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韓國論壇 초청 김대중 토론회

  1997년 10월 8일 서울 타워 호텔에서「한국논단」은 주요 대통령 후보들을 초청해 토론회를 가졌다. 토론은 초청연사의 기조연설에 이어 질문자들의 질문에 초청연사가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사회는 한국논단의 이도형씨가 보았고 질문은 박근(전 유엔대사), 김정강, 이춘근(해양전략 연구소 연구실장), 백상창(한국사회 병리 연구소), 윤진표(성신여대 교수)씨 등 5명이 맡았다. 
  사회자 :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총재가 나오셨습니다. 전례에 따라서, 지금으로부터 10분 동안 말씀을 듣고, 그 후에 60분간의 질의응답에 들어가겠습니다.  

김대중 : 존경하는 이도형 선생, 그리고 존경하는 토론에 참가하신 여러분, 또한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오늘 이런 특별하고 어떻게 보면, 이색적인 모임을 갖게 됐는데, 우리 현실로 봐서 매우 의미가 큰 모임으로 생각이 됩니다. 제 정치노선은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중도 우파적 입장입니다. 우파라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시장경제를 신봉하고, 공산주의를 반대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도를 얘기하는 것은 사회정의, 사회복지, 이런 문제를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당은 중산층과 서민의 당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 나라에서 사상적으로 저만큼 철저히, 수십년에 걸쳐서, 검증받은 사람은 없을 것으로 인정됩니다. 그런데 저에 대해서 선거 때만 되면, 사상적으로 음해를 합니다. 평소에는 그런 말도 없고, 또 선거 때 음해한 것 잘못됐다고 사과도 하고 해놓고, 선거 때만 되면 이런 일을 하는데, 만일 조금이라도 제가 사상이 이상하다면, 어떻게 해서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여섯 번을 했겠습니까. 그 동안에 정부는 뭘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대통령후보로 네 번째 나왔는데, 이런 것을 두고도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너무도 상식에 어긋난 얘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선거 때 북한 공산당의 덕을 본 것이 누구고, 또 공산당이 누가 당선되는 것을 방해하는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87년의 김현희 사건, 92년의 이선실 사건, 작년 국회의원 선거 때 판문점에서 일어난 소위 북풍사건, 모두가 그렇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는 이 진실을 단적으로 알 수 있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안보문제가 위기에 있을 때는 저를 포함한 정당 영수들과 회담을 합니다. 강릉사태가 일어났을 때, 그 영수회담에서, 우리는 국가 기밀에 속한 보고도 듣고, 또 우리는 강력히 북한을 규탄한 바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국가보안법을 공산당을 반대하는 법으로 유지해 왔는데, 김영삼 대통령은 과거 야당 시대에 국가보안법 무조건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저희 당은 국가보안법에서 인권침해하는,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요소를 제거하고, 민주제도로 해서, 소폭으로 대체입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10년 동안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걸로 보더라도 차이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단적으로 제 입장을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북한 공산당의 연형묵 국무원 총리가 여기 내려왔을 때의 일입니다. 90년에 연형묵이 와 가지고, 그 때 박준규 국회의장께서 정부와 여야 지도자들을 초대해서 환영만찬회를 열었습니다. 헤드테이블에 연형묵이 앉고, 또 김광진 대장이 앉고 우리 쪽에서는 국무총리와 여야지도자들이 앉았습니다. 그런데 연형묵 북한 총리는 자기가 주빈으로 참석했는데도 불구하고, 식사도 하지 않은 채, 남한에 대해서 비판만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남한이 평화를 저해하고 한반도에서 불안을 조성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가지고 애국자들을 탄압하고 있다. 또 휴전선에 콘크리트 장벽을 쳐놓고 있다. 이렇게 장장 20~30분을 떠들어대는데, 정부나 여당 사람 누구 하나 여기에 대해서 일언반구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대로 둬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말을 했습니다. 지금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데, 북한공산당의 규약을 보면 전문에 북한 노동당의 목적은 남북한을 통해서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면 당신들은 남한을 적화통일하겠다고 공식문서에 적어 놓고, 남한과 평화공존하고 평화통일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이렇게 제가 따졌습니다.

연형묵이가 당황해서 답변을 제대로 못하면서, 여하튼 우리는 전쟁을 하지 않고 같이 잘 지내자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말하는데, 우리는 남한 내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민주주의 하면서 그러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 네가 가지고 있는 북한의 형법을 보면, 국가보안법보다 훨씬 더 가혹하게 인권을 탄압하고, 어떠한 거래도 할 수 없게 막아놓고 있는데, 그러고도 당신들이 무슨 자격으로 남한의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고 하느냐. 이렇게 말했더니, 연형묵도 답변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 콘크리트장벽 얘기를 하는데, 콘크리트장벽이라는 것은 병풍같이 산 위에 서 있는 건데, 양측이 조사하면 될텐데 왜 조사를 안하고, 여기 와서 그런 말을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때사 연형묵이가 말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자기들이 조사를 수차 제안했는데, 남쪽에서 듣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때 정부나 여당분들도 앉아 있었는데, 이상하다, 이상하다는 말만 하지, 거기에 대해서 답변을 못해요. 그래서 그러면 됐다, 이쪽에서도 우리가 조사하자고 하고 있고, 당신 네도 하고 있으니까, 이제라도 조사하면 되지 않느냐. 그러면 당장에 있는지 없는지를 알 것 아니냐, 라고 했습니다.

