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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
金學鐵, 金学铁
기본정보
본명
홍성걸
국적
조선족
성별
남성
출생일
1916년 11월 4일
출생지
함경남도 원산
사망일
2001년 9월 25일
직업
기자, 소설가
정당
조선민족혁명당
학력
서울 보성고등학교 졸업
주요작품
해란강아 말하라(1954), 격정시대(1986) 외 다수

김학철(金學鐵, 金学铁, 1916.11.04 ~ 2001.09.25)의 본명은 홍성걸(洪性杰)이며, 함경남도 원산 출생으로 중국공산당 산하에서 항일투쟁을 하다 부상당하고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석방되어 서울에서 좌익 정치 활동을 하다 1946년 11월 월북하여, 북한에서 로동신문사 론설기자, 인민군신문 주필 등을 지냈으나 좌천 당하자 중국으로 갔다. 그는 문필가로서 상당한 작품활동을 했으나 중국에서도 많은 탄압을 받아 오랫동안 집필 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1988년 중공서울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한국과 교류의 물꼬가 트여 그의 작품들이 한국에서도 출판되었다.

약력

【김학철 략력】[1]

1916년 11월 4일 조선 원산에서 태여남, 본명 홍성걸(洪性杰.)
1934년 서울 보성고등학교 졸업.
1935년 상해림시정부를 찾아 중국 상해로 망명. 상해에서 심운에 포섭되여 의렬단에 가입. 석정의 령도아래 반일지하테로활동 종사.
1936년 조선민족혁명당 입당, 김원봉의 부하가 됨. 중앙본부 소재지는 남경 화로강(花露岗).
1937년 중국중앙륙군군관학교(황포군관학교, 교장 장개석) 입학.
1938년 중앙륙군학교 졸업, 소위 참모로 국민당군대에 배속. 10월 무한에서 조선의용대창립, 창립대원으로 제1지대 소속.
1940년 8월 29일 중국공산당에 가입.
1941년 12월 12일 하북성 원씨현(元氏县) 호가장(胡家庄)전투에서 일본군과 교전중 부상,포로됨.
1942년 1~4월 석가장 일본총령사관에서 심문받음. 당시《일본국민》으로 10년 수감판결,
5월 북경~부산~일본 일본나가사끼형무소(长崎刑务所)에 수감.
단지 전향서를 쓰지 않는다는 리유로 총상당한 다리를 치료받지 못함.
1945년 수감 3년 6개월만에 좌각절단.
8월 15일 일본 투항.
10월 9일 맥아더사령부(GHQ)의 정치범석방명령으로 송지영 등과 함께 출옥.
11월 1일 조선독립동맹 서울시위원회 위원으로 좌익정치활동, 소설창작.
1946년 11월 좌익탄압으로 월북.
1947년 로동신문사 론설기자, 인민군신문 주필, 창작활동. 김혜원(金惠媛)녀사와 결혼.
1948년 외금강휴양소 소장으로 좌천.
1950년 10월 중국으로 감.
1951년 1월부터 중국 북경 중앙문학연구소(소장은 정령)에서 연구원으로 창작활동.
1952년 10월 주덕해 초청으로 연변에 정착. 연변문학예술계련합회 주비위원회 주임으로 활동.
1954년 장편소설《해란강아 말하라》(상, 중, 하) 연변교육출판사 출판.
1957년 반동분자로 숙청당해 24년동안 창작권리 박탈.
1967년 12월부터《20세기의 신화》를 쓴 죄로 징역살이 10년. 연길류치소(미결), 추리구(秋梨沟)감옥 복역.
1977년 12월 만기출옥, 향후 3년간 반혁명전과자로 실업.
1980년 12월 복권. 24년만에 65세의 나이로 창작활동 재개.
1983년 전기문학《항전별곡》출판해서부터 장편소설《격정시대》(상,하) 산문집《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자서전《최후의 분대장》, 장편소설《20세기의 신화》, 《김학철문집》 1~2, 3~4권 출판.
1994년 3월 KBS 해외동포상(특별상) 수상.
2001년 9월 25일 연길시(延吉市)에서 타계.

김일성의 비서실장 고봉기의 유서》 대필 의혹

1989년 5월 서울에서 《김일성의 비서실장 고봉기의 유서》라는 책이 간행되었다.

