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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
최근 수정 : 2019년 7월 19일 (금) 05:44

모택동(마오쩌둥, 毛泽东, 毛澤東, 1893.12.26 ~ 1976.09.09)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당시부터 1976년 사망 때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의 최고 권력자였다.


생애


국공내전 시기에 국민당군에 대한 정보를 일본에 팔아넘긴 모택동

일본제국의 중국 침략기에 중국공산당의 목표는 항일투쟁 아닌 중국 적화였기 때문에 그들의 적은 일본 보다는 중국 국민당 정부였다. 중공당은 일제침략의 가장 큰 수혜자이므로 모택동이 일본의 침략에 대해 감사한다고 한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일제 침략이 아니었으면 중공군은 일찌감치 토벌되어 중국이 공산화되는 참사는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북한도 공산화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중공당은 집권 후 중국인들에게 일제보다 몇 백배 이상 큰 피해를 입혔다.

「일본군의 침공에 감사한다」(1956 년 9 월 4 일의 모택동 발언) 중국 연구 전문가가 그린 「건국의 아버지」의 진실。: 「日本軍の進攻に感謝する」(1956年9月4日の毛沢東発言)中国研究の第一人者が描いた「建国の父」の真実。[1]
2015년 엔도 선생은 <<모택동: 일본군과 공모한 남자(毛沢東 : 日本軍と共謀した男)>>란 제목의 역작을 발표했다. 선생의 세밀한 논증에 따르면, 중일전쟁 시기 모택동은 일본 외무성 지부에 반한민(潘漢民, 1906-1977) 등의 중공 스파이를 심어서 장개석 및 국민당 관련 고급 정보를 비싼 가격에 일제에게 넘기고 거액의 뒷돈을 챙겼으며, 일본과의 밀약을 체결해 중국공산당의 세력 확장만을 꾀했다. 한 논평에 따르면, 이 책은 “중국연구의 제1인자가 철저히 조사한 자료로 들려주는 중국공산당의 불편한 진실”이다.
천하의 모택동이 항일전쟁 시기 “일제와 공모를 했다니?" 엔도 선생의 논증은 그야말로 폭군의 목을 겨눈 날카로운 비수가 아닐 수 없다. 과연 모택동이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장춘에서 아사한 수십 만 난민들 틈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한 가녀린 소녀가 70년이 지난 지금 동경대학 국제관계 연구소의 소장이 되어 자신을 단죄하리란 사실을!

일본 침략에 맞서 항일전쟁을 벌인 쪽은 장개석의 국부군이며, 모택동의 중공군은 엄밀한 의미에서 항일투쟁을 했다기보다 국부군을 타도하고 중국을 공산화하는 데에 더 주력하여, 일본군에 국부군의 정보를 거액의 돈을 받고 팔아 넘기기도 하였다.


모택동 인민의 배신자

  • 엔도 호마레(遠藤誉) 저, 박상후 역, ≪모택동, 인민의 배신자≫[3][4]

난고 사부로(南鄕三郞) 씨와 만났을 때 만나자마자 갑자기 “일본은 중국을 침략했습니다. 사죄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당신네들은 그런 견해를 가지면 안 됩니다. 일본의 군벌이 중국의 대부분을 점령한 것이야말로 중국 인민을 교육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중국 인민은 각오를 품고 단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됐다면 나는 지금도 산 위(필자 주; 옌안의 산 속 동굴)에 있어서, 베이징에서 경극을 관람한다든지 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중략) 만약 ‘감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나는 차라리 일본의 군벌에 감사하고 싶습니다.” - 일본 사회당의원 구로다 히사오(黑田壽男)와의 면담 중
- 중화민족을 배신한 자는 누구인가?
  • 모택동을 중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정당한가? 그런 의미에서 중국 인민들에게 공산중국의 국가적 정체성은 정당한 것인가?
  • 모택동은 왜 스파이를 활용하여 침략자 일본군과 공모, 일본군에 의한 장제스 국민당군대의 파멸을 획책했을까?
  • 모택동은 사마광의 『자치통감』의 애독자였다. 그는 왜 ‘제왕의 패도覇道’에 몰입했을까?
  • 모택동은 왜 전범戰犯인 전 일본군인들을 초청해서 “나는 일본군의 진공進攻에 감사한다”고 했을까?
  • 모택동은 왜 ‘난징대학살’에 대해 일본에 사과 요구는커녕 말 꺼내는 것 자체를 금기시했을까?
  • 모택동은 왜 충직한 동지들뿐 아니라 수천만의 무고한 인민을 학살하면서까지 모택동사상의 절대성을 강변하며 후대 권력으로 하여금 떠받들게 했을까?
이 책은 모택동을 추종하며 중국과의 협력 강화를 주장하는 일본의 친중세력과 한국의 좌파세력들에게 던지는 ‘진실의 거울’이다.

