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
  • 토론
  • 읽기
  • 원본 보기
  • 역사 보기
창귀
최근 수정 : 2019년 6월 25일 (화) 21:50

창귀(倀鬼)는 중국과 한국에서 호환(호랑이의 식인)을 당한 혼령으로, 호랑이에 묶인 지박령으로, 타인들(특히 친인척)을 호환으로 이끈다는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나 민중과 기득권층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진다.

사전상 의미

네이버 한자사전상의 의미

(脹과 倀으로 다른 한자를 알려주나 倀鬼가 문헌상 기록으로 되어 있다. 네이버가 왜? 창자 창을 알려주는지 문헌상 기록을 찾을수 없었음. 중국어로는 귀신 창으로 자동번역되는 바, 한자에 조예 깊으신 분께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脹鬼 먹을 것이 있는 곳으로 범을 인도한다는 나쁜 귀신

脹 (부을 창,창자 장) 1. 붓다(살가죽이나 어떤 기관이 부풀어 오르다) 2. 부풀다 3. 팽창하다(膨脹--) 4. 배부르다 5. 늘어나다 a. 창자(큰창자와 작은창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 장

鬼(귀신 귀) 倀鬼 범의 앞장을 서서 먹을 것을 찾아 준다고 하는 못된 귀신(鬼神),'못된 것을 하는 데 앞장 서는 사람'의 비유(比喩ㆍ譬喩)

倀(갈팡질팡할 창,귀신 이름 창) 1. 갈팡질팡하다 2. 쓰러지다, 넘어지다 3. 성기다(물건의 사이가 뜨다) 4. 길을 잃다 5. 홀로 서다 6. 미치다(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되다)

7. 귀신(鬼神)의 이름, 창귀

한국민속대백과사전[1]

창귀씨탈, 1930년 개성 덕물산 신당에 안치되어 고사만을 지냈던 신앙가면의 하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호식을 당해 죽은 사람의 귀신. 창귀는 범의 노예가 되어 항상 곁에 붙어 다니면서 시중을 들고 식사를 책임지며 길 안내를 맡는다.

창귀는 또 다른 사람을 범에게 잡아먹히게 해야만 범의 위권과 부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다리 놓기로 다른 사람을 범에게 잡아먹히게 하고서야 비로소 창귀 역할의 임무 교대가 된다. 그래서 창귀는 항상 호식당할 사람을 찾는다. 창귀는 사돈의 팔촌뿐만 아니라 이웃사촌, 친구 등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찾아다니며 불러내 범에게 잡아먹히게 만든다. 예부터 범에게 물려간 집안하고는 사돈을 맺지 않는다고 했는데 바로 이 창귀 때문이다. 창귀가 있는 집안과 사돈을 맺었다간 창귀의 발호에 언젠가는 사돈의 팔촌까지 범에게 물려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창귀는 신맛이 나는 매화열매나 소라, 골뱅이 등을 좋아하여 그것이 있으면 먹는 데 정신이 팔려 범을 호위하는 일도 잊는다. 그러면 범은 함정에 빠지게 되어 그냥 잡으면 된다.

창귀는 항상 서럽게 울며 슬픈 노래를 부르며 다닌다. 사람이 이유 없이 슬픈 노래와 서럽게 우는 것은 창귀가 덮어 쓰여 그렇다. 창귀는 슬픔의 화신으로, 모든 사람에게 슬픔을 준다. 이미 범에게 잡혀갈 팔자라면 창귀가 부르는 소리를 외면하지 못한다.

범에게 당하는 모든 환란을 호환이라고 한다. 다치기만 해도 호환이라고 한다. 범에게 잡아먹히면 호식 또는 호사(虎飤), 호람이라고 한다. 1900년대 만 하여도 범에게 잡아먹히는 호식은 그 당시 큰 사망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범은 사람을 잡아먹으면 머리와 그 밖의 신체의 일부를 남겨 둔다. 유족들은 그 유구를 발견하면 창귀의 모든 사악함을 태워 완전 소멸시키고자 그 자리에서 화장을 한다. 그리고 그 위에 돌무덤을 만들고, 시루를 엎어 놓고, 시루 가운데 구멍에 가락(실을 감는 꼬챙이)이나 칼을 꽂아 호식총이라는 무덤을 만든다.

