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반석(康盤石, 1892.04.21~1932.07.31)은 북한 김일성의 모친으로, 강돈욱(康敦煜, 1871~1943)과 위돈신(魏敦信,1870년~?) 사이의 딸이며, 강진석(康晋錫, 1890~?)의 여동생이다. 강반석은 평범한 가정주부로 외부활동이 별로 없었던 탓에 그녀에 대한 당시 기록은 거의 없다. 그녀의 이름 한자도 盤石이 아니라 盤錫일 가능성이 있다.(錫은 칠골 康씨 집안 煜자 항렬 자녀들의 항렬 글자이며, 강반석의 남자형제들도 모두 錫자 항렬을 따르고 있다. 당시에 여자들도 같이 형제들의 항렬을 따르는 경우도 있었다. 盤石은 기독교에서 베드로를 가리키는 번역어라고 하는데, 베드로는 남자이므로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서구에서도 Peter를 여자 이름으로 쓰지는 않는다.)

개요

강반석은 1926년 남편 김형직이 사망한 후 재혼했다는 주장이 꾸준히 있어왔는데, 재혼 자체는 사실로 보이나 재혼한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설이 구구하다. 예를 들면 만주 안도현(安圖縣) 경찰서장 목한장(穆漢章)에게 재가했다는 설,[1][2] 안도현의 조선인 지주 조광준에게 재가했다는 설[3][4] 등이 있지만 기록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북한에서는 강반석의 재혼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다.

김일성 회고록에 나오는 그녀의 대단한 활동들은 거의 모두 조작으로 보이며, 사실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김형직과의 결혼 배경과 재혼

탈북 작가 장해성과 탈북 기자 김길선의 아래 유튜브 방송 대담에 관련 내용이 나온다,

    • 11분 04초 : 김일성 부모 결혼 배경.
      김형직이 살던 고평면 남리에 김경식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칠골에 있는 교회를 다니면서 강돈욱과도 잘 알게 되었고, 자기 마을 고평면 남리에 교회를 세우면서 그 과정에 김형직과 강반석의 결혼을 주선했다고 한다.
    • 12분 04초 : 강반석의 재혼.
      김형직 사후에 강반석은 만주 안도현(安圖縣)의 지주 조광준과 재혼하여 5~6개월 가량 함께 살았다고 하며, 조광준은 지주라서 해방 직후 살해 당했다고 한다.
      중국 조선족 출신 재미작가 유순호도 같은 주장을 하는데[3][4] 둘 중 한 사람은 다른 쪽의 말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넬슨 벨 선교사가 김일성 부모의 결혼 중매를 했다는 유순호의 주장은 명백히 틀린 것이라 그의 말은 믿기 어렵다.

방송에 나오는 탈북작가 장해성은 김일성 우상화를 담당하는 북한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정치교양국 혁명1부에서 기자겸 작가로 20여년간 재직했고, 김길선은 제2자연과학출판사에서 정책담당 기자로 17년간 활동했다. 이들은 북한에서 일반인이 접할 수 없는 여러 김일성, 김정일 관련 역사 서적과 문건들을 많이 접했고, 들은 바도 많은 사람들이라서 믿을만한 증언으로 판단된다.

해방 후 김형직과 강반석 묘의 이장

해방 후 김일성이 북한의 권력자가 된 뒤 안도현에 있던 모친 강반석의 묘는 1947년 6월 3일에, 무송현에 있던 부친 김형직의 묘는 한달 뒤인 7월 4일에 만경대 뒷산으로 이장했다고 한다.

주로 김일성의 어머니를 중심으로 서술되며, 김일성의 유년기에서부터 부모의 사망과 해방 후 이장(移葬)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5]

만경대 김형직, 강반석의 묘

아래 기사에 평양의 만경대에 있는 김형직과 강반석의 묘 사진과 흉상의 사진이 나와 있다. 흉상 왼편 봉분이 김형직, 흉상 오른 쪽 뒤편 봉분이 강반석의 묘로 보인다.

칠골혁명사적지

평양 칠골에 있는 김일성의 외가이자 강반석의 친정집 인근은 칠골혁명사적지로 조성되어 강반석의 전신 좌상이 세워져 있다.

잘못 알려진 사안들

미국인 선교사 Nelson Bell(1894~1973)이 그녀의 이름을 강신희에서 강반석으로 바꾸어 주었고, 김형직과의 결혼도 중매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런 설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불분명하나[6] 연변 조선족 출신 재미 작가 유순호가 자신의 책에 이런 주장을 수록하여 많이 퍼진 것으로 보인다.[7][4] 그러나 이런 말은 전혀 근거없는 낭설이며, Bell은 평양 아닌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했고, 중국으로 처음 온 해도 1916년으로 김일성이 태어난 이후이다. 1930년대에 Bell은 딸들을 평양의 외국인 학교에 보냈는데, 그 중 둘째 딸이 나중에 Billy Graham목사의 부인이 된 Ruth Graham(1920~2007)이다. Billy Graham 목사가 평양도 방문하고, 김일성을 만난 것도 부인이 1930년대 초 평양에서 학교를 다녔던 연고 때문이며, 장인 Nelson Bell은 김일성 집안과 어떤 연고도 없다. Ruth Graham은 병 때문에 남편의 평양 방문에 동행하지 못하고, 김일성 사후에 자녀들과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강돈욱과 친분이 있던 미국인 선교사는 Nelson Bell(1894~1973)이 아닌 마포삼열(馬布三悅, Samuel A. Moffet, 1864~1939)이며, 그는 김성주도 다닌 적이 있는 창덕학교 설립자 중 한 사람으로[8] 이사로도 재직했다. 1918-1928 기간에 숭실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 교장을 지냈다고 한다.[9] 그러나 그가 김일성 부모의 결혼을 중매했다는 말도 없다.

참고 자료

각주

  1. 김용삼, 김정은의 할아버지 김일성 - 진실을 말하다 미래사 2018-06-25 : 1부 김성주로 태어나다 / • 중국인 경찰대장에게 재가(再嫁)하는 어머니 강반석
  2. [화요초대석] 광복군은 중국군, 홍범도는 소련군에게… 매일신문 2023-10-02
  3. 3.0 3.1 유순호, 김일성 평전 (상), (지원출판사, 2017년) pp.163~166; 김일성 1912~1945 (상), (서울셀렉션, 2020년)
  4. 4.0 4.1 4.2 [김씨 일가의 숨겨진 진실] 김일성 회고록에 나오지 않는 강반석의 재혼 RFA 2023-08-16
  5. 최강미, 웃음 웃는 지도자 - 해방 직후 북한소설의 ‘김일성’ 형상, 『상허학보』 59집, pp.355~399, Dec 2020
  6. 김진섭 교수, "역대하 7:14, 남북통일 운동 성경적 출발점" 기독일보 2014. 05. 30
  7. 유순호, 김일성 평전 (상), (지원출판사, 2017년) pp.30~31; 김일성 1912~1945 (상), (서울셀렉션, 2020년)
  8. 私立彰德校(사립창덕교) 財團法人申請(재단법인신청) 1931.05.23 동아일보 3면
  9. [내한선교사] Moffett, Samuel A. 평양대부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