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번째 줄: 41번째 줄:
* [https://shindonga.donga.com/3/home/13/2265440/1 <nowiki>[김학준이 다시 쓴 현대사 결정적 장면 ⑤]</nowiki> ‘권력중앙’ 먼저 형성한 김일성 vs 美견제로 뒤늦게 귀국한 이승만] 신동아 2020년 12월호
* [https://shindonga.donga.com/3/home/13/2265440/1 <nowiki>[김학준이 다시 쓴 현대사 결정적 장면 ⑤]</nowiki> ‘권력중앙’ 먼저 형성한 김일성 vs 美견제로 뒤늦게 귀국한 이승만] 신동아 2020년 12월호
{{인용문|북한 당국은 오랫동안 김일성이 1945년 8월 15일 자신의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며 일제의 관동군을 격파하면서 조선으로 개선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와 그의 동지들은 소련극동군 정보국 참모 자이체프 소령의 인솔 아래 소련함정 푸가초프호(號)를 타고 9월 18일 원산에 도착했다. 에밀리안 푸가초프는 제정러시아의 여걸 예카테리나 대제(大帝) 때 대규모 농민반란을 일으켰다가 처형된 혁명가로, 이 함정의 이름은 그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배는 미국이 건조한 3000t급 트롤선인데, 미국은 자국의 무기대여법에 근거해 이 배를 소련에 넘겨줬다. <u>역설적이게도 김일성과 그의 동지들은 ‘미 제국주의자들이 만든 배’를 타고 귀국한 셈으로, 이 배는 개선호(號)로 명명된 채 오늘날까지 원산항에 보존돼 있다.</u>}}
{{인용문|북한 당국은 오랫동안 김일성이 1945년 8월 15일 자신의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며 일제의 관동군을 격파하면서 조선으로 개선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와 그의 동지들은 소련극동군 정보국 참모 자이체프 소령의 인솔 아래 소련함정 푸가초프호(號)를 타고 9월 18일 원산에 도착했다. 에밀리안 푸가초프는 제정러시아의 여걸 예카테리나 대제(大帝) 때 대규모 농민반란을 일으켰다가 처형된 혁명가로, 이 함정의 이름은 그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배는 미국이 건조한 3000t급 트롤선인데, 미국은 자국의 무기대여법에 근거해 이 배를 소련에 넘겨줬다. <u>역설적이게도 김일성과 그의 동지들은 ‘미 제국주의자들이 만든 배’를 타고 귀국한 셈으로, 이 배는 개선호(號)로 명명된 채 오늘날까지 원산항에 보존돼 있다.</u>}}
이 배가 원산에 보존되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있다고 해도 김일성 우상화 교육 재료로 쓰기는 부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이 배를 타고 귀국했다는 것은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고 북한으로 진격해 해방시켰다는 날조한 주장과 명백히 배치되기 때문이다.
* [https://news.joins.com/article/2634493 김일성 대일 해방전 참가 못했다 (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4)] 중앙일보 1991.08.26 종합 5면
{{인용문|81년판 『조선전사 22권­.』
『혁명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1945년 8월9일 드디어 전체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 및 병사들에게 일제를 패망시키고 조국해방을 실현시키는데 대한 명령을 내리셨다.
조선인민군혁명군대는 일제 관동군에 치명적 타격을 주면서 장춘을 비롯한 중국 동북지방의 많은 지역을 해방시키고 진격을 계속해 적들의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했던 웅산만 고개의 방어시설들을 돌파하고 웅기·나진·남양 등을 해방하고 청진방면에 대한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조선인민해방군은 지상에서 공격하는 부대들과 더불어 청진·나남·원산일대를 해방하고 공격의 성과를 남쪽으로 확대했다.
조선인민혁명군 각 부대들은 도처에서 정예를 자랑하던 일제의 조선 주둔군을 격멸,소탕하면서 진격해 드디어 일제를 패망시키고 조국을 반세기에 미치는 오랜 일제 식민지 통치의 굴레에서 해방시켰다….』}}


