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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読売新聞[1], 讀賣新聞
1. 개요
요미우리 신문은 일본의 신문이다. 일본의 3대 신문 중 하나로 1874년에 창간되었다. [2]
발행부수로는 전세계 신문 1위이다. 정치성향은 중도온건보수에 가깝다. 아사히 신문은 좌파, 산케이 신문은 훨씬 우파다.
도쿄기준으로 니혼테레비 속칭 니테레가 이쪽 계열사다. 니테레는 sbs와 제휴관계이다. 스포츠 신문은 스포츠 호치다.
발행부수는 전세계 1위라지만, 신문 텔레비전 방송 등 주력사업이 올드미디어로 분류되는 사양사업이 된지 오래라 요미우리 신문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tv가 한창 잘 나가던 80년대 90년대 중반까지는 산케이 계열이 후지테레비가 1위였고, 이후 요미우리 계열인
니혼테레비가 tv 시청률에서 1위로 다시 발돋움 하지만 이후에는 차츰 tv자체가 사양화 된다.)
잘 나갈 때(94년)는 발행부수가 무려 1천만부였다. 지금은 600만부도 깨졌다.
요미우리 신문과 요미우리 자이언츠 프로야구 스포츠 이야기
이곳에 사주 였던 쇼리키는 요미우리를 전국 1위 신문으로 그리고 거의 일본 프로야구를 만든 사람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도 만든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 프로야구 최고감독상이 쇼리키 상이다.
주필로 사주가 된 와타나베 츠네오는 일본 정치 특유의 막후정치로 정치권에서 갈등이 있을 때 이를 배후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혹자는 일본총리는 요미우리 신문에서 뽑는다는 말도 한다.
총리직선제가 아니고 다수당에서 지들끼리 안보이는 데서 협의해서 뽑기 때문. 국민들은 총리 인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
그리고 요미우리가 1등신문으로 영향력이 컸던 것도 있다. 한국의 조중동도 이 정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치권에 아직도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한일 수교 때도 배후에서 밀사로 역할을 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압도적으로 인기를 자랑하는 구단이었기에 사실상 구단주였던 와타나베 츠네오의
일본 프로야구에서의 영향럭은 엄청 났다.
(와타나베 츠네오 씨가 요미우리 신문의 사원일 때는 야구를 잘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고 한다.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V9시절(9번연속 일본시리즈 우승) 우승 할 때면 매년 선수단이
우승기를 들고 요미우리 신문 본사의 각층을 도는 행사를 했는데
그러면 보통 사원들이 박수를 치면서 맞아 줬는데, 일부 사원들은 일하는데 방해 되니까 빨리 나가라는 식의 사원들도 있었다고 한다.
방해 되니까 빨리 나가라고 하는 사원의 필두가 나베츠네였다고
야구를 볼 때 왜 타구를 치고 3루 방향이 아니라 1루 방향으로 뛰는가? 3아웃 상황에서 홈에 먼저 들어오는 게 왜 득점으로 인정이 안돼는 가?
이런 야구의 기초적인 사실도 몰라서 물어봤다고. 물론 구단주가 되서는 공부를 해서 빠르게 야구에 대해서 충분히 숙지를 했다.
한 예로 킨테츠 버팔로즈가 적자가 심각해서 매각 한다고 할 때 호리에몬이라고 불리는 호리에 타카후미가 it 신생기업 라이브도어가 킨테츠를 인수하거나 해서 프로야구에 진출하려고 먼저 이야기를 했고,
나중에는 미키타니 히로시의 라쿠텐이 참전을 했다.
결국 구단주 회의에서 라이브도어가 아닌 라이브도어보다 프로야구 참가의사 후발주자인 라쿠텐의 참가가 결정 됐는데. 호리에몬은 나베츠네에게 인사를 가지 않았던 것을 폐인으로 회고했다.
미키타니 오너는 나베츠네를 만나 인사를 했다고.
뭐 그것도 있지만, 라이브도어는 이후 망해서(네이버에 인수 하기도 했다. 지금은 다른 일본회사에 재매각했다.
) 호리에몬은 감옥도 갔다오고( 지금도 영향력이 있기는 하다), 라쿠텐은 지금도 건재하고 일본 대학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은 기업 1위에 뽑히는 회사다.
요미우리가 드래프트 제도의 헛점을 이용해 꼼수로 에가와를 영입하자(공백의 1일) 요미우리가 엄청 욕을 먹었는데,
(이때도 드래프트를 보이콧하고(실제로 당해 보이콧 했다.) 요미우리는 새로운 리그를 만든다고 했다.)
