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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0월 19일 평양민보에 실린 한재덕(韓載德, 1911~1970)의 "김일성장군 개선기(金日成將軍 凱旋記)" :

- 북조선예술총연맹(北朝鮮藝術總聯盟) 1946.7.25
장군(將軍)이 조선(朝鮮)에 돌아오기는 그보다 훨씬 전(前)이었다. 비행기(飛行機) 우에서 내려다보이는 고국(故國)의 산천(山川)은 너무나 아름다웟다. 『이 강산(江山)을 위하여 내 어찌 아니 싸울 수 있었으랴! 그러나 노력(努力)은 이제부터다.』 그럼으로 장군(將軍)은 떠들지 않고 돌아왓다.

소리없이 개선(凱旋)한 장군(將軍)은 돌아온 그날부터 또 맹활동(猛活動)을 개시(開始)하였다. 사정(事情)에 의(依)하여 이름도 김영환(金永煥)으로 변명(變名)을 하고. 二十年 그리던 고향(故鄕), 조부모(祖父母) 친척(親戚)을 二十里 밖에 두고도 비화(飛火)같이 달리는 마음을 달래며 이날까지 꾹 참어온 것이다.

그러나 복면(覆面)을 벗은 이제 엇더케 하로를 참으랴! 장군(將軍)은 날듯이 할아버지 할머니 계신 옛집으로 달려 온 것이다.

당시 한재덕은 김일성이 소련군함 타고 9월 19일 원산항으로 입북하여 평양으로 온 것을 모르고 비행기 타고 왔다고 했다. 또 김일성이 몰래 귀국한 것을 떠들지 않고 돌아왔다거나, 소리없이 개선(凱旋)했다고 미화하고 있고, 김영환(金永煥)으로 변명(變名)을 하고 다니다 10월 14일 평양시 민중대회에서 "김일성 장군"을 자칭하며 나선 것을 복면(覆面)을 벗었다고 표현했다.

이듬해 간행된 한재덕의 저서 『金日成 將軍 凱旋記』 (平壤, 民主朝鮮出版社, 1947.11.20)의 같은 글에는 김영환이란 가명을 썼다거나 복면을 벗었다는 말은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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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2020년 8월 25일 (화) 16:021,500 × 2,107 (971 KB)JohnDoe (토론 | 기여)1945년 10월 19일 평양민보에 실린 한재덕의 "김일성장군 개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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