그 후 며칠 있으니까, 우리 나라의 안보문제를 취급하는 간부가 우리 당의 중진을 찾아왔습니다. 아마 테이블 밑에 녹음기를 붙여 가지고, 녹음해서 전부 분석한 모양입디다. 김대중 총재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김대중 총재가 그렇게 말씀하실 줄 몰랐다, 정말 미안하게도 우리는 그렇게는 생각 안했다, 그런데 이렇게 해줌으로써 얼마나 대한민국의 입장을 세웠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왜 우리 쪽 사람들은 한 마디도 안 했는지 모르겠다. 만일 그대로 보냈더라면 북한의 김일성이 앞에 가서, 남한에서 대통령 노태우씨만 빼놓고, 여야 지도자 앞에서 내가 그렇게 닦아 세우는데 한 마디도 못하더라, 이렇게 했을 것 아니냐, 큰일 날 뻔했다, 이렇게 한 일이 있습니다. 공산당 두목 앞에서 할말 하고, 따지고 하는 것이 제가 볼 때는 진정한 반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말한 것은 여기서만 그런 게 아니라, 그 당시 언론에도 보도가 됐습니다. 또 그 기관 사람들이 언론사 사장을 찾아가서, 저한테 한 것과 똑같은 말을 하면서, 자기들이 큰 감명을 받았다는 얘기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10분 얘기하라고 했는데, 9분 30초가 됐으니까 시간을 지키겠습니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제 자신에 대해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는 동시에, 오늘 여기에서 안보나 통일 문제에 대해서 질문이 계시기 때문에, 그때 제 생각을 소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제 인사를 마치겠습니다.

  김정강 : 총재님 건강하십니까?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맨 먼저 Ⅹ파일에 대해서 질문하겠습니다. 요새 김대중 Ⅹ파일이라는 책이 나왔는데, 총재님측에서 일단 이 책의 저자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고, 서점에서 판매되지 못하게 법적 절차를 밟았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언론이 설사 마음에 거슬리는 글을 썼더라도, 그것에 대한 반박은 언론으로 하면 가장 좋은 것인데, 법적인 절차를 밟는 것을 보고, 만약 총재님께서 집권을 하시면, 무서운 언론 탄압이 가해질 징조다, 이렇게 두려워하는 여론이 실제로 일부에는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김대중 Ⅹ파일이라는 그 책을 둘러싸고, 명예훼손으로 고발을 하고, 서점에 배포되지 못하도록 법적 조치를 취한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김대중 : 언론은 자기 마음대로 이야기할 자유도 있지만, 언론은 언론의 책임을 지키고, 진실을 보도하고, 남의 명예를 지킬 의무도 있습니다. 그 Ⅹ파일 문제는 여러 달에 걸쳐 잡지에 보도했는데, 우리가 누차에 걸쳐서 좋은 말로 충고를 하고, 언론은 그런 상궤를 벗어난 일을 하지 말도록 저희가 요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듣지 않고 이걸 단행본으로 내고, 그래서 더 이상 그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같이 언론 자유 천국에서도, 그런 일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고소도 하고, 배포금지도 요구하는 일이 있다는 것, 언론은 말할 자유도 있지만, 언론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법에 의해서 구제받을 자유도 있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저희는 그 저자 측에 대해서, 1년 이상을 두고 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도 당에서 결정해서, 부득이 그런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정강 : Ⅹ파일의 내용은 일본의 우츠노미야 도쿠미 의원하고 이북의 김일성이가 회담한 내용을 비밀리에 적어 가지고, 그것이 일본정부의 기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을 손충무씨가 찾아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보면, 74년 8월 우츠노미야 일행이 김일성하고 면회했을 때, 김일성이가, ‘나는 그(편집자 주: 김대중을 말함)의 주장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그의 슬로건도 좋다. 평화의 슬로건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성명을 지지한다, 정직하게 말해서 우리는 그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미국이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면 남조선 침공을 안하겠고, 스파이도 보내지 않겠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아마 이 부분이 가장 민감한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츠노미야 도쿠미 의원은 교토대학 재학 중에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체포됐고, 결국 이것으로 인해서 자기 아버지는 조선군 사령관도 했습니다만, 일본군 육군참모총장에서 자진 예편한 바 있습니다. 그 이후 사상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자이지만, 자민당에 들어가 이북 김일성과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총재님하고도 아주 밀접한 교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읽어드린 이 부분이 가장 민감한 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 총재께서는 어떤 느낌을 가지고 계십니까?     

김대중 : 우츠노미야 의원은 저도 잘 아는데요, 이 사람은 자민당 내에서는 소위 리버럴파, 아시아 아프리카 연구회 리버럴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민당 내에 적어도 100명 가량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정치적 지도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는 아닙니다. 젊었을 때 마르크스주의를 했다고 해서, 반드시 일생을 공산주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우츠노미야 의원을 만났지만, 김일성하고 얘기한 대목, 그런 얘기가 나왔다는 얘기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또 김일성이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고도의 전략에 의해서 했을 것입니다. 왜냐, 우리가 유신체제에서 반독재 투쟁을 할 때, 북한은 언제나 남한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하면서 마치 자기네들에게 동조한 것처럼 했습니다. 남한에서 재야 민주인사들이 반유신투쟁을 하면, 그걸 완전히 자기들의 동지로서 떠들어댔습니다.

