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글 (→다른 사이토 총독 암살 미수 사건) |
잔글편집 요약 없음 |
||
4번째 줄: | 4번째 줄: | ||
==개요== | ==개요== | ||
압록강 일대를 순시하던 [https://ko.wikipedia.org/wiki/사이토_마코토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을 저격한 사건이 1924년 5월 19일에 있었는데,<ref>[[:파일:1924-05-19 總督狙擊事件.pdf|總督狙擊事件ニ関スル件 : 大正十三年五月十九日 警務局 ]] - [http://www.nl.go.kr/nl/search/bookdetail/online.jsp?contents_id=CNTS-00047959555 日帝暗黑期統治史料集. 1 ~ 10권] (東京 : 韓國史料硏究所, 1970) 9권 pp.596~597</ref><ref>[http://db.history.go.kr/id/fs_015_0120_0030 해외사료총서 15권 일본소재 한국사 자료 조사보고 Ⅲ > 미즈사와(水沢) 사이토 마코토(斎藤実)기념관 소장 일제시기 사진자료 해제 > Ⅲ. 사이토의 식민통치 특성과 지방 순시] 1924년 5월 19일 (월): 오전9시 5분 從流島의 상류 巖崖 위에서 先導船 飛鳥丸에 2-3발의 총화가 쏟아짐. 該船의 경위순사가 응사 7-8발. 산상의 도적은 숨음.<br>[http://contents.history.go.kr/mphoto/1920/1920_period01_01.do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지방 순시] 압록강 일대 순시 당시 사진 : 북청 여관 사진, 혜산진 수비대 사진도 있다.<br>[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405080020920103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4-05-08&officeId=00020&pageNo=1&printNo=1349&publishType=00020 사이토 총독(齋藤總督) 국경시찰여정(國境視察旅程)] 1924.05.08 동아일보 1면</ref> 나중에 다른 사람이 한 일로 밝혀지지만<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409280020920200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4-09-28&officeId=00020&pageNo=2&printNo=1492&publishType=00020 사이토 총독(齋藤 總督) 저격한 백광운(白狂雲) 사망설] 동아일보 1924.09.28 일자 2면<br> |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6122800209202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6-12-28&officeId=00020&pageNo=2&printNo=2268&publishType=00020 사이토 총독(齋藤總督) 저격범(狙擊犯) 참의부원(參議府員) 이병준(李秉俊) 피착(被捉)] 1926.12.28 동아일보 2면<br>[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710170020920200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7-10-17&officeId=00020&pageNo=2&printNo=2561&publishType=00020 활동경로(活動經路)와 범행전말(犯行顚末)] 1927.10.17 동아일보 2면</ref><ref>김승학(金承學), [http://www.nl.go.kr/nl/search/bookdetail/online.jsp?contents_id=CNTS-00047814855 한국독립사(韓國獨立史)] (서울: 獨立文化社, 1965) p.351</ref>, 항간에는 김일성 장군이 한 일로 소문이 나돌았다.<ref name="leemy">이명영(李命英, 1928-2000), "金日成列傳 (新文化社, 1974)" pp.29~30 : 1924년 당시 북청군청 직원이었던 김흥교(金興敎, 1893~?)는 사이토 총독이 북순(北巡) 당시 북청군(北靑郡)에 들렀다 혜산진 방면으로 떠난 며칠 후 총독 저격 사건이 있었고, 김일성 장군이 한 일이라는 풍문이 돌았다고 증언했다.</ref> 당시는 1921년 9월 24일의 갑산군 함정포(含井浦) 사건<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1092700209203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1-09-27&officeId=00020&pageNo=3&printNo=395&publishType=00020 甲山含井駐在所(갑산함정주재소)에 爆發彈(폭발탄)을投擲(투척) 독립단이십명이폭탄을던지고영림창출장소와면소까지방화 駐在所下人一名慘死(주재소하인일명참사)] 동아일보 1921-09-27 03면<br>[http://search.i815.or.kr/subContent.do?initPageSetting=ns&readDetailId=DR192111190301 甲山敵駐在所 襲擊 詳報] 독립신문 1921-11-19<br>이명영(李命英, 1928-2000), "金日成列傳 (新文化社, 1974)" pp.27~29 : 1921년 당시 갑산군 동인면장이었던 김상형(金相瀅, 1889~?)