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李泳禧, 1929년 12월 2일 ~ 2010년 12월 5일)는 한양대 교수로 재직하며 1970, 80년대 많은 대학생들에게 북한과 중공, 베트남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을 퍼뜨렸던 주역이다. 노무현, 문재인[1] 및 386 친중 종북 세력의 사상적 대부이다.
생애
- 리영희(李泳禧) 위키백과
- 이동호(李東湖), [한 386의 고백] 나의 사상적 스승 리영희를 비판한다 : 『리영희와 左派는 더이상 사실을 속여서는 안된다』 월간조선 2005.09[2]
- 모택동(毛澤東)과 문화혁명 일방 미화(美化)
- 反美·대한민국 현대사 왜곡
- 386을 사상적 혼돈으로 인도
- 리영희가 본 것은 사회주의 나라의 實在가 아니라 선전 문구였다.
- [횡설수설/이정훈] 리영희 동아일보 2010-12-06
성 李는 "이"로 표기하는 것이 국어 어법의 원칙이고, 대부분 이씨들도 이를 따른다. 그가 자기 성씨를 굳이 "리"로 표기한 것은 북한의 관례를 따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보는 《8억인과의 대화》
리영희는 중공의 문화혁명이 끝나고 그 피해 실상이 서방 언론에 이미 많이 보도되어 알려진지 한참 후에 한 일본 지식인이 오래 전 문화혁명에 대해 잘못 쓴 글을 굳이 번역, 소개하여 국내의 젊은이들이 중공에 관한 환상을 가지게 만들었다.
- 이영희, 《8억인과의 대화 : 현지에서 본 중국대륙》 (창비, 1977년, 번역서)[3]
- [스페셜 리포트] 1988년, 직접 본 중국의 현실은 책 속의 중국과는 180도 달랐다 : 다시 보는 ‘8억인과의 대화’ [주간조선 2184호] 2011.12.05
-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전 조선일보 베이징 특파원
그러나 리영희 선생은 자신의 시각이 중국의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다는 것을 끝내 고백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선생은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해서 여행이 자유로워진 뒤에도 ‘8억인과의 대화’ 수정판을 내지 않았다.
'소중화(小中華)'를 완성한 리영희의 제자들
- '소중화(小中華)'를 완성한 리영희의 제자들!! 문갑식의 진짜 TV 2019.12.26
- 친중 의식화의 은사 리영희 선생의 지극히 주관적인 한국현대사 : 김용삼기자의 왜곡된 근현대사 바로 알기 Charity Baptist Church (2020.10.24)
- 친중의식화의 은사 리영희 : 김용삼 기자의 강연을 텍스트화 편집
- 김광동, 친중사대(親中事大)는 조선과 북조선체제의 연장 미래한국 2016.09.01
- [다가온 대선(大選)] 문재인 傳奇 (2/4)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 월간조선 2017년 2월호
- ⊙ 대학 시절 리영희가 쓴 《전환시대의 논리》 읽고 큰 감화, 운동권의 길로
“노 변호사(노무현)도 리영희 선생 영향을 많이 받았다. 노 변호사가 인권변호사로 투신한 계기가 되었던 ‘부림사건’은 청년과 학생들이 수십 권의 기초 사회과학 서적 또는 현실비판 서적을 교재로 공부한 것이 빌미가 됐다. 기소 내용엔 ‘그 책들을 읽으면서 북한 또는 국외 공산 계열의 활동을 찬양·고무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노 변호사는 변론을 위해, 수십 권의 서적을 깡그리 독파했다. 그 가운데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도 있었다. 변호사로서 변론을 위해 읽은 책을 통해 많은 영향을 받은 셈이다. 이후 노 변호사는 더욱 폭넓은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게 됐고 그것을 통해 이른바 ‘의식화’됐다. 리영희 선생 책이 그 출발이었다.”
이런 류의 책을 읽고 감동받아 그 노선을 따라 운동하던 유치한 수준의 젊은 시절 사고를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니, 복잡해진 세상사를 이해할 수 없어 외국 정상들을 만나서도 A4 용지 없이는 대화를 못하는 것이다.
저서
서평
- 비논리로 가득찬 '전환시대의 논리' 뉴데일리 2006. 2. 15
- [스페셜 리포트] 1988년, 직접 본 중국의 현실은 책 속의 중국과는 180도 달랐다 : 다시 보는 ‘8억인과의 대화’ [주간조선 2184호] 2011.12.05
평가
학자적 양심이 없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전직 국정원 직원 김평삼이 말하길 황장엽과 대담을 하게 자리를 주선했는데 황장엽이 북한 현실을 설명해도 전혀 듣지 않았다고 한다.
나무위키에서도 문혁을 찬양한 것을 당시 죽의 장막을 친 중국의 현실을 몰라서라고 했는데.
글쎄 인간이니까 실수를 할 수 있다. 틀릴 수도 있고, 근데 그 이후 진실이 밝혀지면 오류를 인정하고 생각을 교정해야 하는 게 학자적 양심인데 근데 끝끝내 자신이 사상이 잘못되어서 수많은 젊은이의 세계관을 오염 시킨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추구하는 건 오로지 진실이라는 둥 요딴 소리나 해댔다.
함께 보기
각주
- ↑ [다가온 대선(大選)] 문재인 傳奇 (2/4)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 월간조선 2017년 2월호
- ↑ [한 386의 고백] 나의 사상적 스승 리영희를 비판한다 뉴데일리 2010-12-07
- ↑ 3.0 3.1 《8억인과의 대화 : 현지에서 본 중국대륙》 창비 1977년 09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