그래서 군사정권이 ‘봐라, 북한에서도 이렇게 지지하지 않느냐. 이 자들은 이상하다’하면서 학생이나 민주인사를 매도하고, 박해한 일은 우리가 얼마든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공산당은 그런 식으로 해 가지고, 오히려 민주세력을 군사정부나 독재정권이 탄압하도록 유도하는 작전을 쓰는 것입니다. 독일에서도 동독이 망하고 나서, 동독의 비밀경찰인 슈타시의 비밀 서류를 보니까, 동독의 공산당이 제일 미워한 것은 기민당도 아니고, 기민당 내에 할슈타인 주의를 주장한 극단적인 우익 보수세력도 아니고, 빌리 브란트였습니다. 빌리 브란트는 소련과 동구라파와 화해하자고 했고, 동독과 화해하자고 했는데, 제일 미워했어요. 자기 체제유지가 안 되니까 그런 사람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빌리 브란트 총리실에 스파이를 넣어 가지고, 그 스파이가 나중에 동독에 가서 폭로하고, 그래서 빌리 브란트가 수상을 그만 둔 일이 있습니다. 공산당이 무슨 말을 했다고 해서, 그것을 금과옥조로 생각해서, 그러니까 어떻다고 하는 것은 공산주의자들의 농락에 넘어가기 쉬운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점은 매우 주의해야 되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김정강 : 해방 후 남한에는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북한에는 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습니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지금 보면, 그 당시로서는 좌우익이 다 자기의 건국노선이 옳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판별이 안 났지만, 대한민국과 같은 우파 국가를 건국한 것이 맞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지금 저쪽은 굶주리고 있으니까, 그런데 총재께서는 예를 들어, 아태재단 창립 1주년 기념 연설 같은데서 말씀하신 원고를 제가 보니까, ‘美軍政이 지나자 이승만 대통령은 그 동안 자기가 집권하도록 협력해온 친일세력을 중심으로 권력을 짜나갔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또 다른 데서는 ‘美軍政은 반공을 내세우며 친일세력을 그대로 존속시켰다, 지난 50년을 볼 때 우리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고 했습니다. 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박정희 장군은 일본 치하에서, 만군사관학교,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가장 열성적으로 일본 국왕에게 충성한 친일파였다. 이제 명실상부하게 친일세력이 이 나라 국정을 농단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친일파와 그 후계자에 의한 30년이 넘는 긴 군사통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박대통령의 경우에는 일본군 장교로서 근무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친일파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특징적인 것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들은 일제 국가기관에 복무한 경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친일후계자라고 해서 포함시킨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불 때, 이대통령은 반일을 했고, 박대통령도 그 당시 식민지 청년의 어려운 사정 속에서, 일본 사관학교를 가서 군인이 되었다고 할지언정, 통치이념은 반일이었습니다. 현재 사실 보면, 이승만, 박대통령과 같은 분들이 반일이념을 국가 통치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더 강한 반일국가가 되어 있는데, 이 두 대통령을 친일 세력으로 몰아버린 것은 사실과 어긋난다고 봐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을 갖고 있던 것이 해방 직후에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좌파세력들이 하던 건준, 인민위원회, 신민당, 남로당입니다. 또 최근에 와서는 좌파세력 쪽에서 그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골자로 해서, 지금 이북의 노동당은 마르크스주의적 계급사관을 말하는 대신, 소위 반한사관, 즉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뿌리부터 부인해 버리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총재께서 역대 정권을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부 친일정권으로 몰아버린 결과, 그 이론적 맥락은 지금 제가 말씀드린 노동당을 지지하는 좌파들과 일맥상통한 점이 잇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해명을 듣고 싶습니다.    