돌무덤은 망자와의 인연을 끊고 벌초하지 않아도 되며, 다시는 오지 않아도 되고 돌무덤 자체가 금역이다. 시루는 하늘을 뜻하고 산 것을 죽이는 형구(刑具)로서 철옹성같이 창귀를 가두는 것을 상징한다. 가락은 벼락을 뜻하고 가락이 물레에서 맴돌기만 하듯이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말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무서운 창귀를 제압하고자 창귀의 다리 놓기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범에게 잡아먹힌 사람을 화장하고, 돌무덤을 쌓고, 시루를 덮고, 가락을 꽂는 특이한 형태의 호식총을 만들었다. 범이 사람을 물고 가서 먹는 곳을 호식터 또는 호람(虎囕)이라고 한다. 다른 곳에 비해 태백산 지역에는 호식총의 분포도가 높은 지역으로 , 아직까지 그 유지(遺址)가 남아 있다. 호환을 당하는 과정이나 그 결과의 처리는 일반 사고에 의한 죽음과는 달리 비일상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무당굿에서는 이렇게 호환을 당한 사람의 넋을 위로하고 저승으로 천도하기 위하여 ‘범굿’이나 ‘호탈굿’을 벌이기도 한다.

고사성어 위호작창(爲虎作倀)

위호작창(爲虎作倀) 중국에서 유래한 고사성어.[2]한국에서는 안쓰이는 고사성어이며 중국에서 쓰인다.

전설에 따르면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의 영혼은 호랑이를 위해 봉사하는 귀신이 된다고 하는데, 이런 귀신 창귀(倀鬼)라고 한다. 창귀는 호랑이를 장군이라고 부르며 호랑이의 지휘를 받는다. 위호작창은 자기를 잡아먹은 호랑이를 돕는 창귀와 마찬가지로 나쁜 놈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

호식장[3]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고 난 뒤에 남긴 유구(遺軀)를 거두어 장사(葬事)하는 의례.

호랑이에 의한 호환은 단순한 사고가 아닌 신에 의한 운명적 사건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팔자에 없으면 범에게 잡혀 가도 먹히지 않는다든가 눈썹이 길면 호환을 당할 운명이라든가 하는 속신도 있다. 산길을 걷는 사람들 중에 앞뒤의 행렬 순서와 관계없이 호환의 피해를 당하며, 방 안에서 자는 사람들을 습격해도 한가운데 있는 사람을 호랑이가 데려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이야기는 모두 호환을 운명이라고 생각하였다. 특히 호환을 당한 사람의 영혼은 ‘창귀’라는 귀신이 되어 죽어서도 호랑이의 부림을 받는 딱한 처지가 된다. 이 창귀는 다른 사람을 유인하여 호랑이에게 바쳐야만 창귀의 신세를 면하고 보통의 귀신이 될 수 있다. 창귀는 서둘러 다른 사람을 호환의 대상으로 물색한다. 호랑이는 창귀가 선택한 사람을 물고 가지 않고 걷게 하여 앞세워서 죽일 장소로 인도해 간다. 호랑이는 사람의 팔다리와 몸통을 먼저 먹어 치우고 반드시 머리만 남긴다. 그리고 죽은 이의 머리카락을 혀로 싹싹 핥아서 왼 가르마로 곱게 빗어 놓는다. 호환을 당하는 과정이나 그 결과의 처리는 일반 사고에 의한 죽음과 달리 비일상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강원도 산악지역에서는 호식장(虎食葬)이란 독특한 장례 풍속이 있다.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 남긴 조각 시신을 유족들이 찾아서 집으로 데려 오지 않고 그 자리에 호식총(虎食塚)을 만든다. 화장을 하고 그 위에 돌무덤을 쌓은 다음 시루를 엎어 놓는다. 그 시루 구멍에는 물레의 가락을 꽂아 놓는 특이한 형태의 무덤인 호식총을 만든다. 호랑이가 사람을 물고 가서 먹는 곳을 호식터 또는 호남(虎囕)이라고 한다. 다른 곳에 비해 태백산 지역에는 호식총의 분포도가 높은 지역으로 그 유지(遺址)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4]