은 그 사건이 김일성 장군이 한 일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증언했다.</ref><ref>[[:파일:함경남도 갑산군 회린면.jpg|함경남도 행정구역 개정안 부도의 갑산군(甲山郡) 지도 : 1913년]] : 갑산(甲山) 바로 북쪽에 회린면(會麟面)이 있고, 그 인근 북동쪽에 함정포(含井浦)가 나온다. 그 북쪽으로 압록강에 면해서 혜산진(惠山鎭)이 있고, 또 그 북쪽으로 보천보(普天堡)가 보인다.</ref> 등 국경 근처에서 일어나는 어지간한 사건은 으례 김일성 장군이 한 일로 소문이 났다고 한다.<ref name="leemy" /> 이 기사는 김일성 장군의 이름은 1937년 [[보천보사건]] 때부터가 아니라 1920년대 초에도 이미 유명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6122800209202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6-12-28&officeId=00020&pageNo=2&printNo=2268&publishType=00020 사이토 총독(齋藤總督) 저격범(狙擊犯) 참의부원(參議府員) 이병준(李秉俊) 피착(被捉)] 1926.12.28 동아일보 2면<br>[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710170020920200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7-10-17&officeId=00020&pageNo=2&printNo=2561&publishType=00020 활동경로(活動經路)와 범행전말(犯行顚末)] 1927.10.17 동아일보 2면</ref><ref>김승학(金承學), [http://www.nl.go.kr/nl/search/bookdetail/online.jsp?contents_id=CNTS-00047814855 한국독립사(韓國獨立史)] (서울: 獨立文化社, 1965) p.351</ref>, 항간에는 김일성 장군이 한 일로 소문이 나돌았다.<ref name="leemy">이명영(李命英, 1928-2000), "金日成列傳 (新文化社, 1974)" pp.29~30 : 1924년 당시 북청군청 직원이었던 김흥교(金興敎, 1893~?)는 사이토 총독이 북순(北巡) 당시 북청군(北靑郡)에 들렀다 혜산진 방면으로 떠난 며칠 후 총독 저격 사건이 있었고, 김일성 장군이 한 일이라는 풍문이 돌았다고 증언했다.</ref> 당시는 1921년 9월 24일의 갑산군 함정포(含井浦) 사건<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1092700209203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1-09-27&officeId=00020&pageNo=3&printNo=395&publishType=00020 甲山含井駐在所(갑산함정주재소)에 爆發彈(폭발탄)을投擲(투척) 독립단이십명이폭탄을던지고영림창출장소와면소까지방화 駐在所下人一名慘死(주재소하인일명참사)] 동아일보 1921-09-27 03면<br>[http://search.i815.or.kr/subContent.do?initPageSetting=ns&readDetailId=DR192111190301 甲山敵駐在所 襲擊 詳報] 독립신문 1921-11-19<br>이명영(李命英, 1928-2000), "金日成列傳 (新文化社, 1974)" pp.27~29 : 1921년 당시 갑산군 동인면장이었던 김상형(金相瀅, 1889~?)은 그 사건이 김일성 장군이 한 일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증언했다.</ref><ref>[[:파일:함경남도 갑산군 회린면.jpg|함경남도 행정구역 개정안 부도의 갑산군(甲山郡) 지도 : 1913년]] : 갑산(甲山) 바로 북쪽에 회린면(會麟面)이 있고, 그 인근 북동쪽에 함정포(含井浦)가 나온다. 그 북쪽으로 압록강에 면해서 혜산진(惠山鎭)이 있고, 또 그 북쪽으로 보천보(普天堡)가 보인다.</ref> 등 국경 근처에서 일어나는 어지간한 사건은 으례 김일성 장군이 한 일로 소문이 났다고 한다.<ref name="leemy" /> 이 기사는 김일성 장군의 이름은 1937년 [[보천보사건]] 때부터가 아니라 1920년대 초에도 이미 유명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 ||
2020년 3월 3일 (화) 19:03 판
1924년 5월 19일에 일어난 압록강 일대를 순시하던 사이토 마코토(齋藤 實, 1858 ~ 1936)[1] 조선 총독에 대한 저격 사건이다. 당시에는 총독부의 언론 통제 탓인지 신문에 일체 보도되지 않아 오늘날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건 이다.
