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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27에 齋藤總督狙擊事件判決이 나옴 : 김창균(金昌均), 이의준(李義俊)에 대한 사형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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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e-gonghun.mpva.go.kr/portal/url.jsp?ID=PV_DJ_A011_003.015.000.000 재등(齋藤)총독 저격 - 독립운동사자료집 11 : 의열투쟁사자료집 / 의열투쟁신문기사록] 공훈전자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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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11일 (월) 06:21 판

1924년 5월 압록강 일대를 순시하던 사이토 마코토(齋藤 實, 1858 ~ 1936)[1] 조선 총독이 혜산진에서 배를 타고 압록강을 따라 신의주로 향하던 중 5월 19일 만포진 부근에서 저격을 받은 사건으로, 별 피해는 입지 않았다.[2] 당시에는 총독부의 언론 통제 탓인지 이 사건은 신문에 일체 보도되지 않아 오늘날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총독의 국경 순시 일정과 사건의 경과

총독의 국경 순시 일정과 사건의 경과는 아래와 같다.[3]

-1924년 5월 8일 (목)

오전8시 5분 경성역 출발 (관민 제씨(諸氏)의 환송), 오후 2시 25분 평양 도착, 유옥(柳屋) 호텔에 묵다. 면회자 수십명.

-1924년 5월 9일 (금)
오전 8시 평양여관 출발, 자동차 7대로 平元도로를 달리다. 11시가 지나 成川에 도착. 군청 경찰서 순시. 양덕군청에서 잠깐 쉬고 양덕온천에서 유숙.

-1924년 5월 10일 (토)
오전 5시 온천 출발. 양덕경찰서 앞에서 집합, 6시 출발. 마식령 넘어 11시 30분 원산 도착. 다수 관민 및 학교 생도 환영. 도계(道界)에서 함남지사·경찰부장 등 영접. 오후 5시 넘어 함흥 도착. 도청에서 관민 접견. 일출여관에서 묵다. 만찬. 지사관사에서 관민 32명 초대.

-1924년 5월 11일 (일)
면회. 오전 8시 30분 여관 출발. 자혜의원, 상품진열소, 고등보통학교 시찰. 9시 15분 함흥 출발. 11시가 지나 홍원군역소에서 관공리 지방유지 접견. 바로 신포로 향해 12시 45분에 도착. 오후 1시 지나 신포 출발 오후 4시 북청 도착. 군청에서 관공리 지방유지 접견, 농업학교 시찰. 5시 여관에서 묵다.
(함흥. 홍원. 용원, 신포, 양화, 후창, 북청에서 학교 생도 및 지방민이 도열(堵列) 송영(送迎))

-1924년 5월 12일 (월)
면회. 오전 9시 북청 출발, 10시 이곡, 11시 지나 직동(直洞). 후치령 넘어 오후 3시 풍산 도착. 군청에서 관공리 지방유지 접견, 풍산 여관에서 묵다.

-1924년 5월 13일 (화)
오전 8시 풍산 출발. 관민 다수 송견(送見). 풍산, 창평리, 상리 등 학교 생도 출영. 11시 갑산 도착. 군청에서 관민 유지 등 접견. 정오 12시 갑산 출발. 오후 2시반 혜산진 도착. 자혜병원 및 수비대 시찰. 혜산진 및 對岸 장백의 전경을 보다. 오후 7시 지방관민 유력자 및 장백현지사 이하 초빙 향응, 34명 참석.

-1924년 5월 14일 (수)
우천으로 혜산진에 체류. 오전 장백부 시찰. 면회. 장백현지사 동영삼으로부터 중국요리 대접받음.

-1924년 5월 15일 (목)
오전 6시 혜산진 출발. 하강. 好仁에 상륙. 오후 6시 신갈파에 상륙. 관공리 유지 접견. 수비대, 영림창지청 시찰.

-1924년 5월 16일 (금)
배를 타고 송전, 후창, 주재소 상륙 시찰, 동흥경찰서 및 나죽주재소, 응성, 무창은 지나침. 오후 4시 부창에 도착. -1924년 5월 17일 (토)
오전 8시 부창 출발. 10시 15분 장흥경찰관주재소 상류 시찰, 12시 10분 중강진 도착. 오후 소학교, 영림창지청, 측후소, 보통학교, 면사무소 순시. 7시 만찬회 개최. 중국측 임강현 지사 이하 7명, 지방 유지를 아울러 약 40명 내회(來會).

