구이고 어떤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인권선언의 명칭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다. 즉 프랑스 대혁명의 신체제하에서의 혁명 프랑스국의 국민의 권리선언으로 프랑스에서 태어난 인간이며 동시에 시민인 자를 규정한다.

그러므로 프랑스에서 태어난 자(벌거벗은 자)이며 동시에 '시민'인자가 대혁명후 프랑스 국민의 권리를 보유하여 보호된다는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 (우리 한국에서도 깨시민이라 하여 한국인으로 태어난 자일뿐만 아니라 깨시민으로의 자격을 정치적 정체성으로 요구하는 세력이 있다.)

  • 히틀러는 독일민족의 그 주권자이며 절대적으로 인민의 뜻과 의지를 대표하며 총통이 법 그 자체다. 독일국내 유대인은 독일인으로 태어나 1차세계대전에서 독일제국을 위하여 참전하고 피를 흘린 자국민이었으나, 순수 번영해야할 푸른눈, 금발에 신체건강한 독일국민의 번영을 위해서 배제되는 불순물로 호모 사케르였다. (블랙 어스 - 홀로코스트, 티머시 스나이더 저, 왜 동구권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홀로코스트가 자행되었는가? 동구권은 나치 독일과 공산주의 쏘련의 사이에서 주권과 주권이 서로의 생산 번영을 위해 동구권지역내 인종학살이 벌어졌다는 주제를 다룬다.)
  • 한국인에겐 고려말부터 조선왕조 500년 대한제국에 이어져온, 공자의 춘추에 기록된 난신적자는 주살해야 한다는 중화주의자들, 소중화주의자들에게 매우 친숙하고 익숙한 개념이다. 주자의 성리학을 따르는 유학자들에게는 난신적자가 바로 호모 사케르이다.

공자의 춘추에 따르면 '난신적자'를 제거하려면 '당여' ( 따르는 무리, 난신적자의 손과 발)부터 주살해야 한다고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믿고 따랐다. 송자 송시열 또한 윤휴는 난신적자이며 그 따르는 무리 '당여'는 법의 재판없이도 주살할 수 있다고 하였다.


토왜를 불러 오면서 가져온 단어들, 창자와 창귀의 의미

韓面日腸相雜하니 倀鬼輩의 行色이라' 韓( 한국 한,나라 한), 面 (낯 면), 日(일본), 腸(창자 장),相(서로 상),雜(섞일 잡), 倀(갈팡질팡 창,귀신 창),鬼(귀신 귀), 輩(무리 배)

이 문구를 전우용씨는‘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왜놈인 도깨비 같은 자’라고 정의했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창자 腸(장)이다.

腸 창자 장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6]

1. 창자(큰창자와 작은창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 2. 마음, 충심(衷心: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참된 마음) 3. 자세하다(仔細ㆍ子細--) 자원(字源) 회의문자 (출처, 네이버 사전) 腸자는 ‘창자’나 ‘충심’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腸자는 이러한 모습을 응용한 글자로 음식물이 창자를 거쳐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고사성어 숙어 출처, 네이버사전

九曲肝腸구곡간장 「아홉 번 구부러진 간과 창자」라는 뜻으로, 굽이 굽이 사무친 마음속 또는 깊은 마음속

刮腸洗胃괄장세위 「칼로 창자를 도려내고 잿물로 위를 씻어 낸다」는 뜻으로, 마음을 고쳐먹고 스스로 새사람이 됨을 이르는 말

鐵心石腸철심석장: 쇠 같은 마음에 돌 같은 창자라는 뜻으로, 지조(志操)가 철석같이 견고(堅固)하여 외부(外部)의 유혹(誘惑)에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이르는 말

究厥心腸구궐심장: 남의 마음을 속속들이 헤아림

抑何心腸억하심장: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리 하는지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음을 이르는 말

木石肝腸목석간장: 나무나 돌처럼 '아무런 감정(感情)도 없는 마음씨'의 비유(比喩ㆍ譬喩)

斷腸단장: 창자가 끊어진다는 뜻으로,창자가 끊어지는 듯하게 견딜 수 없는 심한 슬픔이나 괴로움

羊腸小徑양장소경: 양의 창자처럼 구불구불 휘고 좁은 길이라는 뜻으로, 대학(大學) 입시나 입사 시험(試驗) 등(等)의 합격(合格)의 어려움을 이르는 말