호식총[5]

호랑이에게 살해된 피해자의 유구가 발견된 곳에 바로 돌무덤을 만들고 시루를 뒤집어 놓고 쇠침을 놓아, 창귀가 나오지 못하도록 한다

호환을 당한 이의 남은 신체(유구)를 태우는 것은 모든 화근을 소멸 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즉 창귀를 완전히 없앤다는 것이다. 호식총에 돌을 쌓는 것은 신성한 지역임을 뜻함과 동시에 창귀를 꼼짝 못하게 가두어 놓는 금역임을 표시하는 것이다. 또 돌무덤에는 풀이 나지 않으니 후손들이 벌초하러 와서 창귀 들릴 일도 없겠다. 돌무덤 위에 엎어 놓은 시루는 하늘을 뜻하는 것이며, 철옹성으로 창귀를 가두어 놓는다는 뜻과 살아있는 것을 쪄서 죽이는 무서운 그릇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그 시루위에 또 쇠가락을 꽂아 두는 것은 무기 또는 벼락으로 창귀를 제압하고자 함이며 , 가락의 용도처럼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하고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다.[6]

도당제(호랑이제사)[7]

우리나라는 시골 고을마다 호랑이와 표범의 환난이 많아 밤에는 감히 밖에 나가지 못했다. 세간에서 흔히 말하기를 호랑이가 사람과 가축을 마구 잡아먹어 사람이 안심하고 살 수가 없으므로 백성들이 돈을 거두어 희생과 술을 마련하여 마을의 진산(鎭山)에서 산군(山君)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그리고 무당이 그 제사에서 어지러이 북치고 춤추어 호랑이를 평안케 하는데 이를 도당제(都堂祭)라 한다. 만약 이때에 제사의 품위나 제수가 불결하거나 재계와 치성이 맑지 못하면 그날 밤으로 호랑이가 반드시 내려와 으르렁 거리며 개와 돼지를 물어간다고 한다.

『주역(周易)』에, “구름은 용이 만들고 바람은 호랑이가 일으킨다” 고 하였기 때문에 울부짖으면 바람이 생긴다 하는 것이며, 「월령(月令)」에 이르기를 “동짓달에 호랑이가 교미를 시작 한다” 하였다. 호랑이에게 창귀(鬼)가 있는데 이는 곧 호사(虎)라는 것이다. 사()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창귀가 되면 호랑이를 늘 따라다니며 길을 안내하기 때문에 호랑이는 창귀가 가고 멈춤을 보고 행동한다. 호랑의 귀신은 바로 창귀인 것이다. 그래서 호랑이에게 제사를 지낼 때 그 신위가 되는 것이 창귀이며 그 제사를 받아먹고 위복을 베푸는 자 역시 창귀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창귀가 조작하는 것을 알지 못하면서 단지 호랑이에게 신령이 있어 화와 복을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악견문록(徐岳見聞錄)」에 보면, 무릇 호랑이한테 죽은 자는 의복과 두건과 신발이 모두 찢겨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데, 이것은 호랑이의 짓이 아니라 창귀가 그렇게 하는 것이라 했다.

