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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間諜) 이구영(李九榮, 1920~2006)에 사형이 구형되었다는 1958년 12월 3일자 국제신보(위)와 부산일보(아래) 2면 기사.

이구영은 북한 부수상 홍명희의 제자였는데, 1958년 7월 남파되었다가 9월에 부산에서 검거되어 그해 12월 2일에 사형이 구형되었으나 징역형을 살다 1980년 석방되었다. 이후 남한에서 거주하다 사망했다.

間諜 李 死刑 求刑
대남간첩 「그 - 十一號」 李九榮(三九)에 대한 간첩 국가보안법 위반 및 공문서 위조 피고사건 결심공판이 一일 하오 부산지법 임시법정에서 재판장 송명관(宋明寬) 부장판사 주심아래 개정되었는데 관여 이영환(李永煥) 검사는 李에게 사형을 구형하였다.
그는 이북 괴뢰집단에서 밀봉교육을 받고 지난 七월 二十五일 江陵방면에서 월남하여 大邱 釜山 등지에서 한약제조업을 가장하여 소위 평화통일선전과 청장년을 포섭하여 월북시킬 공작을 하다가 검거된 것이다. 이날 공판정에서 동사실을 그는 인정하였는데 언도공판은 九일 개정된다.
― 국제신보 1958.12.03 (1판2면)
李에도 死刑 求刑
간첩 이구영(李九榮) 피고에 대한 결심 공판이 二일 부산지법 임시법정에서 송명관(宋明寬) 부장판사 주심 이영환(李永煥) 검사 입회 아래 개정되었는데 이 검사는 피고 이에게 사형을 구형하였다.
― 부산일보 1958.12.03 (1판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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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2023년 2월 28일 (화) 14:03470 × 744 (112 KB)JohnDoe (토론 | 기여)간첩 이구영(李九榮)에 사형이 구형되었다는 1958년 12월 3일자 국제신보부산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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