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학(洪在鶴, 1848~1881)[1]은 중화에 충성을 바친 소중화 조선의 충신으로 조선의 근대화와 개화에 반대한 인물이다. 존왕양이,위정척사파등에 의해 추앙받고 개화파를 척살하는데에 그 이론적 개념을 제공하였다.

배경

1876년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약)이 이루어지고 1880년일본에서 돌아온 수신사 김홍집이 황준헌이 지은 [조선책략]을 고종에게 올리고 개화론을 확대하기 위해 전국 유생에게 배포하기 시작했다.
   이만손과 강진규의 신사척왜상소로 수구파 정객과 전국의 유생들이 개화에 반대의 포문을 열었다. 이중 홍재학의 상소에 김홍집등 개화파의 비난과 더불어 [만국공법],[태서문견],[중서문견]등 서양을 소개하는 책들을 사악한 책으로 규정하였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신기한 것을 숭상하는 무리들이 견문을 넓히고 흉금을 여는 신서라고 주장하고 잇지만 이것을은 공자 맹자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단언하며 그 요사함을 규탄하였다.


- 상소의 내용중 문제가 된 분분 -
   "신들이 삼가 듣건대,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바로 오륜 오상(五倫五常)의 법과 중국을 높이고 오랑캐를 배척하는 성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오복오장(五服五章)을 권면한 것도 이것을 잘하였기 때문이고 오형(五刑)으로 위엄을 보인 것도 이것을 배반하였기 때문이니 이것은 천지(天地)의 대경(大經)이고 고금(古今)의 대의(大義)입니다.
    한 가지라도 혹시 어긋나는 점이 있으면 의복이 오랑캐들과 같아지고 인류는 짐승이 되어서 천지가 뒤집힐 것입니다.~중략~
    가까이하는 것을 삼가야 하는 바 가까이하는 데 따라 기질이 닮아가기 때문이다. 지키는 일을 삼가야 하는 바 지키는 일에 따라 마음이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모습이 비슷해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중략~ 
    오늘날 온 나라에서 입는 것은 서양 직물이고 서양 물감을 들인 옷이며 온 나라에서 쓰는 것은 서양 물건입니다. 접견하는 사람도 서양 사람이고, 탐내어 침 흘리는 것도 서양의 기이하고 교묘한 것들입니다. 
    사는 것과 가까이하는 것과 지키는 일이 다 서양의 것이니 형체와 기질과 마음이 어찌 다 서양 것으로 변화되지 않겠습니까? ~중략~
 
    대체로 서양의 학문이 원래 천리(天理)를 문란하게 하고 인륜(人倫)을 멸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심합니다. 서양의 문물은 태반이 음탕한 것을 조장하고 욕심을 이끌며 윤리를 망치고 사람의 정신이 천지와 통하는 것을 어지럽히니, 귀로 들으면 내장이 뒤틀리고 눈으로 보면 창자가 뒤집히며 코로 냄새 맡거나 입술에 대면 마음이 바뀌어 본성을 잃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그림자와 메아리가 서로 호응하고 전염병이 전염되는 것과도 같습니다.~중략~
    예로부터 이교(異敎)는 대개 사이비(似而非)를 발전시켜서 사람의 마음을 현혹시켜 마침내는 짐승을 이끌고 사람을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는데도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 (출처 고종실록http://sillok.history.go.kr/id/kza_11807106_004)