문헌상 기록

명나라 도목(都穆)의 청우기담(聽雨記談)

"청우기담(聽雨記談)"에 "창귀는 호식당한 사람의 영혼으로,감히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고 오로지 호랑이의 노예가 된다"고 했다.창귀에는 여러 이름이 있는데 박지원의 '호질'에는 '굴각(屈閣)'등의 이름이 보이고,민간에서는 홍살이 귀신,특히 태백지역에서는 좀더 토속적으로 가문글기라 한다.[8]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과 성호전집(星湖全集)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혼백이 호랑이 앞잡이가 된다고 하는데, 이런 귀신을 일러 창귀라고 한다.《事物異名錄 神鬼 虎傷鬼》[9]

《성호사설(星湖僿說)》 제4권 〈만물문(萬物門) 창귀〉에는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자와 마찬가지로 물에 빠져 죽은 자의 혼(魂)도 창귀라고 한다. 사람이 혹 물에 빠져 죽은 뒤에 보면 그의 친척 중에 마치 귀신이 부르는 것처럼 물로 들어가는 자가 있음을 많이 보게 되는데, 참으로 괴이하다.”라고 하고 있다.[10]


  • 술 취한 호랑이에 대한 노래〔醉虎行〕 : 성호전집(星湖全集)[11]
내 듣건대 호랑이는 개를 술로 삼는다네 / 吾聞虎以狗爲酒

개 먹어도 취하는데 살찐 돼지 먹음에랴 / 吃狗猶醉况腯肥

꽥꽥대는 돼지를 호랑이가 움켜쥐어 / 豬鳴呝呝虎攫攫

잔뜩 먹고 취해서는 산으로 돌아가네 / 一飽酩酊山巖歸

사냥꾼이 총을 들고 탄환을 발사하자 / 山虞挾銃火發丸

벽력같이 불을 뿜어 호랑이 놀래켰지 / 霹靂應手驚神威

내장 찢고 간 발라도 시원치가 않으니 / 穿腸刳肝不復惜

버려진 게 지렁이나 개미와 다름없네 / 委棄何異螾與蟻

호랑이 살아 있나 아이들도 와서 보고 / 童孩狎觀有餘嗔

기탄없이 머리 치고 수염도 뽑아 보네 / 撩頭捋鬚無畏忌

네가 살아 있을 땐 사납고 악독해서 / 念爾當時恣虐毒

날선 이빨로 살인하며 마을을 다녔었지 / 磨牙殺人行閭里

불쌍한 과부 독거노인 원한이 깊고 깊어 / 哀哀寡獨冤恨長

그 소리 하늘에 통해 귀신도 울었다네 / 聲徹穹壤鬼亦淚

네 악이 이미 차서 죽을 때 되었으니 / 爾惡旣盈誅死迫

우연히 술 취한 건 아마 하늘 뜻이리 / 偶然醺酣豈天意

이제는 깊은 밤 산속 다닐 수 있으니 / 山中從此深夜行

짐승들 춤을 추고 창귀도 기뻐하리 / 百獸號舞倀鬼喜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 君不見

호랑이 뼈 악귀 막고 그 눈 진정제인 것을 / 乙辟邪魔晴定魄

가서 그걸 벗겨 내어 약재 만들려 하누나 / 去欲剝取資醫技

박지원(朴趾源)의 호질(虎叱)[12]

범이 개를 먹으면 취하고, 사람을 먹으면 조화를 부리게 된다. 범이 한 번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가 굴각(屈閣)이 되어 범의 겨드랑이에 붙어산다. 굴각이 범을 남의 집 부엌으로 이끌어 들여서 솥전을 핥으면, 그 집주인이 갑자기 배고픈 생각이 나서 한밤중이라도 아내더러 밥을 지으라고 시키게 된다. 범이 두 번째로 사람을 먹으련, 그 창귀가 이올(彛兀)이 되어 범의 광대뼈에 붙어산다. 이올은 높은 데 올라가서 사냥꾼의 움직임을 살피는데, 만약 깊은 골짜기에 함정이나 묻힌 화살이 있으면 먼저 가서 그 틀을 벗겨 놓는다. 범이 세번째로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가 육혼( 渾)이 되어 범의 턱에 붙어산다. 육혼은 자기가 평소에 알던 친구들의 이름을 자꾸만 불러댄다.[13]

이규경(李圭景)의 사호변증설(祠虎辨證說)

이덕무(李德懋)의 손자 이규경(李圭景, 1788~?)[14]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나오는 사호변증설(祠虎辨證說)의 번역문과 원문은 아래와 같다. 창탈호권(倀奪虎權)은 창귀가 호랑이의 권세를 빼앗았다는 의미이다.

