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라심 마르티노비치 발라사노프(Герасим Мартынович Баласанов, Gerasim Martynovich Balasanov, 1903~1976)는 해방 직후 평양 소련군정의 핵심 인사로 당시 계급은 대좌(대령)였다.[1][2] 1946년 1월 16일부터 2월 5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미소공동위원회 예비회담에 참석했고[3], 3월 20일 덕수궁(德壽宮)에서 개최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에도 참석했다.[4] 1947년에도 서울에 왔었다.[5]
1937년 이후로 Cheka-OGPU-NKVD (KGB 전신) 소속이었다.[2]
발라사노프 게라심 마르띄노비치 : 2등 서기관, 북조선 주둔 소련군사령관 정치고문, 미소공동위원회 소련대표, 소련외무성 소속.[6]
발라사노프는 일본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 일본말은 유창했으나 한국어는 거의 할 줄 몰랐다.[7] 서울의 소련영사관에서 부영사로 근무했던 아나톨리 샤브신이 1946년 7월 영사관 폐쇄로 평양으로 가서 발라사노프의 부관이 되었다.
<광복 5년사 쟁점 재조명><1부>⑬소련은 왜 일사불란했나 동아일보 2004-11-14
레베제프의 보좌진 중 가장 중요한 사람은 게라심 발라사노프 대령이었다. 아르메니아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전신인 국가공안부(MGB) 소속으로, 일본 주재 소련대사관에서 근무하면서 ‘극동전문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거기에 힘입어 그는 MGB의 북한지부장으로 임명됐다.
● 서울의 정보요원 샤브신과 박헌영
MGB 요원으로 서울 주재 소련총영사관의 부영사라는 대외직명을 가지고 활동하던 아나톨리 샤브신도 발라사노프의 지휘를 받았다.각주
- ↑ Баласанов, Герасим Мартынович
- ↑ 2.0 2.1 Balasanov, Gerasim Martynovich Stalin's Secret Police : 위 글의 구글 영역
- ↑ 북조선 주둔 소련군사령부와 남조선 주둔 미군사령부 대표자협의회의 결과보고서 한국학중앙연구원
- ↑ 美·蘇共同委員會 (李元卨) > Ⅴ. 第1次 美·蘇共委의 開幕 國史館論叢 第11輯 (국사편찬위, 1990-07-15)
- ↑ 共委 蘇대표단 일행, 작일 空·陸 양로로 離京 자유신문 1947년 10월 22일
- ↑ 해외사료총서 10권 쉬띄꼬프일기 > 쉬띄꼬프 일기(번역) > 쉬띄꼬프 일기 Ⅰ부 > 1946년 9월 9일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 Yossef Bodansky, Crisis in Korea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