일본 앞잡이 모택동

[Book튜브] 일본 앞잡이 모택동


모택동의 미국 찬양

1943년 모택동은 미국 독립기념일을 찬양해 마지 않는 논설을 썼다. 1945년 8월에도 링컨의 "Of the people,..."도 인용하고, 루즈벨트의 4가지 자유에 대해서도 찬양했다. 이후 중국 공산화에 성공하자 태도를 표변하여 미국에 대한 비난으로 일관했다. 6.25 전쟁 때는 중공군을 파견하여 미국과 전쟁까지 벌였다.

한국전쟁에 중공군을 파견하여 김일성을 구출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으로 남침한 북한 인민군은 낙동강 전선에서 거의 궤멸되고,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으로 김일성과 북한 체제가 멸망위기에 처하자 모택동은 수십만의 대군을 북한으로 파견하여 이들을 구해냈다. 모택동이 한국전에 보낸 군대는 주로 국공내전 당시 항복한 국민당군이나 반대세력의 군인들로, 이들을 총알받이로 앞세워 잠재적 반대세력을 제거하면서 김일성과 북한 체제도 구하는 일거양득의 실리를 챙겼다.

모택동 치하 중국 공산당의 만행

모택동과 중국공산당 치하에서 숙청과 정책 실패, 문화혁명 등으로 죽은 중국인 수는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적게는 6천만명, 많게는 8천만명까지로 추정된다.

모택동의 선전 요원들

서방 세계에 모택동과 중국 공산당을 미화해서 알린 주요한 선전 요원들은 아래와 같다. 이들 때문에 모택동과 중국 공산당이 저지른 천인공노할 만행들은 감추어지고, 서방 세계에 미화되어 알려졌다. 이들은 모택동의 벗이자 중국 인민들의 적이다.

저서: Red Star Over China (various editions, London, New York, 1937–1944)
저서: Song of Ariran: A Korean Communist in the Chinese Revolution : 조선인 공산주의자로 대장정에 참여했던 김산(金山, 1905 ~ 1938)을 미화한 책.
[한 386의 고백] 나의 사상적 스승 리영희를 비판한다 : 『리영희와 左派는 더이상 사실을 속여서는 안된다』 월간조선 2005년 9월호
[문화대혁명 50년] 그는 왜 중국을 가지 않았나 : 끝내 진실을 외면했던 정직하지 못한 지식인 리영희에 대한 고발 Pub 조선 2016-08-26

국내의 모택동 숭배자들

한국의 자칭 인권변호사들은 모택동을 가장 존경한다. 이들은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세습독재자들도 변호하고 다닌다. 무지막지한 최악의 인간 도살자들을 숭배하는 이들은 인권변호사가 아니라 인권말살변호사가 더 적절한 명칭같다. 이들의 정신적 스승은 모택동 미화에 앞장섰던 리영희(李泳禧, 1929~2010)일 것이다.[5][6]

2003년 7월 9일 중국 칭화(淸華)대학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주석과 덩샤오핑(鄧小平) 주석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김대중-노무현의 北核 옹호 발언 모음 뉴데일리 2013-02-05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같은 나라.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중국몽(中國夢) 함께 하겠다."
"마오쩌둥 주석이 이끈 대장정에도 조선 청년[7][8]이 함께 했습니다." : 2017. 12. 15 베이징대(北京大) 연설
'文은 김정은 수석대변인'은 블룸버그통신이 첫보도 조선일보 2019.03.12
South Korea's Moon Becomes Kim Jong Un's Top Spokesman at UN Bloomberg 2018년 9월 26일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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