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석춘․김광동, 북한 친일(親日)청산론의 허구와 진실 시대정신 2013년 봄호
“일제잔재 청산이라는 해방이후 전 국민의 숙원인 이 주제를 어떻게 다루어 내는가 하는 문제는 정치가로서의 승패가 달린 관건적 안건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떠오르던 많은 정치인사들 중 누구보다 정치 감각이 탁월했던 김일성은 이를 자기 권력기반 형성에 완벽하게 이용하였다. 그 대표적 방법이 인구 70 %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사회에서 일제시기 땅마지기나 가지고 있던 자들을 우선 처벌하는 일이었다. 3천 평 이상 소유한 자는 지주, 천오백 평부터는 부농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땅을 무상 몰수하는 것과 동시에 본인들은 전부 타고장으로 이주시켰다. 이들의 개인적 사정을 알 바 없는 낯선 고장 사람들은 국가가 ‘친일주구’ ‘역적’이란 딱지를 붙여놓은 추방자들을 심판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 심판대에 오른 사람들은 피비린내를 맡기 전에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군중 히스테리의 제물로 고스란히 바쳐졌다. 군중의 열기가 고조되면 될수록 김일성의 정치적 카리스마는 급상승하였다. 김일성은 북한인들을 ‘적대계급’ 증오사상으로 자극시킬 때 그것이 가져올 반사작용의 효과를 알았다. 농민들에게 땅을 무상으로 분배해 준 자신에 대한 숭배열이었다. 김일성이 무상 분배한 땅은 ‘국가’의 이름하에 곧 압수될 정치 미끼일 뿐이었다. 농민들은 얼마안가 나라에 땅을 몰수당하고 ‘사회주의’의 미명하에 지주의 머슴에서 수령의 노예로 신분이동을 하였다.”
북한의 철저한 친일청산이란 소비에트(soviet)화를 합리화시키고 나아가서 북한을 공산주의 체제로 재편하기 위한 수단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가혹한 전체주의 공산혁명에 다름 아니었다.[1]
- 브라이언 마이어스 : 북한 전문가. 부산 동서대 교수. 독일의 튀빙겐 대학에서 북한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김일성 치하의 문화에 대한 개척적인 연구라 할 만한 『한설야와 북한문학(Han Sorya and North Korean Literature)』을 출간
- 북한의 일본인 기술자 특별 대우
이들을 위해 일본어로 강의하는 학교, 일본어 신문 발간 등 허용.
“이로 인해 북한에 남게 된 일본인 기술자는 1946년 11월 868명이나 되었고 1947년에는 405명이 되었다. … 일본인 기술자에게는 월 4,500~5,000원을 지급했다.
당시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김일성)이 4,000원, 동 인민위원회 과장급이 1,500원, 일반 사무원이 800~1,000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좋은 대우를 해 주었는가. … 흥남공장에서는 일본인 기술자 콘키치(昆吉朗)를 ‘노력영웅’으로 표창까지 했다.”[5]
- 북한 정권에 참여한 친일파[6]
각주
- ↑ 류석춘․김광동, 북한 친일(親日)청산론의 허구와 진실 시대정신 2013년 봄호
- ↑ '김사량은 ... 친일작가이기도 했다'-가와무라 미나토, 문학평론가
- ↑ B. R. 마이어스,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 -Part 1 북한의 문화사 : 소련 점령, 1945~1948년
- ↑ (저자 인터뷰) “북한은 인종론에 기초한 극우정권 친일파 우대, 김일성 우상화에 이용했다”/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 저자 B.R. 마이어스 [주간조선 2186호] 2011.12.19
<김관후의 4·3칼럼> (51) 계엄선포 당시 국무총리 겸 국방장관을 역임한 이범석 제주의 소리 2015년 08월 31일 - ↑ 오원철, 1999. ‘한국형 경제건설 제7권’Pp. 303-4
- ↑ 김일성, 정권 잡으려 반대파 가차없이 숙청… 친일파가 득세 /“남로당 출신 등 학살하고 빨치산 동료 35% 박해 문화일보 : 2013년 08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