성리학 기득권층과 일반 민중의 창귀에 대한 관점 차이

1945년 해방후에 인구의 80프로 가까이 글을 읽지 못하는 세태에서 글을 쓰는 이들은 소위 지식층으로 사회 기득권층을 대표한다. 권력을 향유하든 권력에서 쫒겨났든 기득권층들과 지식인들이었다. 창귀를 쓰는데에도 계층별 차이를 보인다.

2019년에 다시 부활한 창귀

'韓面日腸相雜니 倀鬼輩의 行色이라'을 뽑아내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왜놈인 도깨비 같은 자’로 정치적 상대방을 폄하하는 용도(슬로건)로 쓰였다. [15] 창귀와 귀태, 김종영은 "우리가 서둘러야 할 중요한 일은 호식총에 넣을 또 다른 귀태를 부지런히 찾는 일이다"하였다.[16][17]

성리학 유학자들 기득권층의 창귀 사용

정치적 반대편 또는 정치적 반대에 있어 상대방을 창귀로 폄훼하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조선의 소중화주의자들은 중국에 사대하면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로 외부의 적을 조선 내부의 정적으로 규정하였던 의식을 보여준다. 호환을 당한 기층 민초를 위로하고 그 식인 호랑이를 잡아 다른 호환을 방지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였다.

  • 만약 우리 나라 사람이 호랑이 앞에서 창귀(倀鬼) 노릇을 한다는 것을 들으면 죄를 묻는 군대가 우레나 번개처럼 치고 들어와 바람을 타고 하루만에 해서(海西) 기도(圻島) 사이에 곧바로 도달할 것이니, 두려워할 만한 것이 오직 심양에만 있다고 하지 마소서.[18]
  • 남이공(南以恭)은 일개인의 간사한 역적입니다. 그 패륜과 추행을 다 이를 수 없고 그 탐재와 모리를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앞서 유적(柳賊)이 요직에 있을 때 이공이 비록 죄를 지고 물러나 있었으나 오히려 국권을 잡아 이유홍(李惟弘)과 김대래(金大來)가 끊임없이 왕래하였으며, 삼사의 선발이 모두 그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임인년간 정인홍이 부름을 받아 상경할 때에 이르러서는 이공이 유영경(柳永慶)에게 서신을 보내 말하기를 ‘사귀기 쉬우면 겉으로 존경하고 교화하기 어려우면 공격하여 쫓으라.’ 하였으니, 그 영경의 심복이 됨은 이를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성패가 있을까 염려하여 미리 요로의 세력에 붙어 조치해 놓고 겉으로는 도움을 보이면서 안으로는 반심을 품었습니다. 그 술책에 빠진 자는 의심하지 않고 마치 창귀(倀鬼)가 호랑이의 앞잡이가 되듯 하니 참으로 슬플 뿐입니다.[19]
  • 정축년 이후로 중조(中朝)의 사람들이 하루도 우리 나라를 잊지 않고 있는데, 특별히 용서해 주고 있는 까닭은 우리를 구해 주지 못하여 패배하였고 우리가 오랑캐에게 항복한 것이 본심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관하(關下) 열둔(列屯)의 군병들과 해상 누선(樓船)의 병졸들이 오랑캐를 쓸어내고 옛 강토를 회복하기에는 부족하다 하더라도, 우리 나라의 잘못을 금하기에는 충분합니다. 만약 우리 나라 사람들이 호랑이 앞에서 창귀(倀鬼)가 되었다는 말을 듣는다면, 그 죄를 문책하는 군대가 벽력같이 달려와 배를 띄운 지 하루면 곧바로 해서(海西)와 기도(畿島) 사이에 당도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우리의 두려움이 심양에만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0]
  • 그러니 아, 통탄스럽습니다. 저 김시빈은 기사년(1689, 숙종15)의 여얼(餘孼)로서 시의(時議)에 영합하여 정승의 집에 드나들면서 그의 지시를 받아 창귀(倀鬼)가 되었으니, 그의 간악한 정태(情態)를 차마 바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가 아첨하려고 온 힘을 다 바친 계책은 실로 깊이 책망할 것도 없지만, 전하의 총명하고 성스러움으로도 그의 정상을 간파해서 그 죄를 처벌하지 못하셨으니, 신은 개탄스럽고 의아합니다.[21]
  • 판중추부사 이유원(李裕元), 영의정 김병학(金炳學), 우의정 홍순목(洪淳穆) 등이 연명으로 상차하기를,“방금 삼가 보건대, 국청의 죄인 정만식을 사형을 감면하여 절도에 안치하라고 명을 내리셨습니다. 이 옥사에 있어서 정만식은 창귀(倀鬼)이며 효시(嚆矢)입니다. 참설(讖說)을 지나치게 믿고서 감히 딴마음을 품었으니, 흉특(凶慝)한 정황으로 보아 육형을 가한다 해도 오히려 가볍다 하겠습니다. 경사 우병영의 세밀한 조사에서 분명하게 드러났을 뿐만이 아닌데, 만약 비대해지도록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어찌 환부(萑苻)의 도적, 황지(潢池)의 군병과 같은 맥락에서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국문도 마치지 않았고 조사도 받지 않은 마당에 수범과 종범도 구분하지 않은 채 참작해서 처분하라는 분부를 갑자기 내리셨습니다.[22]

