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 Preußen
영어: Prussia 프러시아
고대 프로이센어: Prūsa
한자: 보(普), 보로사(普魯士/普魯斯), 보로서(普魯西)

개요

프로이센 또는 프러시아는 1947년까지 독일 북부에 있었던 주로서 1918년까지는 베를린을 수도로 한 호엔촐레른 가의 왕국이었다. 발트족의 일파인 프루사(고대 프로이센어: Prūsa)에서 이름을 땄다. 한국에서는 흔히 영어식 발음을 따서 프러시아라고 읽기도 한다. 프로이센이란 지명은 이 지역에서 중세 초부터 살기 시작한 발트어계 프로이센인에서 유래했다.

역사

초기

고대에는 발트계의 프로이센인이 살았으나, 12, 13세기경 동독일 식민운동, 독일 기사단의 정복 등을 거쳐, 구츠헤르샤프트의 기초가 확립되었다. 1525년에 독일 기사단령은 프로이센 공국으로 되어, 호엔촐레른 가(家)가 지배하게 되었고, 1618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인 지기스문트가 공국을 상속하게 되어,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의 동군연합(同君聯合)이 성립되었다.

왕국 성립

1657년 대선제후(大選帝侯)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폴란드의 종주권에서 벗어나 1701년 브란덴부르크를 중심으로 왕국이 되었으며,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프리드리히 1세로서 즉위하였다. 그 이후 급속히 중앙집권화를 추진시켜 관료제를 정비하고 군대를 강화하여 프로이센 형(型)의 절대주의 체제를 확립했는데, 그 중심이 된 것이 구츠헤르다.

18세기에 들어서자 프리드리히 2세는 국내의 절대주의를 강화하는 동시에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7년 전쟁 등의 외정(外征)을 통하여 슐레지엔, 서프로이센을 병합함으로써 분산적이었던 영토의 통일을 일보진전시켰다.

나폴레옹 전쟁과 독일 통일

18세기 말부터 프랑스 혁명에 대항하여 대프랑스 동맹에 참가하였으며, 또한 3회에 걸친 폴란드 분할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출현으로 예나·아우어슈테트 싸움에서 패배하고 1807년 틸지트 화약을 체결하여 사실상 나폴레옹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 패전을 계기로 슈타인, 하르덴베르크에 의한 프로이센 개혁이 단행되었으며, 또 대(對)나폴레옹 해방전쟁에도 성공하였고, 이어 빈 체제하의 반동시대에 돌입하였다.

자유·통일 운동을 억압하다가 1848년의 3월 혁명을 맞았으나, 이 혁명은 실패로 끝나고, 융커적 지배 체제를 다시 강화하였다. 그러나 반면 관세동맹을 주최하여 통일에 일보 전진하였다. 이 무렵부터 독일 통일에 관하여 오스트리아와 다투었으나, 비스마르크가 나타나면서부터는 군비를 강화하고,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승리를 얻어 독일 연방을 해산시키고 북독일 연방을 건설하였다. 또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결과, 1871년 독일제국이 성립하였는데, 이 제국은 반(反)프로이센주의를 억압하여 프로이센주의를 추진시켜 나갔다.

프로이센은 1864년 덴마크와의 전쟁으로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지방을 획득하였다. 대왕 프리드리히 2세는 계몽군주를 자처하며 강력한 국력을 키워나갔다.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결과로 오스트리아가 독일 연방에서 밀려나자, 프로이센은 독일 내의 최대 강국이 되었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전쟁)의 승리로 프로이센 왕 빌헬름 1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즉위, 프로이센을 맹주로 한 독일제국이 성립하였다. 1918년 독일이 1차 대전에서 패전하자, 독일 황제 겸 프로이센 왕 빌헬름 2세는 퇴위하였으며, 프로이센은 독일의 한 주가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해체

제1차 세계대전 결과 독일제국은 무너지고 프로이센도 바이마르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고, 나치의 출현으로 이 공화국도 소멸되었으나, 이후에도 한동안 실질적으로는 프로이센적인 요소가 군부 등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당시에 프로이센은 독일의 한 개의 주로서 존속하고 있었으나, 당시 독일을 점령한 연합국 측은 프로이센을 해체시키기로 결정하여, 1947년 2월 25일에 프로이센은 완전히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