김대중 : 저는 역대 정권을 친일 정권으로 몬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나라에서 친일 세력들이 미군정, 이승만 정권 등, 이 나라의 주도권을 쥐는 일을 함으로써, 민족정통성, 민주정통성에 훼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나 다 잘 아는 대로, 일제하에서 만주나 중국, 러시아에서, 혹은 국내에서 독립을 위해 싸우던 분들이 해방 후 어떻게 됐습니까? 판잣집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떤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그 분들은 대한민국 국정에 거의 참여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분들은 자식들 교육도 제대로 못시키고, 자식들 대대손손 몰락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만일, 제 말이 잘못된 표현이라면, 여러분들께서 광복회나 그런 데 계신 분들한테 물어보면 알 것입니다. 이 나라에서 우리 민족사관에 입각해서 역사를 쓰신 분들도 저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일제시대에 그 포악한 일을 한 사람들이 해방 후에 이 나라에 모든 공직을 거의 차지하고, 김구 선생 같은 절세의 애국자를 빨갱이로 몰아 가지고, 결국 암살하는 사태까지 만들어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 역사에 반성을 해야 할 것입니다.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대한민국을 세운 일은 잘한 일입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국시는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국시대로 안된 점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 점을 우리는 반성하고, 정말로 일제하에서 싸우다가, 해방 후에 그렇게 이름없이 이 세상을 떠나가신 분들에게 우리는 참으로 가슴 아픈 심정을 갖고 대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승만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 개인을 비방한 것이 아닙니다. 그때 그분들이 그러한 민족정통성을 바로 세운 정권을 창출하지 못한 점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싸우고 아직도 살아 계신 분들, 그 유족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정성을 다해서, 이 나라 민족정통성을 다시 확립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공산주의자와 우리를 구별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강 : 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했습니다. 그때 좌파권은 일제히 조문했습니다. 한국 좌파가 김일성을 조문하면, 국민의 반발을 사서 대중으로부터 유리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조문론에 매달린 것은, 조문이야말로 주체사사의 정수인 수령론을 확실하게 뒷받침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저는 봅니다. 주체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중심주의라고 하는 가면을 쓰고 출발하지만, 그 사상의 정수는 수령론입니다. 이 수령론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국민과 정치인, 특히 대통령, 이런 분들이 김일성이의 죽음 앞에 조문한다면, 수령론은 공고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총재께서는 95년 3월 22일, 아태재단 주최 남북분단 50주년 세미나에서, ‘우리 정부는 당시의 입장에 대해 오해가 없도록 설명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된다. 솔직히 말해, 조문 파동 당시에 우리 정부가 취한 태도는 적절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지금 국민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당시 일부 언론도 국익의 관점에서 상이한 의견을 공정하게 보도하지 않고, 필요이상으로 김일성을 매도하고 조문이나 유감표시를 죄악시하는 자세로 일관했다, 그 결과 남북관계가 감정적으로 급랭했다’는 식의 발언들을 몇 번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조문이야말로 수령론을 합리화시켜, 김정일의 정권을 공고하게 했습니다. 나아가서 조문하면서 통일한다고 하면 그건 적화통일이 되는 것인데, 총재께서는, 어떻게 해서 이 조문론을 비호하셨는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김대중 : (웃으며) 김정강 선생 공부 많이 하셨군요. 그러면 클린턴이 그때 조문을 했는데, 클린턴이 공산주의 지지자이거나, 김일성이 죽은 것을 애석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기서 제가 분명히 얘기할 것은, 뭐든지 정확히 얘기합시다. 저는 한번도 김일성이 사망에 대해서 조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일은 없습니다. 그 점은 제가 분명히 합니다. 또 저는 제가 그때 대통령이었더라도 국민 감정으로 봐서 조문은 안 했을 거라는 것을 지난 번에도 제가 얘기한 바가 있습니다. 다만 우리 국익을 위해서 그렇게 매도하고, 그래 가지고 상대방들, 즉 김일성이 죽어서 온통 통곡하고 난리를 치고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격발시켜가지고, 남한에 대해서 더 한층 가혹한 적대감을 갖도록 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 하는 것을 얘기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우리 국익 때문에 얘기한 것이지, 김일성이 죽은 것을 애통하게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만일 제가 대통령이었다면, 침묵을 지켰을 것입니다. 그런데, 김일성이 죽은 것에 대해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한 것은 모르겠지만, 정부까지 같이 합세해서 하고, 또 러시아에서 발표 안할 조건으로 준 문서까지 발표하면서, 김일성이 6․25를 도발했다고 했습니다. 김일성이 6․25 도발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공산주의가 나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지만 국익을 위해서 김영삼 대통령은 7월에 김일성을 만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국익 때문에 그런 것이지, 김영삼 대통령이 김일성을 지지한 건 아닙니다. 미국은 국익 대문에 김일성을 조문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역사가 있고, 국민 감정이 있기 때문에, 조문은 안하더라도 침묵을 지킨 것이 나았습니다. 그런데 그후에 우리가 대화를 하려고 해도, 전부 그것을 구실로 해서 우리를 배척하고 있습니다. 미국인이나 일본인이나, 대화하라고 권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것을 구실로 내세워서 ‘이런 사람들하고 어떻게 하냐. 사과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대화하자고 합니다. 아예 대화나 아무 것도 안하고, 영원히 원수진다면 모르겠는데, 그러지 않고 대화하자고 자꾸 할 처지가 곧 오고 있는 데, 정부가 그렇게 할 수가 있는가. 외교라는 것은 국익을 위해서는 싫은 사람한테도 웃고, 좋은 사람한테도 싫은 얼굴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국익의 차원에서 그 말을 한 것이지, 김일성이 죽은 것이 애통하고, 수령론이 어떻고 하는 것하고는 전혀 관계없기 때문에, 그 점은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 : 제가 조금 비집고 들어가겠습니다. 김총재 말씀을 듣고 보니까, 그럴 듯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럴 듯한 소리에 잘 넘어갑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견해를 달리 하는데요. 클린턴 조문을 예로 드셨는데, 클린턴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가. 월남전을 반대하고, 공개적으로 병역을 기피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널리 알려진 진보주의자입니다. 그리고 김총재께서 주선하신 것으로 알려진 카터 방북 이래, 클린턴이 카터의 권고를 받아서 그랬는지 어쩐지 모르겠습니다만, 김정일에게 친서를 보내고, 선물을 보내고, 대한민국 대통령한테 하는 것 이상으로 친숙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런 사람이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김일성의 조문을 표했던 사실하고는 다릅니다. 지금 김총재께서도 언급을 하셨습니다만, 6․25 남침이라는게, 김총재께서는 그대 전방에 안 계셔서 모르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3년 6개월 동안 전방에서 전투도 해보고 총도 쏴본 경험이 있습니다. 또 저 뿐이 아니고 지금 국립묘지에 묻혀있는 영령이 우선 확인된 것만 14만 위가 됩니다. 그밖에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월남동포, 또 오늘 아침 신문에도 잠깐 비쳤습니다만 국군 포로가 몇 만 명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갇혀 있습니다. 그렇게 비인도적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사상 초유의 민족 골육 상잔을 벌인 김일성이를 정말 능지처참을 해도 시원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총재께서는 간헐적으로 그 적에게 유리한 발언을 합니다. 우리가 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민족공동체라고 해도 좋습니다. 우리가 같은 민족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습니다만,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1년에 14조원이라는 돈을 들여서 국방을 유지하는데 누구 때문입니까. 이러한 현실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간헐적으로 적에게 유리한 발언을 많이 해 오셨습니다. 클린턴이 조문을 국익 차원에서 했다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저희가 6․25 참전을 했고, 여기 후원단체가 6․25 참전 동지들하고, 대한민국을 건국한 건국회하고, 이북에서 공산당이 싫어서 넘어온 실향민들을 대표한 분들입니다. 이 분들이 납득할 수 있는 말씀을 한 말씀이라도 좋으니까 해주시기 바랍니다.     

김대중 : 제 말이 그럴 듯하면 그럴 듯하게 들으시지, 그럴 듯하면서도 이상하다고 들으실 필요는 없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공산주의가 우리의 적이라는 것은 이도형 선생하고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또 우리는 결단코 공산주의자들이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북한을 지배하는 것조차 우리의 양심으로서, 또 우리의 정치 이념으로서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현실에 있어서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고, 북한을 개혁 개방시켜 변화시키는 정책의 입장과는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도 김일성과 대화를 하려고 그렇게 노력했고, 전두환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 다 노력했고 김영삼 대통령도 노력을 했습니다. 이 분들이 북한 김일성이가 좋아서 그럴 리 없지 않습니까. 또 김일성이를 적으로 생각 안해서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2차 대전 때 미국은 소련이 자본주의와 극단의 적대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라는 공동전선을 위해서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그 불편한 몸을 가지고 스탈린하고 같이 회담도 하고 그랬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필요, 국가적 필요 이익에 의해서 하는 것을 전부 이념과 사상으로 단죄한다면, 국가 이익이나 외교, 정치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클린턴의 얘기를 하셨는데, 클린턴이 젊었을 때 그렇게 했건 어쨌건, 미국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고, 클린턴이 하는 행동은 미국 정부의 결의에 의해서, 또 미국 국민의 동의에 의해서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월남전에 나가고 안 나가고는 이 문제하고 같이 볼 수 없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제가 하는 말이 만일 공산당을 이롭게 한 일이었다면, 왜 공산당이 선거만 있으면 저를 그렇게 방해하고, 제가 집권하는 것을 막습니까. 만일 제가 자기들에게 이로운 사람이라면 저를 방해 안해야 할 것 아닙니까. 제가 볼 때는 지금도 공산당은 이번 선거에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북한에 갔다 온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도, 공산주의자들은 제가 대통령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꼭 강경한 입장만 얘기하는 것만이 반공이 아닙니다. 공산주의자를 어떻게 하면 힘을 못쓰게 만들고, 어떻게 하면 공산주의를 약화시킬 수 있느냐. 닉슨은 2차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 중에 가장 철저한 반공산주의자입니다.

