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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申榮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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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2007년)
작가 정보
출생
1941년 8월 23일
출생지
사망
2016년 1월 15일
사망지
성향
종북 좌파
국적
학력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활동기간
장르
경제교육학 저술
웹사이트
신영복의 필체

신영복(申榮福, 1941.08.23 ~ 2016.01.15)은 마르크스 경제학자, 작가, 대학교수 등으로 활동했다. 간첩사건에서 유죄를 받고 복역한 간첩이다.

위장전향을 한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외교관등 포로 교환을 할 때 신영복을 원한다고 했을정도..

간첩인 신영복을 존경한다는 사람들이 문재인을 비롯하여 한국에는 많이 있다. 알게 모르게 유명하고 의미 있는 도처에 신영복의 글씨가 장식 되어 있다.

간첩을 존경하고 기념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 한국은 제정신이 아니다.



생애



비판

문재인대통령의 신영복 발언과 문제점
과거 반체제 지하조직 '통혁당'에서 활동, 사상 전향 부인해
김문수 "문대통령은 김일성 사상 존경하는 분…신영복은 간첩" 2018-05-03
한국당 정종섭 의원 주최 '남북정상회담 진단' 토론회서 주장


제3기 진보정권 文정부...국가정체성의 표류를 우려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안철수 탈당 이후 새롭게 채택한 당명이 ‘더불어민주당’이었다는 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더불어민주당’은 신영복이 쓴 『더불어 숲』이란 책 제목에서 따온 당명이다.[1] 남시욱은 “자신에 대한 종북 비판에 펄펄 뛰면서 월남식 공산통일을 기도한 신영복을 존경한다고 공언하는 모순을 어떻게 봐야 할까”라고 반문한다.
더불어민주당의 당명은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와도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2].

신영복 대해부

"맞다, 신영복은 본디 붉은 사람이다"
한겨레신문의 대담한 도발 "신영복, 그는 본디 붉은 경제학자였다"에 대해


"신영복은 학자가 아니라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가"
"입과 손으로 온갖 세련된 것들 쏟아냈지만 대동강 하구 바닷물 들이킨 탓"


'복면지성' 신영복의 두 얼굴 실체! 해부해보니?
전향 부정·북한 옹호·혁명투쟁 선동…포장된 가면속 진면목은 무엇?

논란

민주당의 신영복 필체 논란

국정원 원훈석 논란

국정원, '원훈석 교체' 박지원 경찰 수사 의뢰 연합뉴스 2023-03-17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6월 4일 국가정보원에서 원훈석 제막식을 한 뒤 당시 박지원 국정원장에게 개정된 국정원법을 새긴 동판을 증정받고 있다. 뒤에는 신영복체로 쓴 당시 원훈석. [청와대 제공][3]
국정원은 박 전 원장이 재임했던 2021년 6월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으로 원훈을 바꾸고 원훈석을 교체했다.

바뀐 원훈석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0년간 복역한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손 글씨를 본뜬 '신영복체'가 쓰여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정원은 1년 만인 지난해 6월 원훈을 초대 원훈인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로 복원하고 옛 원훈석을 꺼냈다.

국정원은 "2021년 6월 변경된 이전 원훈석 서체가 정보기관의 정체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에 따라 최근 직원 설문조사를 한 결과 첫 원훈을 다시 사용하자는 의견이 절대 다수였던 점을 반영했다"고 복원 이유를 설명했다.

참고 자료

통혁당 간부 구출 시도한 北 간첩선 검거는 한국 中情의 逆공작이었다
「朴聖焌은 통혁당 소조책」(당시 中情 발표) 韓明淑, 통혁당 사건으로 실형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발표에 따르면, 朴聖焌(당시 서울大경제학과 4년. 25세)씨는 1967년 6월 申榮福에게 포섭된 「黨 小組責(당 소조책)」으로서 妻 韓明淑 및 朴璟鎬(박경호), 金國柱(김국주) 등을 黨 小組로 포섭했다.

중앙정보부는 그가 『서울 商大를 위시한 각 대학 출신 및 재학 중인 기독교계 학생을 모체로 결성된 「기독청년 경제복지회」를 주도하여 資本主義(자본주의) 경제제도를 비판하고 소위 사회주의적 복지경제를 주장하면서 북괴의 경제제도를 찬양, 이를 연구 보급했다』고 했다.

중앙정보부는 朴聖焌씨가 주도한 「기독청년 경제복지회」 등 8개 서클을 통혁당의 「민족해방전선」 산하 조직 가운데 하나라고 발표했다.

당시 수사발표에 따르면, 통혁당은 金鍾泰(김종태)를 黨首(당수)로 하여 「민족해방전선」과 「조국해방전선」의 양대 조직으로 지도부가 구성됐었다. 「민족해방전선」은 金瓆洛(김질락)이 책임비서, 申榮福이 조직책임비서, 이진영이 교양책임비서를 맡았고,「조국해방전선」은 李文奎(이문규)가 책임비서, 尹相煥(윤상환)·吳炳哲(오병철)이 교양책임비서를 맡았다.

각주


여담

소위 신영복을 존경한다는 좌파들은 술자리에서는 처음처럼 소주를 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