그런데 고봉기(高鳳基, 1916~ ?)는 실제 김일성의 비서질장을 지낸 인물이 맞지만, 연안파 숙청때 화를 당한 그가 과연 이런 책을 쓸 수 있었을 것인지 논란이 되어왔다. 책의 내용에 그는 1959년 말에 출소하여 소비조합 중앙 부위원장으로 임명받고 활동하였다고 나온다. 그러나 최근 그는 1959년말경 처형당한 것으로 확인되었다.[2] 그렇다면 그는 이 책의 실제 저자는 아닌 것이 확실하고, 누군가가 그의 이름으로 대필한 위작이므로 책의 내용도 믿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일찍부터 이 책의 실제 저자로 김학철이 지목되었다. 김학철 문학관에 올라있는 연보에도 그의 저서로 나오고, 연변대학 석사학위 논문에도 그의 저서라고 했으니, 이 책은 고봉기가 아니라 김학철이 쓴 것이 확실해 보인다.

1989년 (73세) : 보고문학 《고봉기유서》, 한국 마천사 출판; 단편소설집 《무명소졸》, 한국 풀빛사 출판; 산문집 《태항산록》, 한국 대륙연구소 출판.
[p.1 각주2] 세 편의 장편소설 외에 《범람》(1952), 《번영》등 두 편의 중편소설, 《새 집 드는 날》(1953), 《고민》(1957), 《김학철단편소설선》(1985), 《김학철작품선》(1987), 《무명소졸》(1989) 등 다섯 권의 단편소설집, 《태항산록》(1989),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1994), 《나의 길》(1996), 《우렁이 속 같은 세상》(2001), 《사또님 말씀이야 늘 옳습지》(2002) 등 다섯 권의 산문집, 전기문학 《항전별곡》(1983), 보고문학 《고봉기 유서》(1989), 자서전《최후의 분대장》(1995) 등을 출간하였고《태양은 상건하를 비춘다》(1953), 《풍파》(1956) 등 여섯 권의 번역저서를 내놓았다. 그가 일생동안 창작한 산문은 387 편에 이른다. 1985 년 5월부터 연변인민출판사에서 김학철의 작품들을 정리하여 문집 다섯 권으로 출판하였다.
이정 박헌영 전집 / 제 8 권 신상자료ㆍ회고ㆍ증언ㆍ주세죽 자료 / 2. 회고ㆍ증언 / 1. 일반 증언 / 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 평양시당 위원장 고봉기의 유서
...한국에서 보낸 조신이라는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위 『고봉기의 유서』는 중국 연변의 소설가 김학철에 의해 집필된 것이라고 한다(1992년 6월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조신의 증언, 김학철 본인에게 확인하지는 못했음). 『유서』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이미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김학철의 문체와 거의 동일하고, 김학철 역시 독립동맹에서 활동하다가 북한을 거쳐 중...
북한노동당 기요과장(機要課長: 김일성 비서실장) 등을 지냈으며,...... 그러나 1958년 4월 김일성 개인숭배에 반대를 표명한 ‘종파 사건’에 연루되어 숙청당하였다.
1989년에 대한민국 천마출판사에서 출간된 『고봉기의 유서(高峰起의 遺書)』 저자로 알려져 있었으나, 『고봉기의 유서』의 실제 저자는 조선족 작가 김학철(金學鐵)로 밝혀졌다.
[연변 소설가 김학철은]... 가장 순수했던 공산주의자로서 1988년 남한의 금서들이 해금된 다음에야 풀빛사에서 『격정시대』와 『해란강아 말하라』가 나온 이듬해 73세의 나이로 1946년 월북 후 첫 서울 나들이에 나서서 마천사에서 『고봉기 유언』과 풀빛사에서 『무명소졸』, 『태항산록』등을 냈다. 1991년에는 김일성의 56년 8월 종파사건을 일으켜 야반도주로 압록강을 나룻배로 건넜던 옛 전우 서휘, 강진세 등을 그의 망명처(중국 땅)로 방문하여 만나봤으며, 1994년에는 남한 KBS 해외동포상을 수상했고, 1995년에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을 냈다. 1998년 우리민족서로돕기 운동본부 초청으로 몇 번 더 남한을 방문했고 '자랑스러운 보성인'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2001년 연길시에서 타계했다. 유언에 의해 유체는 화장하여 두만강에 뿌려졌고 일부는 우편함에 담아 동해바다로 보냈다. 우편함에는 원산 앞바다 행 김학철' 이라 쓰였다.
정자환의 말대로 1988년 한국에서 김학철의 저서 『격정시대』와 『해란강아 말하라』가 나왔지만, 천마사에서 『고봉기의 유서』를 1989년 5월에 간행한 후인 9월에 김학철이 서울을 방문하여 2달여간 체류하며 다른 책도 간행했다.[3][4] 당시 김학철의 책들이 다수 간행되고, 그도 서울을 다녀간 것으로 보아 『고봉기의 유서』도 그가 쓴 책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김학철의 숨겨진 유작‘
‘20년전 저작자 실명을 공개하지 못한채 출판되되었던 禁書
북한의 전 주석 김일성의 비서실장 “고봉기의 유서(高峰起의 遺書)”

