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1979년 10.26이후 1980년 5월 17일 전국계엄까지


과도정부였던 최규하가 박정희 때 시국사범들이나 긴급조치로 구속된 정치인들이 죄다 사면복권 해 주면서, 좌익들이 마치 자기들 세상인냥 활개치던 시기를 말한다.


좌익 입장에서는 재세상 맞난듯 서울의 봄이었겠지만, 당시 정부 입장에서는 봄이 아니었다. 도리어 국가위기상황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사후 권력은 무주공산 사태였고 김대중 김영삼이 배후로 학생소요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격화되고, 북한의 남침위협이 고조되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