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3] 정찰국 소속 공작원(124부대)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하여 서울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하였던 사건.

총 침투한 31명중 사살 29명[4], 미확인 1명, 투항 1명(김신조 소위)의 전과를 올렸다. 유일한 생존자인 김신조의 이름을 따서 이 사건을 일명 '김신조 사건'이라고도 한다.

김신조는 이튿날의 기자회견에서 침투 목적을 묻는 기자에게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라고 밝혀 온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기도 했다.

원래 북한에서 최초로 세운 작전은 세자리 숫자의 병력을 침투시켜서 본대는 청와대를 기습해서 박정희를 암살하고 나머지는 각 조별로 미 대사관 공격 및 요인 암살, 국방부 공격 및 요인암살, 교도소 공격후 죄수 석방 등 서울 시내에 총체적인 대혼란을 유도하고 석방시킨 죄수와 공격조가 동반 월북 후에 삐라를 뿌려서 남한내 반정부 세력의 의거로 꾸민다는 대규모 계획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한국판 테트 대공세를 노린다는 것이다.[5] 그러나 여러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작전을 축소해서 30여명을 침투시켜서 청와대를 습격하는 것으로 최종결정이 난것이다. 참고로 김신조는 원래 교도소 공격조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