  -  위정척사파 : 정학(正學)인 성리학과 정도(正道)인 성리학적 질서를 수호하고(위정), 성리학 이외의 모든 종교와 사상을 사학(邪學)으로 보아서 배격하는(척사) 운동이다.
  -  난신적자의 사전적 의미 : 나라를 어지럽히는 불충한 무리.(표준국어대사전)
                             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난신·亂臣)와 부모를 해치는 자식(적자·賊子)
  -  난신적자가 의미를 알기 위한 참고 문헌
       "공자가 <춘추>를 완성하니 난신적자가 두려워했다.(孔子成春秋而亂臣賊子懼).”(<맹자> ‘등문공 하’)
      “<춘추>를 통해 포폄을 가한 까닭은 후에 군주될 사람들이 이를 참고해서 실행하게 하는 데 있다.”(<사기> ‘공자세가’)
     “<춘추>는 시시비비를 변별해놓은 것이며 정의를 말하고 있다. <춘추>를 알지 못하면 난신적자가 있어도 알아 차리지 못한다.”(<사기> ‘태자공자서’)
      “하늘은 착한 사람과 함께 한다지 않았던가. 그러나 어진 백이와 숙제는 굶어죽고, 도척은 천수를 다했다. 도척이 대체 무슨 덕행을 쌓았는가. 반면 공평하고 바른 일만 하는 사람이 재앙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무슨 일인가. 대체 하늘의 도리라는 게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天道是耶非耶)”(<사기> ‘백이 열전’)
       "사람의 도리를 손상시키는 것은 모두 ‘권(權)’이라는 한글자 때문이다. 작은 말과 행동에서 윤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권(權)’자 한글자 때문에 망해서 난신적자의 소굴이 됐고, 소인배들의 핑계가 됐던 것이다.”(<존재집>) ‘독서차의’)
      “춘추의리는 몸이 살았거나 죽었거나, 과거냐 현재냐의 구별이 없습니다. 썩은 해골도 주벌할 수 있습니다. <춘추>의 의리가 아주 엄하니 죽었다고 해도 추호라도 용서해서는 안됩니다. 어찌 친친(親親)의 도리 때문에 역적 토벌의 대의(大義)를 저버릴 수 있습니까. 아니되옵니다.”(<광해군 일기>)
       조선 중기의 대학자 장유는 “<춘추>의 의리를 보면 난신적자는 반드시 죽여야 하며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계곡집> ‘잡저·관고론’)
      “춘추의리상 난신적자는 누구나 죽일 수 있습니다. 먼저 사형을 집행한 뒤에 아뢰도 됩니다. 사사(士師·재판관)에게 맡길 필요도 없습니다.”(<고려사절요> ‘공양왕’)
       “난신적자를 주벌하는 것도 꼭 사사(士師·재판관)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난신적자를 주벌할 수 있다.”(<주자집주>)
       송시열은 더했다. 정적인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몰아붙이며 그와 가까운 사람들까지 “당신들도 역시 윤휴의 당여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송자대전>)송시열은 ‘난신적자는 빨리 죽여야 한다’는 살벌한 시까지 남겼다.

“난신적자는 즉시 토벌해야 하니(亂賊卽當討) 어찌 법관까지 기다리랴.(奚須司寇時)”(<송자대전> ‘오언고시’)

                            (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509081545181 )