그러나 닉슨은 소련과 데탕트를 했습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소련을 개혁 개방으로 유도해 가지고, 데탕트한지 14년 만에 소련이 총 한방 안 쐈는데 스스로 붕괴하게 만들었습니다. 닉슨은 또 중국을 반대하던 미국 대통령입니다. 그는 직접 한국전 참전으로 전쟁 범죄자로 규정한 중국을 찾아가서, 모택동을 만나서, 모택동이로 하여금 소련에 적극 반대하고, 미국과 손잡게 만들고, 등소평이가 등장할 계기를 만들고, 이렇게 해서 중국을 오늘까지 변화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월남전에서 미국은 무력 가지고는 결국 이기지 못하고, 사실상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외교와 경제문제를 가지고 월남을 사실상 친미국가로 만들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반드시 밀어붙이는 것만이 제일은 아닙니다. 유도를 하면서 상대방의 허점을 노리기 위해서는 유연한 선수가 이기지, 마구 밀어붙이는 것만이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공산주의를 반대한 정신과 그 목표는 철석같이 강하면서, 이것을 다루는 태도는 유연한 것이야말로, 진정 승리할 수 있는 닉슨과 같은 방법이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회자 :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설득이 안되네요. 두 가지 말씀하신 것 가운데, 모순이라고 할까, 납득이 안 되는 점을 지적하겠습니다. 2차대전 중에 미․소의 예를 드셨고, 그 밖의 여러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드셨는데, 그러면 내부의 공산당과 국내에서 싸워서 협상을 해서 이긴 예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중국 베트남의 경우에도 협상을 해서 전부 망해버렸습니다. 미국이나 소련과 같은 경우는 힘의 배경이 있었습니다만, 저희는 힘도 없습니다. 힘이 북에 비해서 상당히 약합니다. 그런데, 과연 협상과 공존만 가지고 우리가 통일을 할 수 있는지, 통일된다면 그것은 적화통일이 되기가 쉽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다음에 이북에서 DJ가 대통령 되는 것 원치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최근에 제가 황장엽씨한테 직접 들은 얘기를 소개하자면, 김정일이가 DJ를 제일 좋아한답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지금 검증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저하고 견해가 상당히 다릅니다만,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것이 공산당하고 협상하는 것 보다 쉽지 않을까요. 저를 한번 설득해 보십시오.    
 

김대중 : 제가 오늘 여기에 올 때, 이도형 선생 설득시키러 여기 온 것도 아니고, 이도형 선생이 그렇게 저한테 만만하게 설득되신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신 말씀을 듣고, 경청하고, 제 의견은 이렇다는 것을 말씀드려 가지고, 우리가 꼭 이렇다는 것이 설득이 안 되더라도,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대화의 정치고, 그것이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도 오늘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협상 갖고 되느냐 하는데, 협상으로 안되면 우리 나라 역대 대통령은 왜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만나려고 애를 썼습니까. 협상이 왜 굴복입니까. 협상 가지고 얼마든지 우리 쪽으로 설득시키고 유도할 수 있고, 그렇게 안 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황장엽 그 분이 무슨 말을 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좋아하면, 왜 선거만 하면 우리를 괴롭히고 그럽니까. 그러기 때문에 그건 현실하고 안 맞는 소리입니다. 남한에 내려와서 무슨 소리를 하건, 그런 것이 우리 알 바는 아니고, 또 저는 현재 북한이 남한에서 민주주의가 잘 되고 국민이 화합하는, 지금과 같이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에 이렇게 산산이 갈라지지 않고 화합하고 하나로 뭉친 힘을 가지고 북한에 대하는 정권이 나오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박근 : 저도 아주 질문이 많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김대중 총재께서 말씀하시는 것하고, 우리 국민이나 저 자신이나 대다수의 지식층이 가지고 있는 김대중 선생에 대한 인식하고 차이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메우느냐, 오늘 그 차이를 메우는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지금 대북 정책에 대해서 닉슨을 말씀하시면서, 그 분이 강경한 반공주의자로서, 소련하고 또는 중국하고 화해와 협상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김대중 선생께서는 이북이 볼 때 강경한 반공주의자이고, 또 우리 국민이 볼 때도 강경한 반공주의자인지, 국민이 ‘저 분은 이북하고 화해할 수 있는 분이다. 화해해도 우리는 지지하겠다, 또 저 분의 화해노력을 우리는 따라가겠다’고 느낄 수 있도록, 김대중 선생께서 강한 반공의 행적과, 이미지를 축적하셨는지,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둘째는 오익제씨가 월북했지 않습니까. 신문에 월북하기 전에 상당한 숫자의 통화를 김총재하고 한 걸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통화내용이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어요. 이제 이북으로 가서 월북자로 당당하게 정체를 밝혔으니 만큼, 그 통화내용을 하나도 숨길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통화가 왕래되었는지, 또 월북하기 전에 직접 만난 것은 언제쯤이었습니까? 구체적인 대화내용도 알고 싶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북에서 선거 때마다 뭘 한다고 해서, 상당한 피해를 입으셨다고 말씀하셨는데, 혹시 월북하니까 이번에는 그런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잘 전달해 달라고 하신 것은 없는지, 이런 모든 것을 솔직하게 밝혀주셔서, 국민이 신뢰하는 대통령 후보로 되셔야 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대중 : 마지막 얘기부터 먼저 하죠. 오익제씨하고 저는 전화통화 한 일 없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단둘이 만나서 식사한 일도 없습니다. 옛날 천도교 교령 때, 한번 있었는가 하는 정도입니다. 입당한 이후에는 고문들하고 한 두 번 식사를 같이 한 일이 있어도, 단독으로 한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오익제씨는 우리 당에서 누구하고도 의심스러운 행동을 했는지 제가 아직 파악하고 있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오익제씨는 평통자문위원회 상임위원입니다. 대통령이 직접 사인해서 임명한 사람입니다. 또 지난 번에 재임명됐습니다. 대통령 표창장을 받고 국무총리 표창장을 받았습니다.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당은 안심하고 입당을 허용했고, 고문이라는 자리를 줬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고문이라는 자리는 대개 그렇듯이, 특별히 큰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요새 보니까 놀랍게도 정부는 오익제씨를 출국관리대상자로 하고 있었고, 과거에도 중국에 가서 이상한 일을 한 것을 알고 있는데도 나가도록 놔뒀고, 저희에게는 한 마디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알려 줬으면 우리는 당에서 출당시켰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나갈 때는 김포공항에서 출입국 관리소장이 이 사람은 출입국관리 대상자인데 어떻게 하는 거냐고 기관에 연락했더니, 나가라 해서 내보냈다는 것 아닙니까. 제가 의심스러운 게 아니라, 저는 오히려 그것이 의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아까 솔직하게 말씀하라는 것은 여기서 솔직하게 그대로 말씀드립니다. 제 생각과 국민의식에 갭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여론조사를 해보면, 북한에 대해서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국민이 100% 같습니다.