주필인 나베츠네는 드래프트 제도가 직업 선택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드래프트 제도를 무진장 깠다.
(단합으로 직업선택 자유를 침해하는 것 맡기는 하다. 그래서 드래프트 참가는 서로 동의가 있어야 성립이 된다.)
요미우리 신문에서도 사설로 이런 이야기를 해서 여론 형성을 했다.
이걸로 역지명 제도
(대학 선수가 원하는 구단을 역으로 선수가 구단을 지명하는 제도. 이 제도는 유망 선수를 구단이 미리 접촉해서 영양비라는 명목으로 뒷돈을 주는 게 발각되서 없어졌다.)
(이치바 사건이라고 대학선수인 이치바에 여러 구단들이 영양비라는 명목으로 뒷돈을 줬는데. 와타나베 츠네오도 이게 걸려서 구단주에서 사임했다.
역지명 제도도 나베츠네가 만들고, 역지명 제도로 이치바 사건이 걸리면서 나베츠네도 물러났다.
구단주 공식 직함에서만 물러 났을 뿐 이후에도 막후에서 나베츠네는 계속 영향력을 행사했다.
2011년 쯤 구단주 였던 기요타케가 구단주도 아닌 나베츠네가 지멋대로 구단 인사를 했다고 폭로를 하고 나베츠네에게 반기를 들었다. 일명 기요타케의 난.
하지만 결과는 반기를 든 기요타케만 제거 되었다.)
같은 것이 생기는 데 나베츠네와 요미우리 신문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 했다.
j리그에서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성공 공식 그대로
(최대 빅마켓 수도 도쿄를 연고지를 하고, 전국 지상파 니테레가 독점중계로 노출 시키고,
미우라 라모스 등 최고의 스타선수들을 끌어모아 압도적인 빅클럽을 만들어 다른 팀들이 이기고 싶어하는 그런 압도적 원탑 팀을 만든다)
카와사키 베르디(현 도쿄 베르디)를 j리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만들려고 했는데 j리그 측에서 j리그에는 쿄진(요미우리 자이언츠)가 필요없다며 매우 견제를 했기에 베르디는 j리그 출범 당시에는 연속 우승을 하는 최강팀이었지만,
베르디에 요미우리라는 구단명도 못 넣고(j리그 모기업 명을 구단명에 넣는 것을 불허한다) j리그 측에서는 프로야구 처럼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만 인기가 집중되고, 요미우리가 좌지우지 하는 리그 자체를 원치 않았기에 결국 요미우리와 니혼테레비는 베르디에게서 손을 떼게 되고,
베르디는 도쿄 입성에는 성공했지만 2부리그를 전전하는 그저 그런 구단이 되었다.
일본 프로야구의 모기업들은 프로야구 구단을 운영할 시에 시너지를 발휘하는 기업들이 많았다. 요미우리도 대표적인데,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이 인기를 얻으면, 홈경기를 지상파에서 독점 중계하는 니혼테레비에 시청률이 오른다.
전성기 때는 니혼테레비에서 독점 중계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홈경기는 프라임 타임에 킬러 콘텐츠였다.
게다가 스포츠 신문인 스포츠 호치에 발행 부수도 올라가고, 당시에 지상파에서 그것도 전국방송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경기 정도만 매일 같이 중계를 해줬기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인기는 압도적이었고, 많은 야구소년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기를 희망했다. 중계권으로 수입도 올라서 자금력도 갖추고 유망주들도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을 희망하기에 팀도 강해지고 서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도 옛날 이야기로 갈수록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지상파 중계는 시청률 저하로 줄어 들 기 시작했는데 90년대 까지는 홈경기는 거진 전경기를 생중계 해줬지만 (오죽하면 자체 청백전 홍백전을 지상파 중계 해주기까지 했다.)
호리우치 감독 때부터 중계가 확 줄기 시작해서 이승엽이 요미우리에 갔을 때부터 확 줄기 시작했다.
지금은 개막전이나 일년 중에 지상파 중계는 몇경기가 안됀다. 시청률이 안 나오기에 니혼테레비 입장에서도 요미우리 지상파 중계는 전혀 매력적인 콘텐츠가 아니다. 물론 요미우리 계열 위성방송에서는 전경기 중계를 해주고 있다.
