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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7일 (금) 17:05 판

병자호란 당시 청군에 잡혀 심양으로 끌려 갔던 수 많은 조선여인들 중 소수지만 구사일생으로 도망치거나 몸값을 치르고 풀려 나와 고향으로 돌아온 '환향녀'들도 있었다. 그러나 극한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을 기다린 것은 멸시와 냉대, 차별 뿐이었다. 조선 조정은 '환향녀'들을 내치는 것을 금했지만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이들로 하여금 조상께 제사를 지내게 할 수는 없다며 내쳤다. 실록에는 당시 이 논쟁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 남아 있다.[1] 대부분의 조선 사대부들은 '환향녀'들을 내 쳤지만 당시 중국의 '양주십일기'라는 기록에는 청의 군사들이 조선여성들의 정조관에 경탄하는 대목이 나온다. 조선 여성들의 정조관은 병자호란 때 조선을 유린한 청의 군사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길 만큼 철저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조선의 남자들은 이 여인들을 속박하고 천시하고 버린다.[2]

함재봉TV:역사와 시사

  • 환향녀
  • 청군이 본 조선 여성의 정조관

각주

  1. https://youtu.be/9TG109_C8Ck 환향녀
  2. https://youtu.be/WK9hqx_nvEQ 청군이 본 조선 여성의 정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