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파일(1,269 × 765 픽셀, 파일 크기: 410 KB, MIME 종류: image/jpeg)

파일의 설명

잡지 『민성(民聲)』 에 실린 김일성 가짜설에 대한 해명.

p.14 : 《北朝鮮踏査期(完)》 / 本社特派記者 朴燦植 (1946년 10월 29일 ~ 12월 6일 기간 북한 방문기)

잡지 『민성(民聲)』의 특파기자 박찬식(朴燦植)이 평양을 방문 중인 1946년 12월 3일 중앙예술공작단(中央藝術工作團)에 갔다가 나웅(羅雄, 1909~ ?)을 만나 김일성의 진위에 대해 물었는데 나웅은 아래와 같이 잘 준비된 듯한 답변을 내 놓았다.

[p.18]
金日成은 가짠가?
十二月三日(火)

李夕津氏 『蘇聯의 演劇』 재촉하러 中央藝術工作團에 갔다가 羅雄氏를 만나서 이런 이야기 저런 얘기 끝에 슬그먼히 金將軍의 眞僞論을 끄집여 내 보았다。 南朝鮮서는 아직도 一部에 그런 論議가 行하여지기 때문이다。 이건 또 내가 即接 會見하지 못한 一種 責任感에서도。 羅雄氏는 苦笑를 한번 하더니、

『眞짜가 따로 있다면 이제 까지 안 나왔겠소? 아니、 設令 假짜래도 좋아요 이젠。 벌써 一年以上을 檢證해 보았으니까。』
『만나보신 일 있으십니까?』
『그러믄요。 工作團 일 때문에 가끔 만나지요。 뭐라고 할까. 부드러우면서 剛하고 굉장히 緻密한데 包容力이 絶大하시고 거기다가 무섭게 精力家이시어 어쨌든 보통 사람은 아닙니다。 이런 분을 가졌다는 것은 역시 朝鮮의 앞날이 多幸하다는 徵兆이겠기 정말 든든합니다。 모두들 나이가 젊은 데서 疑訝를 품게 되는데、 그것은 金將軍을 너무도 터무니 없이 擴大하여 나이는 한 五十、 八字 수염이 쭉 뻗은 山賊같은 그런 분으로들 想像하기 때문이겠지요。 무엇보다도 가짜가 아니란 證據는 將軍 때문에 滿洲까지 人質로 끌려갔던 할머니가 시방도 故鄕인 萬景臺에 살아 계시고、 그 叔父님이 거기서 農事를 짓고 있는 事實입니다。 어쨌든 같은 二十年이라도 平凡하게 市井에서 生活한 普通사람 二十年하고、 山비탈로 遊擊戰을 하고 돌아다닌 二十年하고、 거기 內容이 꽤 다를것 아닙니까? 人格의 重量은 歲月의 長短과 無關하니까요?』

羅雄氏가 아무리 名演技者라하여도、 내가 본 얼굴에 『演劇』이라고 느껴지는 구석은 없었다。 그것은 臺辭가 아닌 羅雄氏 『人間의 소리』로 액쎈트와 抑揚이 틀림 없이 發音되었었기 때문에。

夕津氏는 오늘도 違約이었다。

이 기사는 당시 김일성이 가짜라는 말이 북한에도 상당히 퍼져 있어 이런 소문의 확산을 막기위해 해명성 변명을 유통시키고 있는 사정을 보여준다.

p.21 : 《北朝鮮踏査期(1)》 / 本社特派記者 朴燦植
p.14 : 《北朝鮮踏査期(2)》 / 本社特派記者 朴燦植

파일 역사

날짜/시간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시간의 파일을 볼 수 있습니다.

날짜/시간크기사용자설명
현재2022년 6월 4일 (토) 09:581,269 × 765 (410 KB)JohnDoe (토론 | 기여)잡지 『민성(民聲)』 에 실린 김일성 가짜설에 대한 해명

다음 문서 1개가 이 파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