개요
압록강 일대를 순시하던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을 저격한 사건이 1924년 5월 19일에 있었는데,[2][3] 나중에 다른 사람이 한 일로 밝혀지지만[4][5], 항간에는 김일성 장군이 한 일로 소문이 나돌았다.[6] 당시는 1921년 9월 24일의 갑산군 함정포(含井浦) 사건[7][8] 등 국경 근처에서 일어나는 어지간한 사건은 으례 김일성 장군이 한 일로 소문이 났다고 한다.[6] 이 기사는 김일성 장군의 이름은 1937년 보천보사건 때부터가 아니라 1920년대 초에도 이미 유명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 파일:전설의 김일성 장군.jpg : 사이토 총독에 대한 저격은 김일성 장군의 거사라는 민중일보 1945년 10월 14일자 1면 기사.
다른 사이토 총독 암살 미수 사건
- 사이토저격의거(狙擊義擧)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 1919년 9월 2일 강우규(姜宇奎)가 서울역에서 제3대 조선 총독으로 부임해 오던 사이토(齋藤實)를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일.
- 김상옥(金相玉, 1889~1923)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사이토 총독 암살 계획 실행을 위해 서울에 잠입했으나 여의치 않자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추격을 받자 자살함.
- 남자현(南慈賢, 1872~1933)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 1924년 채찬(蔡燦)·이청산(李靑山) 등과 총독 사이토[齋藤實]를 암살할 것을 계획하였으나 미수에 그침.
- 금호문의거(金虎門義擧)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 1926년 4월 28일 송학선(宋學先, 또는 宋學善)이 창덕궁의 금호문 앞에서 조선 총독 사이토(齋藤實)를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
각주
- ↑ 사이토 마코토(齋藤 實, 1858 ~ 1936)
- ↑ 總督狙擊事件ニ関スル件 : 大正十三年五月十九日 警務局 - 日帝暗黑期統治史料集. 1 ~ 10권 (東京 : 韓國史料硏究所, 1970) 9권 pp.596~597
- ↑ 해외사료총서 15권 일본소재 한국사 자료 조사보고 Ⅲ > 미즈사와(水沢) 사이토 마코토(斎藤実)기념관 소장 일제시기 사진자료 해제 > Ⅲ. 사이토의 식민통치 특성과 지방 순시 1924년 5월 19일 (월): 오전9시 5분 從流島의 상류 巖崖 위에서 先導船 飛鳥丸에 2-3발의 총화가 쏟아짐. 該船의 경위순사가 응사 7-8발. 산상의 도적은 숨음.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지방 순시 압록강 일대 순시 당시 사진 : 북청 여관 사진, 혜산진 수비대 사진도 있다.
사이토 총독(齋藤總督) 국경시찰여정(國境視察旅程) 1924.05.08 동아일보 1면 - ↑ 사이토 총독(齋藤 總督) 저격한 백광운(白狂雲) 사망설 동아일보 1924.09.28 일자 2면
사이토 총독(齋藤總督) 저격범(狙擊犯) 참의부원(參議府員) 이병준(李秉俊) 피착(被捉) 1926.12.28 동아일보 2면
활동경로(活動經路)와 범행전말(犯行顚末) 1927.10.17 동아일보 2면 - ↑ 김승학(金承學), 한국독립사(韓國獨立史) (서울: 獨立文化社, 1965) p.351
- ↑ 6.0 6.1 이명영(李命英, 1928-2000), "金日成列傳 (新文化社, 1974)" pp.29~30 : 1924년 당시 북청군청 직원이었던 김흥교(金興敎, 1893~?)는 사이토 총독이 북순(北巡) 당시 북청군(北靑郡)에 들렀다 혜산진 방면으로 떠난 며칠 후 총독 저격 사건이 있었고, 김일성 장군이 한 일이라는 풍문이 돌았다고 증언했다.
- ↑ 甲山含井駐在所(갑산함정주재소)에 爆發彈(폭발탄)을投擲(투척) 독립단이십명이폭탄을던지고영림창출장소와면소까지방화 駐在所下人一名慘死(주재소하인일명참사) 동아일보 1921-09-27 03면
甲山敵駐在所 襲擊 詳報 독립신문 1921-11-19
이명영(李命英, 1928-2000), "金日成列傳 (新文化社, 1974)" pp.27~29 : 1921년 당시 갑산군 동인면장이었던 김상형(金相瀅, 1889~?)은 그 사건이 김일성 장군이 한 일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증언했다. - ↑ 함경남도 행정구역 개정안 부도의 갑산군(甲山郡) 지도 : 1913년 : 갑산(甲山) 바로 북쪽에 회린면(會麟面)이 있고, 그 인근 북동쪽에 함정포(含井浦)가 나온다. 그 북쪽으로 압록강에 면해서 혜산진(惠山鎭)이 있고, 또 그 북쪽으로 보천보(普天堡)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