九折羊腸구절양장: 아홉 번 꺾어진 양의 창자라는 뜻으로, ①꼬불꼬불한 험한 길  ②세상(世上)이 복잡(複雜)하여 살아가기 어렵다는 말

適口充腸적구충장: 훌륭한 음식(飮食)이 아니라도 입에 맞으면 배를 채움

剛腸강장:「굳센 창자」의 뜻으로,「굳세고 굽히지 않는 마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르는 말  ②게(蟹)의 딴이름


창자 장의 순우리말 '배알', '밸',

배알 1.명사 ‘창자1’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 2.명사 ‘속마음(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한 실제의 마음)’을 낮잡아 이르는 말. 3.명사 ‘배짱’을 낮잡아 이르는 말.

사용예) 배알이 꼴이다.( 배알이 뒤틀리다) : 비위에 거슬려 아니꼽다 배알이 곤두서다  : 신경에 거슬리다. 눈꼴이 시다. 배알머리  : 심술궂게 부리는 배알 배알을 빼앗기다  : 여자가 남자에게 정조를 유린당하다.

객주 1 (저 김주영) '제법 지체는 있어 보이되, 제가 나설 자리가 아닌데도 연천(나이 어린)한 놈이 대뜸 반말거리로 나오는 거조에 배알이 꼬인 상것 한 놈이 불쑥 내뱉었다.'


창자 腸은 순우리말로 '배알' '밸'이다. 쓰는 용례로는 '배알이 뒤틀린다, 배알도 없는 놈' 등으로 쓰인다. 뜻으로는 '줏대(자존심)'를 뜻한다. 위 사용예를 풀이하면 창자는 밥을 소화하는 것이며, 경제상에 살아가는 모습, 창고에서 인심 난다고 하듯이 배불러야 바른 마음이 나온다, 배가 차서 자존심을 채운다, 아픔, 마음등의 의미를 가진다. 창자는 은유표현으로 중화주의 소중화주의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뒤에 자세히)

창자(줏대)는 영어로 굳이 표현하자면 Style이다. 우리 한국에선 스타일이 좋다는 식으로 단지 겉모양의 복식과 옷 모양에 대한 뜻으로 쓰이나, 스타일의 원래 의미는 한 인간이 자신을 표현하는 꾸준히 계속 이어지는 생활양식으로 표현되는 모습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 유행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이브 생로랑
  • 나는 패션이 아니라 스타일을 믿는다.- 미우치아 프라다,
  • 패션은 지나가도 스타일은 남는다.- 코코 샤넬

일상에서 한여름에도 긴팔의 소매옷을 입는 것, 한복을 주로 입는 것, 항상 어느 특정의 모자를 쓰는 것, 흰색의 옷만 골라 입는 것등으로 자기 고유의 정체정을 표현하는 것이 스타일이다.

한국인이라면 밥상에 김치가 있어야 한다는, 전라도에선 삼합을 즐기는, 차는 SUV만을 또는 세단만을 또 색상은 어느 것으로 특정되는 등 스타일은 한 인간의 의식주 생활에서 표현되는 일정하고 꾸준히 이어지는 어떤 모습으로 그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한 개인일뿐만 아니라 특정 공동체에서도 특정 생활양식으로 정체성이 표현되는 것으로 그 스타일을 보고 그 집단을 유추하고 다른 스타일의 집단과 구분되어 지는 지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만큼 경제적 비용이 든다는 것을 감안도 해야 한다. 창자는 경제적으로 삶의 방식으로 한 인간이 살아가며 표현되는 것을 말한다.


韓面日腸相雜은 한국인의 얼굴과 몸을 가지고 일본인 따른 스타일로 머리를 짧게 자르고(단발령), 옷 소매 넓이가 좁아진 일본식(서양식) 복식, 일본 물건을 사용하는 것을 비난하는 것으로 쓰였다.

왜 여기서 머리를 짧게 자르고 옷을 일본식 스타일( 어차피 서양스타일에 다름이 아닌 것)에 극도로 혐오를 보이는가에 대해선 조선의 소중화의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조선의 사상은 잃어버린 중화(명나라)와 조선에 중화가 꽃핀 유일한 지역이며 소중화에 대한 뿌리깊은 자존심과 조선 경제구조, 권력구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앞으로 자주 언급될 의암(毅庵) 유인석(柳麟錫, 1842~1915)의 소의신편(昭義新編)[7][8]을 기반으로 소개되겠지만, 중화를 소중화를 조선이 지켜 내는데에 조선 유학자들이 강조하고 숱하게 반복되는 단어가 심장과 창자이다.

