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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
최근 수정 : 2019년 6월 3일 (월) 21:51

(마오쩌둥에서 넘어옴)

모택동(마오쩌둥, 毛泽东, 毛澤東, 1893.12.26 ~ 1976.09.09)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당시부터 1976년 사망 때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의 최고 권력자였다.


생애


국공내전 시기에 국민당군에 대한 정보를 일본에 팔아넘긴 모택동

일본제국의 중국 침략기에 중국공산당의 목표는 항일투쟁 아닌 중국 적화였기 때문에 그들의 적은 일본 보다는 중국 국민당 정부였다. 중공당은 일제침략의 가장 큰 수혜자이므로 모택동이 일본의 침략에 대해 감사한다고 한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일제 침략이 아니었으면 중공군은 일찌감치 토벌되어 중국이 공산화되는 참사는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북한도 공산화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중공당은 집권 후 중국인들에게 일제보다 몇 백배 이상 큰 피해를 입혔다.

「일본군의 침공에 감사한다」(1956 년 9 월 4 일의 모택동 발언) 중국 연구 전문가가 그린 「건국의 아버지」의 진실。: 「日本軍の進攻に感謝する」(1956年9月4日の毛沢東発言)中国研究の第一人者が描いた「建国の父」の真実。[1]
2015년 엔도 선생은 <<모택동: 일본군과 공모한 남자(毛沢東 : 日本軍と共謀した男)>>란 제목의 역작을 발표했다. 선생의 세밀한 논증에 따르면, 중일전쟁 시기 모택동은 일본 외무성 지부에 반한민(潘漢民, 1906-1977) 등의 중공 스파이를 심어서 장개석 및 국민당 관련 고급 정보를 비싼 가격에 일제에게 넘기고 거액의 뒷돈을 챙겼으며, 일본과의 밀약을 체결해 중국공산당의 세력 확장만을 꾀했다. 한 논평에 따르면, 이 책은 “중국연구의 제1인자가 철저히 조사한 자료로 들려주는 중국공산당의 불편한 진실”이다.
천하의 모택동이 항일전쟁 시기 “일제와 공모를 했다니?" 엔도 선생의 논증은 그야말로 폭군의 목을 겨눈 날카로운 비수가 아닐 수 없다. 과연 모택동이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장춘에서 아사한 수십 만 난민들 틈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한 가녀린 소녀가 70년이 지난 지금 동경대학 국제관계 연구소의 소장이 되어 자신을 단죄하리란 사실을!
  • 엔도 호마레 저, 박상후 역, ≪모택동: 인민의 배신자≫ - 출간 예정[2]

일본 침략에 맞서 항일전쟁을 벌인 쪽은 장개석의 국부군이며, 모택동의 중공군은 엄밀한 의미에서 항일투쟁을 했다기보다 국부군을 타도하고 중국을 공산화하는 데에 더 주력하여, 일본군에 국부군의 정보를 팔아 넘기기도 하였다.

모택동 치하 중국 공산당의 만행

모택동과 중국공산당 치하에서 숙청과 정책 실패, 문화혁명 등으로 죽은 중국인 수는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적게는 6천만명, 많게는 8천만명까지로 추정된다.

국내의 모택동 숭배자들

한국의 자칭 인권변호사들은 모택동을 가장 존경한다. 이들은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세습독재자들도 변호하고 다닌다. 무지막지한 최악의 인간 도살자들을 숭배하는 이들은 인권변호사가 아니라 인권말살변호사가 더 적절한 명칭같다. 이들의 정신적 스승은 모택동 미화에 앞장섰던 리영희(李泳禧, 1929~2010)일 것이다.[3]

2003년 7월 9일 중국 칭화(淸華)대학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주석과 덩샤오핑(鄧小平) 주석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김대중-노무현의 北核 옹호 발언 모음 뉴데일리 2013-02-05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같은 나라.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중국몽(中國夢) 함께 하겠다."
"마오쩌둥 주석이 이끈 대장정에도 조선 청년[4][5]이 함께 했습니다." : 2017. 12. 15 베이징대(北京大) 연설
'文은 김정은 수석대변인'은 블룸버그통신이 첫보도 조선일보 2019.03.12
South Korea's Moon Becomes Kim Jong Un's Top Spokesman at UN Bloomberg 2018년 9월 26일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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