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글편집 요약 없음
잔글편집 요약 없음
13번째 줄: 13번째 줄:
김일성 중심의 임시인민위원회 구성 소식; 조만식의 구금.<br>
김일성 중심의 임시인민위원회 구성 소식; 조만식의 구금.<br>
미소위원회가 평양서 열리는 줄로 잘못알고 북한 다녀온 기자의 현지 사정 증언:  1월 3일 학생, 근로자 4,000여명 동원한 평양의 관제 찬탁 데모.- 처음에는 독립시위로 속임.  '''북한 주민의 공산당 지지율 20% 미만.'''<br>
미소위원회가 평양서 열리는 줄로 잘못알고 북한 다녀온 기자의 현지 사정 증언:  1월 3일 학생, 근로자 4,000여명 동원한 평양의 관제 찬탁 데모.- 처음에는 독립시위로 속임.  '''북한 주민의 공산당 지지율 20% 미만.'''<br>
'''소련군이 수풍댐([https://en.wikipedia.org/wiki/Sup%27ung_Dam Sui-ho Dam])에서 철거한 발전시설을 청진으로 운송하기 위해 평양 철도 관리국장 김원걸 및 기술자 10여명이 현지로 가서 선로 연결 작업'''</li>
'''소련군이 수풍댐([https://en.wikipedia.org/wiki/Sup%27ung_Dam Sui-ho Dam])에서 철거한 발전시설을 선박으로 실어가기 위해 청진으로 수송할 수 있도록 평양 철도 관리국장 김원걸 및 기술자 10여명을 현지로 파견하여 선로 연결 작업을 시킴.'''</li>





2018년 8월 23일 (목) 07:27 판

1945년 8월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은 여러 가지 만행을 저질렀다. 양민에 대한 무차별 약탈과 부녀자 강간이 일상적으로 일어났고, 일제가 지은 발전소, 공장 등 산업시설을 해체하여 소련으로 반출하고, 쌀등의 식량도 가져갔다. 무수히 많은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형하거나 시베리아로 끌고 갔다. 김일성은 이런 일을 뻔히 보면서도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소련의 산업설비 반출에 협력하기도 했는데, 스탈린에 의해 소련의 대리인으로 발탁된 인물의 한계를 보여준다.

당시 사정을 기록한 문헌으로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소련군 중좌 페드로프가 연해주군관구 군사위원 스티코프 상장에게 올린 보고서

2010년에는 1945년 12월 29일 소련군 중좌 페드로프가 소련군 진주 후 북한의 황해도와 평안남북도 등 3개도를 방문조사한 뒤 만든 총 13p 분량의 보고서가 공개되었는데, 보고서 내용에는 258 소총사단장 드미트리예프 대좌는 “조선사람은 35년간 노예로 있었다. 좀 더 노예로 있게 하자”는 말도 남겼다고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1][2]


소련군의 산업설비 반출에 대한 김일성의 협력

  • G-2 Periodic Report : 1946.02.18 미군 정보참모부(G-2) 보고서
    김일성 중심의 임시인민위원회 구성 소식; 조만식의 구금.
    미소위원회가 평양서 열리는 줄로 잘못알고 북한 다녀온 기자의 현지 사정 증언: 1월 3일 학생, 근로자 4,000여명 동원한 평양의 관제 찬탁 데모.- 처음에는 독립시위로 속임. 북한 주민의 공산당 지지율 20% 미만.
    소련군이 수풍댐(Sui-ho Dam)에서 철거한 발전시설을 선박으로 실어가기 위해 청진으로 수송할 수 있도록 평양 철도 관리국장 김원걸 및 기술자 10여명을 현지로 파견하여 선로 연결 작업을 시킴.
  • 美軍政 情報報告書 - 駐韓美陸軍司令部惰報參謀部 日日報告書 - 第2卷 (1946. 2-1946. 7) 國土統-院 : p.91에 평양 철도국장 김원걸이 수풍댐 갔다는 부분 나옴.
    (4) 그 신문기자가 보낸 계속된 보고는 소련군이 수이호 댐 (수풍동(800-1990))에서 발전기를 제거하고 있으며 이를 청진(1250 - 2150)항을 거쳐 운반하고 있다고 한다. 평양의 철도 보수국장인 김원걸 (KIM, Won Gul)이 10명의 기술자와 함께 수이호 댐으로 갔는데 이는 이 기계가 철도로 운반될 수 있도록 철도 운반도를 마련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어서 였다.


윤하영 / 한경직 목사가 미군정청에 제출한 청원서

광복 직후 소련군 만행 폭로…故 한경직 목사 ‘비밀청원서’ 발견돼 중앙일보 2017.08.16
故 한경직 목사가 증언한 해방 후 북한, '비밀청원서' 발견 YTN 2017-08-16
RG 59, Central Files, The Decimal File, 1910-63, 740.00119, Control(Korea) Series, 1945.10-1945.12, Attitudes towards Occupation Forces in Korea
pp.1~7 한경직/윤하영 목사의 청원서 KyungJik Han / Ha Young Yoon


소련군의 만행에 대한 증언


각주

  1. 1945년 北 진주 소련의 붉은 군대는 해방군 아닌 약탈군이었다 2010-03-10 동아일보
  2. Untitled memorandum on the political and morale situation of Soviet troops in North Korea and the economic situation in Korea January 11, 1946 [Korea (North)--Politics and government - Wilson Center Digital Archive]: 평양의 소련군 중좌 페드로프가 소련군 진주 후 북한의 황해도와 평안남북도 등 3개도를 방문조사한 뒤 만들어 연해주군관구 군사회의위원인 스티코프 상장에게 올린 13쪽짜리 보고서. 당시 소련군의 약탈 상황을 가감 없이 현장감 있게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