그런데 북한 공산주의자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 하는데 대해서는, 역시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지키고 대화를 통해서 서로 화해협력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절대 다수입니다. 제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고 다수의 국민들이 공산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반공의 정신과 태도, 기본전략은 확고부동하고, 현실적으로는 어떤 것이 국익이 되고 어떤 것이 공산주의자를 결국은 변화시키고 혹은 굴복시키게 만드는 것이냐,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독이 동독을 변화시킨 과정을 보면 우리는 배울 바가 많고,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현재 제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민주주의에 철저하고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어떠한 침략도 용납하지 않되, 공산주의자를 화해협력으로 이끌어 가지고 결국 변화시키는 것, 제2의 중국을 만들고, 제2월남을 만들고, 그렇게만 되면 멀지 않아서 결국 공산정권은 후퇴하게 되고, 새로운 시장경제 개방 속에서 중산층이 일어나서 북한은 변화되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북한은 변화될 것입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이런 생각은 세계에서 많은 석학들이나 지도자들, 예를 들면 독일의 전대통령 폰 바이체커 대통령이라든가, 동독의 공산당이 무너진 뒤로 마지막 수상으로서 독일 통일을 동독 입장에서 한 드네제르라든가, 일본 미국의 많은 지도자들이 제 생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봤고, 지금 제가 알기에 미국의 어떤 지도자도 제 사상에 대해서 의심하는 지도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근 대사께서는 외교관 생활도 많이 하셨기 때문에, 국제 사정도 잘 아실 것으로 믿습니다. 여하간, 제 사상이나 제 생각에 대해서는 추호도 염려 마시고, 우리가 다같이 협력해서 공산주의를 극복해 나가야 됩니다. 우리는 공산주의가 싫고, 공산정권을 지지하지 않지만, 현실적 필요에서는 수십억 들여서 지금 경수로도 만들어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크게 보면 국익이 되고, 공산당을 변화시키는 길이기 때문에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기본적인 이념과 현실적인 정책에는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같이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자 : 김총재 말씀이 시간이 초과되어도 제가 참은 것은 어떻게 하면 제가 설득이 되는가, 아까 이도형씨를 설득하러 오지 않았다고 하셨지만, 저를 설득하면 상당히 많은 사람을 설득하시는 겁니다. 아직 설득 미달인데, 백상창 박사 아까부터 질문하시겠다고 기다리시는데 말씀해 주십시오.  
  백상창 : 김총재님이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서 실패를 하시고, 정계를 떠나서 다시는 대통령 출마를 안하시겠다고 스스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71년에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의 선거 유세에서, 김총재님 자신을 나는 예수의 동생이다, 이런 말씀을 직접 하시는 걸 저는 들었습니다. 그래서 김총재님의 일생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변화무쌍하고, 나쁜 시각에서 보는 사람은 거짓말만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제가 김총재님은 정신 방어기재로 否認과 投射, 昇華, 이렇게 세 가지를 주로 사용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시간관계로 설명은 못 드리는데, 그렇다면 제가 김총재께 묻고 싶은 것은 본인이 생각할 때, 과연 김총재님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정체성을 본인 스스로 생각하시는 대로 간단히 답변해 주십시오. 여기 모인 많은 사람들이 전언하는 바에 의하면, 김총재님이 공산주의하고도 타협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차제에 공산주의자와는 어떤 선을 그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대중 : 예수 동생까지 나왔는데, 제가 71년에 말한 일은 없고, 저는 80년에 서울의 봄 때 명동 YWCA에서 얘기하면서 그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저기 박홍 신부님이 와 계신데, 성경의 입장에서도 그렇고, 카톨릭 입장에서도 예수는 우리 형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크리스트교인데, 거기 가면 형님하고 기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교회에서 배운대로 하고, 또 저는 교리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계은퇴하면서 변화무쌍, 거짓말,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저는 일생에 거짓말한 일이 없습니다.(청중들 폭소) 저는 거짓말한 일이 없어요. 국민에 대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헌신한다 해 가지고 사형선고받고, 감옥살이 하고, 연금당하면서도 그 지조를 지켰어요. 80년대 신군부가 손잡으면 살려주고, 안 잡으면 죽인다고 할 때도 살고 싶었지만 국민을 속일 수 없어서 안했어요. 저는 납치당하고 별 고초를 겪었지만 변신하지 않았고, 또 89년에 노태우 대통령이 3당 합당을 추진하는 도중에 저를 만나 가지고 자기하고 같이 하자, 같이 하면 다음 정권을 저한테 줄 수 있다고 해도 저는 이것을 일축하고 거절했어요.