심장은 영어로 sprit 영혼 등으로 해석되는 단어이고 창자는 유학자들이 소중화의 생활양태로 상투, 의복, 물건등으로 지켜내고 계속 이어져야하는 삶의 살아가는 표현양식을 이야기한다.

창자가 흐트러지면 즉 상투를 자르고, 소매 좁은 옷을 입고, 외국인 물건을 쓰며 생활하게 되면(스타일이 굳혀지면), 심장 (정신, 혼)이 흐트러져 결국 신농, 복희씨, 3황5제, 주나라, 공자, 맹자, 증자, 송자(송시열)로 이어져 내려온 중화, 소중화가 뭉개어져 인간세상이 짐승들 금수와 어육으로 변한 참 지옥의 세상이 열린다고 보았다.

즉, 창자는 그만큼 조선 유학자들에겐 목숨 걸고 지켜내야할 최전선의 보루로 인식되었다. ( 의암 유인석의 소의신편에서 자주 나오는 내용이며 조선시대에 난신적자와 함께 자주 언급된다.[7][8])

쉽게 비유하자면 창자는 각 개인의 생활 라이프 스타일로 거리의 풍경을 이룬다. 여러 개인들이 어느정도 공통된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게 되고 예전과 다른 스타일을 가지면 기존과 다른 거리의 기풍(심장)이 생겨나고 다시 다른 개인들의 스타일에 영향을 미친다.

수구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예전이 좋았지. 요즘엔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 보기 너무 힘들어. 세상에 독서를 안하는 사람들(심장, 기풍)의 사회가 어찌 되겠어 한탄한다.

조선은 다른 경제기반을 가지지 아니한 농업중심 사회로 지도층인 유학자, 선비들은 오로지 권력에 벼슬에 집착하고 몰두하게 되는 사회였다. 벼슬을 해야 경제적 풍요와 함께 명성도 갖추어지는 사회였었다.

여기서 무한투쟁의 장이 열리고 다른 유학 선비들을 배제해야 자신이 올라가는 비극적인 권력투쟁의 장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가장 치열하게 진행된 캠패인은 저 놈은 난신적자라는 낙인 찍기였었다.

(송자 송시열은 윤휴는 난신적자이이며 그 당여(따르는 무리)는 법의 재판도 없이 바로 주살할 수 있다 하였다.)

전우용씨가 토왜를 먼지 쌓인 옛문헌서 가져온 증거들은 1910년대, 일제시대, 해방 시절에 나온 신문에 나온 이야기들로 그 근원은 을미의병 시기에 모두 나온 것의 재탕 삼탕에 그 오리지널에 대한 이해없이 사용되었다.

모단걸을 아시는가? 1920년대에 머리를 짧게 자른 신식 여성을 모던걸에 빗대어 부른 명칭이다. 이미 1890년대 후반부터 남성들은 단발령과 서구문명이 들어오면서 머리를 짧게 자르기 시작했었으나, 여성들은 1920년대에 머리를 짤랐다고 비웃는 세상으로 말세다라는 식으로 바라 보고 있었다는 의미다.

요즘 젊은 것들이 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창자가 뒤틀린다는 감정이 담긴 단어가 모단걸 이다. 젊은 여성들의 창자(스타일)가 이렇게 썩어 버렸으니 그 심장 (혼, 정신)은 말하면 입만 아프다는.

  • 난신적자는 어디서 태어 나는가?
이런 생활 스타일 ( 창자 )가 변해 버리면 사회의 기풍/혼(심장)이 변질되고 썩어 버린 세상에 길들여진 인간들속에서 난신적자가 태어나 중화(성리학)를 더럽히며 소중화 조선(성리학적 질서)을 망친다고 중화사상에 찌들은 유교학자들은 말해왔다. 그러므로 만약 누군가를 심장과 창자가 오염되었다하면 난신적자를 키우는 자로 법의 재판없이 주살의 대상이었다


倀鬼輩의 行色

창귀(倀鬼)들의 무리(輩)의 모습이다.

창귀는 호랑이/범에게 먹히고 나서 귀신이 되어 호랑이/범을 끌어 들이는 귀신을 말한다. 창귀배란 창귀 무리들 모습이다. 창귀는 호랑이에게 묶여 있는 바 풀려나기 위해 다른 사람을 호랑이가 잡아 먹어야 풀려난다는 이야기도 있다.

