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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archive.history.go.kr/id/AUS002_24_05C0012 RG 59, Central Files, The Decimal File, 1910-63, 740.00119, Control(Korea) Series, 1945.10-1945.12, Attitudes towards Occupation Forces in Korea]
: [http://archive.history.go.kr/id/AUS002_24_05C0012 RG 59, Central Files, The Decimal File, 1910-63, 740.00119, Control(Korea) Series, 1945.10-1945.12, Attitudes towards Occupation Forces in Korea]
: pp.1~7 한경직/윤하영 목사의 청원서  KyungJik Han / Ha Young Yoon
: pp.1~7 한경직/윤하영 목사의 청원서  KyungJik Han / Ha Young Yoon
===소련군의 만행에 대한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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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64174&C_CC=AP 집단강간과 '다와이'… 짐승만도 못한 ‘야만적인 소련軍’] - 김집(金鏶) 조갑제닷컴 현대사 체험수기 우수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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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각주==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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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2일 (수) 17:03 판

1945년 8월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은 여러 가지 만행을 저질렀다. 양민에 대한 무차별 약탈과 부녀자 강간이 일상적으로 일어났고, 일제가 지은 발전소, 공장 등 산업시설을 해체하여 소련으로 반출하고, 쌀등의 식량도 가져갔다. 무수히 많은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형하거나 시베리아로 끌고 갔다.

당시 사정을 기록한 문헌으로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소련군 중좌 페드로프가 연해주군관구 군사위원 스티코프 상장에게 올린 보고서

2010년에는 1945년 12월 29일 소련군 중좌 페드로프가 소련군 진주 후 북한의 황해도와 평안남북도 등 3개도를 방문조사한 뒤 만든 총 13p 분량의 보고서가 공개되었는데, 보고서 내용에는 258 소총사단장 드미트리예프 대좌는 “조선사람은 35년간 노예로 있었다. 좀 더 노예로 있게 하자”는 말도 남겼다고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1][2]


윤하영 / 한경직 목사가 미군정청에 제출한 청원서

광복 직후 소련군 만행 폭로…故 한경직 목사 ‘비밀청원서’ 발견돼 중앙일보 2017.08.16
故 한경직 목사가 증언한 해방 후 북한, '비밀청원서' 발견 YTN 2017-08-16
RG 59, Central Files, The Decimal File, 1910-63, 740.00119, Control(Korea) Series, 1945.10-1945.12, Attitudes towards Occupation Forces in Korea
pp.1~7 한경직/윤하영 목사의 청원서 KyungJik Han / Ha Young Yoon


소련군의 만행에 대한 증언


각주

  1. 1945년 北 진주 소련의 붉은 군대는 해방군 아닌 약탈군이었다 2010-03-10 동아일보
  2. Untitled memorandum on the political and morale situation of Soviet troops in North Korea and the economic situation in Korea January 11, 1946 [Korea (North)--Politics and government - Wilson Center Digital Archive]: 평양의 소련군 중좌 페드로프가 소련군 진주 후 북한의 황해도와 평안남북도 등 3개도를 방문조사한 뒤 만들어 연해주군관구 군사회의위원인 스티코프 상장에게 올린 13쪽짜리 보고서. 당시 소련군의 약탈 상황을 가감 없이 현장감 있게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