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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9일 (일) 01:07 기준 최신판

역대 고려 국왕
제1대
태조
제2대
혜종
제3대
정종
제4대
광종
제5대
경종
제6대
성종
제7대
목종
제8대
현종
제9대
덕종
제10대
정종
제11대
문종
제12대
순종
제13대
선종
제14대
헌종
제15대
숙종
제16대
예종
제17대
인종
제18대
의종
제19대
명종
제20대
신종
제21대
희종
제22대
강종
제23대
고종
제24대
원종
제25대
충렬왕
제26대
충선왕
제27대
충숙왕
제28대
충혜왕
제29대
충목왕
제30대
충정왕
제31대
공민왕
제32대
우왕
제33대
창왕
제34대
공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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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종
惠宗
직책 고려 2대 국왕
(양력 943년 7월 5일 ~ 945년 10월 23일)
←전임후임→
묘호 혜종(惠宗)
시호 인덕명효선현고평경헌의공대왕

(仁德明孝宣顯高平景憲義恭大王)

왕(王)
무(武)
승건(承乾)
생몰기간 (양력)912년 ~ 945년 10월 23일
재위기간 (양력)943년 7월 5일 ~ 945년 10월 23일

개요

고려의 제2대 왕이다. 묘호는 혜종(惠宗)이며 본명은 왕무(王武)이다. 태조와 장화왕후 오씨 사이에서 출생했다.

출생

고려사에 따르면 아래와 같은 탄생설화가 전한다.

왕후가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태조가 불러 사랑하였다. (왕후의 집안이) 측미(側微)하므로 임신시키지 않고자 하여 잠자리에 깐 돗자리에 (정액을) 뿌렸으나, 왕후가 바로 이를 (자신의 질 안에) 넣어 결국 임신하고 아들을 낳으니 이가 바로 혜종(惠宗)이다. (혜종은) 얼굴에 돗자리 무늬가 있었으므로 세상에서 이르기를 ‘주름살 임금(襵主)’이라 하였다.[1]

이 설화는 혜종의 어머니 장화왕후 오씨와 나아가서는 혜종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혜종의 외가가 한미한 집안에다 혜종의 정치적 입지가 좁았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혜종의 태자 책봉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혜종이 태어난 지 7년이 되었을 때 태조가 (혜종을 태자로) 세우고자 하였으나, 어머니 오씨(吳氏)가 비천하여 세울 수 없을까 염려하였다. 그리하여 오래된 상자에 자황포(柘黃袍)를 담아 오씨에게 하사하였다. 오씨가 이것을 박술희에게 보이자 박술희가 태조의 뜻을 금방 알아차리고 혜종을 정윤(正胤)으로 세울 것을 청하였는데, 정윤이 바로 태자(太子)이다.[2]

혜종 외가의 세력이 약해 혜종을 태자로 세우는 것 자체가 걱정스러웠기에 태조는 공신인 박술희에게 개인적인 부탁까지 하는 모습을 보였다.

즉위 후

군사력을 가지고 지역 내의 왕으로 대우받는 대호족들 사이에서 외가가 한미한 집안인 혜종이 믿을 만한 사람은 개국공신 박술희와 장인 왕규 정도 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지만 왕규와 박술희가 있음에도 끊임없이 자객의 위협에 시달렸던 것을 보면 두 명의 대신가지고는 호족들을 상대하기 역부족이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왕이 자객들에 목숨을 위협받을 정도면 고려 초기의 호족세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어쨌든 혜종은 처음에는 자객을 맨손으로 때려잡는 강한 모습도 보였다. 그렇지만 결국 자객에 의해서인지, 계속되는 암살 위협에 정신이 쇠약해졌기 때문인지 즉위한 지 3년만에 사망했다.

이야깃거리

피휘

전통 왕조사회에서는 임금의 본명을 사용하지 않는 관습이 존재했는데 이를 피휘라고 한다. 혜종의 이름이 무(武)였기에 고려 시대에는 '호반 무(武)'를 사용해야 하는 자리에 '범 호(虎)'를 사용하였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