저는 정계은퇴한다고 해 가지고 다시 나왔습니다. 이것은 약속을 못 지킨 것이지 거짓말한 것은 아닙니다. 거짓말한 것하고 약속했다가 못 지킨 것 하거고는 다릅니다. 저는 약속할 때는 실제로 정계를 영원히 은퇴할 생각을 했어요 거짓말 한 사람은 안 지킬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했는데, 그후로 상황을 보십시오. 여당 대통령이 어떻게 정치를 했습니까. 야당이 또 어떻게 됐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제 나름대로는 충정에서, 제대했던 군인이 국가 유사시에 나와서 총 들고 전쟁에 참가한 심정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약속 못 지킨 데 대해서는 변명 안합니다. 사과했어요. 지금도 사과합니다. 국민에게 실망을 드려서 사과해요. 그렇지만 한가지 말을 첨가시키도록 허용해주시면, 정치인 중에 은퇴했다가 정계에 나온 사람 많아요. 드골 대통령도 그랬고, 닉슨도 그랬고, 김영삼 대통령도 그랬어요. 그분도 정계은퇴했다가 나왔어요. 그러기 때문에 나는 그분이 거짓말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계획이 변경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회자 :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발언을 못하신 분이 두분 계신데 윤진표 박사님이 질문해 주시고, 그 다음에 이춘근 박사, 박근 대사님 순서로 말씀해 주십시오.
  윤진표 : 김총재님께서는 冒頭에 한국의 체제에 대한 평가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현실이 체제를 얘기하다 보면, 항상 북한을 상대적으로 놓고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사상의 척도라고 하는 것이 어쩔 수 없이 북한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을 하나의 잣대로 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우리의 경우에 북한체제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은 결국 북한이 앞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 또는 앞으로 우리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돼야 되는가, 통일방안이 어떻게 돼야 되는가, 여기까지도 아주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북한 체제에 대한 김총재님의 평가와 시각이 20대 청년시절에서부터 30~40 장년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 기까지, 어떤 때는 가까이 다가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멀어지기도 하는 개인적인 번민 또한 많이 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북한을 보시는 시각이 변화를 겪으신 적은 없는지, 솔직한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김대중 : 네,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42년 전, 1955년에 제가 당시 사상계라는 잡지에「한국 노동운동의 진로」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또 그 당시에 동아일보에 네 번에 걸쳐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을 제가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보면 철저한 반공산주의로 모든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생을 두고 공산주의에 매력을 느껴 본 일은 한번도 없습니다. 또 공사주의에 대해서 너무 두려워하는 분들에 대해서 왜 그렇게 자신을 못 갖느냐고 생각합니다. 지금 북한에 뭘 우리가 취할 것이 있어서 매력을 갖습니까. 세계에서 공산주의는 이미 몰락해 버렸는데, 유령이 되고 이미 시체가 된 공산주의에 무슨 매력이 있습니까. 북한은 자기 민족 밥도 못 먹이고, 공장은 다 못 돌고, 지금 북한에 있는 동포들의 참상을 우리가 알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뭣 때문에 우리가 겁을 내야 합니까. 우리는 다만 북한이 군사력을 가지고 절망속에서 이판사판으로 하려는 것을 막아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한편으로는 철저한 국방태세를 갖추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발악할 수 있는 구실을 안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점에서는 여러분 생각하고 저하고 좀 다를지 모르지만, 아까 닉슨의 예를 든 바와 같이, 그러한 제 생각이 닉슨의 정책하고도 상통된 것으로서,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얼마나 반공하는지 모르지만, 철학적 정치적 신조에서 저는 여러분과 비교해서 한 발도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북한을 변화시키는 방법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민주주의 아닙니까. 아까 이도형 선생께서 제가 설득시키지 못한다고 했는데, 설득을 못시키면 어떻습니까. 둘이 의견이 다르다는 것, 그러나 상대방이 생각이 이렇다는 것을 아는 것이 민주주의 아닙니까. 어떻게 해서 민주주의가 다 똑같은 생각을 갖습니까.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이 같으면, 나머지 방법은 다를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춘근 : 김대중 총재님께서는 선거 구호로서 ‘준비된 지도자’라는 구호를 쓰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김총재님에 대해서 갖는 이미지는 민주주의투사라든가, 경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국민들이 과연 이것도 우리 후보께서 준비된 상황에 놓여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직책은 다른 직책과 달리 백만 군대를 지휘해야 되고, 때에 따라서는 전쟁을 할 수도 있는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막대한 지도력이 필요하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되고, 특히 군이라는 특수한 집단을 명령하고 이끌어 갈 수 있고, 존경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총재께서는 얼마만큼 많은 준비가 되셨는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김대중 : 저는 국방에 대해서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쟁도 사람이 합니다. 그러려면 군의 사기가 높아져야 합니다. 사기를 높이려면, 첫째, 절대로 안보를 국내정치에 이용해서는 안됩니다. 두 번째는 지금과 같이 TK니 PK니 하지 말고, 인사를 공정하게 해야 됩니다. 군인은 계급이 생명입니다. 셋째, 신상필벌해서 군인들이 책임 있게 처신하도록 해야 합니다. 넷째, 군장병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제대후의 직업보도같은 것을 해서 사기를 높여줘야 합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 군대를 과학화하고, 정보화해서, 막강한 전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군대를 안보에 악용하고, 인사를 편파적으로 해 가지고 우리 군대의 사기에 많은 지장을 줬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안심하고 저한테 맡겨 달라는 겁니다. 제가 강력한 군대로 만들어, 북한이 감히 넘보지 못하게 관리하면서, 여러분과 협의하면서, 이 나라 안보는 물론이고, 북한을 변화시킬 자신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준비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안심하시고 저를 믿고, 감시하면서, 한번 맡겨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해내겠습니다.