-1924년 5월 18일 (일)
오후 8시 중강진 출발. 도중 토성, 자성, 운봉 경찰서 상륙 시찰. 오후 4시 5분 만포진에 도착. 관민 영접. 문흥경찰서 주민 접견. 만포관에 유숙. 오후 7시 만흥경찰서에서 집안현 지사 이하 중국인 5명 관민 합쳐 36명 초청 향응.

-1924년 5월 19일 (월)
오전 7시 만포진 출발. 8시 반 고산진에 상륙. 오전9시 5분 종류도(從流島)의 상류 암애(巖崖) 위에서 선도선(先導船) 비조환(飛鳥丸)에 2-3발의 총화가 쏟아짐. 해선(該船)의 경위순사가 응사 7-8발. 산상의 도적은 숨음. 10시 위원 구읍에 상륙. 12시 초산(楚山) 앙토(央土)에 상륙. 오후 5시 벽동 도착, 관민다수 영접.

-1924년 5월 20일 (화)
오전 6시30분 출발. 7시 45분 봉곡 통과. 관민 학교생도 등 다수 강안 정렬.(서행) 9시 창주 도착. 11시 10분 배의 기계파손으로 구영포에 도착. 오후 12시 50분 창성진 도착. 보통학교에서 안동현 등 중국 측 관리 등 주객 30여명 오찬. 오후 3시 중국 창성진 출발. 의주에 도착. 관민 출영. 7시 신의주에 도착.

-1924년 5월 21일 (수)
면회. 오전 8시부터 경비정으로 다사도 시찰. 용암포에서 관민 환영. 오전 11시 40분 용암포 출발 1시 지나 다사도 도착. 오후 5시 45분 신의주 세관 부두 상륙.

오후 7시 평안북도청에서 중국 동변도윤 이하 7인 기타 안동, 신의주 관민 70여명 초대.

-1924년 5월 22일 (목)

오전 9시 15분 신의주 출발. 오후 9시 20분 경성 도착.
북청 여관 사진, 혜산진 수비대 사진도 있다.

김일성 장군의 거사라는 소문이 퍼짐

압록강 일대를 순시하던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을 저격한 사건의 연루자는 한동안 잡히지 않았고,[2][3][4] 나중에 다른 사람이 한 일로 밝혀지지만[5][6][7][8], 항간에는 김일성 장군이 한 일로 소문이 나돌았다.[9] 당시는 1921년 9월 24일의 갑산군 함정포(含井浦) 사건[10][11][12][13] 등 국경 근처에서 일어나는 어지간한 사건은 으례 김일성 장군이 한 일로 소문이 났다고 한다.[9]

이 기사는 김일성 장군의 이름은 1937년 보천보사건 때부터가 아니라 1920년대 초에도 이미 유명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한 북한 김일성이 1920년 무렵부터 유명했던 김일성 장군이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건 관련자들의 체포 및 처벌

처음에는 사건의 내막이 전혀 알려지지 않다가 나중에 관련자들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으면서 언론에 보도가 되었다. 이들은 참의부 제1중대장 백광운(白狂雲)의 부하 김창균(金昌均)과 이의준(李義俊)이다.[7][3]

사이토 총독을 저격한 독립운동세력은 참의부(參議府)였다. 참의부(대한민국임시정부 陸軍駐滿參議府)는 192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직할군단으로 조직되었다. 참의부원인 김창균(金昌均)은 이의준(李義俊) 등 대원 10여명을 이끌고 1924년 5월 사이토 총독의 국경순시 때 강계군 고산면 남상동 대안(對岸) 절벽(마시탄강변)에서 사이토 총독을 저격했으나 실패했다. 이후에도 1924년 8월 위원군 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꾸준히 무장독립투쟁을 전개하다 1926년 9월 위원경찰서에 체포되었다. 김창균·이의준은 1928년 11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으나 복역하다 옥사했다(『東亞日報』 1928년 9월 22일, 27일, 11월 8일자).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백광운(白狂雲)의 본명은 채찬(蔡燦, ? ~ 1924)인데[14], 사건 몇 달 후 독립운동 세력간의 알력으로 살해 당했다.[5]

p.27에 齋藤總督狙擊事件判決이 나옴 : 김창균(金昌均), 이의준(李義俊)에 대한 사형 판결.

