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zerkampfwagen(Pz.Kpfw.) VI Tiger I(판처캄프바겐 젝스 티거)

6호 전차 티거(Tiger I)는 제2차세계대전 중의 나치 독일이 VK 36.01 H의 프로토타입 전차를 개발하고 이를 수정해 양산하여 운용한 중전차이다. 또한 6호 전차 티거는 소련군의 최신 중형전차 T-34에 대응하기 위해 설계되었으며, 6호전차 티거의 최초 독일 공식 명칭은 Panzerkampfwagen VI Ausführung H(판처캄프바겐 젝스 아우스퓌룽 하); 줄여서 'PzKpfw VI Ausf. H'였는데[1], 다시 1943년 3월에 '하(H)'에서 '에(E)'로 다시 명명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식 명칭보다는 Tiger, 곧 호랑이라는 별칭으로 불렀고 1944년 2월 아돌프 히틀러의 명령으로 정식명칭에 Tiger가 들어가서 Panzerkampfwagen Tiger Ausf. E가 되었다. 또한, 이 전차는 군수품 목록상 'Sonderkraftfahrzeug(존더크라프트파르조이크) 181; 줄여서 Sd.Kfz. 181'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티거(Tiger, 호랑이)"라는 별명은 폭스바겐사(社)와 포르쉐사의 창업자 페르디난트 포르셰(Ferdinand Porsche) 공학박사에 의해 붙여졌으나 생산은 경쟁 회사인 헨쉘사에서 이루어졌으며 티거의 엔진은 마이바흐사에서 개발했다. 티거 1의 로마숫자 'I'은, 후에 6호 전차 B형 티거 2(Tiger II) 중전차가 생산되면서 덧붙여졌다. 티거는 1942년 말 독소전쟁 중 동부전선의 레닌그라드 공방전부터 배치되어 종전까지 활약하며 다대한 활약을 펼쳤다.

티거의 엔진은 700마력으로 티거는 도로에서 45km/h, 야지에서 20km/h라는 중전차치고 매우 우수한 전술기동력을 가졌으며 넓고 튼튼한 무한궤도의 접지력 등으로 험지 주파력이 월등했다.

티거의 장갑은 그 두께가 포탑 정면 장갑 102~120mm, 포탑 측면 80mm일 뿐만 아니라 차체 정면 102mm, 차체 측면 상부 82mm, 차체 측면 하부 62mm, 차체 후면 60mm로 티거의 배치 시기였던 1942년부터 1944년 전까지 연합군이 주력으로 운용하던 중형전차들의 주포로는 관통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넓은 차체와 포탑으로 거주성이 좋고 탄약 적재량이 많았으며 연료 적재량까지 준수했다.

티거의 주포는 크루프사의 8,8 cm KwK 36 L/56(36년형 8,8cm 56구경장 전차포) 1문이었는데 철갑탄의 관통력과 작약량 모두가 뛰어나 일격에 소련군의 주력 중형전차 T-34 시리즈들을 유폭시킬 수 있었으며 정밀한 광학장치와의 조합으로 유효사거리가 2~3km에 달하며 명중률 역시 뛰어났다. 티거의 조준경에는 소련군의 중형전차인 T-34 시리즈를 상대할 때 가장 최적화된 독창적인 거리측정 방식을 도입하였는데 소련군의 주력 중형전차인 T-34/76이 1944년 3월부터 T-34/85로 본격적으로 강화되어 배치되기 시작하기 전까지 티거는 일반적인 전차전에서 압도적인 화력을 발휘하며 1만여 대에 달하는 소련 중형전차들을 격파 및 유폭시키며 전장에서 활약했다.

티거의 보조 무장으로는 최초로 제식 도입된 다목적 기관총MG 34 2정이 각각 포탑, 차체에 장착되어 최강급의 대보병전 능력을 지녔다[2]. MG 34는 '히틀러의 전기톱'이라는 별명을 지닌 후속작 MG 42보다는 성능이 떨어지지만 여전히 타국의 기관총보다 우수했다.

티거는 대전기간 내내 막강한 방호력과 화력, 우수한 전술기동력, 거주성의 조화로 무수히 많은 독일 전차 에이스들을 배출했다. 쿠르트 크니스펠 최소 168대 이상 격파[3], 마르틴 슈로이프 161대 격파[4], 오토 카리우스 최소 150대 이상 격파, 요하네스 뵐터 139~144대 격파[5], 미하엘 비트만 138대 격파[6], 알베르트 케르셔[7] 최소 100대 이상 격파 등, 티거는 100대를 넘는 격파수를 찍은 에이스를 14명 이상 배출했다.

더 많은 티거 에이스들의 기록은 이 사이트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티거라는 단어 자체가 소련 전차병들에게 공포와 죽음부터 연상하게 했으며,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에서도 티거의 이미지는 그들 조상들에게 가한 독소전쟁의 공포 그 자체와 충격 등을 상징하듯 여전히 그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스릴러 영화까지 만들 정도이며 이는 여전히 공산주의의 망령에 지배당하는 북한, 중국 역시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겠지만 일부 공유할 정도이다. 북한, 중국은 결국 소련의 의도에 따라 소련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이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공산주의자들이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나치 독일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비록 나치 독일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소련을 멸망시키진 못했지만 여전히 공산주의자들이 나치 독일의 망령과 부활을 비이성적으로 두려워하고 경계하게 된 원인에는 이 티거 중전차의 역할 역시 상당했다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각주

  1. 번역하면 6호 전차 H형이다. 독일어 Ausführung은 영어로 Version(버전)을 의미한다.
  2. 당시 포탑이 달린 거의 모든 독일 전차들은 2정의 MG 34를 장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대보병전 능력이 모두 뛰어났다.
  3. 단, 1944년부터는 티거의 후속작인 티거 II 중전차를 지급받고 최후까지 전투를 치루었다.
  4. 마르틴 슈로이프가 SS 무장친위대 소속인 관계로 종전 이후 독일 연방군에서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공식적으로 전적을 말소했다고 발표했으나 볼프강 슈나이더(Wolfgang Schneider) 독일 연방군 육군 대령의 저서들에서 마르틴 슈로이프의 전적이 저술된 것을 볼 때 어떤 식으로든 일종의 융통성을 발휘했는지 실제로는 완벽히 말소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의 다대한 전적과 존재가 역사에 영구히 기록되게 되었다. 제102SS중전차대대 소속. 인터넷 커뮤니티들에는 발터 슈로이프로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관련 학술자료들은 마르틴 슈로이프라고 하고 있으므로 마르틴 슈로이프가 정확한 이름이다.
  5. 1944년 전투 도중 부상으로 훈련소 교관으로 활동하다 종전을 맞이한다.
  6. 마르틴 슈로이프와 마찬가지로 SS 소속인 관계로 종전 이후 독일 연방군에서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전적을 말소했으나 이미 너무 유명해져버린 비트만의 전설을 가릴 수는 없었기에 별 의미는 없었다.
  7. 오토 카리우스의 중대 소속으로 카리우스가 가장 신뢰한 전차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