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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메이
Theresa May
직책 영국 제76대 총리
(2016년 7월 13일 ~ 2019년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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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1956년 10월 1일
정당 보수당


소개

테레사 메이는 영국의 제57대 총리이다.
1997년부터 메이든헤드 지역구 서민원(하원) 의원이며, 2010년부터 영국 내무부 장관, 그리고 2016년 7월 11일부터 보수당 대표를 맡고 있다. 당내에선 원네이션 보수주의 계파로 분류되며 성향은 자유보수주의다. 메이 의원은 현지 시간으로 2016년 7월 13일, 엘리자베스 2세를 알현하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뒤를 이어 총리에 취임하여, 마거릿 대처에 이은 영국 사상 두번째 여성 총리가 되었으나 2019년 6월 7일에 테리사 메이는 총리직에서 사임을 하여 3년 만에 처음으로 다우닝가 10번지로 사저에서 떠나는 여성 영국 총리가 되었다.

서섹스 주 이스트본에서 태어난 메이는 옥스퍼드대학교 세인트휴스 칼리지에서 지리학을 전공했다. 1977년부터 1983년까지는 영국은행, 1985년부터 1997년까지는 영국 지불교환협회에서 일했고 (Association for Payment Clearing Services), 중간에 런던 머튼 구의회의 던스퍼드 지역구 구의원도 역임했다. 1992년과 1994년 두번에 걸쳐 영국 서민원 의원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뒤, 마침내 1997년 총선에서 메이든헤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됐다. 노동당 집권 기간에는 윌리엄 헤이그, 레인 덩컨 스미스, 마이클 하워드, 데이비드 캐머런과 함께 예비내각에서 예비 서민원 원내대표와 예비 노동연금장관 등 주요 자리를 여럿 맡았다. 2002년부터 2003년까지는 보수당 의장도 맡았다.

2010년 총선 이후 연립 내각이 성립되자 메이는 내무장관과 여성평등차관에 임명됐다. 여성평등차관직은 2012년에 사임했다. 2015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한 뒤 다시 내무장관으로 임명된 메이는 60년 전 제임스 추터 에드 장관 이래 최장 기간동안 자리를 맡은 내무장관이 되었다. 장관에 취임한 메이 의원은 경찰 개혁을 추진하고 마약 정책에 더 강경 노선을 취하며, 이민에는 제한을 두게 되었다.

2016년 6월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의 결과로 캐머런 총리가 급작스럽게 사임하면서 메이는 보수당 대표 후보로 나설 것을 밝혔고, 유력 선두주자로 떠오르면서 경쟁후보였던 앤드리아 레드섬이 자진 사퇴함에 따라 무난히 보수당 대표가 되어 영국 총리에 취임하였다. 2017년 3월 메이 총리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즉 브렉시트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밝히고, EU 측과의 협상 테이블에서의 지지기반을 다지려는 의도에서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치러진 2017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은 1983년 이래 최고 득표율을 기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원내 의석수가 330석에서 317석으로 오히려 줄어들었고, 어느 당도 의회를 장악하지 못하는 헝 의회 상태에 봉착하게 되었다. 보수당이 집권하는 데 있어 필요한 과반 의석수를 메우기 위해 메이 총리는 북아일랜드 소수정당인 민주연합당과 신임 공급을 통한 연정을 꾸려 보수당-민주연합당 내각을 출범시켜야 했다.

2018년 12월 보수당 의원들이 발의한 당내 불신임 투표와 2019년 1월 의회에서 발의된 불신임 투표에서 살아남았다. 이후 고정임기 의회법에 따라 예정되어 있는 2022년 총선에서는 당대표로서 선거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그 전에 조기선거를 열게 될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유럽연합과의 브렉시트 협상에서는 체커스 협약 (일명 '소프트 브렉시트')를 고수하였고 여타 유럽연합 회원국의 승인을 거쳐 브렉시트 협약안을 타결하였으나, 2019년 1월 영국 의회의 승인투표 (Meaningful vote)에서 부결되고 말았다. 메이의 수정 협약안 역시 391표 대 242표로 부결되었다.