  - 홍재학의 상소내용중 난신적자가 자라나는 토양으로 예시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륜 오상(五倫五常)의 법과 중국을 높이고 오랑캐를 배척하는 성품'
          '의복이 오랑캐들과 같아지고 인류는 짐승이 되어서 천지가 뒤집힐 것입니다'
          '온 나라에서 입는 것은 서양 직물이고 서양 물감을 들인 옷이며 온 나라에서 쓰는 것은 서양 물건입니다. 접견하는 사람도 서양 사람이고, 탐내어 침 흘리는 것도 서양의 기이하고 교묘한 것들입니다.'
          '사는 것과 가까이하는 것과 지키는 일이 다 서양의 것이니 형체와 기질과 마음이 어찌 다 서양 것으로 변화되지 않겠습니까?'
          '서양의 학문이 원래 천리(天理)를 문란하게 하고 인륜(人倫)을 멸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심합니다. 서양의 문물은 태반이 음탕한 것을 조장하고 욕심을 이끌며 윤리를 망치고 사람의 정신이 천지와 통하는 것을 어지럽히니, 귀로 들으면 내장이 뒤틀리고 눈으로 보면 창자가 뒤집히며 코로 냄새 맡거나 입술에 대면 마음이 바뀌어 본성을 잃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그림자와 메아리가 서로 호응하고 전염병이 전염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창자(사람들이 상투를 자르고 소매가 짧은 의복, 일본 서양의 물품등을 쓰는 생활 스타일)이 바뀌면 인간 본성이 변하고 전염병이 전염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상소의 뜻은 성리학적 질서 속에서 난신적자가 길러내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만약 누군가가 이러한 비판을 받게 된다면 난신적자와 그 당여( 따르는 사람들 )로 취급하여 바로 주살하여야 한다는 당대의 인식을 고종에게 상소로 투사하였다.
  - 난신 적자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 (어떤 토양위에서 자라 나는가 ? ) 발췌
     "난신적자의 발호는 무능하고 몰염치한 군주 소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우연히 그렇게 됐다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춘추좌전’에 실린 난신적자 관련 기사를 유심히 보면 대개는 난신적자보다 앞서 패악을 저지른 자들이 먼저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난신에 앞서 ‘난군(亂君)’, 그러니까 나라를 혼란케 하는 군주가, 적자에 앞서 도적 같은 아버지인 ‘적부(賊父)’가 먼저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영혼에는 탐욕만이 잔뜩 들어찬 함량 미량의 인물들이 먼저 나타나 상황을 오도했기에 난신적자가 도리어 큰소리쳐대며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출처 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711131488432855)
     '계손씨 같은 난신적자의 발호는 무능하고 몰염치한 군주 소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우연히 그렇게 됐다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춘추좌전’에 실린 난신적자 관련 기사를 유심히 보면 대개는 난신적자보다 앞서 패악을 저지른 자들이 먼저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난신에 앞서 ‘난군(亂君)’, 그러니까 나라를 혼란케 하는 군주가, 적자에 앞서 도적 같은 아버지인 ‘적부(賊父)’가 먼저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영혼에는 탐욕만이 잔뜩 들어찬 함량 미량의 인물들이 먼저 나타나 상황을 오도했기에 난신적자가 도리어 큰소리쳐대며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는 뜻' (출처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711131488432855)


     즉, 홍재학은 창자 (조선의 생활 스타일, 상투자르고 소매 좁은 의복을 입으며 신문물 접하는 라이프 스타일)가 바뀌고 성리학을 말살하게 하는 신학문의 도입을 조선의 국왕 당신이 도입하고 있다. 이는 난신적자를 키워내는 토양으로 고종이 만들어 내고 있음이다.  고종 당신은 난신앞의 난군이다라는 행간의 의미로 난신난적을 불러 오는 창귀(앞잡이)라 비난의 다름 아니다. 이는 향후 토왜를 설명하는 의미에 적용이 된다.

     전제군주정하의 조선에서 임금을 난신적자를 불러 일으키는 난군이라는 의미의 글을 올렸다.
     난신적자는 법의 재판없이도 바로 주살하는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임금을 주살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뱃포는 골수까지 성리학이 뿌리 내린 성리학자로 가상하긴 하나, 이것은 역모였다.
     홍재학은 역신으로 규정되어 1881년 서소문밖 형장에서 능지처참을 당하였다. 
     그리고 김홍집과 박영효(홍재학에 의해 탄핵을 받았던)는 갑오개혁 2차시기 1894년 12월 27일에 홍재학의 신원을 복원하여 주게된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 주었다.
     홍재학은 이로써 조선말부터 대한제국을 거쳐 일제시대까지 조선의 위정척사파, 존왕양이파가 따라야 할 모범으로 추앙 받게 되고, 그후 유학자들이 홍재학의 말을 이어받아 개념을 확장시키고 문장을 옮겨 이념을 확산시키고, 조선의 근대화 개화에 반대하고 개화파를 난신적자로 척살하게 되었다. ( 토왜 항목 참조 )

각주

  1. 홍재학(洪在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