==참고 자료==
==참고 자료==

2020년 12월 14일 (월) 14:50 판

김일성에 대해 무엇이 궁금한가요? →
김일성 관련 표제어 보기
김일성 (생애전반) 김일성 가짜설 가짜 김일성 관련 기록과 증언
김일성 관련 원천사료 목록 김일성이 사용한 이름 김일성 진짜론 반박
김일성의 실체 김일성 (동명이인) 고동뢰 소대 참살사건
김일성 (6사장) 보천보사건 간삼봉 전투
혜산사건 동북항일연군 《국경의 비적수괴 김일성 회견기》
《애국지주 김정부(金鼎富)》 《국경경비진 주파기》 《김일성 부대의 양민 약탈 일지》
《비수 김일성의 생장기》 민생단 사건 전설의 김일성장군 관련 해방전 기록
김일성의 소련 행적 김정일의 출생 소련군 88여단
극동의 소련군 소련의 만주와 북한 침공 북한의 소련 군정
「푸가초프」호 동진공화국 조각명단 해방정국 지도자 지지율
해방직후 북한 상황 북한 초대 내각 북한의 친일파 청산
남북분단의 현실화 과정 북한정권 감시기구 《특경부》 6.25 남침
《김일성 1912~1945》 (서평) 김일성(金一成, 1888~1926) 김정일 생년
김형직 (부친) 강반석 (모친) 김형권 (삼촌)
김혜순 (전처) 김정숙 (처) 김슈라 (차남)
김영주 (동생) 백두혈통 김일성 영생교

푸가초프(Pugachev, 정식명칭 Emelyan Pugachev, Емелья́н Пугачёв)」호(號)는 소련의 군용 화물선으로, 8.15 해방 직후 소련군 88여단진지첸 대위(김일성) 일행이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하여 1945년 9월 19일 원산항으로 입북할 때 타고 온 배이다.[1][2][3][4][5]

푸가초프호(Pugachev 號). 해방 직후 소련군 88여단진지첸 대위(김일성) 일행이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하여 1945년 9월 19일 원산항으로 입북할 때 타고 온 배로, 1961년 4월 13일 캐나다 뱅쿠버에서 찍힌 사진이다.[6]

원래 1943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오리건 조선회사(Oregon Shipbuilding Corporation)에서 건조하여 소련에 임대한 배이다.[7] 미제를 원수처럼 여기는 김일성이 해방 후 북한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미국이 건조한 배를 탔다는 것은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개요

이 배는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오리건 조선회사에서 Louis Agassiz 라는 이름으로 1943년 3월 23일 건조를 시작하여 20여일 후인 4월 13일에 건조 완료되었으며, Emilian Pugachev라는 이름으로 4월 21일에 소련에 인도되었다.[7]

2차대전 중에 미국에서 영국으로 군수물자를 수송하던 화물선 다수가 독일의 어뢰와 U보트에 의해 침몰 당하자, 이를 보충하기 위해 규격화하여 양산한 모듈들을 용접하는 방식으로 속성으로 건조하던 Liberty Ship[8] 중의 하나였다.

건조할 당시의 처음 이름은 Louis Agassiz였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는 쿠바로 출동하였다.[9] 1977년 폐선되었다.[7]

미국이 건조한 배가 소련으로 인도된 배경

미국은 2차대전 중 1941년 3월 11일 발효된 무기대여법(Lend-Lease)[10]에 따라 유럽의 연합국과 소련에 막대한 전쟁 물자를 지원하였다. 대소 지원 물자 수송 경로는 크게 북극해(Arctic Convoys), 페르시아만 회랑(Persian Corridor) 및 태평양 수송로(Pacific Route) 3가지가 있었다. 태평양을 통해서는 일본 북쪽으로 해서 블라디보스톡으로 들어갔다. 일본이 태평양 루트의 전쟁물자 운송을 공격하지 못한 것은 1941년 4월 체결된 일소중립조약[11] 때문이다. 이에 의하면 일본은 소련 배를 공격해서는 안 되나 무기를 실었을 경우는 검열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경로로는 무기가 아닌 다른 군수물자들이 주로 지원되었다.