위호작창(爲虎作倀) 호랑이를 위해 창귀가 되다. (위호작창은 중국 고사성어로 한국에서는 안쓰는 고사성어이다.)

요즘 2019년의 문화세계에서 본다면 드라큘라에 봉사하는 사람으로 드라큘라의 명을 받고 드라큘라가 쉽게 사람들에게 접근하고 흡혈할 수 있도록 돕는 자이다. 창귀


이제 위 이야기한 바를 의암 유인석의 '소의신편'으로 정리하면[7][8], 중화를 모르는 오랑캐들, 서양 오랑캐의 문물과 의복, 머리깍은 창자(스타일)와 심장(서구사상)을 받아들인 일본이 서양 오랑캐로부터 받아 들인 창자(스타일)를 조선에 가져와 무지몽매한 백성들과 조선 관리들의 조선 창자와 바뀌어 오랑캐 습속(상투 자른 단발, 신식학문, 물물교환이 아닌 은본위 경제, 과거제도의 폐지와 신식학교의 설립)이 조선으로 들어오게 유인하는 앞잡이의 모습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왜인의 창자는 1895년 을미의병 당시에 여러번 소의신편에 언급되며[7][8] 다른 의병들과 조선 유학자들 사이의 서찰에서 숱하게 나온 표현으로 을미의병 당시 조선 유학자들이 볼때 조선의 창자(생활 스타일)가 바뀌어 가면 심장(사회 기풍)이 바뀌고 결국 난신적자들이 자라나서, 조선 왕조보다 더 소중한 중화, 소중화가 무너져 내리고 금수의 세상으로, 백성들은 어육으로 변한다는 인식이었는데 1910년까지도 계속 이어진 것이다.

15년전 세상을 바라 본 소중화 조선 유학자들의 위정척사파 인식이 일본의 한일합방에 대한 격분에 다시 반복되고 또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확대 재생산되었다. 재생산하는 이들은 소중화주의자들(위정척사파)이 조선의 자주독립은 충분치 않으며 오로지 중국에 중화가 다시 꽃피우며 조선에는 소중화가 다시 만발하는 세상을 꿈꾸었는지를 모른다.

1905년 강화도 조약에서 '조선국은 자주지방(自主之邦)으로서 일본국과 평등한 권리를 보유한다.'는 조선은 자주독립국이라는 의미가 위정척사파 (정학(正學)인 성리학과 정도(正道)인 성리학적 질서를 수호하고(위정), 성리학 이외의 모든 종교와 사상을 사학(邪學)으로 보아서 배격하는(척사) 운동이다)의 입장에선 조선이 왜놈 오랑캐와 동격이 되고 소중화의 조선이 중화 중국과 생이별하는, 부모로부터 강제로 떨어져 오랑캐가 되는 세상으로 인식하는 자들이었다.

이런 그 당시 사회적 배경도 지식도 풍경도 모르면서 단순히 토왜를 설명하는 문장이 있었다고 또 원래 주창했던 이들이 누구인지도 어떤 생각을 가진 이들이었는지도 모르고 무덤에서 끄집어 내어 현재 정권에 반대하는 협조치 않는 이들을 토왜라고 규정 짓는 인문학적 몰이해가 창궐하고 있다. 이들의 사고력은 과거 서울대에서 시위 하려는데, 지하철이 서울대역에 정차하지 않자 '낙성대에서 내려'한 수준에서 멈춰있다.(낙성대학은 없다. 낙성대역이 있을뿐)