(지상파 중계 때는 정규방송 관계로 경기 도중에 예를 들어 3회초부터 중계를 시작한다던지, 경기가 길어지만 정규방송 관계로 중계를 끊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이런 사정으로 왕정치의 세계 홈런 기록 경신 홈런이라던지 이런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 지상파로 생중계 되지 않았다. 위성방송으로 중계하는 지금은 처음부터 끝까지 중계해준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압도적인 원톱 인기 구단이기에 횡포를 많이 부렸다. 자기 마음에 안들면 우리는 센트럴리그를 탈퇴해서 다른 독립리그 만들겠다 하면 요미우리 자이언츠(이하 쿄진) 인기에 거의 빌붙어 사는 다른 센트럴리그 구단들은 굴복 할 수 밖에 없었다.
센트럴리그 퍼시픽리그 나뉜 것고 요미우리가 라이벌 신문사 마이니치 오리온스(현 롯데 마린즈)에 가입을 반대하면서, 쿄진과의 경기로 이득을 보려는 구단은 마이니치 가입을 반대하면서 센트럴리그가 되고, 퍼시픽리그 구단들은 도저히 요미우리 횡포에 못 살겠다며 마이니치 오리온스에 가입을 찬성헤서 퍼시픽리그를 만들어서 나간거다.
요미우리 입장에서는 기껏 프로야구를 만들고 인기를 올려 놨더리 라이벌 신문사가 야구단을 만들고 들어와?
마치 mbc 주도로 mbc청룡 구단 등으로 프로야구를 붐엄 시켜 놨더니 프로야구가 인기 있어지니까 kbs가 kbs주작즈 이런 팀을 만들어서 프로야구에 들어오려는 상황이랑 비슷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보통 쿄진(거인), 쿄진군(거인군), 자이언츠라 하지 풀네임 요미우리 자이언츠라고도 잘 안 불리고 특히 요미우리 단독으로는 다른 팀 팬들이 멸칭 (쿠다바레 요미우리 죽어라 요미우리, 요미우리 신자 등)외에는 거의 쓰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수원 삼성이 이런 식이다. 안티팬들이 다른 명칭인 삼성전자 축구단이라는 말을 써서. 삼성이 멸칭이 되어 버렸다.
근데 자이언츠는 그 자체로 흑자라서 팬들이 요미우리로 부르지 말라고 해도 장사가 되니까 덜 억울한데,
수원 삼성은 적자임에도 삼성이란 명칭을 거부하는 데 삼성 입장에서는 더 황당한 상황이다.
삼성 스포츠단이 제일기획 쪽에서 총괄하는 식으로 되서 이제는 제일이라고 하는 게 멸칭이 되었다.)
다른 구단이 한신, 라쿠텐 등 다 기업명으로 많이 불리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 다른 구단도 애칭으로 한신 타이거즈를 토라(호랑이)라고 하지만, 이걸 쿄진 처럼 애칭이 공식명칭 처럼 쓰이는 구단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12개구단 중 유일하다.
특히 쿄진군이라는 것도 2차세계대전 중 영미랑 전쟁 중이라 영어사용 자이언츠 타이거즈 이런 말을 못 쓰게 해서 그 당시에는 한신도 토라군이라고 하고 다 그런 식이었다. 유니폼에도 한자를 썼을 정더니 이것도 전쟁 이후에는 다 환원 되서 다른 구단은 토라군 이런 말을 안 쓰는데 유독 요미우리 자이언츠만 쿄진군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사실 구단 정식 법인명이 주식회사 요미우리 쿄진군이다. 구단 공식 법인명이 이런 식인 것도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유일.
이게 굳어져서 2004년도 유니폼에는 가슴팍에 크게 영어로 요미우리라는 문구가 들어갔는데, 펜들이 우리는 자이언츠를 응원하지 요미우리를 응원하는 게 아니라며 반발해 1년만에 요미우리는 다시 팔에 작게 새겨지게 되었다.
12구단 중 구단명에 유일하게 지역명이 들어가지 않은 구단이다. 요즈음 추세는 다 지역명 기업명 순의 구단들이다.
홋카이도 니혼햄 파이터즈 처럼 혹은 한신이나 주니치 조차 기업명에 사실은 지역명이 들어간 경우다/
한신 전기철도은 한신은 오사카와 고베를 잇는 철도라 각각 한자씩 따온 것이기 때문 오사카 대판 고베 신호 판신.
주니치의 주니치신문의 중일도 중부지역 츄부라는 뜻이 들어간 것이다.
요미우리는 전국지 전국 방송이기에 지역명을 넣으면 지방에서 사업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한사코 구단명에 지역명이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근데 그러든지 말든지 어짜피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도쿄 팀이건 다 안다. 원정 유니폼에는 도쿄라고 유니폼 가슴팜에 쓰여 있디고 하고(이걸 요미우리로 바꿨다고 반발을 샀다. 구단 레전드 선수인 마츠이 히데끼도 왜 전통을 바꿔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