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일본 제국의 자객들이 경복궁 내 건청궁에 난입하여 민비를 난도질하여 살해한 사건.

민비가 비극적으로 일본인에 의해 죽었기 때문에

그녀가 생전에 했던 패악질이 묻히고,

무슨 조선의 성녀인냥 미화 왜곡되는 경우가 있다. 뮤지컬 드라마 명성황후가 대표적인 경우

2. 영향

이로 인해 을미개혁이 중단되었으며, 고종은 아관파천을 단행하였다. 아관파천은 황제가 살기 위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간 사건이다.

이승만은 런승만이라고 조롱하면서도,

이승만은 신생 독립국을 세운지 불과 2년도 되지 않은 상태였고, 미군에게 절대 가지 말라고 말렸으나 미군이 이를 무시했다.

반면 고종은 친정한지 수십 년이 지난 이후였음에도,

아관파천한 길은 고뇌의 길이라며 포장되었다.

고종은 총리 대신 김홍집과 외부 대신 김윤식, 내부 대신 유길준, 탁지부 대신 어윤중, 군부 대신 조희연, 법무 대신 장박, 그리고 정병하, 김종한, 허진, 이범래, 이진호 등을 즉시 면직시키고 유길준 등은 체포할 것을 명령했다. 또한 김홍집, 어윤중, 정병하가 군중에게 살해되었다.

대안도 없이 자신의 감정을 추체하지 못한 채 대신들을 면직하고 체포한 고종이나, 갑오개혁 때는 신분제 폐지를 좋다고 했으면서도 2년도 채 되지 않아 태도를 바꾸어 직접적인 살해 행위자도 아닌 대신들을 살해한 군중이나 미개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이것만 봐도 을사오적 즉 5대 대신이 고종의 뜻에 반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종은 자기 뜻에 반한 세력이나 사람들은 뒤로 공작을 해서라도 암살하거나 제거하였다.

김홍집, 김옥균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김옥균은 갑신정변 실패 후 상하이로 도주했으나, 상하이에서 살해되었고 그 유해는 조선으로 옮겨져 효수되었다.

갑신정변의 배후에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있었으며, 김옥균 본인도 후쿠자와 유키치의 제자였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조선을 야만 국가로 여기게 된 이유 중 하나로 김옥균 효수 사건이 거론된다.

독립협회 등 고종에 반대한 세력과는 달리, 을사오적으로 불린 5대 대신에 대해서는 암살 시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3. 각주