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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카이는 일본 헤이안 시대 초기의 승려이다. 시호는 홍법대사(弘法大師)<ref>원어를 존중해서 고호대사로도 부른다.</ref>. 사비를 털어서 [[당나라]]에 [[견당사]]로 갔으며 일본에서 [[진언종]]을 개창하였다. | 구카이는 일본 헤이안 시대 초기의 승려이다. 시호는 홍법대사(弘法大師)<ref>원어를 존중해서 고호대사로도 부른다.</ref>. 사비를 털어서 [[당나라]]에 [[견당사]]로 갔으며 일본에서 [[진언종]]을 개창하였다. | ||
[[사이초]]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속성으로 당에 유학을 갔고 천태종 쪽의 승려였던 사이초에 비해, 구카이는 당에서 밀교를 본격적으로 배워온 | [[사이초]]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속성으로 당에 유학을 갔고 법화경을 중요시하는 천태종 쪽의 승려였던 사이초에 비해, 구카이는 당에서 밀교를 본격적으로 배워온 밀교 쪽 승려였다. | ||
사이초는 구카이보다 처음에는 더 유명했고 나이도 7살정도 위임에도 불교하고 밀교에 관해서는 사이초를 거진 스승으로 모시고 의지를 하였다. | 사이초는 구카이보다 처음에는 더 유명했고 나이도 7살정도 위임에도 불교하고 밀교에 관해서는 사이초를 거진 스승으로 모시고 의지를 하였다. |
2022년 2월 1일 (화) 12:59 판
개요
구카이는 일본 헤이안 시대 초기의 승려이다. 시호는 홍법대사(弘法大師)[2]. 사비를 털어서 당나라에 견당사로 갔으며 일본에서 진언종을 개창하였다.
사이초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속성으로 당에 유학을 갔고 법화경을 중요시하는 천태종 쪽의 승려였던 사이초에 비해, 구카이는 당에서 밀교를 본격적으로 배워온 밀교 쪽 승려였다.
사이초는 구카이보다 처음에는 더 유명했고 나이도 7살정도 위임에도 불교하고 밀교에 관해서는 사이초를 거진 스승으로 모시고 의지를 하였다.
추측컨대 서로간의 견해차가 있었던 것 같다.
일본 불교의 성지 중 하나인 종교도시 고야산이 바로 구카이가 세우고, 구카이가 묻힌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