일반인들의 창귀의 이해

일반 백성들에게 창귀란 권력자, 지주 등의 이익에 종사하는 자로 백성들로 하여금 경제적, 민사적, 손해를 끼치는 이들을 창귀로 인식을 하였다. 과거 조선시대에 이방은 급여를 받지 않는 무보수 직책이었다. 관에 형사적,민사적 법률문제가 발생하면 백성들은 이들에게 금전적 댓가를 지급함으로써 문제의 해결을 도모했다. 현시대로 비교하면 대행업자, 법무사, 언론인, 브로커, 부동산업자 등의 서비스 업종 종사자로 자신의 직업에 정직성을 잃어 버리고 소위 기득권층의 이해를 위하여 일하고 보수를 받아 챙기는 이들이다. 또는 같은 편, 무리에 속한듯 하였으나 겉으로는 좋은 말, 맞는 말을 하지만 결국은 자기 잇속만 챙기며 선동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 신문 소설[23]
  • 동아일보 1921.05.23 기사[24]
  • 수리조합 농지로 인한 분쟁에 등장하는 창귀[25]
  • 악덕지주,소작쟁의에 등장하는 창귀[26]

호환(재앙)을 겪어야만 하던 최하위 계층들의 창귀 이해

중국의 대문호 노신은 조선사람을 만나면 제일 먼저 호환 당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고 말할정도로 호랑이는 공포의 대상으로 알려져 왔다. [27]