생애

학창 시절

테레사 메이는 1956년 10월 1일 잉글랜드 서섹스 주 이스트본에서 어머니 제이디 메리 (결혼전 이름은 번스, 1928~1982)와 아버지 휴버트 브레이저 (1917~1981)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공회 신부로, 옥스퍼드에서 몇 킬로 떨어진 휘틀리 교구 목사를 맡았던 적이 있었다.
메이는 옥스퍼드셔의 주립 중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잠시 독립가톨릭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처음에는 히드롭에 위치한 주립학교인 히드롭 초등학교를 다녔고, 이후 베그브로크에 있던 로마가톨릭 독립학교인 세인트 줄리아나 수녀원 부속 여자학교 (1984년 폐교)로 전학하였다.
13살이 되자 메이는 휘틀리에 있는 홀턴 파크 여자중학교로 자리를 잡았다. 그곳 학생으로 있던 도중 1971년에 학교가 폐교되고, 같은 자리에 휘틀리 파크 종합중학교가 새로 들어서면서 학적이 다시 바뀌었다. 이후 메이는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해 세인트 휴스 칼리지에서 지리학을 전공, 1977년에 학사 학위를 받고 차석 졸업하였다.

초기 경력

메이는 1977년부터 1983년까지 영란은행에서 일하고, 1985년부터 1997년까지 영국 지불교환협회 국제사무과에서 금융 컨설턴트와 주임 고문으로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메이의 양쪽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는 1981년 교통사고로, 어머니는 그 다음해 다발성 경화증으로 사망했다.

한편 메이는 1986년부터 1994년까지 런던 머튼 구의 구의원으로 재임하여, 구의회 교육부장 (1988년~1990년), 의회 부대표 및 원내 대변인 (1992년~1994년)을 맡았다. 이후 1992년 총선에서 노스웨스트더럼 지역구 후보로 출마하고 1994년 바킹 재보궐선거에도 나섰지만 두 번 모두 당선되는 데 실패핬다. 그러나 1997년 총선에 다시 한번 메이든헤드 지역구에 후보로 출마,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국회의원

의회에 입성한 메이는 교육학교장애인여성부 대변인 (1998~1999년) 자리에 오르면서, 윌리엄 헤이그 당시 보수당 대표가 이끈 야당 지도부의 일원이 되었다. 1999년부터는 예비 교육고용차관에 임명되면서 초선 의원으로선 처음으로 예비 내각에 참가하게 되었다. 2001년 총선 후 이언 덩컨 스미스 신임 보수당 대표는 메이를 교통장관직으로 자리이전하면서 예비 내각에 머물도록 했다.

2002년 7월 메이는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보수당 위원장에 내정됐다. 2002년 보수당 당대회 연설 도중 메이는 자신이 보기에 당이 바뀌어야만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여러분들도 국민들이 우리 당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실 겁니다. 바로 추잡한 당 (Nasty Party)이죠." 2003년 11월 보수당 당수 및 야당 당수로 마이클 하워드가 당선된 후, 메이는 추밀원에 임명되어 예비 교통장관으로 내정됐다.

2004년 6월에는 예비 문화미디어스포츠장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5년 12월 새로 선출된 데이비드 캐머런 대표는 예비 서민원 대표로 메이를 내정했다. 2009년 1월에는 예비 노동연금장관이 되었다.<bt>
2010년 5월 6일 치러진 총선에서 메이는 메이든헤드 지역구에서 이전보다 늘어난 16,769표, 득표율 60%로 국회의원에 다시 당선됐다. 이는 지난 2005년 총선 당시 자유민주당의 '파면전략' 우선 대상 중 한 명으로 포함되어, 의석에서 물러날 위기에 처했다가 일찍이 철회됐던 일에 따른 것이었다.

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