  박근 : 제가 아까 질문한 요지는 이북하고 화해하고, 이북을 개방시키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틀렸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을 하실 수 있는 반공안보 대통령의 강한 축적된 신념이 있어야 되고, 국민들이 믿어야 됩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는 반공안보 대통령으로서 김총재께서의 행적이 과거에 없다 이갑니다. 앞으로 국민을 납득시키기 위해서, 어떠한 행적을 통해서, 반공안보 대통령이라는 자기의 이미지를 확립시킬 계획이 있느냐. 두 번째는 한국논단 10월호에 “거짓말쟁이 친공대통령은 안 된다”는 기사를 보셨는지요. 보셨으면 이 안에 든 기사에 대해서 진짜 이것이 전부 거짓말이고, 김총재께서는 거짓말 한 적이 없는지, 그것에 대해서 한번 말씀해주십시오.

김대중 : 한국논단 광고가 크게 난 것을 봤는데, 저는 거짓말쟁이 아니에요. 오늘 여기서 여러분들께 말씀드린 것이 진실이에요. 그리고 국민이 믿어야 한다고 하는데, 제가 자랑할 생각은 없지만, 요새 국민의 여론이 저에 대해서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도 믿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여러분들이 걱정하시는 것은 오늘 굉장히 제가 감사히 듣고 겸손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제가 깊이 느끼고, 앞으로 명심하면서, 여러 가지 좋은 교훈을 감사히 듣겠습니다.

  사회자 : 마지막으로 제가 질문을 드리겠는데, 단문단답으로 말씀해주십시오. 여태까지 제가 아는 한, 김일성 부자에 대해서 공공연히 비난하신 적이 없는 걸로 압니다. 그 대신에 김총재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현 김영삼 대통령의 실정과 기타 등등에 대해서 비판을 신랄하게 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믿어달라, 막강한 군대의 힘을 가지고 북과 협상을 하고, 제휴를 해서 통일을 해 보일 테니, 믿어달라는 뜻의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다면 이 자리를 빌어서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첫째, 북한의 독재정치를 비난하고, 민주화를 촉구할 용의는 있으십니까. 둘째, 남북의 군축이 아닌 북한의 군비를 축소하여,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하라고 촉구하실 수 있습니까? 셋째, 김영삼 대통령의 민주화와 개혁에 대한 노력 및 업적을 평가하고, 이승만의 건국과 구국, 박정희의 눈부신 경제발전 업적, 전두환의 무역흑자 업적, 노태우의 민주화 노력 등을 평가하고, 그 대신 김일성 부자의 무력남침을 비롯한 죄상을 비난할 수 있는지, 넷째, 김일성 조문론을 6․25 남침 속죄 요구로, 정부 비판을 북한 노동당 비판으로 전향하실 수 있는지, 이상의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대중 : 공산주의에 대해서 비판하고 반대하라는 것은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이의가 없습니다.

  사회자 : 공산주의가 아니라, 김일성 김정일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이 자리를 빌어서 전국민이 보고 있는 가운데… 

김대중 : 지난 번에 강릉 사태 때, 그 자리에서 제가 공개적으로 북한 김정일이를 비난하면서, 국민 성토대회를 열자고 까지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신문에 다 났습니다. 김일성 김정일이에 대해서 과거에도 얼마든지 비판했고, 또 공산주의에 대해서 그들이 하는 행동에 대해서 얼마든지 비판할 테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아무 염려 마시기 바랍니다.

  사회자 : 남북한의 호혜평등한 입장에서의 군축이 아니고, 지금 저렇게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남침할 생각하지 말고, 너희 군비를 먼저 줄여라. 이런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할 수 있습니까? 공약으로 내세울 수 있습니까? 

김대중 : 자기 국민 밥도 못 먹이면서 군비 증강한 것은 일종의 죄악적 행동입니다. 그것은 당연히 우리가 요구할 수 있지, 왜 못합니까.

  사회자 : 그것을 국민회의의 정강정책이나 선거 공약으로 군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라, 하는 요구를 하실 수 있는지. 

김대중 : 우리 국민회의 정강정책으로 한다 안 한다 하는 것은 제가 말할 처지가 아니지만, 국민회의의 입장, 제 입장은 지금 이도형 선생께서 말한 점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감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사회자 : 조문론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아까도 말씀하셨읍니다만, 조문론을 바꿔 가지고 김일성이의 전쟁범죄에 대한 속죄, 사과를 요구하실 용의는 있습니까?  

김대중 : 저는 조문론을 주장한 일이 없습니다. 한 일이 없기 때문에 그 점은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사회자 : 그리고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94년에 카터 방북을 주선하셨다는 설이 있는데 사실인지요. 또 이번에 카터가 방북하기로 결심을 했다는데, 거기에 김총재가 어느 정도 작용을 하셨는지. 

김대중 : 이번 일에는 전혀 관계가 없고요, 카터 방북을 제가 주선한 게 아니라, 미국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연설했습니다. 전쟁 일보 직전에 있던 그때에 가서, 미국 여론을 환기시켜 가지고, 카터가 방북해서 핵문제를 해결하도록 한 일이 있습니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의 유명한 기자였던 오버도퍼가 쓴 것을 보면, 그때 카터가 방북하지 않았더라면, 한국민 약 50만이 죽었을 거라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단신으로 가서 미국 여론을 움직여 가지고, 전쟁 일색으로 있던 미국이 카터를 보내 가지고 핵문제를 해결한 것을 민족의 한사람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사회자 : 감사합니다. 시간이 1~2분 늦었습니다만,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총재께서 사상검증을 받으셨다고 생각하시면 곤란하고, 아직도 검증 작업이 남았습니다만, 시간이 제한됐으므로 이것으로 끝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