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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 벨 논란

"다이빙 벨, 유속 상관 없이 20시간 연속 작업 가능하다" -이종인 대표

민간 수중작업 전문가를 자칭하는 이종인이 4월 18일 손석희JTBC 뉴스 9에 유속에 상관없이 다이빙 벨이라는 물건을 구조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현장 구조활동중이던 황대식 한국해양구조협회 본부장은 이종인이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다이빙 벨은 현장의 유속이 빨라 도움이 되기 힘들다는 지적등을 했고, 결국 현장에서 기존 작업 방해, 이미 설치된 바지선과의 안전사고 우려로 거부당했다.(관련기사) 또 해당 다이빙 벨은 이종인의 자작품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공인기관에서 안전성이 인증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해군 SSU에 최신식 다이빙 벨이 있었지만, 사고해역 근처의 물살이 너무 빨라 베어링 고정 자체가 안돼서 투입하지 않은 것이었다. 과연 저렇게 청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놓은 장비가 가혹한 환경에서 연속으로 20시간 동안 구조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정말로 믿었던 것일까?


이종인은 처음에는 20시간동안 작업이 가능하다고 하다가 40분으로 말을 바꾸는 등 가뜩이나 급박하고 상황, 걱정이 많은 국민들 앞에서 횡설수설 하였다. 단 이후에 JTBC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20시간은 여러 사람이 교대하면서 하룻동안 작업 가능한 시간이고, 40분은 한 사람이 한 교대에 작업 가능한 시간(관련기사)이라고 한다.

또한 당시 구조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언딘인더스트리나 해군, 해경이 더 좋은 다이빙 벨을 가지고 있는데 왜 더 조악한 물건을 들여온것이냐는 지적도 있었다. 물론 해군은 이종인이 가지고 있는 다이빙 벨보다 더 좋은 클로즈드 벨을 보유 하고 있었지만 파도로 인한 모선의 고정 불가, 유속으로 인한 사고 위험성, 수중시야 불투명 문제로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4월 24일 밤에 다이빙 벨을 투입하기로 결정되었다. 4월 24일 저녁부터 25일 아침까지 진행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실종자 가족들과의 회의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다이빙 벨 투입을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원래 다이빙 벨은 25일 오후 3시께 사고현장에 투입할 계획이었으나 자정이 넘도록 이뤄지지 않았다. 알파잠수기술공사 측은 이날 오후 9시가 돼서야 사용 중인 바지선 옆면에 다이빙 벨을 실은 바지선 정박에 나섰다. 다이빙 벨이 사고 해역에 도착한 뒤에도 해경·해군 등의 수색·구조작업이 계속돼 투입에 필요한 사전 준비 작업이 늦어졌다는 것이 알파잠수기술공사 측 설명이다. 일단 해군, 해경측은 협조중이라는 이종인과 JTBC간의 인터뷰도 있었다.(관련기사)

이후 바지선을 넘나들며 앵커 작업 등을 벌이던 알파잠수기술공사 측 인원들은 오후 11시께 갑자기 다이빙 벨을 다시 바지선에 싣고 먼 바다 쪽으로 철수했다.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는 이 때 몇몇 부분에서 작업 여건이 맞지 않아 장비를 철수한 것으로, 조만간 다시 투입을 시도할 거라고 말했다.(관련기사) 4월 26일 새벽에 겨우 현장에 접안하여 작업에 돌입, 새벽 1시와 새벽 5시에 바다 속에 투입하려고 했지만 1시에는 앵커가 꼬여서, 5시에는 조류가 너무 강해 바지선을 고정시키지 못해서 다이빙 벨을 설치하는데 실패했다.(관련기사) 당시 이 대표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고, 기상상태가 악화되면서 일단 다이빙 벨을 실은 이 대표의 바지선은 인근 관매도로 피항한 것으로 알려졌다.(관련기사)

물살이 느려지는 정오에 3차 다이빙 벨 투입을 위한 바지선 앵커 설치작업을 시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기상 상황이 안 좋아서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오전 중에 이 대표는 다이빙 벨과 동행한 민간잠수부들과 함께 팽목항으로 귀항했다.(관련기사)


이종인이 이전에 다이빙 벨을 투입경험을 했던 거제도 앞바다의 조류는 0~40cm/s의 유속이지만 세월호 침몰지역의 조류는 120cm/s 이상이기 때문에 투입여건 자체가 다르다.


