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드 버크 (Edmund Burke)
출생 1729년 1월 12일
사망 1797년 7월 9일 (68세), 영국 비컨스필드
국적 영국
민족 아일랜드계 영국인
경력 최초의 근대적 보수주의자,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
정당 휘그당(영국)
종교 아일랜드 성공회


개요

영국의 철학자, 정치인이다.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며 그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The only thing necessary for the triumph of evil is for good men to do nothing" (선량한 이들의 수수방관은 악이 승리하는 데 유일한 조건이다)

사실 당시에 애드먼드 버크를 보수주의자라고 일컫지는 않았다. 오히려 당시 영국 기준으로 진보적인 휘그당(Whig Party) 당원이였다. 당시 영국은 하층민이나 중산층들에게는 투표권이 없었고, 상류층이나 지역유지 정도는 되어야 투표권이 주어진 상태였다. 그렇기에 모든 국민이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지금와서 보면 보수주의지만, 당대 기준으로 본다면 진보적이라고 할수있었던 것.

그러나, 버크가 현대에 와서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는 당시 토리당처럼 반동주의를 지향하지 않고, 기존의 정치 체제와 관습적인 사회적인 전통을 유지하되 잘못된 부분은 조금씩 점진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주장한 대의 정부, 자연적 귀족, 사유재산, 소집단의 중요성은 보수주의의 기본 특징이 되었다. 지금와서 보면 '온건개혁파'라고 할 수 있다. (사회는 함부로 확 바꿀 수 없기에, 전통과 기존의 질서를 이어가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고쳐나가야 한다는것이 핵심이다)

유럽•미국의 정치 흐름은 ‘보수 vs. 리버럴’로는 해독할 수 없다. 오직 [지속과 변화의 균형점을 모색하고 실현하기 위해 필사적 노력을 하는가?]를 기준으로 살필 때에만 그 미묘한 흐름이 해석된다. ‘변화와 지속 사이의 균형과 조화’ 바로 이것이 흔히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사표로 꼽히는 에드먼드 버크와 아브라함 링컨의 정신이다.

주요 정치적 판단

미국 독립혁명에 찬성하다

버크는 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 역시 영국인의 후예들이므로 식민지배 또한 영국 헌정 질서에 입각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말하는 영국 헌정 질서란, "대표 없이는 과세도 없다"라는 대원칙이다. (아메리카대륙의 대표가 정책결정에 참여 할 수 없다면, 세금징수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근거해 버크는 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의 봉기가 영국 헌정 질서의 위반에 대한 항거라고 규정하며 옹호했다.

프랑스혁명에 대한 비판

이상주의적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선 전래된 관습, 전통 생활방식, 법률, 헌법 등 기존의 모든 사회제도를 한번에 갈아치우고, 끊임없는 피바다와 기존세력 처형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프랑스 혁명의 이념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라며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만, 동시에 유토피아적 혁명은 공포와 독재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기존 가치관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반발에 대한 타당성은 결국 프랑스 혁명 전후의 혼란으로 뒷받침되며 버크의 사상적 배경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는 혁신적 변화와 급진적인 경제 개혁을 거부했는데 그런 변혁은 기존 질서의 파괴와 혼란만을 초래할 뿐 실익이 전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는 그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견해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이성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계몽주의가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체제를 이상향으로 만드려는 시도는 인간 지성의 파괴적 행위의 전형적 예이며 역사와 경험을 토대로 한 미국의 독립혁명이나 영국의 명예혁명과 달리 폭정과 혼란, 경제체제의 파괴만을 부른다고 경고했다.

혁명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형집행 죄목은 당시 채 10살이 안 된 샤를 루이 왕자와 '근친상간'을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린아이에 불과한 샤를 왕자를 독한 술과 중노동을 통한 사실상의 '고문'을 통해 자백은 받아낸 것이었으며, 이러한 민중혁명의 잔인함을 지켜본 버크는 "약자를 보호하고 기사도의 정신을 갖고 있던 유럽의 정신은 다 어디로 갔는가?" 라며 프랑스혁명에 대해 많은 비판을 하였다.

엘리트주의와 복지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실패 경험과 관련하여 만인의 지배는 만인의 독재라는 생각을 가진 버크였던 만큼, 당시 당연시되던 귀족주의와 엘리트주의에 긍정적일 수 밖에 없었지만 하지만 동시에 신분에 관계없이 도덕성 품성과 능력에 따라 높은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실력주의도 버크의 주장 중 하나이며 기존 보수주의와 버크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견해는 복지에 대한 그의 주장에서도 드러나는데,(빈곤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제약하는) 직접적인 국가의 복지 개입이 아닌 귀족과 부자의 도덕적인 고결함에 기초한 자발적인 온정주의에서 나온 복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실에 근거한 온건개혁파

그는 프랑스 대혁명식의 급진적인 개혁이나 진보를 혐오했다, 대신 영국의 의회주의와 같은 점진적인 진보를 원했다. 보수주의의 아버지이지만, 보수도 혐오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당시기준에서 보수는 수구적 반동적이였기 때문에, 버크같은 점진적 보수, 즉 온건한 개혁파는 진보라고 불렸다. 왜냐하면 급진적인 개혁은 결과적으로 사회를 진보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폭력과 비이성만이 활개치는 혼란만 가져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 결사적으로 반대했지만, 왕실재정과 국가재정을 분리시켰고, 인도지배를 혁신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반역자란 소리를 들어가며, 미국 독립전쟁 전에) 북미에서의 획기적 자치를 주장했으며, (배신자로 몰려 테러 위협을 당하면서도) 카톨릭 교도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한 열혈 리버럴이었다


저서

에드먼드 버크 (지은이), 이태숙 (옮긴이),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 - 개정판 (한길사, 2017년 2월)
  • <숭고와 미의 근원을 찾아서: 쾌와 고통에 대한 미학적 탐구> 1757
에드먼드 버크 (지은이), 김동훈 (옮긴이),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마티, 2019년 7월)
  • <희소성의 고찰>
  • <자연적 사회의 옹호론> 1756
버크의 논문 "An Appeal from the New to the Old Whigs" 와 "Thoughts and Details on Scarcity" 2편의 번역임.


관련 도서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