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에서 독도까지 거리는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들쑥날쑥하지만 대략 90 km 정도이다.

독도의 영유권을 두고 한일간의 분쟁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한국의 역대 독도 관련 기록을 정리해 본다.

개요

삼국사기에 나오는 우산국은 독도 아닌 울릉도를 지칭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조선초에 오면 현재의 울릉도는 주로 무릉도로 기록되고, 우산도라는 무릉도와는 다른 별개의 섬이 함께 나온다. 이 우산도를 독도로 볼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이 세종실록 지리지이다. 두 섬이 거리가 멀지 않아 맑은 날에는 서로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울릉도에서 맑은 날에는 독도를 볼 수 있지만 흐린 날에는 보이지 않는다. 맑은 날에도 좀 높이 올라가야 보인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많이 올라있다. (망원렌즈로는 잘 잡히므로 별 의미가 없고 보통렌즈로 찍은 사진도 있다.) 울릉도에 바로 붙어있는 죽도나 관음도는 날씨에 관계없이 잘 보이므로 이러한 우산도는 독도일 수 밖에 없다.

조선왕조실록을 [무릉도, 우산도, 울릉도] 등으로 검색해보면 태종이 울릉도 공도 정책을 시행한 이후로도 울릉도에 사람들이 계속 들락거리고 있었고, 관리도 파견한다.

숙종 때 안용복 사건으로 해서 우산도를 오늘날의 독도로 인식하게 되고, 이후 국정에 참고하기 위해 편찬한 관찬 백과사전 동국문헌비고 (1770년)에 우산도와 울릉도를 기록하고, 우산도는 일본인들이 말하는 송도(松島, 마츠시마)라고 명기하였는데, 이는 오늘날의 독도임에 이견이 없다. 관찬의 동국문헌비고에 이렇게 기록한 것은 당시 우산도(= 일본인들이 말하는 송도 = 오늘날의 독도)를 조선 영토로 명기한 것과 같다.

지도에 나오는 우산도는 위치가 오락가락이고 정확하지 않지만 울릉도와는 별개의 섬으로 인식하는 섬이 있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1900년 이전 고지도를 보면 섬들 뿐만 아니라 육지의 지도에 나오는 지명의 방향이나 위치도 들쑥날쑥하므로 정보가 많지 않았던 우산도의 위치도 정확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동국문헌비고를 증보하여 1908년에 간행한 증보문헌비고에도 우산도(독도)와 울릉도가 나오는데, 신설된 울도군에 속한다고 명기하였다. 증보문헌비고는 범례에 1906년에 편찬완료했고, 1904년까지의 일을 기록한다고 했다. 이로보면 1904년에 독도를 울도군에 속한다고 기록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역대 독도 관련 기록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