이후 이종인은 기자 회견에서 날씨와 내부적인 불협화음 때문에 28,29일쯤에나 투입이 가능할 거라고 입장을 밝혔다. 어차피 지금 거센 조류 등으로 바지선 고정 작업 등을 마쳤어도 다이빙 벨 투입이나 잠수 등은 상당히 힘들며, 다른 구조단체도 있기때문에 별도 작업해야 한다고 하였다.

4월 29일 오후 5시에 사고 해역에 다시 왔는데, 파고가 높아서 1시간 정도 지난 뒤에 설치를 끝냈고 그 후에 한 가동 실험은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30일 새벽 2시 즈음에 투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때도 투입은 또 실패했고 30일 정오 투입예정 이후 3시 40분경에 투입했다가 20분만에 하강 도중, 파도에 산소공급용 케이블이 쓸려 구멍이 나는 바람에 다시 건져올려 수리 중. 언제 재투입할지는 불명이라고. 관련기사

5월 1일 새벽 3시경 정조 시간에 본격적으로 투입이 되었다. 다이빙 벨에 탑승했던 잠수부들은 80분 정도의 얽혀있는 가이드라인을 푸는 작업을 마치고 천천히 감압을 하며 올라와 5시 20분경 바지선으로 복귀했다. 다만 교체작업을 할 다이버가 없어서 연속투입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한편 동승한 유가족들은 작업에 대해서 의문을 표했는데 세명중 두명은 다이빙벨에서 작업해야 하고 한명만 나와서 작업해야 한다고 해서 동승한 유족이 저게 뭐하는 짓이냐고 했다한다. 더군다나 이번에 잠수한게 한 20m정도 되는데 참고로 현재 세월호는 수심 35m 정도에 잠겨있다. 어쨌든 선내 진입해서 수색은 한 모양이지만, 구조 실적은 제로. 구조 현장의 이상진 잠수사 역시도 "조류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전문 잠수사들은 이 말을 아무도 믿지 않고 있었다. 언론을 통해 호언장담하던 20시간 연속 잠수도 거짓말이라는 것은 잠수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고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였다.관련기사

이후 동일 11일 오전에 다이빙 벨은 원인모를 이유로 바지선째로 철수했다. 이에 대한 이종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해군 등등이 와서 자신들이 작업을 해야하니 철수하라고 하였으며, 이전에 해경이 예고 없이 다이빙벨 작업 중 배를 바지선에 대서 인명사고가 날 뻔 한 것을 고려할 때 더 이상 작업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닌데,

해경이 예고없이 배를 댄 것이 아니라 바지선에서 다이빙벨을 참관하던 해경 간부를 데려가기 위해 바지선에 접근하던 중 발생한 일이다.


이종인은 결국 철수하면서 다이빙벨 완전 실패를 선언하고 유족들께 죄송하다는 말을 남겼으며, 이번 사건은 언론이 성공했다는 말을 한것이라며 실패를 인정했다. 관련기사

덧붙여서 "꼭 하려고 했다. 제게는 이 기회가 사업하는 사람으로서도 입증받을 좋은 기회였다.", "정부도 경제적으로 보장했고 얼마든지 사람을 돈 주고 일을 시킬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제 이런 결정을 하면서 그 혜택들과 다 맞바꾸는 것"이라며 "제가 질타를 받고 여러 가지 사업하는데도 앞으로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종인은 철수 이유로 "우리가 공을 세웠을 때 기존 수색하던 사람들과 분란이 일어나거나 사기를 저하시킬 것으로 우려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위에서 보이듯 그동안 다이빙벨이 필요하다고 며칠의 시간을 끌었다가 실패했다면서 공을 세우면 다른 이들의 사기저하를 이유로 철수한다는 것은 납득이 안가는 것이다. 여기에 실제로는 가족들의 철수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알려지길 함께 동승했던 유족들이 다이빙벨을 믿을수 있는것이냐고 했고 결국 유족들 요구로 철수했다고 한다. 동승했던 유족은 이종인이 우리를 가지고 장난쳤다. 다이빙벨이 만능이라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냐며 분노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