산골 여인 호랑이 습격 프랑스 르프티 주르날삽화1914.png

{{인용문|왜 태백산 일대 사람들은 호랑이 밥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호랑이골에 눌러 살았을까? '호식장' 저자 김강산씨는 호식터 답사와 촌로들의 증언을 토대로 `숙명론'을 주장한다. “혹독한 정치와 관리의 횡포, 과중한 세금은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 猛於虎)”는 공자 시절의 말처럼 태백산맥 안으로 들어와 살던 화전민 가운데는 혹독한 세상, 과중한 세금과 부역 등에 쫓겨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차라리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더라도 숙명으로 알고 묵묵히 화전을 일구며 마음의 평정을 구했으며, 호식된 상황을 신성한 경지로 격상시켜 슬픔을 미화하려 했다. 태백시 문곡동 등 태백산 일대 산당(山堂)에는 으례 산신령이 호랑이 등을 타고 나타난다. 또 호랑이 자체를 `우습고 착하고 인자한' 산신으로 받드는 곳도 많다. 이는 호랑이를 격하시켜 심리적 우위를 차지하고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겠다는 의지표현과 함께, 절대적 강자에 대한 불가항력적 좌절감을 `신과 인간의 관계' 설정을 통해 `굴복의 숙명론'으로 받아들이고자 했던 것이라고 한다.[28]

호식총 산군호랑이 인간관계 민속학19900308.png

이들에게는 호환은 삶을 살아 가면서 겪는 재앙(재난)을 의미 하였다. 아이, 아내, 남편 등등 가족이 호랑이의 식인으로 인하여 가족을 잃고 그 호환(재앙,재난)으로 슬픔에 사무치던 이들이 그 슬픔을 숙명론으로 받아들인 과정의 이야기다.

구시대 소중화 체제의 산중에 사는 이들에게는 호환이 가장 큰 재앙이었겠지만, 현시대에는 결국은 일반인들이 살아 가면서 교통사고, 해난사고, 급작스런 병환, 실업 등등 겪는 개인이 극복하기 힘든 어려움이 과거의 호환에 해당한다. 과거에 호환을 당하였던 이들은 숙명론으로 받아 들였으나, 이는 구시대 조선의 숙명론일뿐,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일반인들은 보험등으로 사회적 제도와 공동체로 구제해 나아간다. 그리고 재발방지라는 호랑이를 잡는 과정을 밟아 가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이기도 하다.

호환을 당한 가족은 창귀가 씌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고 한다. 아이가 호환을 당하면 그 모정의 슬픔에 어떻게 가만히 차분히 있을 수 있었을까. 창귀의 원혼을 달래는 굿에서도 가장 힘들고 띄어내기 힘든 원혼은 아이의 원혼이라 한다. 아이는 왜 내가 이렇게 호환을 당해야 해? 엄마, 아빠는 뭐했어? 하면 가족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한다. 이런 슬품에 아픔에 가족은 일상의 생활이 불가능해져 간다. 그러기에 호환을 당한 가족들과는 사돈을 맺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워낙 슬픔에 일상의 생활과 보통 일반적인 사고와 행동이 불가능하기에 사돈을 맺으면 같이 힘들어 진다는 의미이다.

성리학 소중화 유학자들은 이런 일반 백성의 호환에 대한 대책이 없이, 단어만 추상화하여 정적을 폄훼하는 용도로 사용하였을 뿐이다. 지도자들이라면 식인 호랑이부터 잡기위해 군대를 동원하거나 호랑이를 퇴치하기 위한 방책을 마련하거나 또 호환을 당한 가족들의 일상의 복귀를 위한 도움의 손길을 주는 공동체의 확립에 힘을 써야 하는게 자연적인 상식이며 자연법이지만 그러하지 않았다. 오로지 정적의 제거에 창귀를 사용하였을 뿐.

창귀는 사고로 인한 가족의 상실, 교통사고, 해난사고[29], 실업, 병질환 등등 개인과 가족에게 닥친 하나의 재앙이다. 그 재앙을 극복해 나아가느냐, 회복해 나아 가는냐. 일상의 생활로 복귀 하느냐에로 귀결됨이 그 공동체의 건강한 활력을 유지해 나아가는 하나의 지표로 제시해 나아가야 한다.그러하지 못하면 창귀가 창궐한다.

