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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6.25]] 때 소련군사고문관으로 참전한 사람으로 7년간 북한에 있었으며, 소련국방부 군사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을 지내고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1992년을 전후하여 러시아의 한국전참전용사회 회장을 지냈다.
그는 [[6.25]] 때 소련군사고문관으로 참전한 사람으로 7년간 북한에 있었으며, 소련국방부 군사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을 지내고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1992년을 전후하여 러시아의 한국전참전용사회 회장을 지냈다.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80300209204011&edtNo=3&printCount=1&publishDate=1992-08-03&officeId=00020&pageNo=4&printNo=21902&publishType=00020 金日成(김일성)—스탈린「6.25」事前(사전)논의] 1988.06.22 동아일보 3면
:英國(영국)에 韓國戰(한국전) 재조명 붐 著書(저서)|TV다큐멘터리서「證言(증언)」쏟아져
:蘇聯(소련) 공군 參戰(참전) 사실등 확인
:安保理(안보리) 불참은 스탈린 指示(지시)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70600209205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2-07-06&officeId=00020&pageNo=5&printNo=21875&publishType=00020 "한국戰(전)때 蘇軍(소군) 7萬(만)명 참전"] 동아일보 1992.07.06 / 5면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70600209205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2-07-06&officeId=00020&pageNo=5&printNo=21875&publishType=00020 "한국戰(전)때 蘇軍(소군) 7萬(만)명 참전"] 동아일보 1992.07.06 /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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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蘇機(미-소기) 공중전 兩國(양국) 1,700명 희생 추정
:美-蘇機(미-소기) 공중전 兩國(양국) 1,700명 희생 추정
:스탈린 “조종사 교신 露語(노어) 쓰지말라” 지시도
:스탈린 “조종사 교신 露語(노어) 쓰지말라” 지시도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80300209204011&edtNo=3&printCount=1&publishDate=1992-08-03&officeId=00020&pageNo=4&printNo=21902&publishType=00020 舊蘇(구소) 한국戰(전)때 고문단8百(백)50명 파견] 1992.08.03 동아일보 4면
:노보스티誌(지) 참전군인 증언공개
:참가사실 숨기려 민간복장┉2百(백)명 전사





2020년 2월 14일 (금) 10:24 판

게오르기 쿠즈미치 플로트니코프 (Георгий Кузьмич Плотников, Georgy Kuzmich Plotnikov, 1924~ )는 소련과 러시아의 군인이자 역사학자이다.

그는 6.25 때 소련군사고문관으로 참전한 사람으로 7년간 북한에 있었으며, 소련국방부 군사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을 지내고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1992년을 전후하여 러시아의 한국전참전용사회 회장을 지냈다.


英國(영국)에 韓國戰(한국전) 재조명 붐 著書(저서)|TV다큐멘터리서「證言(증언)」쏟아져
蘇聯(소련) 공군 參戰(참전) 사실등 확인
安保理(안보리) 불참은 스탈린 指示(지시)
英紙(영지) 당시 蘇(소) 참전군인 증언 토대 밝혀
擴戰(확전) 피하려 中國軍(중국군) 복장…美(미)도 모른체
美-蘇機(미-소기) 공중전 兩國(양국) 1,700명 희생 추정
스탈린 “조종사 교신 露語(노어) 쓰지말라” 지시도
노보스티誌(지) 참전군인 증언공개
참가사실 숨기려 민간복장┉2百(백)명 전사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