고봉기는 일제 침략시 중국에서 항일투쟁을 하였고 김학철과 같은 중국 중앙군관학교 출신이다. 일제가 항복한후 북한으로 돌아가 평북 정주군당 책임비서로부터 북한노동당의 기요과장(김일성의 비서실장)과 6.25전쟁 기간에는 함북도당 위원장을 거쳐 전쟁이 끝난 후에는 한동안 외무성부상에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김학철은 중국시절부터 친구이자 동지였던 고봉기와 평양에서 살 때 무척 가깝게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학철은 김일성의 박해를 받고 고봉기보다 한발 앞서 망명하였으며 북한에 남았던 고봉기는 김일성의 개인숭배를 반대하다가 숙청되고 말았다.

  1989년 5월 “高峰起의 遺書”를 출판 발행한 한국의 “도서출판 천마”에서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재미 학자가 민간 경로를 통해 중국 본토에서 입수한 것이라고 설명하였으나, 김학철과 연안에서 함께 왔던 유동호는 생전에 “고봉기는 살았을 때 유서를 쓴 일이 없고, 이 유서는 김학철이가 고봉기의 유서처럼 꾸며서 만든 것이다”고 밝혔다고 한다.
일본군 학도병 출신으로 화북에서 팔로군과 전투하다가 포로되어 義擧한 유동호는 해방후 연변에서 살았으며 문학에도 각별한 흥취를 가지고 창작활동을 진행한바 있으나 대표작품을 남구지 못하였다.
  김학철은 “高峰起의 遺書”에서 그 자신이 직접 평양에서 보고 들어왔던 많은 공개되지 않은 사실들을 폭로하였다. 제보되어 온 기사와 함께 “고봉기의 유서”를 직접 전달받은 재미 조선족출신 작가 유순호는 “이 책은 1945년 9월부터 1958년 3월까지의 북의 통치자 김일성 개인을 중심으로 북한의 심장부에서 벌어졌던 정치, 사회사적 실제 사건들을 상당히 생생하게 기록하고 폭로하였으나 일부 김일성의 항일투쟁사와 관련하여서는 誤導되고 있는 부분들도 적지 않다”고 소감을 말했다.

"高峰起의 遺書”에서 소개되고 있는 내용에 의하면 김일성은 6. 25전쟁 직후 자신의 정적이었던 남로당의 박헌영, 이승엽, 이강국 등 사람들은 물론 연안파의 무정장군과 서휘, 윤공흠 등 혁명가들을 모조리 숙청하였을 뿐만 아니라 만주에서 함께 나온 항일연군 출신 선배인 김책까지도 연탄가스중독사건을 조작하여 암해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작고한 유동호가 제보자에게 직접 밝힌바에 의하면 “비록 저작자 실명을 감추고 출판된 책이나 후에 북한에서는 김학철이 실제 저작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책이 출판된후 김학철은 북한에서 나온 정체불명의 사나이로부터 가택침입을 당하여 “다시 한번 북을 모욕하는 글을 쓰면 제명에 죽지못할줄 알아라.”는 위협을 당하였던 사실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 자료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