창귀 이미지들[30]

현대의 호환 사례

호환을 당했던 오토 웜비어 가족

북한에 의해 아들을 잃은 오토 웜비어 가족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애도와 가족들에게 위로를 표하는 미국인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해 북한에 징벌적 배상 판결을 받아냈고, 북한 체재에 대한 국제사회의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31][32]

보스톤 마라톤 테러 사건의 피해자와 공동체의 극복 및 회복

보스턴 마라톤 폭발 사건은 2013년 4월 1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개최된 2013 보스턴 마라톤에서 결승선 직전에서 두개의 폭탄이 터져 관중들과 참가자 및 일반 시민들을 다치게 한 사건이다. 사제 폭발물이 코플리 광장 근처 결승선 직전에서 폭발하였고 이 사건으로 3명이 사망하고 최소 183명이 부상당했다.[33]

테러로 인한 재난에 보스턴 시민들은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쳤고 부상자에게는 재화의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다음해 다시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피해자들이 다시 참가하여 일상의 복귀가 이루어졌다.

재난을 극복해 나가는 피해자 개인들 가족들과 공동체 커뮤니티의 도움, 그리고 언론, 정치인들이 이용을 하지 않는 모습으로 호환을 극복해 냈다.

VICTIM에서 벗어난 '캔디스 오웬스(Candace Owens)

캔디스 오웬스 - 리버티 대학 강연 (2018.9.26 - 자막)

인종차별을 당하여 희생자로 규정되어 그 희생자 삶에 허우적 대다가 어느날 본인이 희생자가 아니라는 인식과 주변인들로 부터 도움받고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일상을 찾아간 인물의 이야기.

각주

  1. 한국민속대백과사전
  2. 재봉틀의 국어방 블로그2010.11.19
  3. 한국민속대백과사전
  4. 경향신문 1990.3.8
  5. 한겨레 1998.1.1
  6. 호식총의 모습
  7. 네이버 지식백과
  8. 한겨레 1998.1.1
  9. 事物異名錄(清)厲荃 辑
  10. 한국고전종합DB 성호사설 제4권 만물문(萬物門), 한국고전번역원, 김철희(역), 1976
  11. 한국고전종합DB 성호전집 제4권 시(詩)
  12. 다빈치원문/전문
  13. 낙민선생님의 역사이야기, 호질 원문 부기
  14. 이규경(李圭景, 178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5. 토착왜구 뜻하는 '토왜(土倭)' 1908년 처음 사용 뉴스톱, 2019.3.25
  16. 창귀와 귀태사람과 사회, 2016.12.12
  17. 정국 파장 몰고 온 '귀태(鬼胎)', 어떤 뜻이기에...동아일보 2013.7.12
  18. 조선왕조실록 효종실록 효종3년 임진(1652) 6월 25일
  19.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광해군 7년 을묘(1615) 3월 9일
  20.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인조 17년 기묘(1639) 12월 26일
  21. 승정원일기 영조 즉위년 갑진(1724) 12월 3일
  22. 승정원일기 고종 7년 경오(1870) 9월 10일
  23. 야정(野丁)동아일보 1993.4.21
  24. 횡설수설(橫說竪說 동아일보 1921.5.23
  25. 칠백농민(七百農民)의 분개(憤慨)동아일보 1924.8.31
  26. 석곡면(石谷面) 소작쟁의(小作爭議)동아일보 1924.5.23
  27. 虎食葬(호식장) "虎患(호환)막고 귀신을 퇴치"경향신문 1990.3.8
  28. 풀물기행 나를 찾아 떠난다, 한국인의 죽음과 토속신앙-호식총과 호랑이, 최성민
  29. 우리 바다는 안전해졌나? 세월호 이후 해양사고 2배 늘었다중앙일보 2019.4.17
  30. https://gae9.com/trend/1q39BXcbPPsD#!new/1202
  31. 웜비어 공개 장례식 현장취재...미 전역 애도 물결Voice of America 2017.6.22
  32. 웜비어 부친, 유엔서 열린 토론회서 "김정은은 범죄자"매일경제 2019.5.11
  33. 위키백과
최근 바뀜
자유 게시판
+
-
기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