다른 사이토 총독 암살 미수 사건

1919년 9월 2일 강우규(姜宇奎)가 서울역에서 제3대 조선 총독으로 부임해 오던 사이토(齋藤實)를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일.
1923년 1월 사이토 총독 암살 계획 실행을 위해 서울에 잠입했으나 여의치 않자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추격을 받자 자살함.
1924년 채찬(蔡燦)[14]·이청산(李靑山) 등과 총독 사이토[齋藤實]를 암살할 것을 계획하였으나 미수에 그침.
1926년 4월 28일 송학선(宋學先, 또는 宋學善)이 창덕궁의 금호문 앞에서 조선 총독 사이토(齋藤實)를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

각주

  1. 사이토 마코토(齋藤 實, 1858 ~ 1936)
  2. 2.0 2.1 總督狙擊事件ニ関スル件 : 大正十三年五月十九日 警務局 - 日帝暗黑期統治史料集. 1 ~ 10권 (東京 : 韓國史料硏究所, 1970) 9권 pp.596~597
  3. 3.0 3.1 3.2 해외사료총서 15권 일본소재 한국사 자료 조사보고 Ⅲ > 미즈사와(水沢) 사이토 마코토(斎藤実)기념관 소장 일제시기 사진자료 해제 > Ⅲ. 사이토의 식민통치 특성과 지방 순시 1924년 5월 19일 (월): 오전9시 5분 從流島의 상류 巖崖 위에서 先導船 飛鳥丸에 2-3발의 총화가 쏟아짐. 該船의 경위순사가 응사 7-8발. 산상의 도적은 숨음.
  4.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지방 순시 압록강 일대 순시 당시 사진 : 북청 여관 사진, 혜산진 수비대 사진도 있다.
    사이토 총독(齋藤總督) 국경시찰여정(國境視察旅程) 1924.05.08 동아일보 1면
  5. 5.0 5.1 사이토 총독(齋藤 總督) 저격한 백광운(白狂雲) 사망설 동아일보 1924.09.28 일자 2면
  6. 사이토 총독(齋藤總督) 저격범(狙擊犯) 참의부원(參議府員) 이병준(李秉俊) 피착(被捉) 1926.12.28 동아일보 2면
  7. 7.0 7.1 齋藤總督(재등총독)을 狙擊(저격)한 參議府員 豫審終結(참의부원 예심종결) : 압록강 하류에서 총독 탄배를 저격 경호대와 오래동안 총화 밧군 사건 1927.10.17 동아일보 2면
  8. 김승학(金承學), 한국독립사(韓國獨立史) (서울: 獨立文化社, 1965) p.351
  9. 9.0 9.1 이명영(李命英, 1928-2000), "金日成列傳 (新文化社, 1974)" pp.29~30 : 1924년 당시 북청군청 직원이었던 김흥교(金興敎, 1893~?)는 사이토 총독이 북순(北巡) 당시 북청군(北靑郡)에 들렀다 혜산진 방면으로 떠난 며칠 후 총독 저격 사건이 있었고, 김일성 장군이 한 일이라는 풍문이 돌았다고 증언했다.
  10. 甲山 含井駐在所(갑산함정주재소)에 爆發彈(폭발탄)을 投擲(투척) 독립단 이십명이 폭탄을 던지고 영림창출장소와 면소까지 방화 駐在所 下人一名 慘死(주재소하인일명참사) 동아일보 1921-09-27 03면
    含井駐在所(함정주재소)를 襲擊(습격)한 光復軍 一名 逮捕(광복군일명체포) 1922.02.25 동아일보 3면
    駐在所(주재소)와 營林廠(영림창)을 爆彈(폭탄)으로 襲擊(습격) 1926.07.17 동아일보 2면
  11. 二十名의 獨立團이 甲山敵駐在所를 襲擊 독립신문 1921-10-05
    甲山敵駐在所 襲擊 詳報 독립신문 1921-11-19
  12. 이명영(李命英, 1928-2000), "金日成列傳 (新文化社, 1974)" pp.27~29 : 1921년 당시 갑산군 동인면장이었던 김상형(金相瀅, 1889~?)은 그 사건이 김일성 장군이 한 일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증언했다.
  13. 함경남도 행정구역 개정안 부도의 갑산군(甲山郡) 지도 : 1913년 : 갑산(甲山) 바로 북쪽에 회린면(會麟面)이 있고, 그 인근 북동쪽에 함정포(含井浦)가 나온다. 그 북쪽으로 압록강에 면해서 혜산진(惠山鎭)이 있고, 또 그 북쪽으로 보천보(普天堡)가 보인다.
  14. 14.0 14.1 채찬(蔡燦, ? ~ 1924) 일명 백광운(白狂雲)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