토왜는 성리학 유학자들에게 누구인가

* 토왜는 척화양이의 소중화주의자들에게는 난신적자와 그 당여의 무리에도 끼이지 못하는 하찮은 벌레와 같은 자들이었다.
  을미의병 당시 문헌상의 기록을, 특히 의암 유인석의 소의신편을 보면[7][8] 토왜 O O O 이렇게 규정을 하고 있는 바, 모두 군수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토왜를 군수급 이하에 한정하여 쓰고 있다. 성리학상에서의 난신적자와 그 당여의 무리에도 끼이지 못하는 자들로 한정하고 있다.( 예, 이호영(토왜) 편 참조 )
  을미의병을 일으킨 성리학에 바탕한 유학자들에게는 난신적자는 갑신정변의 김옥균, 갑오개혁의 김홍집, 박영효등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그 당여 (개화당의 무리)는 개화파외에 관찰사까지로 한정하고 있다. 성리학자들에게는 최소한 고위직 관리들이 되어야 자신들의 상대였었다.
  을미의병 당시 관료들을 주살한 바, 관찰사들까지도 머리를 잘랐다. 그러나 토왜를 관찰사까지도 포함 시키면 성리학자들의 난신적자의 논리적 문제에 봉착한다.  
  소의신편에는 의암 유인석에게 다른 유학자들의 항의를 받아 답하는 글을 여러편 볼 수 있는데[7][8], 다른 유학자들은 어떻게 임금이 임명한 관찰사들을 주살할 수 있는 가? 하는 것이었다. 이에 의암 유인석은 성리학의 난신적자와 그 당여 논리로 답을 한다. 즉, 관찰사는 난신적자의 당여이기에 주살 하였다는 것이다. 갑오개혁으로 군수는 관찰사가 임명하고, 관찰사는 김홍집등의 개화파의 추천에 의해 최종적으로 고종이 임명하였다. 만약 관찰사를 토왜로 규정한다면 그 관찰사를 임명한 임금인 고종이 난신적자가 되어 임금을 척살해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이 되어 버린다.그리고 그 논리의 최종 결과는 반역이었다. 역사상 홍재학이 이 난신적자 논리에 의해 임금을 난신적자로 지칭하지는 않았으나 상소상의 문구는 난신적자로 지칭이 되었기에 사형에 처해졌었다 ( 홍재학 참조) 
  토왜로 규정된 군수급의 관리들은 이들에게는 난신적자의 당여에도 못끼는 그저 하찮은 존재(서자들 포함된 하급관리)였었던 것이다. 단발령에 따라 군민들에게 상투를 자르게 하고 삭발에 앞장 섰으며, 왜학문(신학문)을 소개하는 모습이, 당시 성리학 유학자들에게는 배알이 튀틀렸던 것 이었다. 
  韓面日腸相雜니 倀鬼輩의 行色으로 인식을 하듯이 토왜는, 이미 범에 물려 죽은 창귀들처럼, 조선의 창자(상투,소매가 좁은 왜옷/서양 오랑캐의 옷)가 왜(일본식이나 결국 서양 오랑캐의)학문을 받아들여 사람이 아닌 창귀로서 소중화의 조선을 오랑캐로 물들이는 창귀로 인식하였다. 전통사회의 국가들에서, 기독교 또는 불교 또는 이슬람 사회의 국가에서, 타종교의 교회,사원등을 불지르고 인명을 살상하였던 것과 근본적인 차이가 없었다.
 
 또한 과거제 폐지는 인해 성리학 유학자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었다. 이승만의 이야기에서도 과거제 폐지의 충격이 소개 되고 있다. 과거제 폐지로 인한 공황상태에서 신학교의 설립을 주도하는 군수들은 이들에게 어떻게 보였을지는 명약관화하였었다.
* 이승만 사례로 본 과거제 폐지의 충격  ( 출처 :한국근대사산책2, 강준만, 이승만의 인생이 바뀌다 )
  
  ' 갑오개혁으로 과거제가 폐지되는 사태를 맞이 하게 되었다. 이승만의 아버지 이경선은 과거를 통한 아들의 입신출세 길이 영영 막혀버린 사실에 대해 울분을 참지 못한 나머지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치고 책상을 치고 또 자기 무릎까지 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흥! 미친놈들! 조상이 천 년을 하루같이 지켜오던 성현의 길을 폐지하고 그러고도 그놈들이 벌을 받지 않을까? 인재를 골라서 쓰지 않는다면 어느 개새끼라도 마구 갖다 쓸 작전인가! 무렴(無廉)한 왜놈들! 무렴한 개화당 놈들! 그놈들 때문에 인제 나라가 망하고 마느니라! 두고 보아라" 이승만도 절망해 훗날 자신의 자서전 초고에서 "전쟁(청일전쟁)이 끝난 직후에 낡아 빠지고 많이 악용되어 오던 과거제도가 폐지 되었는데 이 조치는 전국 방방곡곡에 묻혀 있던 야망적인 청년들의 가장 고귀한 꿈을 산산이 부스는 조치였다"고 썼다.