푸가초프호는 전쟁물자 수송을 위해 미국이 속성으로 건조했던 Liberty Ship의 하나로 일소중립조약에 의해 일본의 저지를 받지않고 소련으로 물자를 수송하려면 배가 소련국적이라야했으므로 소련으로 임차된 것으로 보인다. 2차대전 중에는 미국의 대소 지원물자를 실어날랐고, 종전 후에도 소련에 매각된 것인지 양여된 것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소련이 계속 사용했다.

스탈린은 미국의 전쟁물자 지원이 없었다면 소련은 독일전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라 했고[12], 1945년 8월 일소중립조약을 파기하고 대일본전을 벌일 형편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의 원산항에 보존되어 있나?

푸가초프호는 폐선 후 "개선호(凱旋號)"로 명명되어 북한의 원산항에 보존되어 있다는 설이 있으나 검색에서 잘 확인이 안 된다.

북한 당국은 오랫동안 김일성이 1945년 8월 15일 자신의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며 일제의 관동군을 격파하면서 조선으로 개선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와 그의 동지들은 소련극동군 정보국 참모 자이체프 소령의 인솔 아래 소련함정 푸가초프호(號)를 타고 9월 18일 원산에 도착했다. 에밀리안 푸가초프는 제정러시아의 여걸 예카테리나 대제(大帝) 때 대규모 농민반란을 일으켰다가 처형된 혁명가로, 이 함정의 이름은 그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배는 미국이 건조한 3000t급 트롤선인데, 미국은 자국의 무기대여법에 근거해 이 배를 소련에 넘겨줬다. 역설적이게도 김일성과 그의 동지들은 ‘미 제국주의자들이 만든 배’를 타고 귀국한 셈으로, 이 배는 개선호(號)로 명명된 채 오늘날까지 원산항에 보존돼 있다.

이 배가 원산에 보존되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있다고 해도 김일성 우상화 교육 재료로 쓰기는 부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이 배를 타고 귀국했다는 것은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고 북한으로 진격해 해방시켰다는 날조한 주장과 명백히 배치되기 때문이다.

81년판 『조선전사 22권­.』

『혁명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1945년 8월9일 드디어 전체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 및 병사들에게 일제를 패망시키고 조국해방을 실현시키는데 대한 명령을 내리셨다.

조선인민군혁명군대는 일제 관동군에 치명적 타격을 주면서 장춘을 비롯한 중국 동북지방의 많은 지역을 해방시키고 진격을 계속해 적들의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했던 웅산만 고개의 방어시설들을 돌파하고 웅기·나진·남양 등을 해방하고 청진방면에 대한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조선인민해방군은 지상에서 공격하는 부대들과 더불어 청진·나남·원산일대를 해방하고 공격의 성과를 남쪽으로 확대했다.

조선인민혁명군 각 부대들은 도처에서 정예를 자랑하던 일제의 조선 주둔군을 격멸,소탕하면서 진격해 드디어 일제를 패망시키고 조국을 반세기에 미치는 오랜 일제 식민지 통치의 굴레에서 해방시켰다….』

참고 자료

Liberty ship launched as LOUIS AGASSIZ transferred to Russia as EMELIAN PUGACHEV 21.4.1943 / Oregon Shpbuilding, Portland OR, Yard # 665
665 Louis Agassiz EC2-S-C1 1624 9 24-Mar-43 13-Apr-43 21-Apr-43 20 8 28 To Russia 1943 as Emilian Pugachev, scrapped 1977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