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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페르디난드 드러커(1909년 11월 19일 - 2005년 11월 11일)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미국인 경영 컨설턴트, 교육자, 작가로 활동한 인물로서, 그의 저작물은 현대 기업의 철학적인, 실용적인 기초를 세우는 데 기여하였다. 그는 경영학 교육의 발전을 이끌었고, 목표와 자기 통제에 의한 경영(management by objectives and self-control)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통한다.

트러커의 저서와 학술 또는 비학술적인 글들은 기업, 정부, 사회의 비영리 부문에서 사람이 어떻게 조직되는가를 탐구하였다. 그는 경영의 이론과 실제라는 주제에 관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이자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민영화 및 탈중앙화, 일본의 경제 강국 부상, 시장의 결정적인 중요성, 정보화 사회의 출현과 평생 교육의 필요성을 포함한 20세기 후반의 주요한 흐름을 예언하기도 했다. 1959년에는 "지식 노동자"라는 용어를 만들어냈고, 그후 지식 노동자의 생산성이 앞으로의 경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이름이 들어간 세 개의 연구소가 있다: 미국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의 그러커 연구소(Drucker Institute)와 the Peter F. Drucker and Masatoshi Ito Graduate School of Management, 중국의 the Peter F. Drucker Academy. 해마다 그의 고향인 비엔나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념하여 세계 피터 드러커 포럼(Global Peter Drucker Forum)이 열린다.

생애

드러커는 오스트리아-헝거리의 "자유주의적 분위기의" 루터교 집안에서 자랐다. 어머니 캐롤라인 본다이(Caroline Bondi)는 의학을 공부했으며, 아버지 아돌프 그러커(Adolf Drucker)는 변호사이자 고위 공무원이었다. 드러커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카스그라벤(Kaasgraben)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지식인, 고위 공무원, 과학자들이 그의 집에 모여 새로운 사상에 대해 토론을 하곤 했다. 그들 중에는 슘페터(Joseph Schumpeter), 하이예크(Friedrich Hayek), 미제스(Ludwig von Mises)와 이모부인 한스 켈젠이 포함되어 있었다.

1927년 되블링 김나지움(Döbling Gymnasium)을 졸업한 뒤에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비엔나에서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독일 함부르크로 이주하여 처음에는 안정적인 목화 무역 회사에서 견습생으로 일을 하다가, 뒤에 Der Österreichische Volkswirt(The Austrian Economist)라는 잡지 기자로 일했다. 그후 프랑크프루트로 옮겨서 Daily Frankfurter General-Anzeiger 신문에 취직했다. 프랑크푸르트에 있었던 1931년에는 Goethe University Frankfurt에서 국제법과 공법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33에, 드러커는 독일을 떠나 영국으로 갔다. 런던에서, 그는 보험 회사에서 일하다가, 그 뒤 개인 은행의 경제 분석관(the chief economist)으로 자리를 옮긴다. 한편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알고 지내던 도리스 슈미츠(Doris Schmitz)와 다시 연락이 되어서, 두 사람은 1934년에 결혼하였다. 드러커 부부는 미국으로 영구 이민을 하며, 그곳에서 드러커는 프리랜서 작가, 기업 컨설턴트, 대학 교수 등으로 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