과거시험 대신 새로 마련된 시험제도는 일반 하급관리 채용을 위한 보통시험과 특별시험 두가지를 두어 전자는 국문,한문,사자(글씨 베껴 쓰기),산술, 국내 정략, 외국 사정 , 발책(논문)등의 과목이었고 후자는 기술자를 추천,시험하는 것이었다.
이승만은 새로 생겨난 시험이라도 보려고 했으나 아버지 경선이 반대했다. 

"뭐? 새 시험제도라고? 그래 그깐 놈들에게 붙어서 개화당이 돼? 어림도 없는 소리다. 선비는 죽어도 궁색해선 안 되느니라. 백이숙제같이 산채를 씹다가 죽을지언정 어찌 그까짓 왜놈배들에게 부동한단 말이냐? 꿈에라도 너는 그따위 시험제도 같은 건 생각지도 말고 이 난세에 성명을 보존할 생각을 해라. 고르지 못한 때에 묻혀서 사는 것은 예로부터 있던 길이다." '

 그리고 이 과거제 폐지는 이승만의 일생을 송두리채 바꾸고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이어진다.

중화 사상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만동묘대보단에 대해

권덕규(權悳奎, 1890~1950)[9][10]는 1920년 「가명인 두상에 일봉(假明人 頭上에 一棒)」이라는 동아일보에 기고한 논설을 통해[11][12][13], 명나라 황제의 제사를 지내고 그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의 연호를 고집하던 당시의 유학자들을 가리켜

"심장도 창자도 없는 지나사상의 노예"

라 표현하며

"충효의 가르침을 제 땅과 제 민족을 위해 쓰지 아니하고 자기와 아무 관계없는 다른 놈에게 들이 바치니, 그 더러운 소갈머리야 참으로 개도 아니 먹겠다"

고 일갈하였다.

함께 보기

  • 우리 안의 사대주의

각주

  1. 土倭天地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1910년 06월 22일 2면 7단
  2. "토착왜구가 누군지 알려드립니다" 전우용 저격글, 국민일보 2019.3.21
  3. '文은 김정은 수석대변인'은 블룸버그통신이 첫보도 조선일보 2019.03.12
  4. South Korea's Moon Becomes Kim Jong Un's Top Spokesman at UN Bloomberg 2018.9.26
  5. https://twitter.com/YKreports/status/1099902812664692737
  6. 사전
  7. 7.0 7.1 7.2 7.3 7.4 7.5 소의신편(昭義新編) 번역문
  8. 8.0 8.1 8.2 8.3 8.4 8.5 소의신편(昭義新編) 원문 텍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소의신편(昭義新編) 원문 이미지로 보기 국립중앙도서관
  9. 한글보급에 앞장선 한글학자이자 민족의식을 일깨운 역사학자, 권덕규(權悳奎) 국립중앙도서관 > 역사 > 한국의위대한인물
  10. 권덕규(權悳奎, 1890~195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1. 한별(桓民), 「假明人 頭上(가명인 두상)에 一棒(일봉) (一)」 동아일보 1920-05-08 1면
    한별(桓民), 「假明人 頭上(가명인 두상)에 一棒(일봉) (二)」 동아일보 1920-05-09 1면
    [한별(桓民)은 권덕규(權悳奎, 1890~1950)이며,‘가짜 명나라 사람 머리에 몽둥이 한 대’라는 의미]
  12. 권덕규의 이 논설과, 이보다 앞서 송산 김명식(松山 金明植 · 1890~1943) 기자가 쓴 ‘조선부로(朝鮮父老)에게 고함’(1920년 5월 4일자부터 9일자까지 6회 연속 게재)에서 낡은 인습을 타파하자는 주장을 편 것에 대한 유림의 거센 항의로 동아일보 초대사장 박영효(朴泳孝)가 창간 2개월만에 사퇴하게 된다 : 초대 사장 박영효(朴泳孝) 동네 - 동아미디어그룹 공식 블로그
  13. 동아일보는 권덕규 논설에 대해 사과문을 내지 않는 대신에 반론을 실었다.
    漢陽過客, 讀東亞日報(독동아일보) 동아일보 1920-05-13 1면
    漢陽過客, 讀東亞日報(독동아일보) (續) 동아일보 1920-05-14 1면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一(일)) 동아일보 1920-05-17 1면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二(이)) 동아일보 1920-05-18 1면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三(삼)) 동아일보 1920-05-19 1면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四(사)) 동아일보 1920-05-2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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