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업 병풍(兵風) 사건은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김대업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문제와 관련하여 관계자들이 은폐를 위한 대책회의를 가졌다는 허위 폭로를 하고 KBS 등 주요 언론사들이 연일 크게 보도하여 지지율 1위였던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무려 12% 가량 폭락하게하여 근소한 표 차이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사건을 말한다.

사건의 개요

2002년 대선 당시 2002년 5월 21일 오마이뉴스가 김대업의 말을 인용,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문제에 대한 허위 주장을 보도하여 당시 지지율 1위이던 이회창 후보에 치명상을 입히고 지지율을 대폭 떨어뜨려 근소한 표 차이로 낙선하게 만든 사건이다.[1][2]

병풍사건은 2002년 5월 21일 오마이뉴스가 김대업씨의 말을 인용, ‘이회창 후보측이 아들의 병역비리 은폐를 위한 대책회의를 가졌다’고 보도한 데서 비롯됐다. 이후 김씨는 7월 31일 기자회견을 갖고 직접 이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했고, 이를 받아 당시 민주당 등은 이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를 집중 공격했다. 김씨는 대선 이후 구속됐다.
대법원2부(주심 김용담·金龍潭)는 최근 “당시 의혹을 제기한 김대업씨, 의혹을 보도한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의 발행인 오연호씨 등 4명과 주간지 ‘일요시사’의 발행인 이용범씨 등 2명은 한나라당측에 합계 1억6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사건의 원심(原審) 판결문도 <2002. 8.에서 9.경 사이에 실시된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가 병역비리의혹으로 인하여 최대 11.8%까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 적시하였고[3][4], 상급심에서도 원심 판결이 확정되었다. 이 사건이 사실상 대통령 당선자를 바꾼 것이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회고록에서 이 사건에 대해 김대업의 배후에 당시 최고 권력의 비호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로 보고 있다.[5]

야당 후보로서 대통령 재수(再修)에 나섰던 昌(이회창)은 ‘대세론’을 업고 타 경쟁자를 압도했으나 아들들의 병역기피 의혹 논란에 다시 휩쓸리면서 추격을 허용했었다(대법원은 2005년 5월 병역 의혹을 제기한 김대업과 이를 보도한 오마이뉴스를 유죄 확정 판결했다. 의정부사관 출신 김대업은 병역문제 전문가로 행세하며 관련 문건을 작성, 언론에 흘렸고 KBS는 이를 9시뉴스에 80여 차례나 집중 방송하는 등으로 昌에게 타격을 가했다. 이후 지지율이 일거에 11%나 빠졌다. 제15대 대선 당시 병풍이 교묘하게 병역을 기피했다는 ‘편법(便法)’ 시비라면 16대는 ‘탈법(脫法)’으로 강도를 높인 게 다르다. 김대업은 수감자 신분이면서 서울지검에서 8개월 동안 수사관 행세를 하고 검찰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야당이 당시 대통령 DJ를 배후라고 주장하는 것도 김대업의 행위가 최고 권력의 비호가 없었다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다).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 관련 허위폭로로 징역형을 받은 김대업의 출소를 환영하러 나온 사람들.[6]

이 사건으로 징역형을 살고 나온 김대업은 사건의 가장 큰 수혜자인 대통령 당선자 노무현을 취임 전과 후에 두 차례 만났다고 했다. 허위 폭로 댓가로 자신이 지급받기로 되어있던 50억원이 중간에 배달사고가 나서 모 광역단체장이 착복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있었으나 이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7][8]

2002년 대선은 김대업의 허위 주장을 언론들이 앞다투어 연일 집중 보도한 때문에 대통령 당선자가 바뀐 사상 최악의 부정선거라고 할 수 있지만, 법의 미비로 제대로 조사와 단죄가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선거 결과를 무효화할 방법도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게되는 1960년의 3.15 부정선거는 대통령 선거가 아닌 부통령 선거의 문제였으므로, 2002년 대선은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국민의 정당한 투표권 행사를 왜곡한 이 사건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1960년 이전으로 후퇴했다고도 볼 수 있다.

노무현의 사건 관련 발언

노무현은 대통령 당선 후 김대업의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 관련 허위폭로를 방송들이 연일 크게 보도해 준 덕에 당선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고, 재임 기간에 방송사들에 떡을 쥐어주려 애썼다.

노무현 정권은 노 대통령이 취임 직후 "내가 방송 아니었으면 대통령이 됐겠느냐"고 한 이래 내내 정권의 전위대 노릇을 해준 공영방송들에 '떡'을 쥐어주려 애썼다. 그러고도 결국 낮 방송만 허용해 줬을 뿐 갖가지 광고 확대 시도들은 실패했다.[9]

노무현은 당선자 신분으로 선거운동 기간중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기사를 많이 실어준 한겨레 신문사를 방문하기도 하고, 한겨레의 정연주를 KBS 사장으로 발탁했다. 김대중, 노무현 재임기간 내내 KBS, MBC 등 공영방송은 정권의 입 노릇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방송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대통령이 됐겠느냐”며 코드 방송을 부추기는 발언을 했다.

또한 노무현은 대통령 재임중 경영난을 겪는 한겨레신문에 1천만원의 기부금을 내겠다고 하였으나 비판이 일자 한겨레신문은 이를 고사하기도 했다. 퇴임후 노무현이 가족의 뇌물수수로 검찰수사를 받게되자 친노세력은 스스로 폐족의 위기에 몰렸다고 한탄했고, 한겨레 신문은 노무현의 자살을 권유하는 듯한 기사를 싣기도 했다.[10] 한겨레신문 애독자였던 노무현도 그 기사를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 직후 노무현이 실제로 자살하면서 갑자기 국민적 영웅으로 재부상하게되고, 스스로 폐족이라던 친노세력도 되살아났다.


기억하자! 김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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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