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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티베트 점령 및 위구르족 탄압, 천안문 사태 등의 인권 침해 문제들과 함께, 중국의 투자(차이나 머니)를 받은 나라들은 자주성을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으며, 전 세계적 판데믹을 일으킨 우한폐렴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흉이 중국의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라는 의혹으로 인해 반중감정이 심해지면서, 난징 대학살은 [[착짱죽짱]]을 실현한 유익한 활동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중국의 티베트 점령 및 위구르족 탄압, 천안문 사태 등의 인권 침해 문제들과 함께, 중국의 투자(차이나 머니)를 받은 나라들은 자주성을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으며, 전 세계적 판데믹을 일으킨 우한폐렴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흉이 중국의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라는 의혹으로 인해 반중감정이 심해지면서, 난징 대학살은 [[착짱죽짱]]을 실현한 유익한 활동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거짓 의혹==
* 난징 대학살 주장이 거짓이라는 설
# 1937년, 일본은 장개석의 군대와 난징에서 격돌하여 전투를 벌였는데, 이때의 민간인들은 강제로 안전구역(Refugee Safety zone)에 격리되었었고, 난징에 있었던 외국의 국제기관들도 그곳에 위치했었으며, 패배한 중국군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민간인들을 죽이고 민간인 복장으로 위장했다는 설
# 일본이 난징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기 1주일전, 난징의 치안총감 완은 해외 언론에 현재 난징의 인구가 20만명이라고 발표했음, 일본이 난징을 점령한지 5일이 지난 1937년 12월 18일, 민간인 안전구역에 위치해 있던 국제단체는, 현재의 인구가 20만명이라고 발표. 같은 달 21일에는 외국 협회가 현재 20만명이 있다고 발표
* 일본군인이 민간인에게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치가 크게 왜곡되어있으며, 오히려 중국군인들에게 살해당한 민간인이 대부분이었을 거라는 설이 크게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





2021년 4월 2일 (금) 01:24 판

개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에 의해 벌어진 전쟁범죄.1937년 말에서 1938년 초까지 벌어졌다

이 학살에서 적게는 수만의, 많게는 30만 이상의 난징 시민들이 학살당했다.

국민혁명군(현재 대만군)의 저항이 일본 제국의 예상보다 거세어 시간이 많이 지체된 일본 제국군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난징 시민들의 집에 불을 질렀고,난징 시민들을 장검으로 척살했으며 닥치는대로 사살하거나 검으로 베어 죽였다.

특히,끔찍한 것은 군인들이 누가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지 내기를 하는,일명 '100인 목베기 경쟁'도 벌어졌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그당시 중국 정부는,현재 중국 북경에 위치한 중국 공산당이 아닌,중화민국 국민당이었으며 난징은 이들의 수도였다.현재 중화민국 국민당은 대만의 보수주의 정당이며 대만의 제1야당이다.

일부 역사의식이 없는 극좌파들은 난징대학살을 축제에 비유하는 데,우파적 관점으로 보면 이들은 중세시대만도 못한 인권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담- 중국 공산당은 난징 대학살을 비롯한 일제국주의의 전범행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중국 공산당은 난징 대학살을 비롯한 제노사이드에 대해 일본에 적극 항의해왔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전혀 아니었다.

'모택동 인민의 배신자' 라는 책을 보면,모택동은 집권 당시 난징대학살을 언급하는 것도 금기시했다.

사실상 모택동은 일본 제국에 암묵적으로 협력해온 중국의 반민족행위자이다.

중국 공산당은 반한년(판한녠)이라는 스파이를 보내 국민당의 정보를 캐내 일본 제국에 넘겼으며,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에 '공산군의 70%를 세력확장,20%는 반우파(국민당)전투에,나머지 10%를 항일 전선에 투입한다' 라고 훈시했다.

이후 중공이 일본과 수교할때,모택동은 일본 관리에게 '중국을 공격해주어서 고맙다.덕분에 혁명을 완수 할 수 있었다.우리는 일본에 고마워해야한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F&nNewsNumb=201907100041


재해석

중국의 티베트 점령 및 위구르족 탄압, 천안문 사태 등의 인권 침해 문제들과 함께, 중국의 투자(차이나 머니)를 받은 나라들은 자주성을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으며, 전 세계적 판데믹을 일으킨 우한폐렴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흉이 중국의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라는 의혹으로 인해 반중감정이 심해지면서, 난징 대학살은 착짱죽짱을 실현한 유익한 활동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거짓 의혹

  • 난징 대학살 주장이 거짓이라는 설
  1. 1937년, 일본은 장개석의 군대와 난징에서 격돌하여 전투를 벌였는데, 이때의 민간인들은 강제로 안전구역(Refugee Safety zone)에 격리되었었고, 난징에 있었던 외국의 국제기관들도 그곳에 위치했었으며, 패배한 중국군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민간인들을 죽이고 민간인 복장으로 위장했다는 설
  2. 일본이 난징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기 1주일전, 난징의 치안총감 완은 해외 언론에 현재 난징의 인구가 20만명이라고 발표했음, 일본이 난징을 점령한지 5일이 지난 1937년 12월 18일, 민간인 안전구역에 위치해 있던 국제단체는, 현재의 인구가 20만명이라고 발표. 같은 달 21일에는 외국 협회가 현재 20만명이 있다고 발표
  • 일본군인이 민간인에게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치가 크게 왜곡되어있으며, 오히려 중국군인들에게 살해당한 민간인이 대부분이었을 거라는 설이 크게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