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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찌민
Hồ Chí Minh
베트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주석


베트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

쯔엉찐

레주언
베트남 독립동맹회 주석
1941년 5월 19일1951년 3월 7일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초대 주석


똔득탕
개인 정보
출생
1890년 5월 19일
출생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응에안 성 남단현 안츄마을
사망
1969년 9월 2일
사망지
정당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 (1919년 ~ 1921년)
프랑스 공산당 (1921년 ~ 1925년)
신월혁명당 (1925년 ~ 1930년)
베트남 공산당 (1930년 ~ 1969년)
학력
프랑스 파리 대학교 베트남어문화학과 중퇴
소련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졸업
소련 국제레닌학교 졸업
부모
아버지 응우옌신삭, 어머니 호앙띠로안
종교
없음 (무신론)
별명
호 할아버지(Bác Hồ)

胡志明
호지명
월어: Hồ Chí Minh

개요

호지명(胡志明, 1890~1969)은 월남의 공산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 월남의 초대 국가주석이다. 월남인들에게는 호할아버지(Bác Hồ, 박 호)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호지명이라는 이름은 깨우치는 자라는 뜻을 지녔다.


베트남판 마오쩌둥, 김일성이라고 볼 수 있다.

1975년 월맹이 월남을 적화통일한 후 월남의 수도였던 시곤(柴棍, Saigon)을 그의 이름을 따서 호지명으로 바꾸었다.

북한이 적화통일을 해서 서울을 김일성시로 바꾼 거랑 비슷하다.


좌익에서는 호치민이 청렴했고, 소탈했다며 미화하고 추앙하지만,

호치민 개인은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을지 모르나, 그는 지도자로서 베트남을 거대한 수용소로 만들고,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다.

마치 업적은 말도 못하면서, 노무현의 인간적 면모만 부각하면서 미화 찬양하는 거랑 비슷하다.

물론 노무현이 마오나 김일성급은 아니다. 노무현은 미국의 카터같은 인물에 가깝다.

지도자는 개인적인 면모도 평가요소지만, 그보다는 업적 결과로 평가해야 한다.

인간적으로 괜찮았는지 모르나 지도자로서 결과가 안 좋았던 사람이랑, 인간적으로 결함은 있었지만 통치 결과가 좋았던 사람 중에 당연히 후자를 높이 평가하고. 전자를 평가 절하해야 한다.

히틀러도 동물을 사랑했고, 일평생 동물보호에 힘썼다.

김일성도 자기 측근은 챙겼고, 도조 히데끼도 부하장병들에게 잘해서 부하들에게 존경받는 상관이었다.

지미 카터는 퇴임 이후에 좋은 일도 많이 했지만, 현재 미국에서 역대 대통령 중 인기가 바닥급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미국인들은 대통령은 재임 중 업적으로 평가해야지 퇴임 이후는 평가대상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 한다. 맞는 말이다.

잘못된 사상인 공산주의를 신봉하고 그것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으니, 인간적으로도 결코 좋게 볼 수 없는 독재자이자 학살자다.

한창 베트남전 반전 운동 등이 심할 때는 미국 대학가에서 마오쩌둥과 호치민이 엄청 빨렸는데,


정작 한 베트남학자는 독재자라도 박정희는 번영의 기초를 쌓았고, 호치민은 빈곤의 기초를 닥았다고 평한다.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03081901010732020002

문재인 등이 그를 뭔 전세계가 존경해야 한다고 했는데 리영희 책에서 북월을 엄청 빨아줬던 영향 때문인듯 싶다. 뭐 월남이 패망할 때 리영희의 예측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며 희열까지 느끼신 분이니.

리영희는 중국의 문혁도 엄청 빨아줘서, 노무현이 중국인 중 마오를 제일 존경한다고 했다.


독재를 하고, 국민과 나라를 가난하게 하고, 수많은 사람을 학살해도 공산주의자면 추앙하는 게 리영희와 그를 사상의 은사라고 떠받드는 좌파들이다.


베트남 사람들 중 일부는 우리가 적화통일만 안됐어도 한국보다 더 잘살았다는 사람도 있다. 호치민 때문에 베트남을 개혁개방전 몇십년 이상 후퇴시킨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호지명이 목민심서 애독" 주장은 허구

한국에는 호지명이 정약용(丁若鏞, 1762 ~ 1836)의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애독했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이는 근거없는 헛소문으로 사실이 아니다. 목민심서는 왕조시대 관리들의 바람직한 시정에 대한 참고서로 내용상으로도 공산주의자였던 호지명이 애독할만한 책도 아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시인 고은의 1988년 한겨레신문 칼럼이 이런 괴담의 최초 출처인 듯하다.

이어 1992년 황인경의 '소설 목민심서' 머리말에서 등장한 후, 이것을 1993년 유홍준의 '나의문화답사기'에 언급하면서 급속도로 호치민 목민심서 괴담이 세간에 퍼지게 되었다.

1992년에 소설가 황인경은 ‘소설 목민심서’ 제1권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작고한 베트남의 호치민은 일생동안 머리맡에 목민심서를 두고 교훈으로 삼았다고 한다.”

1993년에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남도답사 1번지’의 강진 편에서 정약용을 소개했다.

“심지어는 월맹의 호지명이 부정과 비리의 척결을 위해서는 조선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필독의 서라고 꼽은 사실, 이런 것으로 그분 위대함의 보론으로 삼고 싶다.”

2017년 11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은 베트남 호치민 시에서 열린 ‘호치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7’ 개막 축하 영상 메시지에서 말했다.[1]

“베트남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호치민 주석의 애독서가 조선 시대 유학자 정약용 선생이 쓴 목민심서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대통령까지 공개행사에서 언급했으니 ‘호치민의 목민심서 애독설’은 정설(定說)처럼 됐다.

2004년 6월 4일 다산연구소가 사단법인으로 정식 출범하고, 그 한 달 뒤쯤인 그해 7월 9일에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풀어쓰는 다산이야기」에 같은 괴담을 사실인 것처럼 실었다. 후일 그는 이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명한다.

여기서 그는 이런 말을 그 직전인 2004년 6월 2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칼럼을 보고 사실로 잘못 알고 쓰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산연구소 이사장조차 잘못된 괴담의 출처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호치민이 목민심서를 애독한 적이 없다는 것은 베트남의 호치민 박물관장이 확인해 주었다.

베트남 현지에서 근거없는 괴담으로 확인했음에도 이후로도 계속 괴담이 사실처럼 유통되고 있다.

호치민박물관 "그에 대해 들었지만 어떤 증거도 없어"
국내 연구자들도 "근거 확인 못해"…풍문일 가능성
호치민을 최상급 언사로 찬양한 이낙연 총리. 생존해 있는 월남전 참전 용사들도 많은데 총리가 방명록에 이런 극단적 찬사를 써야 하나? 시대착오적인 백성이란 단어까지 써 가면서.

이낙연 한국 총리의 호지명 숭배

2018년 9월 월남 방문 때 방명록에 호지명을 극도로 찬양하는 글귀를 쓰고 서명했다.

방명록의 '주석'이 김일성을 가리킨다는 가짜뉴스가 나돌기도 했으나[2][3], 상대가 김일성 아닌 호치민이라도 문제가 적지 않다.


“미국의 패배와 월남의 공산화를 보고 희열을 느꼈다”는 문재인과 오십보 백보이다.[4]


같이보기

호지명이 1929년 모스크바 공산청년대학(국제레닌학교)에서 조선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나옴.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