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필
石虎弼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Frank William Schofield
스코필드.jpg
1968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기념사진
미군정청 고문


대통령
수상
안재홍 미군정청 민정장관
장관
존 리드 하지 미군정청 군정장관
개인 정보
출생
1889년 3월 15일
출생지
잉글랜드 워릭셔주 럭비
사망
1970년 4월 12일 (81세)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정당
경력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강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전임교수
감리교신학대학교 전임교수
학력
배우자
앨리스 스코필드(Alice Schofield, 한국명 석애리수(石愛利粹)[1])
자녀
아들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주니어(Frank William Schofield Junior, 한국명 석율령(石律令))
종교
서훈
1968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 수훈
웹사이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1889년 3월 15일 ~ 1970년 4월 12일)는 영국 태생의 캐나다 감리교 선교사이자, 수의학자이며 세균학자이다.

1916년 27세의 나이에 선교사이자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대한민국에 들어왔다.

1919년 일제의 제암리교회 방화 학살사건의 현장을 촬영하였으며, 국제적인 반일 여론을 조성하는데 기여하였다. [2]

1919년 3월 1일, 일제의 식민지배에 항거하여 독립을 선언하고 3.1 운동을 일으켰을 때, 이 거사에 대해서 통보받고 협력을 요청받았던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1968년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훈하였다. 그는 3.1 운동의 33인의 또 한사람이라 하여 "3.1운동의 제34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스코필드는 일제로 부터 독립한 후에도 재입국하여 국내에서 활동하였다. 한국의 독립과 인권에 관련하여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선교사 중 한명이다.




각주

  1.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교수보다 2년 연상녀.
  2. 일제 감옥 탈출 도운 ‘석호필’ 박사, 3.1운동 및 제암리 학살 세계에 알린 외국인 스코필드 박사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